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모든 기독교인이 다시 한번 깊이 재고해보아야 할 책이 나왔는데, 그 주제가 다름 아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본서는 상당히 도발적인 책으로서, 흔히 교회에서 접하는 설교에만 의존적인 독자들에게는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본서의 저자는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하면서 “예수만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올바로 전달해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울러 신약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지적 동의는 물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본서에서 복음의 실제적이고 온전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경 본문에 근거한 철저한 주해를 통해, 그리고 일부 학자들과 저명한 교회 지도자들의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반박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믿음”이란 단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다시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믿음”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단어 피스티스는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번역되지만, 믿음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충성이란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로마 황제에게 충성이 매우 중요했던 것만큼 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도 마찬가지였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도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강조했던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저자는 “복음이 말하는 충성”(Gospel Allegiance)이라는 원서의 제목처럼 복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반응은 “왕이신 예수께 대한 충성”이며, 성경적 믿음(피스티스)은 믿음을 통해 표현되면서도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표현해주는 “충성”이라는 용어로 가장 잘 설명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그는 본서에서 신약성경에 나타난 충성을 요구하는 복음의 기본 요소를 열 가지로 요약한다. 저자의 논의는 신약 본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복음을 왕, 다윗의 메시아, 아브라함과의 약속(언약)이라는 측면에서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서는 전반적으로 복음을 “새롭게 습득하는 것”과 복음의 내용을 언급하는 성경의 주요 본문을 재점검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이 반박하고 있는 복음/구원에 대한 대표적인 본문으로 알려진 에베소서 2:8-10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구원이 단순히 개인에게만 전유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공동체적인 성격에 주목하며, 복음이 말하는 충성이 믿음과 행함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방식과 그와 관련하여 육체적인 행동의 역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논의를 제공한다. 본서는 또한 신약학, 특히 바울 서신에 대한 최근 연구, 특히 은혜의 1세기 개념을 재정의한 존 바클레이의 최근 연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스콧 맥나이트와 N. T. 라이트의 성경적‧신학적 접근 방식도 곁들여 소개한다.
저자는 이미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이라는 책을 통해 이 중요한 주제를 학문적으로 논증하여 학자들과 교회 목회자들에게 칭송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에는 보다 폭넓은 독자층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독자 친화적인 용어와 일상적인 사례를 곁들이는 접근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는 책 뒷부분에서 독자들을 위해 각 장의 내용을 친절하게 요약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나 스터디그룹으로 모여 추가로 논의하거나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가이드 질문도 제공해준다. 따라서 본서는 교회 안에 “믿는 교인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진정으로 충성된 성도들”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성도들을 올바르게 목양하기를 원하는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일반 성도들에게도 복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으로 응답하기를 원하는 열망을 그 마음속에 강하게 불어넣어 줄 것이다.
지은이 소개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
미국 노터데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Ph.D.)를 받았고, 퀸시 대학교에서 신학 부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노던 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The Birth of the Trinity (Oxford), The Hermeneutics of the Apostolic Proclamation (Baylor),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새물결플러스 역간) 등이 있다. 매우 인기 있는 성경과 신학 팟캐스트인 “온스크립트”(OnScript)의 공동창시자이자 공동진행자이기도 한 그는 등산과 야구를 좋아하며 슬하에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옮긴이 소개
홍수연
영국에서 종교사회학을 공부했다. 교회의 세속화 현상 및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요한계시록의 심장』,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교회와 유아 세례』, 『하나님은 왜 폭력에 연루되시는가?』, 『로마 세계의 초기 기독교 이해』, 『신약성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읽기』, 『트랜스젠더 경험 이해하기』, 『기독교 시온주의의 역사』, 『현대를 위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기독교와 과학이 교차로에서 만나려면』(이상 새물결플러스) 등이 있다.
차례
감사의 말
서론
1부: 복음이 말하는 충성 발견하기
1장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2장 믿음이 아니라 충성
3장 온전한 왕의 복음
가교: 분명해진 복음, 활성화된 복음
2부: 복음이 말하는 충성 전개하기
4장 여섯 가지 차원의 은혜
5장 믿음은 몸으로 구현된다
6장 행위는 어떻게 구원하는가?
