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한권_아카데미] - 『내러티브로 읽는 사사기』_네번째 모임_이원혁

이원혁
2018-08-31
조회수 2151

이번 책모임을 시작하던 4주 전에는 한창 폭염으로 인해 무더울 때였는데, 이제 비도 오면서 폭염 기운이 확실히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의 열정은 모임을 거듭할수록 뜨거웠습니다.^^ 


책 모임을 통해 멤버들 모두 성경을 더욱 사랑하고 관심을 갖게 해 주는 계기가 되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만 읽어도 재미있는 사사기이지만 이 책을 통해 전체 이야기를 한번 더 깊이 다루고, 성경의 구조를 통해 메시지를 확실히 파악하며, 또 평소에 사사기를 읽으면서 가졌던 궁금증도 많이 해소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내용이 많아서 사설은 패스하고 바로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ㅎㅎㅎ


이번 모임은  『내러티브로 읽는 사사기』 책의 8장~10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8장에 나오는 삼손의 이야기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삼손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삼손은 힘이 센 사람의 대명사로 많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마지막 사사였던 삼손은 가장 외로운 사사이자 가장 치욕스러운 패배를 경험한 용사였습니다. 

그런 그의 이야기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사사 시대의 지도자가 영적으로 어두워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나실인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나실인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삶을 살았습니다. 나실인의 정결 규례도 지키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당시 이방인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조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닌, “자신의 눈에 옳은 대로” 행했던 사람으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삼손의 삶을 돌아보면, 누구든지 이런 질문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삶을 제멋대로 살았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이런 사람을 사용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삶의 말미에 이런 힌트를 얻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두 눈을 뽑히고, 머리가 밀려 강력한 힘도 사라졌을 그 때에 삼손은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과, 그런 그를 계속해서 지켜주시고 사용하셨던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나, 우리의 인생도 돌아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죄악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분의 주권적인 사랑하심으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으며 쓰임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혜를 가지고 개인적인 성취와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9장은 미가의 스토리입니다. 이 스토리는 한 집안, 한 개인의 잘못된 신앙이 어떻게 한 지파 전체를 우상숭배로 빠트리게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가의 이름은 원래 “미카예후”인데, 이것은 “누가 야웨와 같겠는가?”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런 이름은 높은 신앙심을 반영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미가의 어머니나 미가의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미가가 훔쳤던 은을 돌려받은 어머니는 그 돈으로 은장색을 통해 신상을 하나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신당을 마련한 미가는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입술로는 야웨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돌리는 듯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어떤 행위도 찾을 수 없으며, 오히려 당시 이방 민족의 풍습과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미가의 스토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게 된 인물은 레위인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히브리어로 “나아르”, 즉 청년이었다고 나와 있습니다(삿 17:7). 즉 제사장직을 맡을 수 있는 30세가 아직 안 되었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게다가 그는 거류민으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벗어나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레위 자손의 의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레위인 청년은 처음에 미가의 집안 제사장으로 들어갔다가, 이후 단 지파가 라이스를 치기 위하여 미가의 집에 들렀을 때 그들의 제사장으로 제안을 받자 기쁜 마음으로(삿 18:20) 단 지파에 합류하게 됩니다.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는 레위인이지만 야웨의 종이 아니며 돈만 주면 어디든 가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삯꾼이자 종교업자였습니다. 이 레위인 청년을 보면 이 시대의 몇 몇 삯꾼 목회자들이 떠오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더군다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의 정체였습니다. 성경은 그가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이라는 설명을 이 사건의 말미에 덧붙입니다(삿 18:30a).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세의 가문까지 영적으로 부패한 현실은 당시의 청중들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10장은 이스라엘과 베냐민 지파의 전쟁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레위인의 첩은 아마도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여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여인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적어보려 합니다.) 그녀는 이름도 없습니다. 그녀는 레위인의 첩이었으며(삿 19:1), 남편인 레위인과 다툰 후 자신의 친정집에 돌아가 넉 달이나 머물게 됩니다(삿 19:2). 그러다가 자신의 남편이 찾아와 그녀와 화해를 시도하고 결국 그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비참한 일을 겪게 됩니다. 남편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리하게 해가 저물 때 집으로 돌아가던 중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땅에서 밤을 보내게 되는데, 여기서 불량배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너무나 비참한 것은, 자신을 보호해주어야 할 남편이 정작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붙잡아 “밖으로 끌어 내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동이 틀 때에 남편이 있는 집으로 겨우 살아 돌아왔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남편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남편이 문을 열고 쓰러진 그 여인을 발견했지만 그녀에 대해서 걱정하는 한 마디 없이 짐짝처럼 나귀에 실려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 성경에는 “그녀의 시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원문에는 그녀가 죽었다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손에 의해 열 두 토막이 나고, 그녀의 몸은 각 지파 사방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가장 안전했던 아버지의 집에서 나온 그 여인은 하룻 밤 새 그렇게 가장 끔찍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과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베냐민 지파 양쪽 모두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블레셋 족속과도 같은 모습으로 베냐민 지파를 거의 전멸하다시피 합니다. 곧 그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또 다른 죄를 범하고 마는데, 베냐민 지파의 남은 600명을 보존하기 위해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하여 400명의 처녀들을 취하고, 실로의 처녀들을 납치하여 200명을 채웁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눈에 여자들은 베냐민 남자의 아이를 낳아줄 “자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물어봤다는 말씀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며 함께 던졌던 질문은, 과연 우리들의 “진정한 왕은 누구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사기의 곳곳에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구절들이 등장합니다.(삿 17:6; 21:25; 그리고 18:1; 19:1절 참조). 그런데 여기서 왕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후 성경의 역사에 많은 왕이 등장하지만, 왕이 있었다고 해서 이스라엘 민족들이 신실하게 그들의 신앙을 지켰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왕은 인간 왕이 아닌 이 땅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0장의 마지막은 이 왕에 대한 생각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을 주며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사사 시대에 인간 왕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사기 화자는 지금 이스라엘이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지 않는 것, 또한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서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착각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사사기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는 과연 우리 시대가 사사 시대보다 더 나은가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나 자신과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가 과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경외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는지, 아니면 각자 자기 소견대로 살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러티브로 읽는 사사기』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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