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11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인간 6번째 모임: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자 사명"
이번 모임에서는 지난 번에 하지 못했던 10장 창발론적 인간 이해와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11장, 12장을 다루었습니다. 10장은 제가 발제를 맡았었고, 11장은 백목사님이 발제해주셨고, 12장은 제가 다시 발제를 맡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두 목사님은 발제에 대한 질문과 소감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참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자 하는 이 분들을 보며 존경을 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10장 창발론적 인간 이해:
필립 클레이턴을 중심으로
- 이 글의 의도는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통합적 인격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창발론적 인간 이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오늘의 자연과학의 발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동시에 유신론적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이해의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말도 어려운 내용을 발제하며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고, 특히 백목사님이 설명해주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이론과 그림 이론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언어 이론은 기호-기호로 물리적으로 파악하지만, 그림이론은 Story로 개념적으로 파악합니다. 전자는 객관적 입장을, 후자는 주관적 입장을 설명합니다.
유신론적 창발론을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을 조금 인용해봅니다.
"하나님은 악곡의 개요를 만드는 작곡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제적인 음악을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에게 맡기신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창조된 공동 창조자'로 묘사된다."
"화이트헤드와 과정신학자들은 '신적 유인' (divine lure) 개념과
더불어 하나님과 세계의 상호적 모델을 제시한다."- 인과적 역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계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클레이턴은 하나님의 행동의 자리가 통전적인 인간 실존 전체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은 인간의 "인격 자체(또는 전체)의 창발적 차원에서 생각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인격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을 포함해야 한다는 게 주장이고, 저자는 이에 대해 강한 창발이 일원론적 존재론의 범주에서 설명 가능한가?라고 질문하며 끝을 맺습니다.
제11장 정신 분석이론과 종교 이해에 대한 신학적 고찰: 프로이트와 대상관계 이론을 중심으로
- "신학과 정신 분석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 대화할 필요가 있으며 상호 대화를 통해 상이성 안의 유사성과 공명의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며 신학과 심리학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정신분석의 초점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인격 상호간의 작용에 맞춥니다. 자기의 형성과 정신 병리에서 상호인격적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신분석 이론을 대상관계 이론이라고 부르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인간의 주된 동기는 대상과 관계 맺음이고 인격을 이해한다는 것은 외적 대상 관계가 내적 인격 구조가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 본성을 관계성 안에서 파악하는 그(코헛)는 개체성과 자율은 손상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재발견하고자 한다. 즉 자기 대상의 모태에 속해 있는 것이 개체성의 전체 조건인 응집력 있는 자기감의 필수이다. 공감적 자기 대상 모태 안에서 개체성과 자율성과 아울러 귀속성과 연관성이 있다."
"전이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조직하고 주관적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퇴행, 전치, 투사, 왜곡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조직하고 의미를 창조하려는 보편적인 심리추구의 표현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주관적 인격의 세계를 '안에서부터' 이해하는 과정이다. 공감적 관계의 창조가 공감적 공명의 결핍으로 초래된 정신 병리를 치료한다."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인간의 유아기적 소망에 근거한 하나의 환상이지만, 대상관계 정신 분석가들은 신학의 자리를 중시합니다.
"종교적 관심은 인간 개인의 자기 정의와 자기실현의 시도를 도와주는 핵심적인 심리학적 힘이다. - 달리 마이스너"
"종교는 인간됨의 본질적 부분이다. 비가시적이지만 유의미한 실재를 창조해내는 능력을 지닌 진정한 인간의 본질적 부분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신학과 정신분석의 대화에 대해 서로 혼동되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흡수 또는 환원되어서는 안되며 적절한 구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치료적 전이에서의 변화는 하나님 이미지의 변화를 수반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에 의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변화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변화를 가능케 한다 ... 인간이 지니는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의의 전이적 반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와 고통을 대신 걸머지고 죽음 당하는 하나님의 함께 고난당하는 공감적 사랑에 의해 주어진다."
저자는 공감적 사랑이 진정한 해방을 가져온다고 끝을 맺습니다.