7장 충성의 도전 받아들이기
부록 1: 복음이 말하는 충성 요약
부록 2: 추가 대화를 위한 가이드
성경 및 고대 문헌 색인
본문 중에서
우리의 이신칭의가 복음 혹은 복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성경에 정통한 목회자와 학자들이 범하는 가장 일반적인 오류다. 로마서의 길 접근법처럼 이 견해도 바울 서신을 활용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은유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법정이다. 우리는 특히 바울이 “의”와 “칭의”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데서 이것을 발견한다. 이 단어들은 법적으로 정당하거나 무죄한 상태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재판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즉 우리의 지위가 유죄에서 무죄로 바뀐다.
종교개혁 시대의 많은 논쟁은 이러한 지위의 변화가 정확히 어떻게 일어나는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이러한 무죄 선언은 오직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가톨릭교회는 보속(penance)과 면죄(absolution)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대응했다. 가톨릭교회는 심각한 죄는 세례 때 얻은 은혜를 잃게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은 후에 심각한 죄를 짓는다면 그는 화해의 성례를 통해 은혜의 상태로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6장에서 이 논쟁의 상세한 의미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현재로서는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확신이 확고했기 때문에 종종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르거나 복음의 일부에 포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_1장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신약 시대를 다룬 가장 권위 있는 사전에서 피스티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우리는 다소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첫 번째 정의에 대한 용어 해설은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사람의 자질, 즉 신실함(faithfulness),신뢰성(reliability), 충성/신실함(fidelity), 헌신(commitment)을 나타낸다.
번역가들과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피스티스를 신실함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피스티스가 구원에도 적합한 용어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노예들은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며, 주인에게 “모든 참된 피스티스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딛 2:10, 저자의 번역).바울은 노예들이 주인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온전한 신실함 또는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십일조에 관해 언급하면서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들, 즉 “정의와 긍휼과 피스티스”를 경시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한다(23:23, 저자의 번역).
_2장 믿음이 아니라 충성
파이퍼의 분석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우리가 1장에서 본 바와 같이 성경은 절대로 우리의 이신칭의가 복음의 일부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 자체는 예수의 의로움(부활과 즉위를 통한 정당성을 인정받음)에 관한 것이고,피스티스는 복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둘째, 위의 인용문과 관련하여 왕의 복음에 대항하여 이신칭의를 변호하려는 파이퍼는 “내가 사면(amnesty)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좋은 소식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주의적 구원 신학의 체계화가 1세기 단어의 의미보다 우선하도록 허용했다. 유앙겔리온(euangelion, 복음)이라는 단어는 신약 시대에 황제가 통치를 잘 할지 말지에 대한 실제적인 관심 없이 제국의 통치와 관련된 기쁜 소식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바울의 동시대 사람인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즉위 소식을 언급하는 데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_3장 온전한 왕의 복음
은혜의 마지막 측면인 답례의 선물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이 구원을 체계화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가장 큰 왜곡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선물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답례의 선물을 해야 한다.
순수한 선물은 선물을 받는 조건이나 보답의 기대 또는 의무가 전혀 없이 자유롭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순수한 선물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 여성이 남자친구가 간절히 바라던 운동화를 선물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보답을 조건으로 선물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썩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즉 “그는 내가 원하는 테니스 라켓을 사주는 것으로 보답할 경우에만 그 신발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생각을 표현한다면 말이다. 만약 우리가 선물을 주고 답례로 선물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현대인으로서 그 선물하는 행위를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대 세계에서 선물이 순수해야 한다거나 답례를 염두에 두지 않고 공짜로 거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성경 저자를 포함하여 아무도 없었다.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이상적인 선물이 비순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고대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다. 고대인들은 그와 정반대로 생각했다! 은혜나 선물은 답례 선물로 반드시 보답해야 하는 것이었다.만약 보답하지 않으면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4장 여섯 가지 차원의 은혜
복음-충성 모델은 행위가 믿음(피스티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 약간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교회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믿음에 대한 이해는 변화했다. 믿음의 개념은 외적, 육체적, 능동적인 것으로 시작해서 내적, 감정적, 수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교회는 믿음과 행위 사이의 올바른 성경적 관계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와 왕에 대한 복음의 초점을 점점 인식함에 따라 복음-충성 틀 안에서 새로운 종합이 가능해진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개신교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전통적 개신교의 입장은 더욱 정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을 가져다주는 선한 행위는 단순히 예수에 대한 피스티스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구원을 가져다주는 선한 행위는 왕이신 예수께 대한 충성을 구현한 피스티스의 일부다. 이것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이 주로 내적 확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이다. 또한 지적 동의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육신의 행위가 따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피스티스는 처음부터 육신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선한 행위는 왕이신 예수께 대한 피스티스와 독립적으로는 결코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오직 그 선한 행위가 예수께 대한 피스티스로 구현될 경우에만 구원을 가져다준다.
