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5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모임 "인간" 마지막 시간: 차별을 넘어 평등의 길로, 포스트휴머니티 시대에 자신의 자리를 지킴으로, 진리와 자유 안에 공감적 사랑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형상
오늘 드디어 그 길고 길었던 두 달 간의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 제4부 오늘날의 기독교 인간론의 초점들 - 16장 차별과 평등,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 - 평화의 길 공감적 사랑을 나감으로 『인간』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응과 각자의 소감을 함께 게시함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합니다
:)
[제16장 차별과 평등: 차별에서 평등으로의 길 - 그리스도인의
회개,용서,화해 / 원탁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 이번 16장은 제가 관심 있는 주제이기도 해서 제가 발제했습니다. 이 차별과 평등은 처음에 차별과 평등의 개념을 제시하고, 차별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역사 속에서의 차별과 평등을 말하고, 한국 사회의 차별을 이야기하며, 볼프의 배제와 포용과 만인평등적인 보편적 인간성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제시하고, 평등의 관계 회복을 위한 길로 회개, 용서, 화해를 제시하며 결론으로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고 묻기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이웃이 누가 되겠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제시합니다. 내용이 참 많고 볼만한 내용도 많지만 이 역시 주목할만한 대표적 주장들을 인용하고 생각은 있다가 나누고자 합니다.
"차이는 존중되어야 한다. 너와 나의 차이는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반면 차별은 모두를 비인간화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정부나 사회적 제도에 의해 가시적인 제도적 차별은 많이 감소되었지만 다른 인종에 대한 거부감과 다른 인종의 문화에 대한 혐오감과 같은 심리적.문화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 미국의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 계층차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전을 공유했던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모든 차별적 현실이 극복되는 만인 평등의 사회였다. 그러나 2세기 이후 교회가 제도화되고 권력화된 이래, 기독교는 인간에 대한 차별을 고취 또는 지지하는 많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교회는 인간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극복하고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는 불신자(유럽의 계몽주의)가 아닌 비인간(유럽의 식민지화와 제3세계의 착취)이다. - 제임스 콘"
"한국 사회는 이제 다양한 인종과 목적과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다원적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 그러나 아직도 한국인은 백인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 의식이 강하다. 특히 아시아계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인권 유린이 행해지고 있다. - 갑을관계, 탈북자, 장애인, 여성 등등"
"장애인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격적으로 차별을 받고 심지어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다반사다. 우리는 무엇이 '정상적인'것인지를 과거의 창조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완성되는 미래의 시점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배타적 문화는 순수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의지로 말미암아 제거, 동화, 지배, 포기 등을 통해 타자의 실존을 희생시킨다. - 미로슬라브 볼프, 사회적 배제로써의 문화"
"기독교인은 문화와 거리 및 귀속의 변증법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배제의 문화를 포용의 문화로 변화시켜야 한다 - 볼프"
"포용은 '타자를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으로서 적대적 상황 안에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이미지화(re-imagining) 하는 길이다. 정체성은 자족적인(self-contained)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내어줌으로써 형성된다. 신적인 포용과 자기 내어줌에 근거하여 볼프는 인간의 정체성이 타자를 위한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형성되며, 이것이 사회적 배제에 대항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희생자들과 유대하고 죄인을 대신(대리)하는 하나님의 포용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고난은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완전하고 전적인 공간의 개방을 현시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기억은 우리 기독교인에게 자기를 내어주는 포용의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포용의 성례전이다. 보편적 인격 (자기 폐쇄적인 배타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타자를 수용하는 포용적 인격)이 성만찬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 성만찬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포용을 고난에 대한 기억 안에서 재현함으로써 보편적 인격을 형성한다. 그리고 성만찬은 십자가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을 지시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성만찬을 통해 형성된 보편적 인격으로서 사회적 배제에 대항하는 포용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인간이 함께 공유하는 만인평등적인 보편적 인간성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귀천이나 우열이나 차별 없이 모두 평등하고 고귀하며 동등하다.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현상은 선물이자 목표다. 목표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벧후 1:4).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처럼 되어가는 것, 즉 신화(神化)가 하나님의 형상의 궁극적인 목표다. 보편적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의 궁극적 완성은 단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평등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차원, 즉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된다."
"예수가 선포하고 실천했던 하나님 나라는 당시의 계층적 사회질서의 근본적인 변혁과 전도를 의미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계층적 지배질서와 이에 기초한 차별, 배제, 억압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한다 (눅 18:14, 마 20:25)."