『공감적 인간은 하나님의 파토스와 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장-하나님의 파토스와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강박적 자기애가 인간에게 무감각적인 삶을 선고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의 파토스,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사적 상징인 십자가에서 "즐거운 교환이 일어난다. 즉 즐거운 교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불안, 죽임이 하나님께 전이되고 하나님의 의, 평안, 생명이 우리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이에 인간의 궁극적인 치료적 전이와 구원의 길이 있다.』
제12장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 공감적 사랑:
정신분석 이론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 탈근대적 자아의 시점에서 기독교 인간론을 관계적.사회적 삼위일체론의 빛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관계적.사회적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합니다." 공감적 사랑 - 관계성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 유의미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방편이다. 초월이란 바로 자기를 넘어서 더 큰 공동체에 참여하고 속하며, 더 복잡한 의미의 그물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athy는 다른 사람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의 고통을 내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것을 뜻한다."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이 관계성에 있다고 신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상호 존중과 사랑의 관계 속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의 존재는-인간관계의 전형적인 형태는 남자와 여자의 공존이다-고독이 아니라 교제 속에서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의 삶을 반영한다. : 다니엘 밀리오리"
"그 분은 영원히 사랑하시는 분이며, 영원히 사랑받는 분이며, 영원한 사랑이다. 이 삼위일체 안에서 그분은 모든 나와 너의 관계의 기원 및 원천이다. - 칼 바르트" 오늘날의 정신분석가들은, 특별히 대상관계 이론가들은 공감적 이해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신학적 인간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이 인간을 용납하고 구원한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 차원의 영원한 친교적 삶 안에서의 공감적 사랑에 대한 인식은 경세적 차원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공감적 사랑의 삶에 근거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죄의 고통과 죽음의 운명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 그 모든 인간의 죄와 고통을 대신 걸머지고 죽음당하는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가져오고, 인간을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며, 모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준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이다. /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은 탈자아적 개방성을 통해 타자와의 친교적 연합을 추구하도록, 그리고 타자의 곤경을 나의 곤경처럼 느끼는 '함께 고통당하는 공감적 사랑 (compassionate-empathic love)' 안에서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적인 섬김의 삶을 실천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저자는 결론에서 지구촌의 공감을 넘어, 자연까지 공감할 정도로 인간의 공감 능력은 전 세계에 가득찼지만, 인간은 동시에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공감적 사랑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끝맺습니다.
[진정한 종교는 몸을 구부려 겸손히 섬기고,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며, 약해진 영혼과 대화하고, 그 영혼을 다시 살려내어 하늘의 아버지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스탠리 존스 - 원탁의 그리스도 中> ] 심리학자도 입을 모아 공감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나라는 존재는 너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감적 사랑으로써의 십자가로 언급하며,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약자의 삶으로 들어가셨고, 약자의 아픔을 함께 보셨고, 들었고, 도왔고, 이 모든 것을 즐거이 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공감적 사랑이 죄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우리가 삶 가운데서도 행하시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임을 기억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저자가 결론으로 제시한 문장으로 후기 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 형상으로써의 인간에 대해 더 이해가 풍부해지기를 기대합니다
????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은 위기의 극복을 위한 희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에게 달려 있다. 공감적 사랑만이 오늘날 개인과 사회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공감 의식을 더욱 심화시키고 확장시켜서 우리의 사회와 지구를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의 논리나 소비된 에너지로 인해 증대된 엔트로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으로 세워가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공감적 사랑을 실천하는 관계적 존재인 호모 엠파티쿠스만이 개인과 사회와 인류와 모든 창조세계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다.』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인간 #6번째모임 #필립클레이턴
#프로이트 #호모엠파티쿠스 #함께고통당하는공감적사랑
2018.6.11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인간 6번째 모임: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자 사명"
이번 모임에서는 지난 번에 하지 못했던 10장 창발론적 인간 이해와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11장, 12장을 다루었습니다. 10장은 제가 발제를 맡았었고, 11장은 백목사님이 발제해주셨고, 12장은 제가 다시 발제를 맡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두 목사님은 발제에 대한 질문과 소감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참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자 하는 이 분들을 보며 존경을 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10장 창발론적 인간 이해:
필립 클레이턴을 중심으로
- 이 글의 의도는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통합적 인격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창발론적 인간 이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오늘의 자연과학의 발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동시에 유신론적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이해의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말도 어려운 내용을 발제하며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고, 특히 백목사님이 설명해주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이론과 그림 이론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언어 이론은 기호-기호로 물리적으로 파악하지만, 그림이론은 Story로 개념적으로 파악합니다. 전자는 객관적 입장을, 후자는 주관적 입장을 설명합니다.
유신론적 창발론을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을 조금 인용해봅니다.
"하나님은 악곡의 개요를 만드는 작곡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제적인 음악을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에게 맡기신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창조된 공동 창조자'로 묘사된다."
"화이트헤드와 과정신학자들은 '신적 유인' (divine lure) 개념과
더불어 하나님과 세계의 상호적 모델을 제시한다."- 인과적 역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계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클레이턴은 하나님의 행동의 자리가 통전적인 인간 실존 전체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은 인간의 "인격 자체(또는 전체)의 창발적 차원에서 생각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인격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을 포함해야 한다는 게 주장이고, 저자는 이에 대해 강한 창발이 일원론적 존재론의 범주에서 설명 가능한가?라고 질문하며 끝을 맺습니다.