_5장 믿음은 몸으로 구현된다
충성은 예수의 속죄에 대한 내적 신뢰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목적을 재설정한다. 충성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하는 믿음(피스티스)이 외부지향적이며, 행위를 수반하고, 관계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왕을 지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한 행위는 단순히 내적인 믿음의 결과가 아니다. 피스티스는 사고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몸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피스티스는 몸으로 구현하는 것과 절대 다른 것일 수 없다. 선한 행위는 단순히 칭의나 그 열매의 결과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피스티스 안에서 그 근거의 일부를 형성한다.
그러나 복음이 말하는 충성은 가톨릭의 성례주의를 거부한다. 가톨릭의 성례주의는 선한 행위를 믿음 안에서 칭의의 근거의 일부로 올바르게 허용하지만, 칭의가 유지되고 완성되려면 일련의 행위를 수행하고(행위의의) 규범을 어겨서는 안 된다(율법주의)는 잘못된 요구를 한다. 성경에 따르면 구원을 가져다주는 행위는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왕께 대한 충성을 구현하는 행위에만 해당하며, 규범의 이행을 요구하는 체계 안에 속한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구원하는 믿음은 구원을 베푸시는 왕께 대한 충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_6장 행위는 어떻게 구원하는가?
추천사 중에서
본서는 복음의 내용이 왕으로 즉위해 있는 예수에 대한 충성이라는 측면으로 철저하게 신약성서 연관 본문을 해석해내고 있다. 그 동안 복음을 이신득의에 대한 지적 동의로만 알았던 크리스천들에게 본서는 복음의 내용과 실천에 대한 신선한 지식을 제공해줌과 아울러 복음의 핵심 내용인 왕이신 예수께 지금 충성해야 함을 도전하고 있다.
--김동수, 평택대학교 신학과 교수
저자는 신앙과 행위, 이신칭의, 믿음 우선주의와 같은 가르침들 안에 놓인 대중적 오해와 오류들을 과감하게 지적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본류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기존 태도를 흔들어 놓을 뿐 아니라 새롭게 복음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저자는 복음의 클라이맥스(climax)인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강력한 토대라고 선언함으로써 독자를 복음의 본질 앞으로 호출한다. 기존의 해석과 달라 다소 도발적이지만, 저자의 논지를 곱씹어 보면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섭취할 또 하나의 영양소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저자는 복음이란 기존의 로마서의 길도, 이신칭의도, 하나님이나 예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복음의 신학적 요점은 “예수가 왕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공자부터 비전공자에 이르기까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움을 증여한다.
--이민규,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새 관점의 입장에 서서 기독론과 구원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는 훌륭한 책으로 일반 성도, 목회자, 신학자들의 신앙과 학문에 큰 유익을 줄 것이다.
--이상일, 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복음과 믿음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게 할 새 책이 나왔다. 충성에 대한 저자의 강조는 우리 시대에 “충성된 순종”이 약화된 분위기에 충분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본서는 복음이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이며, 참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길로 독자를 인도하고 자극할 것이다.
