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책을 마치며.....
‘판넨베르크를 왜 읽어야 하는가?’로 시작한 판넨베르크의 첫 번째는 오늘날 세분화한 학문 간의 통합적 사고의 필요성과 바르트의 비판으로 시작하여 독일신학을 대표한다는 판넨베르크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김용주 교수님의 ‘자유주의란 무엇인가’를 넣으면 좋을 뻔 했다.)
두 번째는 우리들의 관심사인 ‘역사로서의 계시’를 다뤘다. 2권을 다룸에도 나는 설명할 필요 없이 1권의 ‘역사로서의 계시’를 먼저 다뤘다. 물론 열심히 배경을 설명했다. ^^; 여기서 정말 눈치가 빠르다면 역사로서의 계시를 다루기 이전 그의 책 제목이 왜 교의학이 아닌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교의학과 조직신학의 관계,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얼마나 설명해야 하는 배경에서 그의 ‘역사로서의 계시’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가 개혁자들과 차이가 시작되는 부분은 교의학의 세 가지 내용에 대한 이해였다. 그것은 하나님, 계시(성경), 그리스도인의 의식이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균형 있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교의학은 존재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 판넨베르크는 계시하시는 하나님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성경과 그리스도의 의식 모두를 교의학의 내용 뒷전으로 물러나게 한다.
3번째 주에서는 이러한 배경에서 교의학은 진리를 반성하며 뒤쫓지만, 우주적 학문의 기능을 해야 하기에 하나님의 창조를 모든 학문과 대화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판넨베르크를 설명했다. 가장 중점적 대상은 자연과학과 대화, 성령님의 창조를 ‘모든 것을 행하게 하는 힘’으로 이해하여 ‘페러데이의 장이론’으로 설명한 것을 살펴보았다. 자연과학에는 초보수준인 나로서 장회익 박사님의 논문은 큰 힘이 되었다. 분문을 토대로 신학적 통찰이 있어 살펴보았다.
왜 성경이 말하는 성령님의 작용을 꼭 자연과학의 여러 이론으로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성서와 일치하고 부합하는 바를 넘어 그렇게 설명하여 인격의 성령님을 꼭 몰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과 조직신학의 기술의 가능성과 그 시작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 (물론 이 질문은 교의학의 내용에서 다 추론되기는 한다.) 그것의 가능성은 하나님의 믿게 하심이 우선이다. 그 우선을 흔들면서 그 이후에 대한 이성적 설명은 신학자가 해야 할 몫인가? 오히려 견고하게 하는 이성적 시도가 필요했음이 아쉽다.
이번 주는 개혁의 관점에서 판넨베르크의 기독론을 살폈다. 역사로서의 예수는 성경관의 무너진 이후에 제기된 질문들이다.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점은 신학도들에게는 그 가능성에 대해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바빙크는 하나님이 누구시고, 그 피조된 인간이 누구이며, 인간의 죄에 대해 다룬 후, 기독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은혜 언약’. 판넨베르크를 비롯한 다양한 현대신학은 모두 기독론의 방법론을 다룬다. 어떻게 기독론에 대한 바른 연구를 할 수 있음에서 시작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바른 기독론 연구는 어떻게 가능한가? 바빙크는 죄에 빠진 우리가 기독론을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첫 서술도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오직 은혜요, 하나님의 은혜 언약으로 기독론은 시작할 수밖에 없다.
판넨베르크는 자신이 맞서싸워할 적이 있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자신의 집이 폭격당하고, 10대에 군인으로 징병되었지만, 전염성 피부병으로 징집을 면하고 자신의 동료 부대원이 거의 전원 죽게 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독일에서 자유주의와 보수 기독교사이에서 자랐고, 폰 라드에게 구약을 니콜라이 하르트만에게 철학을 배우게 된다. 그 외 많은 배경사가 있을 것이다.
그의 통합신학과 다양한 학제 간에 수준 높은 대화는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역사로서의 계시를 시작할 때, 어거스틴으로의 회귀는 참 놀라웠다. 그러나 그 놀라움과 함께 굉장히 아쉬웠다. 그것은 어거스틴은 우선 믿으라고 했다는 자신의 이론의 정점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와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했을 때, 만나지 못했던 그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지 이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듯, 동성애에 빠졌을 것이란 추측도 있고, 정상적이지 못한 결혼생활에서 낳은 아이를 잃는 슬픔까지 있었던 그의 사상의 방황은 하나님의 사랑에 있었고, 그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저작도 오직 자신의 행복과 하나님께 영광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에게 우선 믿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믿음은 이성과 배치되지 않으며 믿음은 이성으로 가능하고 믿음의 대상을 이해하게 하며, 무엇을 어떻게 믿을지 알게 된다고 말한다.
독일어 원전으로 읽지 못해 아쉬웠고, 그의 놀라운 사상을 한글로라도 더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너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앞으로 기독론에 대해 논할 때, 평생 그의 은혜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우는 범하지 않길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또 하나의 책을 마치며.....
