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모임 신학논쟁 2주차
아쉽게도 이번주는 많은 사람이 못 와서 적은 인원으로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임에 못 온다는 연락을 받고 모임이 일찍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모임은 예정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마쳤습니다.
토론 범위는 3-7장이었고 이 중 3,6장을 각각 1시간 씩 토론하였습니다.
3장은 믿음에 관한 두 입장의 토론이었습니다.
이레니우스 & 터르툴리아누스 : 진정한 믿음은 신앙적 교리에 대한 동의가 필요(pp.75)
“그것이 우리 신앙의 토대와 기둥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에 의해 그것을 경(γαρφη)들로 우리에게 전수해주었습니다.”
『이단논박 5』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인간적인 지혜들은 진리를 공격하고 왜곡시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자체로 다수의 이단들이 서로 적대적인 다양한 분파들에 의해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교회가 플라톤 학파의 아카데미, 그리스도인이 이단들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중략- 나는 스토아 학자나 플라톤 학자 도는 변증적인 기독교를 필요로 하지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이후로 우리는 사변이 필요 없게 되었고, 복음서 이후로 연구가 필요 없게 되었다. 우리가 믿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밖의 다른 것을 믿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그 밖에 아무것도 없다고 믿음으로써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단을 논박하는 취득시효 7』
클레멘스 : 교리적 동의도 중요하지만 자연적 계시를 통해서도 믿음에 대해 알 수 있다.(pp.77)
“마치 한 개인이 자신의 힘만으로 배(ship)를 끌어내리는 원인이 될 수 없고 여럿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하듯이 철학도 진리탐구의 존재로서 진리를 이해하는데 기여한다. 진리이해의 원인으로서가 아니고 다른 것들과 함께 원인으로서, 협력자로서, 아마도 합작 원인으로서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덕이 한 개인의 행복의 원인들이 되듯이 마치 태양과 불과 목욕과 옷이 사람을 따뜻하게 하듯이, 진리는 하나인데 여러 사물이 진리를 탐색하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발견은 아들을 통해서 이뤄진다.” → 철학을 사용하여 진리를 찾는 것에 긍정
『잡문집 1.20』
참여자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터르툴리아누스를 지지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터르툴리아누스를 지지한 이유는 기독교교리는 이성적인 이해 이전에 신앙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클레멘스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신앙적인 교리도 이성을 통한 신앙 구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토론의 마지막은 결국 자신의 경험을 통한 입장 변증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신앙적 동의를 통해 기독교 교리에 입문하게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성적 탐구를 통해 기독교 교리에 동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결국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6장은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논쟁이었습니다.
6장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 논쟁
아리우스 : 성자는 피조된 존재이다.(pp.132)
근거 ① 로마서 견해(pp.133)
② 성자가 영원 전 부터 존재했다면 그것은 이(two)신론이 된다.
③ (오리겐의 견해)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면 둘의 차이를 알 수 없다.
④ 삼위일체는 논리적 모순이다.
⑤ 아타나시우스 견해는 양태론이다.
아타나시우스 : 성자는 영원 전 부터 존재했다.(pp.132)
근거 ① 성자는 영광스러운 존재로 경배의 대상(pp.134)
②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신비 모순이 아님
③ 과거 교부들도 이 견해를 지지
지금의 우리는 모두 아타나시우스를 받아들이지만, 잠시금 그 시대의 감독들로 돌아가 이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이에 관하여 두 사람은 삼위일체란 기독교적 신비라는 견해인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을, 또 다른 한 사람은 보다 논리적인 아리우스의 견해를 이야기 하며
과거 니케아 공의회를 재현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논쟁 후 모두 같이 먹은 설렁탕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ㅎㅎㅎ
다음 모임의 주 된 주제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입니다 ㅎㅎㅎ 더욱 더 기대되네요

당산모임 신학논쟁 2주차
아쉽게도 이번주는 많은 사람이 못 와서 적은 인원으로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임에 못 온다는 연락을 받고 모임이 일찍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모임은 예정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마쳤습니다.
토론 범위는 3-7장이었고 이 중 3,6장을 각각 1시간 씩 토론하였습니다.
3장은 믿음에 관한 두 입장의 토론이었습니다.
이레니우스 & 터르툴리아누스 : 진정한 믿음은 신앙적 교리에 대한 동의가 필요(pp.75)
“그것이 우리 신앙의 토대와 기둥이 되도록 하나님의 뜻에 의해 그것을 경(γαρφη)들로 우리에게 전수해주었습니다.”
『이단논박 5』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인간적인 지혜들은 진리를 공격하고 왜곡시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자체로 다수의 이단들이 서로 적대적인 다양한 분파들에 의해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교회가 플라톤 학파의 아카데미, 그리스도인이 이단들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중략- 나는 스토아 학자나 플라톤 학자 도는 변증적인 기독교를 필요로 하지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이후로 우리는 사변이 필요 없게 되었고, 복음서 이후로 연구가 필요 없게 되었다. 우리가 믿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밖의 다른 것을 믿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그 밖에 아무것도 없다고 믿음으로써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단을 논박하는 취득시효 7』
클레멘스 : 교리적 동의도 중요하지만 자연적 계시를 통해서도 믿음에 대해 알 수 있다.(pp.77)
“마치 한 개인이 자신의 힘만으로 배(ship)를 끌어내리는 원인이 될 수 없고 여럿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하듯이 철학도 진리탐구의 존재로서 진리를 이해하는데 기여한다. 진리이해의 원인으로서가 아니고 다른 것들과 함께 원인으로서, 협력자로서, 아마도 합작 원인으로서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덕이 한 개인의 행복의 원인들이 되듯이 마치 태양과 불과 목욕과 옷이 사람을 따뜻하게 하듯이, 진리는 하나인데 여러 사물이 진리를 탐색하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발견은 아들을 통해서 이뤄진다.” → 철학을 사용하여 진리를 찾는 것에 긍정
『잡문집 1.20』
참여자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터르툴리아누스를 지지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터르툴리아누스를 지지한 이유는 기독교교리는 이성적인 이해 이전에 신앙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클레멘스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신앙적인 교리도 이성을 통한 신앙 구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토론의 마지막은 결국 자신의 경험을 통한 입장 변증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신앙적 동의를 통해 기독교 교리에 입문하게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성적 탐구를 통해 기독교 교리에 동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결국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 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6장은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논쟁이었습니다.
6장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 논쟁
아리우스 : 성자는 피조된 존재이다.(pp.132)
근거 ① 로마서 견해(pp.133)
② 성자가 영원 전 부터 존재했다면 그것은 이(two)신론이 된다.
③ (오리겐의 견해)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면 둘의 차이를 알 수 없다.
④ 삼위일체는 논리적 모순이다.
⑤ 아타나시우스 견해는 양태론이다.
아타나시우스 : 성자는 영원 전 부터 존재했다.(pp.132)
근거 ① 성자는 영광스러운 존재로 경배의 대상(pp.134)
②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신비 모순이 아님
③ 과거 교부들도 이 견해를 지지
지금의 우리는 모두 아타나시우스를 받아들이지만, 잠시금 그 시대의 감독들로 돌아가 이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이에 관하여 두 사람은 삼위일체란 기독교적 신비라는 견해인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을, 또 다른 한 사람은 보다 논리적인 아리우스의 견해를 이야기 하며
과거 니케아 공의회를 재현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논쟁 후 모두 같이 먹은 설렁탕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ㅎㅎㅎ
다음 모임의 주 된 주제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입니다 ㅎㅎㅎ 더욱 더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