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신성(神性)을 탐색하다!
책소개
“이 책은 이 세상의 한 시절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간 시인들이 꿈꾸고 만난 하나님, 어쩌면 낯설고 희한한 미지의 신과 그 신의 나라에 대한 신학자의 보고서다. 부디 이 땅의 메마르고 딱딱한 신학과 목회의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삶으로 성육하는 자리와 관계마다 풍성한 시적 영감이 넘실거리고, 그 가운데 우리의 부실하고 오염된 언어들이 새롭게 거듭나길 기원한다. 아울러,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과 시인들이 우리의 신학적 상상력을 증폭시켜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심오한 한 줄기가 우리 실존의 절벽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체험되길 기대해본다.”
_저자 서문에서
익숙한 일상도 언어를 입으면 새로운 빛깔과 모양이 된다. 그렇다면 시가 신학을 입으면 어떨까? 이 책은 신학자인 저자가 시 속에서 발견한 신성에 대해 말한다. 신앙의 언어와 신학의 담론으로 시를 해석하여 현대시에 각인된 종교적 감각을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와 진리를 탐구하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문이 기독교인 작가의 작품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백석의 시에서 방랑자의 고독과 신성을 읽고, 김종삼의 시에서 기독교 신앙이 사색의 재료로 기능한다고 읽는가 하면, 김수영의 <풀>은 풀과 꽃과 바람의 이미지가 구약성서와 긴밀하게 연계된다고 이해하고, 종교적 권위를 비틀고 냉소하는 이성복을 읽고, 기형도의 시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동네 목사를 발견하며, 안도현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 나오는 음식과 식사 이미지를 향유의 신학 이미지로 읽는다.
이 책은 시가 쓰인 시대적 배경과 시인의 생활환경은 물론이고, 시 속의 단어, 이미지, 공간, 소리, 움직임 심지어는 마침표와 쉼표의 개수까지 세어가며 꼼꼼하게 시를 풀어준다. 또한 시를 탐독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묵상하여 “인문 신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이해하던 시 해석에 신학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더할 수 있다. 아울러 성경과 복음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하나님을 제도화된 신조에 옭아매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할 것이다. 신학이 문학성을 담보할 수 있음을 증거하는 이 책을 통해 신학과 문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 풍성해지길 기대해본다.
지은이 _차정식
한국 신학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글을 쓰는 신학자다. 신학과 인문학을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글쓰기로 성서신학을 일상과 사회, 문학의 영역에 연계시켜 다양한 저술과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향연』『성서의 에로티시즘』『쩔쩔매시는 하나님』『일상과 신학의 여백』『성서주석 로마서 1,2』 등 20여 권의 저서와 『한국교회, 개혁의 길을 묻다』『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 등 20여 권의 공저를 냈고,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상․하)을 번역했으며, 그밖에 130여 편의 연구논문을 통해 꾸준한 학문적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신학성서의 환생 모티프와 그 신학적 변용』이 한국기독교학회에서 수여하는 제1회 소망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바울신학 탐구』는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종교)에, 『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화도서(종교)에 선정됐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B.A.)에서 역사의식을 길렀고, 미국 맥코믹 신학대학원(M.Div.)에서 신학적 사고를 훈련한 뒤, 시카고 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과 한국기독교학회 편집주간을 역임하였고, 21세기기독교사회문화아카데미 학회장으로도 섬긴 바 있다. 현재는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신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 홈페이지(chajs2000.byus.net)
목차
저자 서문
제1부 초월과 방랑, 역사와 자연
1장 방랑자의 고독에 깃드는 신성(백석)
2장 순진한 무심함 또는 예수의 고향(김종삼)
3장 눕고, 울고, 웃는 풀의 내력(김수영)
4장 사람으로 공부하는 하느님(마종기)
5장 ‘중심’의 괴로움과 ‘틈’의 구원(김지하)
6장 목련, 또는 ‘돌아감’의 여정(김지하)
제2부 치열한 대결, 거룩한 세속
7장 불멸에 이르는 불면(오규원, 남진우)
8장 ‘하느님’을 꿈꾸는 말들의 풍경(김정란)
9장 똥막대기 성자의 세계(최승호)
10장 독신의 신학적 역설(이성복, 권혁진)
11장 ‘미지’와 ‘흔적’으로서의 하나님(이성복)
12장 진창이 된 몸/삶의 거룩함(황지우)
