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전주] - 『하나님의 비밀』_세번째 모임_김규배

김규배
2018-09-26
조회수 1146

그레고리 K. 비일 / 벤저민 L 글레드 공저 : 하나님의 비밀_세번째 모임은 3,4 챕터입니다. 

마태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비밀은 언제나 비밀을 제시한 뒤에 해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와 마찬가지로, 비밀이 제시된 뒤에는 항상 해석이 이루어졌는데,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이 비밀을 제시하고, 다니엘에게 지혜를 줌으로 해석이 되었다면, 마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비밀이 제시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해석으로 바로 비밀이 해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유행하는 신천지의 비유풀이와 격이 다른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워딩과 메시지로 해결되었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해석으로 풀어진 하나님의 비밀은 구약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단번에 이루어졌다면 신약에 이르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끝내 마지막 때에 단번에,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며,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마음으로 경험하고, 충만하게 되어 평안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이미 임재한 하나님 나라를 생소하게 느끼며 현 시대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는 악과 선이 공존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삶의 윤리가, 실제적인 삶에서 적용되어지기 두려운 우리들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현실에서 오는 실망과 상처와 나만 알고 있는 듯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로 인해 당하는 수치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의 의미와 의도에 대하여 우리는 늘 혼란스러워 하게 됩니다. 이미 임재한 하나님나라와 아직 오지 않은, 장차 임재할 하나님 나라, 그안에서 느끼는 마음의 평안과 진정한 살롬복음의 삶을 누리는 것의 비밀을 우리는 아직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자들은 명확한 목표와 목적이 있습니다. 


끝에 있을 심판의 소망과 이미 임재한 하나님 나라를 통한 인내와 고난을 통한 성장!

그 과정에서 타인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회개와 거룩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실천! 

이를 다시 시작할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지혜, 성령님의 인도함 입니다.

로마서에서 나타나는 비밀은 구약의 구원 순서와 로마서의 구원순서에 관한 비밀입니다. 

구약은 신명기의 기록을 제외하고, 늘 유대인, 이스라엘의 구원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방의 구원이 나중에 이루어지는 순서였지만, 신명기와 로마서를 통해 드러나는 순서는 그 반대인 이방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이를 시기하는 유대,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순서입니다.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된 이스라엘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누구를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자는 참된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대입합니다. 끝내 구약의 순서와 신약의 순서가 틀리지 않았음을 이를 통해 입증합니다. 


오직 유일하고, 참된 이스라엘, 유대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방인이 구원을 얻게 되며, 이를 통해 유대인의 구원이 이른다는 것이 신명기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비밀이였고, 바울의 경험과 바울에게 임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한 지혜가 이를 명확하게 알게 하였고, 로마서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쉬지 않고,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고,  그럼에도 항상 이방인이 구원에 이르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한 우리의 토론의 주제는 이스라엘이 질투를 하며 구원에 이르는 것이 어떤 심리적 상태이냐 였습니다. 내가 심판하는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 성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질투를 가지는 것인가 라는 내용이 우리들의 이해가 아닌가 싶으며, 오늘날 신앙을 이끄는 사고인 성공신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우월감을 통한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이 옳은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심명기는 이방인을 부정적으로 다루지도 않았고,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진노와 마지막 세대는 차등 없이 모든 민족을 지팅함을 통해 어떤 계급이나, 우월감의 경쟁은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님을 확신하였습니다. 


또한 로마서의 비밀을 통해 드러나는 장차 있을 이스라엘 구원을 지역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며 인터콥의 백 투 더 예루살렘, 새로운 시오니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열방을 향한 사랑과, 특권과 선민의식을 깨는 사역을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적 일관성을  생각해보면서, 장차 있을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은 당순한 지역적 논의가 아닌, 장차 믿을 하나님의 백성 전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역적 이스라엘을 무시할수는 없지만, 전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고, 궁극적으로 장차 돌아오게 될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모든 성도를 의미한다고 결론을 지었고, 그들이 질투하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해 이미 임한 천국을 경험하는 삶 자체이지, 물질적이나 영적인 축복, 높은 자리에 서게 되는 성취 지향의 모습이 아님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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