"예수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는 자들까지도 용서하고 포용하며 구원한다 (눅 23:34).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구속적 능력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포용하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시작된다. /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은 동일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평등하다 (엡 2:11-19),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에게 인종적 또는 민족적 차별, 사회 계급적 차별, 남녀의 성적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갈 3:28)"
"성만찬의 본래적 의미는 모든 사람들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우선적으로 자신의 식탁에 초대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의 식탁과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만찬은 사회적 배제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포용을 재현하는 예전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궁극적인 보편적 화해와 포용을 예기한다."
"회개란 무엇보다 자신의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돌이키는 것, 즉 방향을 전환하는 것 (turn around)이다. 이와 같은 회개가 선행되어야 진정한 화해와 평등 공동체로의 길이 열린다."
"진정한 힘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용서하고 살릴 수 있는 힘이다. - 쉰들러 리스트 中"
"용서의 목적은 단지 용서하는 사람의 심리적 부담을 덜거나 단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선에로 돌려놓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친교(communion)을 회복하는 것이다. - 볼프 / 오직 용서만이 인간의 악한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고, 회개를 가능하게 만들며, 진정한 화해의 미래로 나아가는 문을 연다. 용서는 모든 차별과 폭력과 악의 세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투쟁의 방식이며, 화해를 통한 평등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길(the way)이다."
"자기의 옆에 다른 피부색을 가진 다문화 가정의 사람이 함께 앉아서 예배를 보고 교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그들과 진정으로 한 공동체, 한 가족, 한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집단적인 행사보다 실제 삶 속에서 개개인의 기독교인들의 의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은 언제나 우리 자신 (개인 또는 집단)을 살펴보고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한 우리 자신과 교회의 개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복음 앞에서 끝없는 자기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교회는 끊임없이 자기를 비판하고 개혁하는 교회가 될 때에만 세상을 변혁시키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개념적 이해나 이론적 깨달음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공감적 사랑, 포용적 영성, 변혁적인 삶의 방식, 지속적인 투쟁의 용기, 그리고 변혁적 실천에 뒤따르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희생과 고통을 끝까지 견디는 인내다."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 이번 발제는 백목사님이 맡아주셨고 들으면서 가장 많이 소름이 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소망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 또한 어려운 내용이 상당히 많아서 주목할만한 주장들만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들(포스트모던 인간)은 인간 이외의 다른 그 무엇, 즉 포스트
휴먼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 - 브렌트 워터스"
"우리는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죽음도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은 소프트웨어의 패턴으로서 영원히 살아남으며 서서히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 - 레이 커즈와일"
"기술은 영원히 양날의 칼로 남을 것이다. 커즈와일은 급변하는 기술을 인류의 소중한 가치들을 진작시키는데 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방어 능력을 키워가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율적이 된 기술은 인간의 필요와 의도보다
기술 자체의 관성과 욕망에 따라 진전한다. - 자끄 엘륄"
"처음에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길들여졌던 초지능 기계들이 곧 인간을 넘어선다. - 막스 모어, 고삐 풀린 인공지능 시나리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성을 낳고, 자기결정성은
오만과 지배로 변할 수 있으며, 과학은 도그마적 경향을 갖는다.
- 로지 브라이도티"
"다윈의 진화론 이래 인간의 존엄성이 동물과의 유사성에 의해 위협을 받아왔다면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공지능을 지닌 컴퓨터와 로봇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 조지 그랜트"
"인간의 수명을 무한정 늘리거나 가상의 불멸성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인 피조물의 유한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수명을 무한정 늘림으로써 쟁취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자기 완결적 실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성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과정적 실재로서,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의 본질은 하나님과 타자와의 인격적 관계 능력에 있다. 인간의 인격적 관계 능력은 타자의 고통에 공감적 사랑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또한 인간은 생물학적.문화적 조건에 의해 제약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또한 반성적(reflexive) 자의식 안에서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돌아보고 돌이킬 수 있다."