제3부 관조의 양상, 성찰의 초상
13장 세 개의 바퀴(최승호, 류시화, 황동규)
14장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의 언저리(고정희, 임동확)
15장 시인 예수의 초상(정호승)
16장 신학적 관조의 두 양상(고진하, 배문성)
17장 바늘구멍 속의 일상(김기택)
18장 어느 ‘동네’ 목사의 쓸쓸한 초상(기형도)
제4부 사물의 즐거움, 생명의 아름다움
19장 별의 시학, 별의 신학(윤동주에서 이성복까지)
20장 나무를 만나는 세 가지 방식(나희덕)
21장 거미로 읽는 시대와 인간(황인숙, 이문재, 박형준, 박성우)
22장 가난과 적막, 그 신학적 미학(송찬호, 문태준, 박남준)
23장 덧없는 생을 누리는 법(장석남)|
24장 식사의 회복과 향유의 신학(안도현)
추천사
문학은 문학의 길을 가고, 신학은 신학의 길을 간다. 그 때문에 문학은 종교성이 담보하고 있는 깊이의 차원을 잃었고, 신학은 문학의 전복적 상상력을 도외시한 결과 상상력을 잃고 경직되었다. 이 둘은 본래 그러면 안 되는 사이다. 누구보다도 정치한 언어로 신학이 문학성을 담보할 수 있음을 보여온 차정식 박사는 이 책에서 문학과 신학이 만날 때 어떤 진경이 창조되는지를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 책의 출간과 더불어 신학과 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기석(문학평론가, 청파교회 담임목사)
우연히 책방에서 한국현대시를 분석한 뛰어난 단행본을 만났다. 글을 읽어보니 신학자인 저자는 분명 예외적이고 특별한 존재였다. ‘예외적’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인문학적 경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상상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하찮고 지리멸렬하거나 무거운 실존의 그늘을, 저자는 때로는 소탈하게, 때로는 극도로 미세하게 풀어낸다. 그간 서구적 이론을 따 붙이기에 바빴던 신학계에 한국현대시를 발화시켜 이 땅의 영혼과 교호하고 있는 이 책은 인문학적 직관과 신학자의 영감이 직조하며 만들어낸 종요로운 역작이다.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이 책은 ‘성서 신학’의 관점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 및 우리의 실존 조건을 탐색하고 그 다양한 양태와 진정성을 재차 묻는 과정에서 쓰인 돌올한 역저다. 저자는 고독과 신성의 차원에서 백석을 읽는가 하면, 김종삼, 김수영으로부터 기형도, 나희덕에 이르기까지 신성과 세속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준 시인들을 정성 들여 읽고 그것을 일상적 감각을 뛰어넘은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언어적 실재로 적극 해석한다. 그럼으로써 현대시에 각인된 종교적 감각의 구경적 극점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영원성 추구, 신성 복원, 영성 해석, 사랑의 윤리 발견, 그리고 모든 불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견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시적 상상력의 실례들이 여기 이렇게 가멸차고도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인문 신학’ 개념에 접속될 이번 저작이, 성서와 신학 담론을 (인)문학의 지평으로까지 확장해가는 실물적이고 전위적인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본문 중에서
시인은 이제 그 모든 따스하고 아름답던 것들과 단절된 채, 방랑의 길거리 위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형편이다. 정처 없음의 처량함을 더해주는 것은 “쓸쓸한 거리”, 그것도 더 이상 기동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한 거리의 “끝”이라는 말과 그 거리를 황량하게 장식해주는 거센 바람의 이미지다. 설상가상으로 시인은 그 바람 부는 거리 끝에서 하루의 끝, 곧 저녁을 맞는다. 저물녘 어둠이라는 시간적 종말의 이미지는 거리의 끝이라는 공간적 종말의 이미지와 맞물려 방랑하는 시인을 더욱 외곬의 모퉁이로 몰아세운다.…불교 전통에서도 그렇지만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제자들로 하여금 단호한 출가의 결행으로 방랑의 여정에 들게 했다. 그때 결별해야 할 것들은, 무엇보다 집과 집에 딸린 재산, 그리고 직계 가족들이었다. 부모자식, 형제자매들도 하나님 나라에 거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 가운데 종말론적 신국 운동은 주동자인 예수조차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험한 방랑의 길 위에서 진행되었다. 게다가 그를 따르던 군중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친애하던 제자들조차 그를 떠나자 겟세마네에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 고독하게 남기까지 예수의 삶은 이별과 상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 시의 주인공 백석에게는 예수가 품었던 천국에의 꿈도, 미래의 뚜렷한 목표도, 또 그것을 향한 자발적 유랑에의 결기도 없었다. 그는 아마도 예수를 따랐을 군중 가운데 한 사람처럼, 식민지 백성으로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잃어버린 나라에서 정주민으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그야말로 ‘어느 사이에’ 놓였을 뿐이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시인은 불우하다.