--이진섭,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단순히 교리적 제의적 고백 속에 겉돌아온 신약성서의 이 개념들은 이 책에서 철저히 해부되어 새로운 함의로 거듭나며 성서적 신앙의 층을 두텁게 조형한다. 이 책은 그 개념의 풍성한 재구성, 재조명을 통해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외면하거나 피상적으로 인식해온 믿음의 세계를 충성과 행함, 은혜와 구원이란 맥락에서 확대 적용함으로써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소통시키고, 1세기 당대의 신앙과 21세기 오늘날의 신앙을 연동시킨다.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이 작품은 베이츠가 앞서 소개한 자신의 책 『오직 충성으로 얻는 구원』의 자매편과 같다. 도발과 전복의 시즌 2인 셈이다. 이전보다 더 교육적이고 더 목양적인 걸 보면 “복음이 말하는 충성”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보여주는 듯싶다. 예수의 제자로 살기를 고민하고 있는가? 베이츠의 오랜 고민과 해법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허주, 아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베이츠는 자신의 강력한 목소리를 더해 주요 목회자-신학자들에게 보다 정확한 복음을 전하도록 도전한다. 교회에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스캇 맥나이트, 노던 신학교, 『예수 왕의 복음』의 저자
『왕이신 예수의 복음』은 성경의 복음이 포괄적인 복음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정곡을 찌른다.
--바비 해링턴, Renew.org 및 Discipleship.org의 설립자
본서는 신약성경으로 돌아가 복음을 다시 한번 듣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책이다.
--팀 맥키, 더 바이블 프로젝트 공동 설립자
당신은 충격 때문에 한걸음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호기심에 쌓이게 되지만, 결국에는 충성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분께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카일 아이들먼, 켄터키주 루이빌의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 담임목사, 『팬인가, 제자인가』의 저자
나는 나의 학생들과 교우들에게 이 도구를 제공하여 우리가 모두 복음의 영광에 새롭게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에이미 필러, 휘튼 대학
『왕이신 예수의 복음』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논증을 제시한다. 베이츠는 믿음은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성경적 믿음은 충성이다.
--마크 E. 무어, 피닉스 밸리의 그리스도의 교회 담임목사
책소개
모든 기독교인이 다시 한번 깊이 재고해보아야 할 책이 나왔는데, 그 주제가 다름 아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본서는 상당히 도발적인 책으로서, 흔히 교회에서 접하는 설교에만 의존적인 독자들에게는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본서의 저자는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하면서 “예수만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올바로 전달해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울러 신약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지적 동의는 물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본서에서 복음의 실제적이고 온전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경 본문에 근거한 철저한 주해를 통해, 그리고 일부 학자들과 저명한 교회 지도자들의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반박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믿음”이란 단어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다시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믿음”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단어 피스티스는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번역되지만, 믿음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충성이란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로마 황제에게 충성이 매우 중요했던 것만큼 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도 마찬가지였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도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강조했던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저자는 “복음이 말하는 충성”(Gospel Allegiance)이라는 원서의 제목처럼 복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반응은 “왕이신 예수께 대한 충성”이며, 성경적 믿음(피스티스)은 믿음을 통해 표현되면서도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표현해주는 “충성”이라는 용어로 가장 잘 설명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그는 본서에서 신약성경에 나타난 충성을 요구하는 복음의 기본 요소를 열 가지로 요약한다. 저자의 논의는 신약 본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복음을 왕, 다윗의 메시아, 아브라함과의 약속(언약)이라는 측면에서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서는 전반적으로 복음을 “새롭게 습득하는 것”과 복음의 내용을 언급하는 성경의 주요 본문을 재점검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이 반박하고 있는 복음/구원에 대한 대표적인 본문으로 알려진 에베소서 2:8-10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 구원이 단순히 개인에게만 전유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공동체적인 성격에 주목하며, 복음이 말하는 충성이 믿음과 행함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방식과 그와 관련하여 육체적인 행동의 역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논의를 제공한다. 본서는 또한 신약학, 특히 바울 서신에 대한 최근 연구, 특히 은혜의 1세기 개념을 재정의한 존 바클레이의 최근 연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스콧 맥나이트와 N. T. 라이트의 성경적‧신학적 접근 방식도 곁들여 소개한다.