"올바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
"가난보다는 부유함이, 불편보다는 편리함과 안락함이, 아픈 것보다는 건강함이, 일찍 죽는 것보다는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에 더욱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이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 조건의 진보로 인간이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中"
"과거의 불명예스런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단지 잘못된 사회정치적제도의 개혁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죄성에 물든 인간 본성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인간 본성 자체의 변화와 거듭남이 없다면 지수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인류의 미래에 더욱 큰 재앙을 가져오고 종국적으로 인간 종의 절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한계를 품위 있게 동의하는 데 있으며, 이 동의는 그 자체가 '필연성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켜주는 영원한 선에 대한 종교적 신앙 또는 확신의 행동'이다. - 브렌트 워터스"
"역사의 우연성은 바로 하나님이 엮어 가시는 섭리라는 직물의 씨줄과 날줄이다. 하나님은 진화 과정의 창발적 우연성 안에서 행동하시고 인도하심으로써 창조세계를 종말론적 미래의 완성으로 이끄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진화 과정을 펼쳐내고(unfold, develop), 감싸 안으며(enfold, envelop), 창발시키고(emergent) 수렴시킨다(convergent).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 안에서 우연성과 법칙을 조화시키시며 세계와 인간의 역사를 종말론적 미래의 완성을 향해 이끌어 가신다 (롬 11:33)."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을 자기 생명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완성하는 데 있다. 하나님과 타자와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은 공감적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 자기희생적인 공감적 사랑의 역사적 현현이다. 이 자기희생적인 공감적 사랑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의 참된 존엄성의 원천이다."
"인공지능은 결코 인격적 관계, 공감적 사랑, 영성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결코 하나님과 타자와의 인격적 관계와 공감적 사랑의 능력을 복제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을 공감적으로 이해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유한한 한계를 받아들일 때에만 영원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은총에 의존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어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생령, 즉 살아 있는 존재인 인간을 만드셨다는 성서의 증언은 어느 순간에라도 하나님께서 생기를 거두어가시면 인간의 존재는 더 이상 존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롬 11:36)."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삶을 무한정 늘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살아내는 데 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과학기술에 의해 변화된 외적 조건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며, 단지 인간의 삶에 주관적으로 투사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존재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다."
"은혜의 원리는 단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의 원리다. 인간의 전 존재 자체, 즉 존재의 시작, 지속, 종말론적 완성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인간의 피조물적 유한성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피조물적 유한성과 시간성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할 때, 종말론적 미래의 하나님의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영원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선취된 종말론적 운명에 근거하여 우리가 소망하는 인간의 궁극적 운명이다."
[에필로그 - 평화의 길, 공감적 사랑]
- 제가 마지막으로 발제 맡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이 책의 키워드인 공감과 관계로 시작해서 끝을 맺습니다.
여기에서는 기존의 주장들이 많이 반복되서 마지막 부분의 주장만 싣고 소감과 반응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과 만물을 가슴에 품는 공감의 기도와 공감의 영성이 필요하다. 특히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과 피조물을 위한 공감적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공감적 사랑만이 평화의 길이다."
"공감적 유대감만이 유일한 평화의 길이다. 우리에게는 공감의 기도와, 공감의 영성과, 공감적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공감적 사랑을 실현함으로써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한 희망의 빛을 밝혀야 한다."
[소감과 반응 그리고 서평]
16장 차별과 평등을 나누면서는 우리나라의 인권의식과 차별의식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았고, 볼프의 주장 가운데 눈여겨 보아야 할 것들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차별로부터 평등으로 가는 길이 회개, 용서, 화해라는 것, 무조건적 환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산주의처럼 모든 개인을 똑같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끝없는 자기부인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며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정말 나의 몸을 내어주고, 나의 자리를 내어주어 하나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 없음을 봅니다. 십자가는 모든 불의를 제거하고 죄인을 구원합니다. 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에 힘쓰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의 길을 따라야 할 것에 대해 반성하고 밀알과 같이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17장 포스트휴머니티 시대의 기독교 신앙을 나누면서는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일본 만화가 보여준 미래였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 학교에서 들었던 강의 내용이었습니다. 최근에 관심 가지고 보는 일본 만화 중에 '달링 인 더 프랑키스'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은 아빠들이라 불리는 현인들에게 교육받고 남자와 여자로 한 조가 되어 프랑크스를 타고 자신들을 침범해오는 적과 싸웁니다. 그리고 그들과 대비되는 주인공(히로)과 히로인(제로투)이 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믿고 따랐던 현인들이 그들이 죽고(?)난 뒤에 자기들을 침략 도구로 만들어 우주와 지구를 정복하려 하며, 인간은 자신들이 싸웠던 적과 합세하여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어린 시절 봤던 아이로봇 같은 영화만 봐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는 정서가 확실히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스트휴머니티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들을 마치 실체화하는 것처럼 느껴져 많이 두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개발한 것을 인간이 창조하고, 그 굴레를 굴복한 순간, 인간이 그 창조물의 노예가 되는 비참한 결과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을 받아들였을 때 나타났던 것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윤철호 교수님의 주장을 빌리자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신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신과 동등한 또는 그것을 능가하는 포스트휴먼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처럼 되어보고자 했던 아담과 하와의 죄를 재현하는것이며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의심할 바 없이 인간 자신의 재앙과 파멸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외고 다니던 시절에 매트릭스를 배경으로 차환교수님이 오셔서 영화로 세상 읽기(?)