1장_방랑자의 고독에 깃드는 신성(백석)
세상과의 불화와 방황 속에서 위안과 희망을 탐색하는 시인에게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은 두드러진 사색의 재료로 기능하는 듯하다. 내가 ‘사색의 재료’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것이 흔히 이해하듯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든지 하는 교리적 얼개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을 말하면서 무심히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말을 잘 할 줄 모르는 하느님” 정도로 언급할 뿐이다. 그것도 애당초 하느님을 말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 아니라, 병원 뜰에 놓여 있는 빈 유모차 한 대의 주인이 누구일까를 궁리하는 중 뜬금없이 어눌한 하느님의 이미지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는 아마도 병원 뜰의 잔디밭 위로 맴도는 한가한 푸르름이 연상시켜준 “사람들의 영혼”이란 시구로부터 파생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론적 맥락에서 사람의 정수, 곧 궁극의 가치로 들먹여지는 추상명사다. 인간의 보이지 않는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란 면이 하느님을 떠올리게 한 동인이었으리라는 것이다.
2장_순진한 무심함, 또는 예수의 고향(김종삼)
앞서 제시한 <풀>에 얽힌 해석의 숲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이룬다. 해석의 시비를 떠나 진정성의 측면에서 그 숲을 구성하는 모든 나무들은 제각각 흥미롭고 아름답다. 다만 내가 이 대목에서 시도하려는 작업은 그 숲의 나무들을 깡그리 베어 넘어뜨리기보다 그 모퉁이에 조그만 나무 한 그루를 더 심는 것이다. 이 시의 배경과 원천 자료로 정재서가 포착한 『논어』의 공자가 가능하다면, 성서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또 그리스도교 신학이 이 시의 구조적 난해함을 해소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에 품은 적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풀과 꽃과 바람의 이미지가 구약성서에서 긴밀하게 연계되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특히, 김수영의 시 쓰기가 그 끝 무렵에 단순히 풀과 바람의 대립뿐 아니라, 그 직전 단계에 쓰인 연작 <꽃>의 연속선상에서 꽃과 풀과 바람의 삼각관계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내 흥미를 끌었다. 이 또한 텍스트 상호관련성(intertextuality)의 적용과 신학적 해석의 심화라는 견지에서 충분히 모험해볼 만한 시도가 아닌가 한다.
3장_눕고, 울고, 웃는 ‘풀’의 내력(김수영)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기형도의 대표작도 아니고 유달리 뛰어난 작품도 아니다.…그러나 이 작품은 시인이 그리스도교의 목사를 다룬 유일한 시라는 별스럽지 않은 사실 이외에도, 목사인 내 가슴을 소박한 감동으로 물들이는 담담한 말들의 풍경을 조형해 보여준다. 그 풍경에 비치는 목사상은, 목사들이 잘나가는 목사를 언급하는 ‘세계적인 종’ 따위의 통속적 방식도 아니고, 교인들이 목사를 칭송하며 으레 일컫는 ‘성령 충만한 말씀의 사자’ 등속도 아니며, 세간에서 툭하면 동네북처럼 얻어맞는 ‘사기꾼 같은 목사놈’식의 악의적 수사도 아니다. 그런 통속적 초상을 뛰어넘은 지평에서 이 작품은 한 시절 힘들게 버텨왔던 목사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목사는 특수한 개인이지만 동시에 특별히 대단할 것 없이 수수한 목사, 평범하면서도 견결한 신학적 지향을 품고 우울하게 한 세월 견디는 목사, 그러나 현실 속의 교회에서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큰 이 땅의 하고많음 목사들의 얼굴을 대변한다.
18장_어느 ‘동네’ 목사의 쓸쓸한 초상(기형도)
시에서 신성(神性)을 탐색하다!
