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서울모임] -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_세번째 모임_김성혁

김성혁
2018-06-18
조회수 2370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_세 번째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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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모임(5월 29일) 후기를 뒤늦게 올립니다 ㅠㅠ 

그리고 얼른 이어서 네 번째 모임 후기도 올리려고 합니다 ㅎ

4명으로 시작한 저희 모임에 어려움이 하나 생겼습니다(두둥). 앞선 두 번의 모임에 참여 했었던 청년 형제가 불참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책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였습니다.

사실 책을 처음 접하면서 신학을 하지 않은 이 형제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시작부분에 제가 책 요약을 하고,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한 다음 토론을 진행하곤 했었는데... 힘들다고 하는 형제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주 모임은 8장부터 14장까지 읽고 나눔을 하였습니다.


명제8.“흙으로 짓다”와 “갈빗대로 만들다”는 원형적 주장일 뿐 물질적 기원에 관한 주장이 아니다

 - 짓다, 흙, 갈빗대라고 하는 단어는 반드시 물질적인 것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아담과 하와의 형성 이야기가 그들 두 사람이 어떻게 독특하게 지음을 받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원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원형은 그 그룹에 속한 다른 것들을 상징한다. 이 본문은 아담에게만 해당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된다. 1)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숨결을 갖고 있다. 2) 우리는 모두 흙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 창세기는 인간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설명과 주장을 제공하지 않는다. 성서의 주장은, 무슨 일이 일어났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이 인간의 기원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는 하나, 인간의 기원에 대해 반드시 신규 창조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명제9. 고대 근동 이야기에서 인간의 창조는 원형적이므로 이스라엘인들이 이런 맥락에서 사고하는 것은 특이하지 않다

 - 고대근동에서 인간은 1) 신들이 해왔던 힘든 일을 떠맡기 위해 2) 신전에서 의식을 수행하고 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섬기기 위해 3) 신의 형상을 입는 것을 위해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창세기 2-3장에 언급되지 않으며 그러기에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창세기 1장과 2장은 연속체이며, 1장에 적용된 것은 2장에서 아담과 하와에게도 적용된다.

 -  1) 고대 근동의 다른 문헌과 달리 성서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왕만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 2) 메소포타미아 문헌에서 왕의 형상은 표상을 통한 대체물이라는 역할을 한다. 3) 성서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왕은 하나님의 아들로 간주되고 하나님을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이 물질이 아닌 기능의 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 인간의 역할은 고대 근동의 인지 환경 안에서, 오직 신의 역할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명제10. 신약성서는 생물학적 조상으로서보다 원형으로서의 아담과 하와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

 - 로마서5장: 죄와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세상에 들어왔음을 지적한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모두가 죄를 지었다. 바울은 그를 한 개인 이상으로 다루고 있다. 아담은 하나의 예표이다(죄와 타락에서의 원형적 사용).

 - 고린도전서15장: 21절에서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들어왔으며, 그의 사고를 원형적 차원으로 확대한다. 그는 역사적 인물이기는 하나, 하나의 원형으로 다루어진다. 45-49절에서 아담(첫사람)과 예수님(마지막 아담)을 대조한다. 이것은 시간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 둘은 원형으로 다루어진다.

 - 고린도후서: 바울은 하와를 언급하며, 그녀는 고린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의 실례로의 역할을 하지, 원형도 아니고 예표도 아니다.

 - 디모데전서2장: 창조의 순서를 미혹 당함의 역순으로 언급한다. 여기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하여 질문하며, 에베소서의 남녀 역할에 관해 언급하기 위해 사용된다.

  **성경에서 원형적으로 취급되는 것은 형성 이야기가 아니라 타락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신약성서는 인간의 기원 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명제11. 비록 아담과 하와에 대한 성서의 관심 중 일부가 원형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과거에 살았던 실제 사람이다

 - 아담을 다루는 방식이 원형적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아담과 하와에 관한 바울의 주장에는 “1) 죄와 사망이 아담을 통해 들어왔음 2) 아담이 땅의 흙으로 만들어짐 3) 하와는 미혹됨”이라는 주장이 들어있다. 이 모두는 구약성서 본문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성서의 권위라는 틀 안에서 역사적 요소와 전통적 요소의 혼합이 가능하다. 역사적 아담에 대한 바울의 확언이 무엇보다 죄와 타락(죄가 세상 안으로 들어온 역사적 순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제12. 아담은 조력자인 하와와 함께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 에덴동산은 단순한 녹지가 아닌, 하나님이 임재하는 성지였다. 창세기 2장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물질적 기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과업을 주시고 위임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소명 혹은 종교적 섬김과 연결된다. 초기 기독교의 해석자들 중 오리게네스는 아담을 대제사장으로 묘사한다. 아담은 그 안에서 대표되는 모든 인간과 함께 하나의 원형으로서의 역할(성소를 보존하는 것)을 수행한다. 제사장 나라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에서 제사장적 역할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중재하는 것이고, 최종적 목표는 가르침을 통해 그런 접근을 중재하는 것(의식을 행하는 일이 아님)이다.

