바울의 삶과 신학 (남궁영)

최경환
2018-04-16
조회수 3936

갈릴에서 로마제국까지
현대 신약성서 연구 동향

강사: 남궁영 박사


2018년 4월 12일
새물결아카데미 세미나1실


바울의 삶과 서신


  1. 올해 바울의 일대기에 대해서 쓴 톰 라이트의 책이 있다. "Paul: A Biography" 라이트는 바울을 굉장히 다채로운 성격과 배경을 가진 인물로 보고 있다. 쉬운 책이기 때문에 바울 전기로 추천한다.
  2. F. F. Bruce가 쓴 <바울>은 1974년에 쓰여진 고전인데, 바울에 대해서 자세하게 서술했다. 오래된 책이지만 아직까지도 브루스의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3. 왜 우리가 바울의 신학 뿐만 아니라 그의 삶도 배워야 하는가? Richard E. Brown, 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Doubleday, 1997)
  4. 기독교를 이해하려면 바울의 신앙, 삶, 경건에 대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1차 자료: 바울서신 (바울이 직접 쓴 자료)
    2차 자료: 사도행전 (바울에 대해 쓴 자료)
    3차 자료: NT Apocrypha (The Acts of Paul, 주후 160경); 터툴리안이 처음 언급, 나중에는 약간 이단적이라고 생각해서 배척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바울에 대한 (겉) 이미지는 모두 이 문서에서 나온 얘기다. 바울의 외모나 순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5. 바울의 출생지: 행 21:39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 주전 5세기경 유리피데스는 "no ordinary city" 라고 표현했다. 아테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아카데미였다. 키켈로는 길리기아의 집정관이었다. 또 길리기아는 Mithras 신전(비밀종교단체)이 있던 곳이었다. 불트만은 이걸 통해 바울이 전한 복음은 미트라스와 비슷했다고 말했다.
  6. 바울의 교육: 행 22:3, 가말리엘은 당시 힐렐 학파의 수장이었다. 가말리엘은 온건한 입장이었다. 바울은 당시 초중등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힐렐 학파가 아니라 샴마이 학파처럼 보인다. '누가 내 이웃이냐?'라는 질문에 샴마이는 유대인만 내 이웃이라고 말하고, 힐렐 학파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톰 라이트는 바울이 샴마이 학파의 영향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공부는 굉장히 온건하게 했으면서, 행동은 과격하게 했기 때문에 해석이 분분하다. 힐렐의 수제자였던 바울이 행동은 굉장히 샴마이처럼 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성 가멜리엘의 날이 있을 정도다.)
  7. 바울의 로마 시민권: 행 16:35-39(빌립보 소요), 행 22:22-29(예루살렘 소요), 행 25:10-12(가이사랴 소요), 유대인이면서 다소성의 시민권을 가지면서 어떻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을까? 누가가 바울을 훌륭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지어낸 내용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바울은 나중에 목베임을 당해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목베임은 로마 시민권자들의 처형 방식이었다.
  8. 바울의 직업기술: 천막 만들기 (행 18:3), 바울은 왜 자비량 선교를 했을까? 살전 2:9, 행 21:33-34, 살후 3:7-9, 고전 4:12, 당시 길리기아 다소는 군사, 상업의 요충지였기에 가능했다.
  9. 바울의 회심: 다마스커스, 다마스커스는 쿰란 공동체가 예루살렘 공동체로부터 피신한 장소였다. 쿰란 공동체는 메시야가 다마스커스에 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신학을 쿰란 공동체의 신학과 연결해서 해석하려고 한다. (세례, 회개, 종말론 등) 당시 에세네파 사람들이 모두 동굴에 들어가서 살았던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일상적인 마을에서 살았다. 때문에 바울의 첫 사역지가 다마스커스였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바울의 회심 이후 아라비아와 다마스커스에서의 사역이 그의 신학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줬을 것이다.
  10. 바울의 4차 선교여행? (주후 62-67) 딛 1:5, 롬 15:24, 28, 스페인 여행에 대한 언급, 클레멘츠 1서 5:6-7 (클레멘츠 서신은 초대교회에서 정경과 같은 권위를 서신이었다.): 클레멘츠는 바울이 스페인 지역까지 선교를 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무라토리안 정경 (주후 170년경) 바울이 로마를 떠나서 스페인으로 여행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에우세비오수의 책에도 동일하게 로마에서 풀려나와 선교 여행을 하고 두번째 로마로 압송돼 순교를 당했다고 기록돼있다.



바울의 신학


Kent L. Yinger, The New Perspective on Paul: An Introduction (Wipf & Stock, 2011)
제임스 던의 제자, 새관점을 잘 소개한 책, '새관점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예요.' 느낌.

  1. 새관점의 출발점
    - 예수에 대한 새관점이 시작이었다.
    - 그리고 E. P. Sanders의 유대교에 대한 새관점이 중요했다.
    - 이 두 가지가 바울의 새관점에 큰 영향을 줬다.
  2. 샌더스의 논의: 유대교는 율법주의 종교가 아니라 은혜의 종교다. 그럼 왜 바울은 유대교를 적대시하고 비판했을까? 왜 문제시했을까? 샌더스는 유대교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해답을 주셨기 때문에 기독교가 중요한 것이지, 유대교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해답으로 주셨구나.' 그럼 유대교는 뭐지? 유대교에 문제가 있어서 유대교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해답이 나왔기 때문에 유대교를 비판한 것이다. 결국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 Covernantal Nomism: Divine agency/grace (covernant) + Human agency/obedience (nomism), 샌더스는 언약적 율법주의를 패턴으로 구조로 설명을 했다. 규범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이 그런 패턴과 구조로 실제로 이해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4. 제2성전기 문헌의 상황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고 실패했기 때문에 상당히 곤고한 상태였다.
    -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깨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의 시초는 시내산 언약이 아니라 창조 시에 이미 맺어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아무리 깽판을 쳐도 언약은 깨지지 않는다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당시 유대교는 은혜 종교로 갔던 것이다. 이건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반향이었다.
  5. NPP의 기본전제
    - 바울의 관심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유대인이 되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의 언약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 샌더스는 바울의 신학은 언약적 율법주의와 다르다. 바울은 그걸로 설명할 수 없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참여함(알버트 슈바이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에 더 집중했다.
    - 제임스 던과 라이트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는 언약적 율법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약적 신실함은 인정한다.
    - 던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을 더 강조해서, 율법의 행위가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방인은 boundary maker을 바꾸면 된다. 그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 라이트는 보다 더 신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exile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칭의를 언약적 신실함으로 보고, 아브라함의 언약을 세계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던의 입장에 신학적인 입장을 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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