저자는 이미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이라는 책을 통해 이 중요한 주제를 학문적으로 논증하여 학자들과 교회 목회자들에게 칭송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에는 보다 폭넓은 독자층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독자 친화적인 용어와 일상적인 사례를 곁들이는 접근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는 책 뒷부분에서 독자들을 위해 각 장의 내용을 친절하게 요약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나 스터디그룹으로 모여 추가로 논의하거나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가이드 질문도 제공해준다. 따라서 본서는 교회 안에 “믿는 교인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진정으로 충성된 성도들”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성도들을 올바르게 목양하기를 원하는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일반 성도들에게도 복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으로 응답하기를 원하는 열망을 그 마음속에 강하게 불어넣어 줄 것이다.
지은이 소개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
미국 노터데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Ph.D.)를 받았고, 퀸시 대학교에서 신학 부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노던 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The Birth of the Trinity (Oxford), The Hermeneutics of the Apostolic Proclamation (Baylor),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새물결플러스 역간) 등이 있다. 매우 인기 있는 성경과 신학 팟캐스트인 “온스크립트”(OnScript)의 공동창시자이자 공동진행자이기도 한 그는 등산과 야구를 좋아하며 슬하에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옮긴이 소개
홍수연
영국에서 종교사회학을 공부했다. 교회의 세속화 현상 및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요한계시록의 심장』,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교회와 유아 세례』, 『하나님은 왜 폭력에 연루되시는가?』, 『로마 세계의 초기 기독교 이해』, 『신약성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읽기』, 『트랜스젠더 경험 이해하기』, 『기독교 시온주의의 역사』, 『현대를 위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기독교와 과학이 교차로에서 만나려면』(이상 새물결플러스) 등이 있다.
차례
감사의 말
서론
1부: 복음이 말하는 충성 발견하기
1장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2장 믿음이 아니라 충성
3장 온전한 왕의 복음
가교: 분명해진 복음, 활성화된 복음
2부: 복음이 말하는 충성 전개하기
4장 여섯 가지 차원의 은혜
5장 믿음은 몸으로 구현된다
6장 행위는 어떻게 구원하는가?
7장 충성의 도전 받아들이기
부록 1: 복음이 말하는 충성 요약
부록 2: 추가 대화를 위한 가이드
성경 및 고대 문헌 색인
본문 중에서
우리의 이신칭의가 복음 혹은 복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성경에 정통한 목회자와 학자들이 범하는 가장 일반적인 오류다. 로마서의 길 접근법처럼 이 견해도 바울 서신을 활용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은유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법정이다. 우리는 특히 바울이 “의”와 “칭의”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데서 이것을 발견한다. 이 단어들은 법적으로 정당하거나 무죄한 상태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재판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즉 우리의 지위가 유죄에서 무죄로 바뀐다.
종교개혁 시대의 많은 논쟁은 이러한 지위의 변화가 정확히 어떻게 일어나는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이러한 무죄 선언은 오직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가톨릭교회는 보속(penance)과 면죄(absolution)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대응했다. 가톨릭교회는 심각한 죄는 세례 때 얻은 은혜를 잃게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은 후에 심각한 죄를 짓는다면 그는 화해의 성례를 통해 은혜의 상태로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6장에서 이 논쟁의 상세한 의미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현재로서는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확신이 확고했기 때문에 종종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르거나 복음의 일부에 포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_1장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신약 시대를 다룬 가장 권위 있는 사전에서 피스티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우리는 다소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첫 번째 정의에 대한 용어 해설은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사람의 자질, 즉 신실함(faithfulness),신뢰성(reliability), 충성/신실함(fidelity), 헌신(commitment)을 나타낸다.
번역가들과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피스티스를 신실함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피스티스가 구원에도 적합한 용어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노예들은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며, 주인에게 “모든 참된 피스티스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딛 2:10, 저자의 번역).바울은 노예들이 주인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온전한 신실함 또는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십일조에 관해 언급하면서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들, 즉 “정의와 긍휼과 피스티스”를 경시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한다(23:23, 저자의 번역).
