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영남신학대학교 그냥과 보통] - 『위대한 열정』_여덟 번째 모임_이정규

이정규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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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전쟁의 소용돌이가 세계를 삼키고 있을 때, 바르트는 창조가 하나님의 선한 현실성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임을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살던 시대와 그리스도교는 처참하게 폐허가 되었다. 심지어 신학자들은 전쟁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이 “고통과 죽음의 바다”에서 어떻게 선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바르트는 창조론에서 근대 사상과 치열하게 논쟁했다. 그는 17세기 이래로 잘못된 역사를 되짚어 갔다. 그것은 창조를 하나님의 역사적인 계시가 아니라 일반적인 창조로 인식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이신론을 탄생시켰다. 이신론의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했으나 결코 세계와 인간에게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주는 거대한 시계와 같아서 모든 것이 정해져있는 대로 진행될 뿐이다. 그것이 어떤 비참한 현실이라 해도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함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셨다. 인간을 사랑하고 함께 하시기로 말이다.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 일어난 위대한 사건이 바로 ‘창조’이다. 그러므로 창조는 선한 것이다. 창조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것을 어찌 선한 사건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창조 이후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오셨다. 고통과 혼란과 죽음이 가득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말이다. 우리는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 -세계의 어둠을 바라보지만 그럼에도- 하게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는 악행들, 산다는 것에 대한 피로와 고통 등과 같이 세계와 나의 실존의 비참함을 목도할 때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한 번 쯤 해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뭐하시나?” 그럼에도 우리에게 하나님은 의미 있는 아니 그 이상의 존재일 수 있을까요? 바르트는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그가 해야 할 일들을 했지요. 󰡔위대한 열정󰡕을 읽을 때면, 항상 나에게 하나님이란 어떤 분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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