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영남신학대학교 그냥과 보통] - 『위대한 열정』_일곱 번째 모임_이정규

이정규
2018-08-01
조회수 1215

  󰡔위대한 열정󰡕 2-1 「시작의 기적-계시론과 하나님 인식론」은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칼 바르트는 19c 신학이 어떤 부분에서 가장 병들어 있는가를 말할 때, 그것은 신학자들이 하나님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간 관하여 말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바르트는 분명히 선언한다. 계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 이 명제는 현실성에 근거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의 본래적·근원적·표준적 형태이다. 우리는 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현실성을 가진다. 하나님께서는 대상성을 가지시는데, 곧 인간의 직관과, 이해의 장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2-2 「성취된 계약 이스라엘/기독론」에서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교가 고백해야 하는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리스도교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관심이 있지 않다. 그리스도교는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관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1장 23절의 말씀과 같이 ‘임마누엘’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관계를 통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 되신다. 그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함께 하시기 위해 자기 자신을 구속하셨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예속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속에서 자유로우신 분이시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무한의 에너지’ 또는 ‘전적인 권력의 존재로 하나님’을 부정한다. 그는 “하나님은 인간의 하나님 되고자 하는 원초적 결의에 속박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인간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성󰡕에서 바르트는 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나누시는 교제를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초보이지만 신학을 하는 즐거움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인식, 이미지들이 깨어지고 좀 더 선명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와 같은 바르트의 신학을 접할 때면 –물론 만만치 않고, 부족한 이해지만!- 항상 그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조금 더 확고히 서는 느낌도 들고요. 이 즐거움이 󰡔위대한 열정󰡕 끝내는 날까지 모임 가운데 지속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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