_2장 믿음이 아니라 충성
파이퍼의 분석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우리가 1장에서 본 바와 같이 성경은 절대로 우리의 이신칭의가 복음의 일부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 자체는 예수의 의로움(부활과 즉위를 통한 정당성을 인정받음)에 관한 것이고,피스티스는 복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둘째, 위의 인용문과 관련하여 왕의 복음에 대항하여 이신칭의를 변호하려는 파이퍼는 “내가 사면(amnesty)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좋은 소식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주의적 구원 신학의 체계화가 1세기 단어의 의미보다 우선하도록 허용했다. 유앙겔리온(euangelion, 복음)이라는 단어는 신약 시대에 황제가 통치를 잘 할지 말지에 대한 실제적인 관심 없이 제국의 통치와 관련된 기쁜 소식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바울의 동시대 사람인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즉위 소식을 언급하는 데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_3장 온전한 왕의 복음
은혜의 마지막 측면인 답례의 선물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이 구원을 체계화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가장 큰 왜곡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선물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답례의 선물을 해야 한다.
순수한 선물은 선물을 받는 조건이나 보답의 기대 또는 의무가 전혀 없이 자유롭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순수한 선물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 여성이 남자친구가 간절히 바라던 운동화를 선물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보답을 조건으로 선물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썩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즉 “그는 내가 원하는 테니스 라켓을 사주는 것으로 보답할 경우에만 그 신발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생각을 표현한다면 말이다. 만약 우리가 선물을 주고 답례로 선물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현대인으로서 그 선물하는 행위를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대 세계에서 선물이 순수해야 한다거나 답례를 염두에 두지 않고 공짜로 거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성경 저자를 포함하여 아무도 없었다. 현대의 가치관으로는 이상적인 선물이 비순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고대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다. 고대인들은 그와 정반대로 생각했다! 은혜나 선물은 답례 선물로 반드시 보답해야 하는 것이었다.만약 보답하지 않으면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4장 여섯 가지 차원의 은혜
복음-충성 모델은 행위가 믿음(피스티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 약간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교회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믿음에 대한 이해는 변화했다. 믿음의 개념은 외적, 육체적, 능동적인 것으로 시작해서 내적, 감정적, 수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교회는 믿음과 행위 사이의 올바른 성경적 관계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이러한 변화와 왕에 대한 복음의 초점을 점점 인식함에 따라 복음-충성 틀 안에서 새로운 종합이 가능해진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개신교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전통적 개신교의 입장은 더욱 정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을 가져다주는 선한 행위는 단순히 예수에 대한 피스티스를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구원을 가져다주는 선한 행위는 왕이신 예수께 대한 충성을 구현한 피스티스의 일부다. 이것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이 주로 내적 확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이다. 또한 지적 동의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육신의 행위가 따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피스티스는 처음부터 육신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선한 행위는 왕이신 예수께 대한 피스티스와 독립적으로는 결코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오직 그 선한 행위가 예수께 대한 피스티스로 구현될 경우에만 구원을 가져다준다.
_5장 믿음은 몸으로 구현된다
충성은 예수의 속죄에 대한 내적 신뢰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목적을 재설정한다. 충성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하는 믿음(피스티스)이 외부지향적이며, 행위를 수반하고, 관계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왕을 지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한 행위는 단순히 내적인 믿음의 결과가 아니다. 피스티스는 사고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몸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피스티스는 몸으로 구현하는 것과 절대 다른 것일 수 없다. 선한 행위는 단순히 칭의나 그 열매의 결과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피스티스 안에서 그 근거의 일부를 형성한다.
그러나 복음이 말하는 충성은 가톨릭의 성례주의를 거부한다. 가톨릭의 성례주의는 선한 행위를 믿음 안에서 칭의의 근거의 일부로 올바르게 허용하지만, 칭의가 유지되고 완성되려면 일련의 행위를 수행하고(행위의의) 규범을 어겨서는 안 된다(율법주의)는 잘못된 요구를 한다. 성경에 따르면 구원을 가져다주는 행위는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왕께 대한 충성을 구현하는 행위에만 해당하며, 규범의 이행을 요구하는 체계 안에 속한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구원하는 믿음은 구원을 베푸시는 왕께 대한 충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_6장 행위는 어떻게 구원하는가?
