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목원대신학대학원] - 『칭의논쟁』_세번째 모임_김필수

김필수
2018-05-02
조회수 1897

칭의 논쟁- 7장 가톨릭

(제럴드 오콜린스 & 올리버 P. 래퍼티)

발제자 : 김기백 학우

5.01(화)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목차

1. 김기백 학우의 발제 일부 / 2.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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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칭의 논쟁 - 카톨릭 발제

서론

트리엔트 공의회의 문서는 가톨릭의 의회 신학에 관해 가장 분명하고 체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의화에 관해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분명히 구별 짓기 원했으나, 중세 가톨릭의 다양한 학파 사이에서 제기된 논쟁적 질문의 기반을 형성했던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 의지의 자유를 다루는 견해들에 대한 판결은 피하기로 했다.

이러한 공의회의 의화 교리는 모든 프로테스탄트 학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 칼 바르트 : 그 가르침은 “위에서 말미암은 빛이 하나도 없다”
 - 아돌프 폰 하르낙 : 만일 그 신조가 라테란 5차 공의회에서 통과되었다면 종교개혁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 한스 큉 : 가톨릭 측에서 사실상 가톨릭과 루터파의 의화 이해가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 참석한 신부들은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시작되었고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한 혐오로 인해 교회 역사 안에 등장한 후기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이 특별히 제기했던, 의화에 관한 풍부하고 특별한 신학적 추론들을 자료로 사용했다. 

 >> 루터에 의해 “중세 가톨릭주의가 펠라기우스파의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았다.
 >> 가톨릭의 의화 교리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의화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다.


 >> 논쟁의 핵심은
하나님 자신의 정의 개념 vs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정의 개념
                                      사이의 구별
- 대다수 서구 가톨릭 전통은 ‘하나님이 스스로 의롭다 하시는 의’와 ‘하나님이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의’ 를 구별했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의롭다”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명제가 유사성을 띈다 하더라도 분명히 다르다.
- 고대에는 정의를 어떤 사람이 갖춘 공적으로 선포한다는 의미로 사용 (인간의 정의와 신적 정의를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용한 것)

인간의 정의에 대한 부분을 다루며 가톨릭은 지적인 수준에서 어떤 정죄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가톨릭의 전통적인 교리
 -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죄인을 의롭게 한다.
 - 동시에 가톨릭 전통은 일반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모든 사람을 잃지는 않았다는 확신을 수용한다. (Q. 모든 사람의 의미?)
 - 인간의 전적타락은 없으며,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 심각하게 가려졌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없어지지도 않았고, “악마의 형상”으로 대체되지도 않았다. (루터의 말 인용)
 - 사욕편정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필수적인 의지의 자유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의지의 자유는 올바른 상태와 자극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움직일 수 있다.
 >>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죄인을 의롭게 하신다는 것 (인정)
 >>  그러나 인간 존재에 대한 출발이 다르다.


* 가톨릭의 의화 교리
 - 하나님만이 죄인을 의롭게 한다.
 - 그리스도가 각자의 행위에 따라 모든 이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을 알기 때문에, 신자는 올바르게 살라는 도덕 명령을 성취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은혜에 자유롭게 협력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있다.


"김기백 학우 정리 내용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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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느낀점

카톨릭 칭의 논쟁이 끝난 후

1. 카톨릭 칭의에 대한 느낀점

2. 카톨릭 칭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

(or 자신의 의견에 대한 생각 ex 전통적 개혁파, 진보적 개혁파 등등)

3. 아쉬운점

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해봤습니다.


- 기

1,2 의화 교리가 있지만 여러 논평에서 다룬 것과 같이 그 논의가 세심하게 칭의의 모든 부분을 다루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칭의와 성화를 나누어 설명하는 개신교와 달리 의화와 성화를 함께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전반적인 가톨릭 의화 교리에 대해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3. 보다 최근에 논의된 부분들이 빠져있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 필

1,2 카톨릭의 칭의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카톨릭 안에서도 전통과 진보적 개념이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배웠던 내용과 직접 카톨릭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칭의가 느낌상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었고, 무엇보다 '의화'에 대한 개념이 '새 관점학파'와도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카톨릭학자들의 칭의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결국 카톨릭의 의화(카톨릭의 칭의)는 개신교의 '구원' 전체의 과정을 하나의 단어 속에 넣는 의미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인간의 전적 타락을 부인하는 부분에서는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3. 카톨릭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던 부분들은 결국 어디선가 주어들은 이야기들인데, 이런 검증되지 않은 지식들이 아닌 검증되 지식들로 함께 토론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 주

1. 먼저, 카톨릭 안에서도 칭의(그들에겐 의화)에 대하여 생각보다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단순히 공로를 쌓아서 그것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를 가진 공동체라고만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은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물론, 결국 공로로 귀결되지만). 의화라는 것 자체가 칭의와 성화를 동시에 수반하는 것은 신성화 관점과 상당 부분 유사하지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다시 한번 읽어보며 파악하려 합니다.

2. 개인적으로는 의화 안에서의 개념이 조금 더 세분화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어찌 사람이 칼로 자르듯 이런 저런 순서를 매길 수 있겠냐마는 카톨릭의 성도들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작업은 분명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례에 효력에 대해서도 그들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성경에서 어떻게 조명하는지도 더 심도있게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 안에 실제로 의로움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이것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은 명백합니다.)

3. 선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설명으로만 글을 접하여 충분한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스스로 먼저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더 나은 토론과 진행을 위하여^^)


- 봉

1-2.방대한 의화(칭의)의 역사에 대해 짧고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 좋았다. 그러나 카톨릭의 의화 개념이 루터를 통해 정리되고 확실해졌다면,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거나 현재 카톨릭의 의화 입장을(물론 오콜린스 자신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했지만) 자세히 이야기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3.글쎄. 기고자와 논평자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조금더 의견의 차이를 드러내고 논쟁하는 것이 필요치 않을까? 또한 (마르카넨이 지적하듯이) 루터나 칼빈의 칭의 개념이 본 책에서 2차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쉽다.


- 지

1-2 칭의 개념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논의되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의화로 마쳐지는 기고문이 너무 아쉬웠다. '의화교리공동선언'을 통해 선언된 의화 개념을 다루어 주었으면 오히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를 조감해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3. 타교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다. 카더라 통신으로 접한 정보들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만드는 것 같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 경

1,2 초대교회 부터 트리엔트 공의회 까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가톨릭의 의화 교리라고 정작 여러 관점의 차이가 있었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루터파와 개혁파에 대해 반대와 다수자에 대한 관점만 반영된 교리이다.

3. 오콜린스에 대한 부분은 간략하게 한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ㅎㅎ


- 봉

1. 종교개혁에 맞서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었지만 그 안에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칭의 후, 성화의 과정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개신교와 달리 칭의와 성화가 동시에 이뤄진다는 의화교리에 대하여는 다소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3. 논평만 가지고는, 그리고 나의 부족한 지식 때뮨에 호튼의 주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함에 호튼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고, 그래서 토론에 적극 참여하지 못함이 스스로에게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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