라는 강좌를 해주셨었습니다. 매트릭스의 요소 하나하나가 지칭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시며, 우리가 이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대응에 대한 말씀은 인생을 살며 얻은 지혜로 쓴 솔로몬의 전도서였습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 5:6)" 결국 우리가 그런 이상들과 묵시적인 것들이 닥쳐올 때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솔로몬이 이야기했고,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에서도 요한에게 이상을 다 이야기한 뒤, 이야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니, 두려워 말고 현실을 신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트휴머니티라는 무서운 문명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고, 결국 그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인생을 사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보며 솔로몬이 또 잠언에서 이야기했듯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독교는 과거의 정신이 되고, 현재의 삶이 되며, 미래의 소망과 비전이 됨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에필로그에서는 티베트의 기도와 제러미 리프킨이 쓴 공감의 시대에서 실린 영국과 독일 군의 크리스마스 휴전을 보며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정말 위대한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진리라는 것은 인간의 시작이자, 인간의 삶이 되고, 인간의 마침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제시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본회퍼가 그랬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듯이 자신을 내어주고 그들을 공감하며 평화의 사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구현해 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임을 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감하고, 복음을 전함으로 죄를 제거하고 죄인을 구원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소감 - 백목사님은 인간을 읽으면서 "실존 안의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목사님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 가장 급진적인 것이다"라는 소감을 나누어주시면서,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박목사님께서는 이번 모임을 통해 인간은 단순히 교의적인 범주에만 머물수는 없다고 보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인간, 심리적 인간,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인간, 기계와 인간의 융합으로 되어지는 인간임을 기억하며 총체적으로 다시생각해 봐야하고 좀더배우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덧붙여 "백우인 목사님의 과학적 전문성에 기초한 해박한 설명과 방향제시, 해민샘의 예리한 지성과 많은 학자들을 열거하며 요약설명하여 주는 풍성함, 정목사님의 본질을 꿰뚤어 보시는 시각
백목사님과 함께 하는 분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물론 인간 책도 좋았구요 윤철호 교수님의 방대한 책을 통해서도 많이 배웠구요 특히 에필로그 평화에 관한 글은 깊이 공감 되었습니다 끝으로 바쁘신 가운데서도 명쾌한 설명으로 이끌어주신 백우인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살롬"라고 나누어주셨습니다.
저는 인간을 배우며 공감적 사랑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케하는 십자가를 보게 되었고, 그 진리와 사랑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살고 실현해야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아내지 못한 것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 성도들의 순교적인 각오를 본받음으로 "Reformed Reforming Church"(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로써 철저한 자기부인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체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에드먼드 훌 선교사와 십자군 전쟁이 생각났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는 이슬람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살생도 선행이라고 하며 철저하게 차별적이며 파괴적으로 십자가가 사용되었지만, 이슬람인과 생활하며 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순교한 레이먼드 룰 선교사는 그 십자가를 삶으로 나타내고 십자가 정신으로 자신을 내어주며 순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짐 엘리엇 선교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짐 엘리엇 선교사가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다 죽임을 당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이 자신의 두 아들을 총살한 공산당 청년을 양자로 삼았고, 6.25전쟁 때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신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밀알로써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진리 안에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밀알로써 살아내는 인간으로 살겠노라고 결단하며 다짐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 가운데 인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떠오르는 말씀과 찬양 하나로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배우듯이 노래하듯이 얘기하듯이 살아갈 수 있기를...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약 5:20)"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흘려야 할 피가 필요하다면
죄인을 대신하기 위해 희생의 제물 필요하시다면
내 생명 제단위에 드리니
주 영광 위해 사용하소서
길 잃어 지친 양을 찾아 마음상해 이리저리 헤메이는
한 영혼 찾아 아파하는 예수님 마음 내게 주옵소서
십자가. 온 세상 위한 그 희생
눈물로 그 길 가게 하소서
생명이 또 다른 생명 낳고 주님 볼 수 있다면
나의 삶과 죽음도 아낌없이 드리리
죽어야 다시 사는 주의 말씀 믿으며
한 알의 밀알되어 썩어지리니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천관웅 -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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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5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모임 "인간" 마지막 시간: 차별을 넘어 평등의 길로, 포스트휴머니티 시대에 자신의 자리를 지킴으로, 진리와 자유 안에 공감적 사랑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형상
오늘 드디어 그 길고 길었던 두 달 간의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 제4부 오늘날의 기독교 인간론의 초점들 - 16장 차별과 평등,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 - 평화의 길 공감적 사랑을 나감으로 『인간』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응과 각자의 소감을 함께 게시함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합니다
:)
[제16장 차별과 평등: 차별에서 평등으로의 길 - 그리스도인의
회개,용서,화해 / 원탁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 이번 16장은 제가 관심 있는 주제이기도 해서 제가 발제했습니다. 이 차별과 평등은 처음에 차별과 평등의 개념을 제시하고, 차별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역사 속에서의 차별과 평등을 말하고, 한국 사회의 차별을 이야기하며, 볼프의 배제와 포용과 만인평등적인 보편적 인간성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제시하고, 평등의 관계 회복을 위한 길로 회개, 용서, 화해를 제시하며 결론으로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고 묻기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이웃이 누가 되겠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제시합니다. 내용이 참 많고 볼만한 내용도 많지만 이 역시 주목할만한 대표적 주장들을 인용하고 생각은 있다가 나누고자 합니다.