책소개
“이 책은 이 세상의 한 시절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간 시인들이 꿈꾸고 만난 하나님, 어쩌면 낯설고 희한한 미지의 신과 그 신의 나라에 대한 신학자의 보고서다. 부디 이 땅의 메마르고 딱딱한 신학과 목회의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삶으로 성육하는 자리와 관계마다 풍성한 시적 영감이 넘실거리고, 그 가운데 우리의 부실하고 오염된 언어들이 새롭게 거듭나길 기원한다. 아울러,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과 시인들이 우리의 신학적 상상력을 증폭시켜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심오한 한 줄기가 우리 실존의 절벽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체험되길 기대해본다.”
_저자 서문에서
익숙한 일상도 언어를 입으면 새로운 빛깔과 모양이 된다. 그렇다면 시가 신학을 입으면 어떨까? 이 책은 신학자인 저자가 시 속에서 발견한 신성에 대해 말한다. 신앙의 언어와 신학의 담론으로 시를 해석하여 현대시에 각인된 종교적 감각을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와 진리를 탐구하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문이 기독교인 작가의 작품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백석의 시에서 방랑자의 고독과 신성을 읽고, 김종삼의 시에서 기독교 신앙이 사색의 재료로 기능한다고 읽는가 하면, 김수영의 <풀>은 풀과 꽃과 바람의 이미지가 구약성서와 긴밀하게 연계된다고 이해하고, 종교적 권위를 비틀고 냉소하는 이성복을 읽고, 기형도의 시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동네 목사를 발견하며, 안도현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 나오는 음식과 식사 이미지를 향유의 신학 이미지로 읽는다.
이 책은 시가 쓰인 시대적 배경과 시인의 생활환경은 물론이고, 시 속의 단어, 이미지, 공간, 소리, 움직임 심지어는 마침표와 쉼표의 개수까지 세어가며 꼼꼼하게 시를 풀어준다. 또한 시를 탐독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묵상하여 “인문 신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이해하던 시 해석에 신학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더할 수 있다. 아울러 성경과 복음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하나님을 제도화된 신조에 옭아매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할 것이다. 신학이 문학성을 담보할 수 있음을 증거하는 이 책을 통해 신학과 문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 풍성해지길 기대해본다.
지은이 _차정식
한국 신학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글을 쓰는 신학자다. 신학과 인문학을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글쓰기로 성서신학을 일상과 사회, 문학의 영역에 연계시켜 다양한 저술과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향연』『성서의 에로티시즘』『쩔쩔매시는 하나님』『일상과 신학의 여백』『성서주석 로마서 1,2』 등 20여 권의 저서와 『한국교회, 개혁의 길을 묻다』『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 등 20여 권의 공저를 냈고,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상․하)을 번역했으며, 그밖에 130여 편의 연구논문을 통해 꾸준한 학문적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신학성서의 환생 모티프와 그 신학적 변용』이 한국기독교학회에서 수여하는 제1회 소망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바울신학 탐구』는 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종교)에, 『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화도서(종교)에 선정됐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B.A.)에서 역사의식을 길렀고, 미국 맥코믹 신학대학원(M.Div.)에서 신학적 사고를 훈련한 뒤, 시카고 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과 한국기독교학회 편집주간을 역임하였고, 21세기기독교사회문화아카데미 학회장으로도 섬긴 바 있다. 현재는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신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 홈페이지(chajs2000.byus.net)
목차
저자 서문
제1부 초월과 방랑, 역사와 자연
1장 방랑자의 고독에 깃드는 신성(백석)
2장 순진한 무심함 또는 예수의 고향(김종삼)
3장 눕고, 울고, 웃는 풀의 내력(김수영)
4장 사람으로 공부하는 하느님(마종기)
5장 ‘중심’의 괴로움과 ‘틈’의 구원(김지하)
6장 목련, 또는 ‘돌아감’의 여정(김지하)
제2부 치열한 대결, 거룩한 세속
7장 불멸에 이르는 불면(오규원, 남진우)
8장 ‘하느님’을 꿈꾸는 말들의 풍경(김정란)
9장 똥막대기 성자의 세계(최승호)
10장 독신의 신학적 역설(이성복, 권혁진)
11장 ‘미지’와 ‘흔적’으로서의 하나님(이성복)
12장 진창이 된 몸/삶의 거룩함(황지우)
제3부 관조의 양상, 성찰의 초상
13장 세 개의 바퀴(최승호, 류시화, 황동규)