추천사 중에서
본서는 복음의 내용이 왕으로 즉위해 있는 예수에 대한 충성이라는 측면으로 철저하게 신약성서 연관 본문을 해석해내고 있다. 그 동안 복음을 이신득의에 대한 지적 동의로만 알았던 크리스천들에게 본서는 복음의 내용과 실천에 대한 신선한 지식을 제공해줌과 아울러 복음의 핵심 내용인 왕이신 예수께 지금 충성해야 함을 도전하고 있다.
--김동수, 평택대학교 신학과 교수
저자는 신앙과 행위, 이신칭의, 믿음 우선주의와 같은 가르침들 안에 놓인 대중적 오해와 오류들을 과감하게 지적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본류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기존 태도를 흔들어 놓을 뿐 아니라 새롭게 복음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저자는 복음의 클라이맥스(climax)인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강력한 토대라고 선언함으로써 독자를 복음의 본질 앞으로 호출한다. 기존의 해석과 달라 다소 도발적이지만, 저자의 논지를 곱씹어 보면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섭취할 또 하나의 영양소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저자는 복음이란 기존의 로마서의 길도, 이신칭의도, 하나님이나 예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복음의 신학적 요점은 “예수가 왕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공자부터 비전공자에 이르기까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움을 증여한다.
--이민규,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새 관점의 입장에 서서 기독론과 구원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는 훌륭한 책으로 일반 성도, 목회자, 신학자들의 신앙과 학문에 큰 유익을 줄 것이다.
--이상일, 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복음과 믿음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게 할 새 책이 나왔다. 충성에 대한 저자의 강조는 우리 시대에 “충성된 순종”이 약화된 분위기에 충분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본서는 복음이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이며, 참 구원이 어떤 것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길로 독자를 인도하고 자극할 것이다.
--이진섭,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단순히 교리적 제의적 고백 속에 겉돌아온 신약성서의 이 개념들은 이 책에서 철저히 해부되어 새로운 함의로 거듭나며 성서적 신앙의 층을 두텁게 조형한다. 이 책은 그 개념의 풍성한 재구성, 재조명을 통해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외면하거나 피상적으로 인식해온 믿음의 세계를 충성과 행함, 은혜와 구원이란 맥락에서 확대 적용함으로써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소통시키고, 1세기 당대의 신앙과 21세기 오늘날의 신앙을 연동시킨다.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이 작품은 베이츠가 앞서 소개한 자신의 책 『오직 충성으로 얻는 구원』의 자매편과 같다. 도발과 전복의 시즌 2인 셈이다. 이전보다 더 교육적이고 더 목양적인 걸 보면 “복음이 말하는 충성”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보여주는 듯싶다. 예수의 제자로 살기를 고민하고 있는가? 베이츠의 오랜 고민과 해법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허주, 아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베이츠는 자신의 강력한 목소리를 더해 주요 목회자-신학자들에게 보다 정확한 복음을 전하도록 도전한다. 교회에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스캇 맥나이트, 노던 신학교, 『예수 왕의 복음』의 저자
『왕이신 예수의 복음』은 성경의 복음이 포괄적인 복음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정곡을 찌른다.
--바비 해링턴, Renew.org 및 Discipleship.org의 설립자
본서는 신약성경으로 돌아가 복음을 다시 한번 듣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책이다.
--팀 맥키, 더 바이블 프로젝트 공동 설립자
당신은 충격 때문에 한걸음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호기심에 쌓이게 되지만, 결국에는 충성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분께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카일 아이들먼, 켄터키주 루이빌의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 담임목사, 『팬인가, 제자인가』의 저자
나는 나의 학생들과 교우들에게 이 도구를 제공하여 우리가 모두 복음의 영광에 새롭게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에이미 필러, 휘튼 대학
『왕이신 예수의 복음』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논증을 제시한다. 베이츠는 믿음은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성경적 믿음은 충성이다.
--마크 E. 무어, 피닉스 밸리의 그리스도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