"차이는 존중되어야 한다. 너와 나의 차이는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반면 차별은 모두를 비인간화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정부나 사회적 제도에 의해 가시적인 제도적 차별은 많이 감소되었지만 다른 인종에 대한 거부감과 다른 인종의 문화에 대한 혐오감과 같은 심리적.문화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 미국의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 계층차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전을 공유했던 초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모든 차별적 현실이 극복되는 만인 평등의 사회였다. 그러나 2세기 이후 교회가 제도화되고 권력화된 이래, 기독교는 인간에 대한 차별을 고취 또는 지지하는 많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교회는 인간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극복하고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는 불신자(유럽의 계몽주의)가 아닌 비인간(유럽의 식민지화와 제3세계의 착취)이다. - 제임스 콘"
"한국 사회는 이제 다양한 인종과 목적과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다원적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 그러나 아직도 한국인은 백인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 의식이 강하다. 특히 아시아계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과 인권 유린이 행해지고 있다. - 갑을관계, 탈북자, 장애인, 여성 등등"
"장애인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인격적으로 차별을 받고 심지어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다반사다. 우리는 무엇이 '정상적인'것인지를 과거의 창조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완성되는 미래의 시점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배타적 문화는 순수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의지로 말미암아 제거, 동화, 지배, 포기 등을 통해 타자의 실존을 희생시킨다. - 미로슬라브 볼프, 사회적 배제로써의 문화"
"기독교인은 문화와 거리 및 귀속의 변증법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배제의 문화를 포용의 문화로 변화시켜야 한다 - 볼프"
"포용은 '타자를 위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으로서 적대적 상황 안에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이미지화(re-imagining) 하는 길이다. 정체성은 자족적인(self-contained)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내어줌으로써 형성된다. 신적인 포용과 자기 내어줌에 근거하여 볼프는 인간의 정체성이 타자를 위한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형성되며, 이것이 사회적 배제에 대항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희생자들과 유대하고 죄인을 대신(대리)하는 하나님의 포용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고난은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완전하고 전적인 공간의 개방을 현시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기억은 우리 기독교인에게 자기를 내어주는 포용의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포용의 성례전이다. 보편적 인격 (자기 폐쇄적인 배타적 세계로부터 벗어나 타자를 수용하는 포용적 인격)이 성만찬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 성만찬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포용을 고난에 대한 기억 안에서 재현함으로써 보편적 인격을 형성한다. 그리고 성만찬은 십자가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을 지시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성만찬을 통해 형성된 보편적 인격으로서 사회적 배제에 대항하는 포용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인간이 함께 공유하는 만인평등적인 보편적 인간성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귀천이나 우열이나 차별 없이 모두 평등하고 고귀하며 동등하다.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현상은 선물이자 목표다. 목표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벧후 1:4).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처럼 되어가는 것, 즉 신화(神化)가 하나님의 형상의 궁극적인 목표다. 보편적 인격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의 궁극적 완성은 단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평등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차원, 즉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된다."
"예수가 선포하고 실천했던 하나님 나라는 당시의 계층적 사회질서의 근본적인 변혁과 전도를 의미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계층적 지배질서와 이에 기초한 차별, 배제, 억압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한다 (눅 18:14, 마 20:25)."