14장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의 언저리(고정희, 임동확)
15장 시인 예수의 초상(정호승)
16장 신학적 관조의 두 양상(고진하, 배문성)
17장 바늘구멍 속의 일상(김기택)
18장 어느 ‘동네’ 목사의 쓸쓸한 초상(기형도)
제4부 사물의 즐거움, 생명의 아름다움
19장 별의 시학, 별의 신학(윤동주에서 이성복까지)
20장 나무를 만나는 세 가지 방식(나희덕)
21장 거미로 읽는 시대와 인간(황인숙, 이문재, 박형준, 박성우)
22장 가난과 적막, 그 신학적 미학(송찬호, 문태준, 박남준)
23장 덧없는 생을 누리는 법(장석남)|
24장 식사의 회복과 향유의 신학(안도현)
추천사
문학은 문학의 길을 가고, 신학은 신학의 길을 간다. 그 때문에 문학은 종교성이 담보하고 있는 깊이의 차원을 잃었고, 신학은 문학의 전복적 상상력을 도외시한 결과 상상력을 잃고 경직되었다. 이 둘은 본래 그러면 안 되는 사이다. 누구보다도 정치한 언어로 신학이 문학성을 담보할 수 있음을 보여온 차정식 박사는 이 책에서 문학과 신학이 만날 때 어떤 진경이 창조되는지를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 책의 출간과 더불어 신학과 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기석(문학평론가, 청파교회 담임목사)
우연히 책방에서 한국현대시를 분석한 뛰어난 단행본을 만났다. 글을 읽어보니 신학자인 저자는 분명 예외적이고 특별한 존재였다. ‘예외적’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인문학적 경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상상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하찮고 지리멸렬하거나 무거운 실존의 그늘을, 저자는 때로는 소탈하게, 때로는 극도로 미세하게 풀어낸다. 그간 서구적 이론을 따 붙이기에 바빴던 신학계에 한국현대시를 발화시켜 이 땅의 영혼과 교호하고 있는 이 책은 인문학적 직관과 신학자의 영감이 직조하며 만들어낸 종요로운 역작이다.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이 책은 ‘성서 신학’의 관점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 및 우리의 실존 조건을 탐색하고 그 다양한 양태와 진정성을 재차 묻는 과정에서 쓰인 돌올한 역저다. 저자는 고독과 신성의 차원에서 백석을 읽는가 하면, 김종삼, 김수영으로부터 기형도, 나희덕에 이르기까지 신성과 세속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준 시인들을 정성 들여 읽고 그것을 일상적 감각을 뛰어넘은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언어적 실재로 적극 해석한다. 그럼으로써 현대시에 각인된 종교적 감각의 구경적 극점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영원성 추구, 신성 복원, 영성 해석, 사랑의 윤리 발견, 그리고 모든 불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견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시적 상상력의 실례들이 여기 이렇게 가멸차고도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인문 신학’ 개념에 접속될 이번 저작이, 성서와 신학 담론을 (인)문학의 지평으로까지 확장해가는 실물적이고 전위적인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본문 중에서
시인은 이제 그 모든 따스하고 아름답던 것들과 단절된 채, 방랑의 길거리 위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형편이다. 정처 없음의 처량함을 더해주는 것은 “쓸쓸한 거리”, 그것도 더 이상 기동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한 거리의 “끝”이라는 말과 그 거리를 황량하게 장식해주는 거센 바람의 이미지다. 설상가상으로 시인은 그 바람 부는 거리 끝에서 하루의 끝, 곧 저녁을 맞는다. 저물녘 어둠이라는 시간적 종말의 이미지는 거리의 끝이라는 공간적 종말의 이미지와 맞물려 방랑하는 시인을 더욱 외곬의 모퉁이로 몰아세운다.…불교 전통에서도 그렇지만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제자들로 하여금 단호한 출가의 결행으로 방랑의 여정에 들게 했다. 그때 결별해야 할 것들은, 무엇보다 집과 집에 딸린 재산, 그리고 직계 가족들이었다. 부모자식, 형제자매들도 하나님 나라에 거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 가운데 종말론적 신국 운동은 주동자인 예수조차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험한 방랑의 길 위에서 진행되었다. 게다가 그를 따르던 군중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친애하던 제자들조차 그를 떠나자 겟세마네에서 하나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 고독하게 남기까지 예수의 삶은 이별과 상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 시의 주인공 백석에게는 예수가 품었던 천국에의 꿈도, 미래의 뚜렷한 목표도, 또 그것을 향한 자발적 유랑에의 결기도 없었다. 그는 아마도 예수를 따랐을 군중 가운데 한 사람처럼, 식민지 백성으로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잃어버린 나라에서 정주민으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그야말로 ‘어느 사이에’ 놓였을 뿐이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시인은 불우하다.
