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출발은 창세기와 함께!!!
1월 7일 1시. 새물결 아카데미 1세미나실~~~양자의 요동같이 생명을 품고있는 에너지가 출렁인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품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사유하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는 낮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2019년 1월 한달 한권은 창세기 본문 중에서 특히 창세기 1장~3장을 존 월튼의 관점에서 이해를 돕는 책 으로 정했다. 시작에 관한 이야기,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창세기를 신화로 봐야하는지 역사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신학적 역사로 봐야 하는지 등의 다양한 쟁점들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창조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하는가? 월튼은 언제라도 새롭게 숙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현대인들에게 인지부조화를 가져오는 창조의 이야기와 과학의 성과물들이 말하는 바가 서로 상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창세기는 고대 문서다."라는 명제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예컨대 '고대'라고 하는 시간과 '현재'라는 시간의 간극에서 우리는 고대라는 무대에서 이스라엘백성이라는 청중에게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긴 편집된 글이라는 것을 알린다.
그는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창조'에 관해 과학적 서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내용을 끌어들이는 것은 옳지 않으며 7일 동안의 창조이야기는 우주적인 성전을 건축하여 그 곳에 안식하는 이야기로 이끈다. 월튼은 창세기 1장을 물질적 창조가 아니라 기능적 창조로 이해한다.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세워가는 과정 즉,성소로서의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월튼의 안경을 끼고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다양한 안경들 가운데 하나를 집어든 것이며, 또 다른 관점이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더욱 넓은 스펙트럼을 갖기를 소망한다. 항해하는 배가 파도를 만나 출렁이듯이 우리는 기꺼이 파도를 맞이할 것이며 출렁일 것이다. 그 파도는 우리의 본질주의적인 신앙의 벽을 깨는 망치임에 틀림없을테니 두렵고 떨리지만 기꺼이 파도에 온 몸을 맡기며 출렁거리기로 손가락을 걸어본다.
새해 출발은 창세기와 함께!!!
1월 7일 1시. 새물결 아카데미 1세미나실~~~양자의 요동같이 생명을 품고있는 에너지가 출렁인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품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사유하며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는 낮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였다.
2019년 1월 한달 한권은 창세기 본문 중에서 특히 창세기 1장~3장을 존 월튼의 관점에서 이해를 돕는 책 으로 정했다. 시작에 관한 이야기,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창세기를 신화로 봐야하는지 역사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신학적 역사로 봐야 하는지 등의 다양한 쟁점들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창조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하는가? 월튼은 언제라도 새롭게 숙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현대인들에게 인지부조화를 가져오는 창조의 이야기와 과학의 성과물들이 말하는 바가 서로 상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창세기는 고대 문서다."라는 명제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예컨대 '고대'라고 하는 시간과 '현재'라는 시간의 간극에서 우리는 고대라는 무대에서 이스라엘백성이라는 청중에게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긴 편집된 글이라는 것을 알린다.
그는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창조'에 관해 과학적 서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내용을 끌어들이는 것은 옳지 않으며 7일 동안의 창조이야기는 우주적인 성전을 건축하여 그 곳에 안식하는 이야기로 이끈다. 월튼은 창세기 1장을 물질적 창조가 아니라 기능적 창조로 이해한다. 무질서 가운데 질서를 세워가는 과정 즉,성소로서의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월튼의 안경을 끼고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를 읽어가는 동안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다양한 안경들 가운데 하나를 집어든 것이며, 또 다른 관점이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더욱 넓은 스펙트럼을 갖기를 소망한다. 항해하는 배가 파도를 만나 출렁이듯이 우리는 기꺼이 파도를 맞이할 것이며 출렁일 것이다. 그 파도는 우리의 본질주의적인 신앙의 벽을 깨는 망치임에 틀림없을테니 두렵고 떨리지만 기꺼이 파도에 온 몸을 맡기며 출렁거리기로 손가락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