 -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사람들이라는 견해를 필요로 이해하기보다, 성소에서 하나님께 접근하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과 관련된 그들의 특별한 역할에 비추어, 그들이 최초의 중요한 인간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담은 세상에 생명을 가져올 기회를 얻은 첫 사람이었으나 실패하였고, 마지막 사람인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사장으로서 우리에게 생명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하심으로써 그 일에 성공하셨다.


명제13. 동산은 성소를 위한 고대 근동의 모티브이며 나무는 생명과 지혜의 근원인 신과 관련된다

 -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동산, 나무, 뱀 등이 상징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징화된 실재는 초월적이며 물리적인 실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창세기2-3장의 이야기에는 고대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창세기 2-3장이 이스라엘의 전통 안에서 발생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다는 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감을 받은 이 이야기꾼은 이스라엘을 향해 말하고 있으며, 성령에 의해 공동체 내의 문제들을 다루는 세상에서 분명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이미지를 사용하라는 촉구를 받고 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생명은 그분에 의해 주어지고 그분 안에서 발견된다. 그분은 질서의 중심이시고, 지혜는 질서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혜의 시작이다. 나무가 문자적인 것이든 비유적인 것이든 간에 핵심은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얻어지며, 지혜는 그분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인간 대표자들은 지혜를 불법적으로 취하려 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죄책을 초래했고 그로 인해 결국 생명까지도 잃게 했다는 신학은 유지되어야 한다. 생명과 지혜는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할 때 얻을 수 있다.


명제14. 뱀은 무질서의 영역에서 나온 혼돈의 생물체로서 비질서를 조장한다고 간주되었다

 - 구약성서 시대에 뱀은 사탄과 동일시되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고대 근동에서 뱀이라는 상징은 아주 풍성했다. 뱀의 상징은 비옥, 성, 보호, 생명, 죽음 등과 같은 많은 중요 특성과 연관되어 있었다. 뱀을 수식하는 ‘간교한’이라는 말은 약삭빠르고 계산적이며, 수용될 만한 행위의 경계를 바꾸고 왜곡하지만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짐승 중 하나로써(근동의 뱀이 혼합동물이며 신격화된 동물이라는 것과는 달리), 악하다고 설명되지 않는다. 고대 이스라엘의 독자는 뱀을 사탄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은 뱀이 도덕적으로 악하다거나 인류를 파멸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구약성서는 뱀에게 어떤 지속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기만, 오도, 문제를 일으키는 것 등은 모두 혼돈의 생물의 권한에 속해 있다.

 - 우리 문화 안에서 우리는 과학적으로 생각한다. 고대 세계 사람들은 그보다는 세계를 상징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이해를 상像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신화라는 개념은 불안정하고 다양하게 이해되고 있어서 새로운 단어(저자는 사상적寫像的이라는 용어를 사용)를 택할 필요가 있다(성례전적 사고).



함께 생각해 본 토론 내용들

Q1.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무엇인가?

<!--[if !supportEmptyParas]--><!--[endif]-->Q2. 가장 잘 수용이 되는 내용과 가장 거부감이 드는 내용은 무엇인가?

<!--[if !supportEmptyParas]--><!--[endif]-->Q3. 성경과 창세기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부분은 무엇인가?


A 전도사님은 성경의 내용을 어디까지를 상징으로 볼 것이며, 어디까지 역사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존 월튼이 제기하는 주장이 참신하기는 하지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본인의 믿음의 문제로 여겨진다고 말을 했습니다. 

또 B 전도사님은 늦게 신앙을 갖게 되었고, 늦게 신학을 하게 되었는데, 성경 창세기가 상징의 언어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처음 창세기를 읽으면서부터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제사장이라는 사실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고 했으며, 아담의 역사성을 설명하려는 월튼의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A전도사님 역시 월튼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너무나도 자기 근거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만 취하여서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한 편으로는 들었다고 했습니다. 고대 언어가 여러 의미와 뜻으로 읽힐 수 있는데, 너무 주관적인 의견을 제시했을 경우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원죄론과 죄의 전가, 대속의 원리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계속해서 제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 책이 어렵지만 읽으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한 흔적들을 가지고 모여서 그런지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월튼의 명제가 전부 다 소개된 것이 아니라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지만, 성경을 과학적인 언어로 읽지 않고 신학적-시문학적으로 읽을 때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메시지가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해석적 방법론으로 성경이 해체되는 것 같은 느낌을 독자들이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선교하시는 하나님Missio Dei이시며, 고대 근동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과 주변 문화권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을 보여주셨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어쩌면 3000년의 역사적 간격에 대한 번역서입니다. 당연히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의미와 뜻을 성경 시대 독자들과 같은 눈높이로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안경을 선물하여 줍니다. 혼자였으면 도중에 포기하기 쉬운 그런 책을 멤버들이 함께 모여 도와가며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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