1장_방랑자의 고독에 깃드는 신성(백석)
세상과의 불화와 방황 속에서 위안과 희망을 탐색하는 시인에게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은 두드러진 사색의 재료로 기능하는 듯하다. 내가 ‘사색의 재료’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것이 흔히 이해하듯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든지 하는 교리적 얼개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을 말하면서 무심히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말을 잘 할 줄 모르는 하느님” 정도로 언급할 뿐이다. 그것도 애당초 하느님을 말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 아니라, 병원 뜰에 놓여 있는 빈 유모차 한 대의 주인이 누구일까를 궁리하는 중 뜬금없이 어눌한 하느님의 이미지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는 아마도 병원 뜰의 잔디밭 위로 맴도는 한가한 푸르름이 연상시켜준 “사람들의 영혼”이란 시구로부터 파생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론적 맥락에서 사람의 정수, 곧 궁극의 가치로 들먹여지는 추상명사다. 인간의 보이지 않는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란 면이 하느님을 떠올리게 한 동인이었으리라는 것이다.
2장_순진한 무심함, 또는 예수의 고향(김종삼)
앞서 제시한 <풀>에 얽힌 해석의 숲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이룬다. 해석의 시비를 떠나 진정성의 측면에서 그 숲을 구성하는 모든 나무들은 제각각 흥미롭고 아름답다. 다만 내가 이 대목에서 시도하려는 작업은 그 숲의 나무들을 깡그리 베어 넘어뜨리기보다 그 모퉁이에 조그만 나무 한 그루를 더 심는 것이다. 이 시의 배경과 원천 자료로 정재서가 포착한 『논어』의 공자가 가능하다면, 성서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또 그리스도교 신학이 이 시의 구조적 난해함을 해소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에 품은 적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풀과 꽃과 바람의 이미지가 구약성서에서 긴밀하게 연계되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특히, 김수영의 시 쓰기가 그 끝 무렵에 단순히 풀과 바람의 대립뿐 아니라, 그 직전 단계에 쓰인 연작 <꽃>의 연속선상에서 꽃과 풀과 바람의 삼각관계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내 흥미를 끌었다. 이 또한 텍스트 상호관련성(intertextuality)의 적용과 신학적 해석의 심화라는 견지에서 충분히 모험해볼 만한 시도가 아닌가 한다.
3장_눕고, 울고, 웃는 ‘풀’의 내력(김수영)
<우리 동네 목사님>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기형도의 대표작도 아니고 유달리 뛰어난 작품도 아니다.…그러나 이 작품은 시인이 그리스도교의 목사를 다룬 유일한 시라는 별스럽지 않은 사실 이외에도, 목사인 내 가슴을 소박한 감동으로 물들이는 담담한 말들의 풍경을 조형해 보여준다. 그 풍경에 비치는 목사상은, 목사들이 잘나가는 목사를 언급하는 ‘세계적인 종’ 따위의 통속적 방식도 아니고, 교인들이 목사를 칭송하며 으레 일컫는 ‘성령 충만한 말씀의 사자’ 등속도 아니며, 세간에서 툭하면 동네북처럼 얻어맞는 ‘사기꾼 같은 목사놈’식의 악의적 수사도 아니다. 그런 통속적 초상을 뛰어넘은 지평에서 이 작품은 한 시절 힘들게 버텨왔던 목사의 빛과 그림자를 차분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 목사는 특수한 개인이지만 동시에 특별히 대단할 것 없이 수수한 목사, 평범하면서도 견결한 신학적 지향을 품고 우울하게 한 세월 견디는 목사, 그러나 현실 속의 교회에서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큰 이 땅의 하고많음 목사들의 얼굴을 대변한다.
18장_어느 ‘동네’ 목사의 쓸쓸한 초상(기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