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지성이면 감천’의 모임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2부
성경과 과학의 충돌로 신앙인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사실 교회의 천지창조와 학교(사회)의 진화론 혹은 빅뱅이론은 정면으로 부닥치는 내용이기에 아직 지적 정보가 많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큰 걸림돌의 부분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 지적 정보가 많아진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이 부분에서 자유로운 사람, 혹은 확실한 정보를 가진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천지창조를 가볍게 여기면 신앙적 괴로움이 따르고, 진화론이나 빅백이론을 무시하면 학교 성적이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와 같은 문제에 답을 정확히 찾거나 찾으려는 노력이 없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학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많은 경우 과학 그 자체보다는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성경을 가장 중요한 책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그 성경을 어떻게 제대로 읽어야 하는지 모른다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위 문장은 단순히 과학과 성경의 문제를 넘어 나의 양심에 문제까지 파고드는 글귀였다. 성경에 권위에 민감하고 진리라고 믿으면서도 여전히 성경에 대한 무관심과 성실하지 못한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지적 불성실, 또 질문하지 못하는 교회 문화 등이 우리를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게으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것들이 있다. 혈루병과 같은 문제를 성경의 시대 사고로는 거룩하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 혹은 벌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성경을 비롯한 모든 글은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기록되기에 그 언어의 배경이 되는 문화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성경의 배경이 된 고대의 상식이 마치 성경 자체의 메시지라고 착각하기 쉽다.
창세기 1장은 저자 의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창조주인지를 명확히 알려줄 목적으로 쓰인 창세기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창조의 개념을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담은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과정이며 자연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과학이 무엇을 밝히든지 원칙적으로 과학의 결과는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심리적 충격이 있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과정은 성경이 변하거나 우리가 믿어온 하나님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하는 것일 뿐이다.
#지성이면감천 #독서모임 #과학시대의도전과 #기독교의응답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우리가교회 #성경을사랑해 #과학도좋네 #우종학교수님 #한번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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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2부
성경과 과학의 충돌로 신앙인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사실 교회의 천지창조와 학교(사회)의 진화론 혹은 빅뱅이론은 정면으로 부닥치는 내용이기에 아직 지적 정보가 많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큰 걸림돌의 부분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 지적 정보가 많아진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이 부분에서 자유로운 사람, 혹은 확실한 정보를 가진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천지창조를 가볍게 여기면 신앙적 괴로움이 따르고, 진화론이나 빅백이론을 무시하면 학교 성적이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와 같은 문제에 답을 정확히 찾거나 찾으려는 노력이 없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학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많은 경우 과학 그 자체보다는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성경을 가장 중요한 책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그 성경을 어떻게 제대로 읽어야 하는지 모른다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위 문장은 단순히 과학과 성경의 문제를 넘어 나의 양심에 문제까지 파고드는 글귀였다. 성경에 권위에 민감하고 진리라고 믿으면서도 여전히 성경에 대한 무관심과 성실하지 못한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지적 불성실, 또 질문하지 못하는 교회 문화 등이 우리를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게으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것들이 있다. 혈루병과 같은 문제를 성경의 시대 사고로는 거룩하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 혹은 벌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성경을 비롯한 모든 글은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기록되기에 그 언어의 배경이 되는 문화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성경의 배경이 된 고대의 상식이 마치 성경 자체의 메시지라고 착각하기 쉽다.
창세기 1장은 저자 의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창조주인지를 명확히 알려줄 목적으로 쓰인 창세기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창조의 개념을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담은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과정이며 자연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과학이 무엇을 밝히든지 원칙적으로 과학의 결과는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심리적 충격이 있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과정은 성경이 변하거나 우리가 믿어온 하나님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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