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영남신학대학교 그냥과 보통] - 『위대한 열정』_아홉 번째 모임_이정규

이정규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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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는 1934년 베를린에서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는 다른 영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다른 영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길을 걷게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르트는 어떤 ‘성령’을 말했을까?

바르트는 성령이 하나님이라면 성령을 인식하는 것은 계시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인식의 근원을 성서가 아닌 다른 것에 찾아서 안 되며, 성서로 충분하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록된 말씀을 새롭게 경험한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일을 하신다. 바르트는 여기서 ‘인도하심’이라는 개념을 선호하는데, 구체적으로 성령은 세 가지를 요청하신다. 첫째, “자리 지정”이다. 이것은 “이미 너의 존재인 그것이 되어라!”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 그리고 그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도하신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둘째, ‘책망’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옛 사람’과 투쟁하신다. 우리가 성령과 함께 한다는 것은 곧 치열한 죄와 투쟁이 다름 아니다. 특히 성령은 ‘태만’이라는 죄를 드러내신다. 태만은 우리가 되어야 할 존재가 되지 않고 그 뒤편에 머무르는 행위를 의미한다. 태만은 이제는 성취할 수 있는 복음의 계명과 반대로 간다는 점에서 죄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이 점을 깨우치시고 회개로 인도하신다. 셋째, “가르치심”이다. 성령께서는 인간을 특정 행위로 안내하신다.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점검하도록 유도하고 가능성과 선택을 신중하게 고려하게 하신다. 바르트는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면 세상은 우리를 ‘거치는 존재’가 될 것이며 어느 정도 ‘고난’을 받을 것이라 말한다.

성령은 우리를 불러내시고 다시 세상 가운데로 보내신다. 바르트는 성령이 인간의 소유하려는 욕망의 정신과 대립하신다고 말한다. 성령께서는 소유라는 “자본주의 정신”을 제거 하신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신뢰를 두는 것이지, 하나님을 가지는 것에 신뢰를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방랑하는 삶을 산다. 소유의 욕망의 자리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소망이 자리한다. “계시의 현재적인 충만함으로부터 미래의 충만함으로” 가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교회 내에서 ‘성령’이라고 하면 아직 방언이나 신유 같은 은사를 떠올리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바르트가 진술하는 성령은 인간 존재 안에서 적극적으로 교제하며 그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 기복주의가 말하는 “순종했더니 복(나의 욕망의 충족) 받더라.”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되고, 나의 욕망의 자리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란한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성령 안에서 마땅히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게 되겠죠? 그분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으시니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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