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이 시기에 그는 평생의 탐구 과제인 인격의 비밀에 대하여 본격적인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즉 두 인격으로 상징되는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 의식과 무의식, 또는 과학과 영성에 대한 인생의 과제를 비로소 진지하게 탐구했던 것이다. 융은 이 시기에 두 가지 상반된 세계를 화해시키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했던 방법은 첫째, 내면의 영성에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통한 철학적 분석으로 접근하는 것이었고, 둘째, 철학으로부터 정신의학으로 나아가 영성의 심리학적 이해의 기초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초핑기아(Zofingia) 학생회 활동이 전자의 방법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후자의 방법으로 나아가려는 초기의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_제2장 융의 핵심 과제 ― 대극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융이 프로이트를 공식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사건은 1906년 어느 학회에서 강박신경증에 관한 보고를 하면서 그의 이름이 고의적으로 묵살되었을 때였다. 그는 학회가 끝난 즉시 「뮌헨 의학주보」에 강박신경증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기여를 한 프로이트의 노이로제 학설에 관한 논문을 써서 보냈다. 이 논문에 대해 독일인 교수 두 사람이 융에게, “프로이트 편에 서서 계속 그를 옹호하면 대학에서의 당신의 장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협박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융은 다음과 같이 회답을 보냈다. “만일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의 편에 있겠습니다. 출세가 연구를 제약하고 진리를 묵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출세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융은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일을 계속했다
_제3장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그리고 자신의 심리학을 찾아서
그는 자기 자신 안에 1호 인격과 2호 인격이라고 표현한 서로 상반되는 성격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고, 그것들의 분열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열은 아버지를 통한 기존 기독교에 대한 불만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의 기독교는 메마른 도덕적 실천만 있었지 인간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경외로운 영성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 곧 어린 그에게 분열된 인격에 대한 과제와 영성이 메마른 기독교의 대표자와 같은 아버지에게서 풍겨 나오는 절망감이 기독교 안에는 답이 없고 기독교 그 너머 어딘가에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 소망을 심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하여튼 융에게 기존 기독교 사상을 넘어선다는 것은 우선 아버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격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맹목적이고 방향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신화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일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의 영향으로 인하여 기독교 엘리야의 형상이 비기독교적이고 영지주의적인 필레몬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융의 무의식에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_제4장 융이 본 영지주의
‘자기’의 개념이 집단무의식의 중심인 한, 개성화 과정을 공동체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자기의 개념은 그것 자체가 집단적이기 때문에 사회를 한 단위로 볼 때 각 개인의 자기들은 그 사회의 집단무의식의 중심에 모이게 된다. 융이 말하는 ‘자아와 자기의 관계’ 안에는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즉 개인은 동시에 사회의 일원이 되고, 그 사회는 또한 각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 이념이나 종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_제5장 분석심리학의 기본 틀
전이가 어떤 사람의 무의식이 특정한 인물에게 투사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투사와 전이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이는 환자-의사 사이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데도 주요하게 작용하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전이란 곧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는 한 방편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인간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이 현상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의 무의식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금술사가 여러 비밀스러운 방법들을 시행할 때 그려두었던 심상들은 바로 그들의 무의식이 투사된 그림들이다. 비밀스러운 방법들이 그들의 무의식을 활성화시켰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신 치료 상황에서도 시작부터 환자와 의사의 무의식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을 자연스럽게 의사에게 투사하게 되고, 의사도 환자에게 그의 무의식을 투사하게 된다. 둘 사이에서 전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연금술이나 정신 치료나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대상에게 자신의 무의식을 점차적으로 투사(전이)해간다는 점이다. 다만 그 상대가 살아 있는 인간인가, 아니면 명상을 통한 심상의 표출인가만 다를 뿐이다.