"예수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는 자들까지도 용서하고 포용하며 구원한다 (눅 23:34).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구속적 능력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포용하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시작된다. /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은 동일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평등하다 (엡 2:11-19),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에게 인종적 또는 민족적 차별, 사회 계급적 차별, 남녀의 성적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갈 3:28)"
"성만찬의 본래적 의미는 모든 사람들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우선적으로 자신의 식탁에 초대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의 식탁과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만찬은 사회적 배제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포용을 재현하는 예전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궁극적인 보편적 화해와 포용을 예기한다."
"회개란 무엇보다 자신의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돌이키는 것, 즉 방향을 전환하는 것 (turn around)이다. 이와 같은 회개가 선행되어야 진정한 화해와 평등 공동체로의 길이 열린다."
"진정한 힘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용서하고 살릴 수 있는 힘이다. - 쉰들러 리스트 中"
"용서의 목적은 단지 용서하는 사람의 심리적 부담을 덜거나 단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선에로 돌려놓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친교(communion)을 회복하는 것이다. - 볼프 / 오직 용서만이 인간의 악한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고, 회개를 가능하게 만들며, 진정한 화해의 미래로 나아가는 문을 연다. 용서는 모든 차별과 폭력과 악의 세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투쟁의 방식이며, 화해를 통한 평등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길(the way)이다."
"자기의 옆에 다른 피부색을 가진 다문화 가정의 사람이 함께 앉아서 예배를 보고 교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그들과 진정으로 한 공동체, 한 가족, 한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집단적인 행사보다 실제 삶 속에서 개개인의 기독교인들의 의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은 언제나 우리 자신 (개인 또는 집단)을 살펴보고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진정한 우리 자신과 교회의 개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복음 앞에서 끝없는 자기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교회는 끊임없이 자기를 비판하고 개혁하는 교회가 될 때에만 세상을 변혁시키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개념적 이해나 이론적 깨달음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공감적 사랑, 포용적 영성, 변혁적인 삶의 방식, 지속적인 투쟁의 용기, 그리고 변혁적 실천에 뒤따르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희생과 고통을 끝까지 견디는 인내다."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 이번 발제는 백목사님이 맡아주셨고 들으면서 가장 많이 소름이 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소망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 또한 어려운 내용이 상당히 많아서 주목할만한 주장들만 인용하고자 합니다.
"그들(포스트모던 인간)은 인간 이외의 다른 그 무엇, 즉 포스트
휴먼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 - 브렌트 워터스"
"우리는 운명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죽음도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은 소프트웨어의 패턴으로서 영원히 살아남으며 서서히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불멸의 존재가 된다. - 레이 커즈와일"
"기술은 영원히 양날의 칼로 남을 것이다. 커즈와일은 급변하는 기술을 인류의 소중한 가치들을 진작시키는데 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방어 능력을 키워가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율적이 된 기술은 인간의 필요와 의도보다
기술 자체의 관성과 욕망에 따라 진전한다. - 자끄 엘륄"
"처음에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길들여졌던 초지능 기계들이 곧 인간을 넘어선다. - 막스 모어, 고삐 풀린 인공지능 시나리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성을 낳고, 자기결정성은
오만과 지배로 변할 수 있으며, 과학은 도그마적 경향을 갖는다.
- 로지 브라이도티"
"다윈의 진화론 이래 인간의 존엄성이 동물과의 유사성에 의해 위협을 받아왔다면 포스트휴먼 시대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공지능을 지닌 컴퓨터와 로봇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 조지 그랜트"
"인간의 수명을 무한정 늘리거나 가상의 불멸성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인 피조물의 유한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수명을 무한정 늘림으로써 쟁취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자기 완결적 실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성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과정적 실재로서,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의 본질은 하나님과 타자와의 인격적 관계 능력에 있다. 인간의 인격적 관계 능력은 타자의 고통에 공감적 사랑으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또한 인간은 생물학적.문화적 조건에 의해 제약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또한 반성적(reflexive) 자의식 안에서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돌아보고 돌이킬 수 있다."