‘판넨베르크를 왜 읽어야 하는가?’로 시작한 판넨베르크의 첫 번째는 오늘날 세분화한 학문 간의 통합적 사고의 필요성과 바르트의 비판으로 시작하여 독일신학을 대표한다는 판넨베르크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김용주 교수님의 ‘자유주의란 무엇인가’를 넣으면 좋을 뻔 했다.)
두 번째는 우리들의 관심사인 ‘역사로서의 계시’를 다뤘다. 2권을 다룸에도 나는 설명할 필요 없이 1권의 ‘역사로서의 계시’를 먼저 다뤘다. 물론 열심히 배경을 설명했다. ^^; 여기서 정말 눈치가 빠르다면 역사로서의 계시를 다루기 이전 그의 책 제목이 왜 교의학이 아닌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교의학과 조직신학의 관계,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얼마나 설명해야 하는 배경에서 그의 ‘역사로서의 계시’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가 개혁자들과 차이가 시작되는 부분은 교의학의 세 가지 내용에 대한 이해였다. 그것은 하나님, 계시(성경), 그리스도인의 의식이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균형 있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교의학은 존재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 판넨베르크는 계시하시는 하나님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성경과 그리스도의 의식 모두를 교의학의 내용 뒷전으로 물러나게 한다.
3번째 주에서는 이러한 배경에서 교의학은 진리를 반성하며 뒤쫓지만, 우주적 학문의 기능을 해야 하기에 하나님의 창조를 모든 학문과 대화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판넨베르크를 설명했다. 가장 중점적 대상은 자연과학과 대화, 성령님의 창조를 ‘모든 것을 행하게 하는 힘’으로 이해하여 ‘페러데이의 장이론’으로 설명한 것을 살펴보았다. 자연과학에는 초보수준인 나로서 장회익 박사님의 논문은 큰 힘이 되었다. 분문을 토대로 신학적 통찰이 있어 살펴보았다.
왜 성경이 말하는 성령님의 작용을 꼭 자연과학의 여러 이론으로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성서와 일치하고 부합하는 바를 넘어 그렇게 설명하여 인격의 성령님을 꼭 몰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과 조직신학의 기술의 가능성과 그 시작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 (물론 이 질문은 교의학의 내용에서 다 추론되기는 한다.) 그것의 가능성은 하나님의 믿게 하심이 우선이다. 그 우선을 흔들면서 그 이후에 대한 이성적 설명은 신학자가 해야 할 몫인가? 오히려 견고하게 하는 이성적 시도가 필요했음이 아쉽다.
이번 주는 개혁의 관점에서 판넨베르크의 기독론을 살폈다. 역사로서의 예수는 성경관의 무너진 이후에 제기된 질문들이다.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점은 신학도들에게는 그 가능성에 대해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바빙크는 하나님이 누구시고, 그 피조된 인간이 누구이며, 인간의 죄에 대해 다룬 후, 기독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은혜 언약’. 판넨베르크를 비롯한 다양한 현대신학은 모두 기독론의 방법론을 다룬다. 어떻게 기독론에 대한 바른 연구를 할 수 있음에서 시작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바른 기독론 연구는 어떻게 가능한가? 바빙크는 죄에 빠진 우리가 기독론을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첫 서술도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오직 은혜요, 하나님의 은혜 언약으로 기독론은 시작할 수밖에 없다.
판넨베르크는 자신이 맞서싸워할 적이 있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자신의 집이 폭격당하고, 10대에 군인으로 징병되었지만, 전염성 피부병으로 징집을 면하고 자신의 동료 부대원이 거의 전원 죽게 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독일에서 자유주의와 보수 기독교사이에서 자랐고, 폰 라드에게 구약을 니콜라이 하르트만에게 철학을 배우게 된다. 그 외 많은 배경사가 있을 것이다.
그의 통합신학과 다양한 학제 간에 수준 높은 대화는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역사로서의 계시를 시작할 때, 어거스틴으로의 회귀는 참 놀라웠다. 그러나 그 놀라움과 함께 굉장히 아쉬웠다. 그것은 어거스틴은 우선 믿으라고 했다는 자신의 이론의 정점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와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했을 때, 만나지 못했던 그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지 이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듯, 동성애에 빠졌을 것이란 추측도 있고, 정상적이지 못한 결혼생활에서 낳은 아이를 잃는 슬픔까지 있었던 그의 사상의 방황은 하나님의 사랑에 있었고, 그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저작도 오직 자신의 행복과 하나님께 영광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에게 우선 믿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믿음은 이성과 배치되지 않으며 믿음은 이성으로 가능하고 믿음의 대상을 이해하게 하며, 무엇을 어떻게 믿을지 알게 된다고 말한다.
독일어 원전으로 읽지 못해 아쉬웠고, 그의 놀라운 사상을 한글로라도 더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너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앞으로 기독론에 대해 논할 때, 평생 그의 은혜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우는 범하지 않길 기도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