_제6장 전이심리학과 연금술
욥은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친구들과는 달리, 정의와 도덕의 잣대를 곧추세우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맞섰다. 이런 욥의 태도는 야웨가 자신을 스스로 의식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몰아갔고, 결국엔 야웨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러면서 야웨는 욥이 하찮은 미물이라는 것을 자각시키려는 듯 자신의 힘을 무자비하게 과시하지만, 그는 오히려 욥을 마치 그 자신과 대등한 권력을 가진 다른 신을 대하듯 도전적으로 그를 대한다. 이 시점에서 이제 욥은 야웨에게 하찮은 미물로서의 존재가 아니다. 욥은 야웨의 변증법적 내적 과정을 촉발시키는 외부적 계기로 작용한다. 심리학적으로 말해서 자아(욥)는 자기(야웨)의 변증법적 내적 과정을 촉발시키는 외부적 계기인 것이다. 이것은 자아-자기 동반자 관계(ego/Self partnership)에 관한 깨달음이다. 이것은 무의식의 의식화, 즉 ‘신적 드라마’의 진행 과정 중 한 부분으로서 자아 초월적 과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형상의 내적 변증 안에 동참할 때 자아가 신성한 또는 신과 같은 속성을 운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자아는 어떤 누미노제의 속성을 취하게 된다. “야웨가 욥을 마치 신처럼 여기고 대응했다”는 말이 바로 이 누미노제적 속성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_제7장 기독교 신화의 재해석 ― 『욥에의 응답』
[본문 중에서]
이 시기에 그는 평생의 탐구 과제인 인격의 비밀에 대하여 본격적인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즉 두 인격으로 상징되는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 의식과 무의식, 또는 과학과 영성에 대한 인생의 과제를 비로소 진지하게 탐구했던 것이다. 융은 이 시기에 두 가지 상반된 세계를 화해시키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했던 방법은 첫째, 내면의 영성에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통한 철학적 분석으로 접근하는 것이었고, 둘째, 철학으로부터 정신의학으로 나아가 영성의 심리학적 이해의 기초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초핑기아(Zofingia) 학생회 활동이 전자의 방법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후자의 방법으로 나아가려는 초기의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_제2장 융의 핵심 과제 ― 대극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융이 프로이트를 공식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사건은 1906년 어느 학회에서 강박신경증에 관한 보고를 하면서 그의 이름이 고의적으로 묵살되었을 때였다. 그는 학회가 끝난 즉시 「뮌헨 의학주보」에 강박신경증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인 기여를 한 프로이트의 노이로제 학설에 관한 논문을 써서 보냈다. 이 논문에 대해 독일인 교수 두 사람이 융에게, “프로이트 편에 서서 계속 그를 옹호하면 대학에서의 당신의 장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협박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융은 다음과 같이 회답을 보냈다. “만일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의 편에 있겠습니다. 출세가 연구를 제약하고 진리를 묵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출세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도 융은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일을 계속했다
_제3장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그리고 자신의 심리학을 찾아서
그는 자기 자신 안에 1호 인격과 2호 인격이라고 표현한 서로 상반되는 성격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고, 그것들의 분열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열은 아버지를 통한 기존 기독교에 대한 불만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의 기독교는 메마른 도덕적 실천만 있었지 인간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경외로운 영성은 결여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 곧 어린 그에게 분열된 인격에 대한 과제와 영성이 메마른 기독교의 대표자와 같은 아버지에게서 풍겨 나오는 절망감이 기독교 안에는 답이 없고 기독교 그 너머 어딘가에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 소망을 심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하여튼 융에게 기존 기독교 사상을 넘어선다는 것은 우선 아버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격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맹목적이고 방향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신화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일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의 영향으로 인하여 기독교 엘리야의 형상이 비기독교적이고 영지주의적인 필레몬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융의 무의식에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_제4장 융이 본 영지주의
‘자기’의 개념이 집단무의식의 중심인 한, 개성화 과정을 공동체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자기의 개념은 그것 자체가 집단적이기 때문에 사회를 한 단위로 볼 때 각 개인의 자기들은 그 사회의 집단무의식의 중심에 모이게 된다. 융이 말하는 ‘자아와 자기의 관계’ 안에는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즉 개인은 동시에 사회의 일원이 되고, 그 사회는 또한 각 개인에게 영향을 준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 이념이나 종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_제5장 분석심리학의 기본 틀
전이가 어떤 사람의 무의식이 특정한 인물에게 투사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투사와 전이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이는 환자-의사 사이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데도 주요하게 작용하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전이란 곧 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는 한 방편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인간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이 현상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의 무의식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금술사가 여러 비밀스러운 방법들을 시행할 때 그려두었던 심상들은 바로 그들의 무의식이 투사된 그림들이다. 비밀스러운 방법들이 그들의 무의식을 활성화시켰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신 치료 상황에서도 시작부터 환자와 의사의 무의식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을 자연스럽게 의사에게 투사하게 되고, 의사도 환자에게 그의 무의식을 투사하게 된다. 둘 사이에서 전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연금술이나 정신 치료나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대상에게 자신의 무의식을 점차적으로 투사(전이)해간다는 점이다. 다만 그 상대가 살아 있는 인간인가, 아니면 명상을 통한 심상의 표출인가만 다를 뿐이다.
_제6장 전이심리학과 연금술
욥은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친구들과는 달리, 정의와 도덕의 잣대를 곧추세우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맞섰다. 이런 욥의 태도는 야웨가 자신을 스스로 의식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몰아갔고, 결국엔 야웨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러면서 야웨는 욥이 하찮은 미물이라는 것을 자각시키려는 듯 자신의 힘을 무자비하게 과시하지만, 그는 오히려 욥을 마치 그 자신과 대등한 권력을 가진 다른 신을 대하듯 도전적으로 그를 대한다. 이 시점에서 이제 욥은 야웨에게 하찮은 미물로서의 존재가 아니다. 욥은 야웨의 변증법적 내적 과정을 촉발시키는 외부적 계기로 작용한다. 심리학적으로 말해서 자아(욥)는 자기(야웨)의 변증법적 내적 과정을 촉발시키는 외부적 계기인 것이다. 이것은 자아-자기 동반자 관계(ego/Self partnership)에 관한 깨달음이다. 이것은 무의식의 의식화, 즉 ‘신적 드라마’의 진행 과정 중 한 부분으로서 자아 초월적 과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형상의 내적 변증 안에 동참할 때 자아가 신성한 또는 신과 같은 속성을 운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자아는 어떤 누미노제의 속성을 취하게 된다. “야웨가 욥을 마치 신처럼 여기고 대응했다”는 말이 바로 이 누미노제적 속성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_제7장 기독교 신화의 재해석 ― 『욥에의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