"올바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
"가난보다는 부유함이, 불편보다는 편리함과 안락함이, 아픈 것보다는 건강함이, 일찍 죽는 것보다는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에 더욱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이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 조건의 진보로 인간이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中"
"과거의 불명예스런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단지 잘못된 사회정치적제도의 개혁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죄성에 물든 인간 본성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인간 본성 자체의 변화와 거듭남이 없다면 지수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인류의 미래에 더욱 큰 재앙을 가져오고 종국적으로 인간 종의 절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한계를 품위 있게 동의하는 데 있으며, 이 동의는 그 자체가 '필연성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시켜주는 영원한 선에 대한 종교적 신앙 또는 확신의 행동'이다. - 브렌트 워터스"
"역사의 우연성은 바로 하나님이 엮어 가시는 섭리라는 직물의 씨줄과 날줄이다. 하나님은 진화 과정의 창발적 우연성 안에서 행동하시고 인도하심으로써 창조세계를 종말론적 미래의 완성으로 이끄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진화 과정을 펼쳐내고(unfold, develop), 감싸 안으며(enfold, envelop), 창발시키고(emergent) 수렴시킨다(convergent).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 안에서 우연성과 법칙을 조화시키시며 세계와 인간의 역사를 종말론적 미래의 완성을 향해 이끌어 가신다 (롬 11:33)."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을 자기 생명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완성하는 데 있다. 하나님과 타자와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은 공감적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 자기희생적인 공감적 사랑의 역사적 현현이다. 이 자기희생적인 공감적 사랑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의 참된 존엄성의 원천이다."
"인공지능은 결코 인격적 관계, 공감적 사랑, 영성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은 결코 하나님과 타자와의 인격적 관계와 공감적 사랑의 능력을 복제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을 공감적으로 이해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유한한 한계를 받아들일 때에만 영원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은총에 의존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어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생령, 즉 살아 있는 존재인 인간을 만드셨다는 성서의 증언은 어느 순간에라도 하나님께서 생기를 거두어가시면 인간의 존재는 더 이상 존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롬 11:36)."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삶을 무한정 늘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살아내는 데 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과학기술에 의해 변화된 외적 조건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며, 단지 인간의 삶에 주관적으로 투사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존재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다."
"은혜의 원리는 단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의 원리다. 인간의 전 존재 자체, 즉 존재의 시작, 지속, 종말론적 완성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인간의 피조물적 유한성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피조물적 유한성과 시간성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할 때, 종말론적 미래의 하나님의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영원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선취된 종말론적 운명에 근거하여 우리가 소망하는 인간의 궁극적 운명이다."
[에필로그 - 평화의 길, 공감적 사랑]
- 제가 마지막으로 발제 맡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이 책의 키워드인 공감과 관계로 시작해서 끝을 맺습니다.
여기에서는 기존의 주장들이 많이 반복되서 마지막 부분의 주장만 싣고 소감과 반응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과 만물을 가슴에 품는 공감의 기도와 공감의 영성이 필요하다. 특히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과 피조물을 위한 공감적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공감적 사랑만이 평화의 길이다."
"공감적 유대감만이 유일한 평화의 길이다. 우리에게는 공감의 기도와, 공감의 영성과, 공감적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공감적 사랑을 실현함으로써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한 희망의 빛을 밝혀야 한다."
[소감과 반응 그리고 서평]
16장 차별과 평등을 나누면서는 우리나라의 인권의식과 차별의식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았고, 볼프의 주장 가운데 눈여겨 보아야 할 것들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차별로부터 평등으로 가는 길이 회개, 용서, 화해라는 것, 무조건적 환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산주의처럼 모든 개인을 똑같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끝없는 자기부인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며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정말 나의 몸을 내어주고, 나의 자리를 내어주어 하나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 없음을 봅니다. 십자가는 모든 불의를 제거하고 죄인을 구원합니다. 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에 힘쓰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의 길을 따라야 할 것에 대해 반성하고 밀알과 같이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17장 포스트휴머니티 시대의 기독교 신앙을 나누면서는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일본 만화가 보여준 미래였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 학교에서 들었던 강의 내용이었습니다. 최근에 관심 가지고 보는 일본 만화 중에 '달링 인 더 프랑키스'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은 아빠들이라 불리는 현인들에게 교육받고 남자와 여자로 한 조가 되어 프랑크스를 타고 자신들을 침범해오는 적과 싸웁니다. 그리고 그들과 대비되는 주인공(히로)과 히로인(제로투)이 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믿고 따랐던 현인들이 그들이 죽고(?)