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총신대신학대학원] -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2』_2번째 모임_김정규

김정규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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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수련회를 통해 은혜를 받고 있는 중, 나에게 주어진 숙제는 판넨베르크의 발제(?)였다. 숙제가 은혜로 끝나길 기도한다.

주님은 늘 낙심하는 자를 일으켜 세우신다. 이는 주님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낙심된 자가 항상 일으켜 세워진다면 세상은 너무 즐거울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다.

판넨베르크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빛을 경험했다. 이것은 사도행전 9장의 빛은 아니라고 보인다. 이 빛은 진리로의 목마름이라고 보인다. 조직신학 1권은 신학의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신학의 가능성은 진리의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왜 진리를 찾아야 하는가? 진리를 자기에게로 반드시 이끄는가?

판넨베르크는 역사-비평과 실존철학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진리를 찾아 떠난다. 교의학에게 맡겨진 숙제는 조직적 설명으로 이 설명의 대상이 진리임을 논증해야 하고, 성경신학이 하지 못한 진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교의학이 과연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

판넨베르크는 이 숙제를 바빙크나 슐라이어마허와 달리 성경의 무오성, 신앙고백, 그리스도인의 의식(意識)속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진리가 하나님이시며, 그 진리의 정합성에서 교의학이 진리를 뒤에서 쫓고 스스로 반성하는 역할에 머물면서 찾아간다고 증명한다.

그의 견해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쫒는다. 하나님이 진리 자체이시라는 것은 모든 참된 것의 정합성 혹은 일치라는 관점에 근거한다. 발제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 정합성이 진리가 신이라는, 신 존재증명으로 봐도 될지 모르겠다.

그는 왜 그렇게 진리에 목말라했을까? 그의 말년에 쓴 ‘신학과 철학’은 왜 신학자가 철학을 해야 하는지 논증한다. 빛의 경험과 고백교회의 성도에 대한 신앙적 삶을 체험은 그를 진리의 여정에 참여 시켰고, 이 진리의 여정에서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철학이 주지 못하는 진리의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가 루터교 신학자이기에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탠리 그렌츠나 로저 올슨 같은 학자들은 바르트 이후 최고의 신학자라고 평가받는다고 본다. 리처드 멀러는 그를 통합신학의 4대 학자로도 본다.

다음 주에는 판넨베르크의 창조부분을 개관해보려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의 창조론이 살짝(?)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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