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총신 신대원] -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2』_3번째 모임_김정규

김정규
201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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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발제는 판넨베르크의 창조에 대해 진행되었다. 우선 헤르만 바빙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은 상당히 어렵고 난해했다. 물론 결과물을 얻어낸 것은 아니였지만, 판넨베르크의 뿌리를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판넨베르크는 창조를 삼위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에 있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을 창조주로 보는 쾌거(?)를 이룩했다고 평가받는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에서는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인정하는 선에서 멈췄다.

다만, 판넨베르크는 성령님이 창조를 활동하는 영역을 장(場)으로 확보하여 오늘날 신자의 삶에서 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사역의 자리를 축소한다.

물론, 그는 교회의 일치를 주장한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이론의 뿌리가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그의 주장속에서 나온 것도 또한 틀림없다.

그는 히브리적 사고와 뉴턴, 라이프니츠, 패러데이로부터 끌어낸 물리학적 장이론을 합쳐 과학과 대화를 요청한다.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부 명예교수는 이런 대화가 과학자들에게 도전이 된다고 하였다. 그의 논지를 잠깐 살펴보자.

“장 개념이 고대의 프뉴마 교리와 상통한다는 점에서, 현대물리학의 장 이론을 창조 안에서 신적 프뉴마가 역동적으로 활동한다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연관시키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개념사 및 정신사적인 맥락에서 올바른 것에 가깝다.”(조직신학 2, 164-165)

하나님은 철학의 지혜, 종교의 거룩함, 미학의 아름다움, 윤리적 의미의 선이시다. 철학에 깊은 뿌리를 둔 판넨베르크가 찾아나선 하나님의 모습은 역사의 사실과 사관이라는 거대한 도전과 독일이 겪은 2차세계대전의 아픔과 혼란속에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세대학교 김균진 명예교수는 ‘학문 세계에서 비판과 논쟁은 필수라고 했다.’ 하나님은 치열한 논쟁속에서 자신의 신학을 키워가시길 바란다고 감히 생각해 보았다. 진리는 논쟁과 비판이라는 연금의 과정에서 그 본질이 드러난다.

판넨베르크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한걸음 뒤로물러나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위험할까? 왜냐하면 회심하기 전 내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이성과 책으로 보이는 하나님이 너무나 알고 싶었고, 그 끝에는 이성의 한계에서 믿음으로 손짓하는 인격의 하나님이 계셨다. 그 하나님은 모든 이론과 철학을 넘어 나를 끌어안아 주셨다.

이제, 마지막 기독론이다. 아래로부터 신학을 당당히 밝힌 판넨베르크의 기독론을 마지막으로 판넨베르크의 여정을 마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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