난 뒤에 자기들을 침략 도구로 만들어 우주와 지구를 정복하려 하며, 인간은 자신들이 싸웠던 적과 합세하여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어린 시절 봤던 아이로봇 같은 영화만 봐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는 정서가 확실히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스트휴머니티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들을 마치 실체화하는 것처럼 느껴져 많이 두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개발한 것을 인간이 창조하고, 그 굴레를 굴복한 순간, 인간이 그 창조물의 노예가 되는 비참한 결과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을 받아들였을 때 나타났던 것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윤철호 교수님의 주장을 빌리자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하신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신과 동등한 또는 그것을 능가하는 포스트휴먼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처럼 되어보고자 했던 아담과 하와의 죄를 재현하는것이며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의심할 바 없이 인간 자신의 재앙과 파멸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외고 다니던 시절에 매트릭스를 배경으로 차환교수님이 오셔서 영화로 세상 읽기(?)라는 강좌를 해주셨었습니다. 매트릭스의 요소 하나하나가 지칭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시며, 우리가 이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대응에 대한 말씀은 인생을 살며 얻은 지혜로 쓴 솔로몬의 전도서였습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전 5:6)" 결국 우리가 그런 이상들과 묵시적인 것들이 닥쳐올 때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솔로몬이 이야기했고,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에서도 요한에게 이상을 다 이야기한 뒤, 이야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임하실 것이니, 두려워 말고 현실을 신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트휴머니티라는 무서운 문명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고, 결국 그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인생을 사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보며 솔로몬이 또 잠언에서 이야기했듯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독교는 과거의 정신이 되고, 현재의 삶이 되며, 미래의 소망과 비전이 됨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에필로그에서는 티베트의 기도와 제러미 리프킨이 쓴 공감의 시대에서 실린 영국과 독일 군의 크리스마스 휴전을 보며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정말 위대한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진리라는 것은 인간의 시작이자, 인간의 삶이 되고, 인간의 마침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제시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본회퍼가 그랬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듯이 자신을 내어주고 그들을 공감하며 평화의 사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구현해 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삶임을 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감하고, 복음을 전함으로 죄를 제거하고 죄인을 구원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소감 - 백목사님은 인간을 읽으면서 "실존 안의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목사님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 가장 급진적인 것이다"라는 소감을 나누어주시면서, 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박목사님께서는 이번 모임을 통해 인간은 단순히 교의적인 범주에만 머물수는 없다고 보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인간, 심리적 인간,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인간, 기계와 인간의 융합으로 되어지는 인간임을 기억하며 총체적으로 다시생각해 봐야하고 좀더배우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덧붙여 "백우인 목사님의 과학적 전문성에 기초한 해박한 설명과 방향제시, 해민샘의 예리한 지성과 많은 학자들을 열거하며 요약설명하여 주는 풍성함, 정목사님의 본질을 꿰뚤어 보시는 시각
백목사님과 함께 하는 분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물론 인간 책도 좋았구요 윤철호 교수님의 방대한 책을 통해서도 많이 배웠구요 특히 에필로그 평화에 관한 글은 깊이 공감 되었습니다 끝으로 바쁘신 가운데서도 명쾌한 설명으로 이끌어주신 백우인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살롬"라고 나누어주셨습니다.
저는 인간을 배우며 공감적 사랑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케하는 십자가를 보게 되었고, 그 진리와 사랑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살고 실현해야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아내지 못한 것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 성도들의 순교적인 각오를 본받음으로 "Reformed Reforming Church"(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로써 철저한 자기부인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체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에드먼드 훌 선교사와 십자군 전쟁이 생각났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는 이슬람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살생도 선행이라고 하며 철저하게 차별적이며 파괴적으로 십자가가 사용되었지만, 이슬람인과 생활하며 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순교한 레이먼드 룰 선교사는 그 십자가를 삶으로 나타내고 십자가 정신으로 자신을 내어주며 순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짐 엘리엇 선교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짐 엘리엇 선교사가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다 죽임을 당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이 자신의 두 아들을 총살한 공산당 청년을 양자로 삼았고, 6.25전쟁 때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신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밀알로써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진리 안에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밀알로써 살아내는 인간으로 살겠노라고 결단하며 다짐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 가운데 인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떠오르는 말씀과 찬양 하나로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배우듯이 노래하듯이 얘기하듯이 살아갈 수 있기를...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약 5:20)"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흘려야 할 피가 필요하다면
죄인을 대신하기 위해 희생의 제물 필요하시다면
내 생명 제단위에 드리니
주 영광 위해 사용하소서
길 잃어 지친 양을 찾아 마음상해 이리저리 헤메이는
한 영혼 찾아 아파하는 예수님 마음 내게 주옵소서
십자가. 온 세상 위한 그 희생
눈물로 그 길 가게 하소서
생명이 또 다른 생명 낳고 주님 볼 수 있다면
나의 삶과 죽음도 아낌없이 드리리
죽어야 다시 사는 주의 말씀 믿으며
한 알의 밀알되어 썩어지리니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천관웅 -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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