제11장 정신 분석이론과 종교 이해에 대한 신학적 고찰: 프로이트와 대상관계 이론을 중심으로
- "신학과 정신 분석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 대화할 필요가 있으며 상호 대화를 통해 상이성 안의 유사성과 공명의 가능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며 신학과 심리학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정신분석의 초점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인격 상호간의 작용에 맞춥니다. 자기의 형성과 정신 병리에서 상호인격적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신분석 이론을 대상관계 이론이라고 부르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인간의 주된 동기는 대상과 관계 맺음이고 인격을 이해한다는 것은 외적 대상 관계가 내적 인격 구조가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 본성을 관계성 안에서 파악하는 그(코헛)는 개체성과 자율은 손상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재발견하고자 한다. 즉 자기 대상의 모태에 속해 있는 것이 개체성의 전체 조건인 응집력 있는 자기감의 필수이다. 공감적 자기 대상 모태 안에서 개체성과 자율성과 아울러 귀속성과 연관성이 있다."
"전이는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조직하고 주관적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퇴행, 전치, 투사, 왜곡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조직하고 의미를 창조하려는 보편적인 심리추구의 표현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주관적 인격의 세계를 '안에서부터' 이해하는 과정이다. 공감적 관계의 창조가 공감적 공명의 결핍으로 초래된 정신 병리를 치료한다."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인간의 유아기적 소망에 근거한 하나의 환상이지만, 대상관계 정신 분석가들은 신학의 자리를 중시합니다.
"종교적 관심은 인간 개인의 자기 정의와 자기실현의 시도를 도와주는 핵심적인 심리학적 힘이다. - 달리 마이스너"
"종교는 인간됨의 본질적 부분이다. 비가시적이지만 유의미한 실재를 창조해내는 능력을 지닌 진정한 인간의 본질적 부분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신학과 정신분석의 대화에 대해 서로 혼동되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흡수 또는 환원되어서는 안되며 적절한 구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치료적 전이에서의 변화는 하나님 이미지의 변화를 수반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에 의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변화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변화를 가능케 한다 ... 인간이 지니는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의의 전이적 반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와 고통을 대신 걸머지고 죽음 당하는 하나님의 함께 고난당하는 공감적 사랑에 의해 주어진다."
저자는 공감적 사랑이 진정한 해방을 가져온다고 끝을 맺습니다.
『공감적 인간은 하나님의 파토스와 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장-하나님의 파토스와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강박적 자기애가 인간에게 무감각적인 삶을 선고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하나님의 파토스,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사적 상징인 십자가에서 "즐거운 교환이 일어난다. 즉 즐거운 교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불안, 죽임이 하나님께 전이되고 하나님의 의, 평안, 생명이 우리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이에 인간의 궁극적인 치료적 전이와 구원의 길이 있다.』
제12장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 공감적 사랑:
정신분석 이론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 탈근대적 자아의 시점에서 기독교 인간론을 관계적.사회적 삼위일체론의 빛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관계적.사회적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합니다." 공감적 사랑 - 관계성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 유의미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방편이다. 초월이란 바로 자기를 넘어서 더 큰 공동체에 참여하고 속하며, 더 복잡한 의미의 그물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athy는 다른 사람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의 고통을 내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것을 뜻한다."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이 관계성에 있다고 신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상호 존중과 사랑의 관계 속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 속에 있는 인간의 존재는-인간관계의 전형적인 형태는 남자와 여자의 공존이다-고독이 아니라 교제 속에서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의 삶을 반영한다. : 다니엘 밀리오리"
"그 분은 영원히 사랑하시는 분이며, 영원히 사랑받는 분이며, 영원한 사랑이다. 이 삼위일체 안에서 그분은 모든 나와 너의 관계의 기원 및 원천이다. - 칼 바르트" 오늘날의 정신분석가들은, 특별히 대상관계 이론가들은 공감적 이해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의 신학적 인간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이 인간을 용납하고 구원한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 차원의 영원한 친교적 삶 안에서의 공감적 사랑에 대한 인식은 경세적 차원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공감적 사랑의 삶에 근거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죄의 고통과 죽음의 운명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 그 모든 인간의 죄와 고통을 대신 걸머지고 죽음당하는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가져오고, 인간을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며, 모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준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이다. /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그리스도인은 탈자아적 개방성을 통해 타자와의 친교적 연합을 추구하도록, 그리고 타자의 곤경을 나의 곤경처럼 느끼는 '함께 고통당하는 공감적 사랑 (compassionate-empathic love)' 안에서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적인 섬김의 삶을 실천하도록 부름을 받는다." 저자는 결론에서 지구촌의 공감을 넘어, 자연까지 공감할 정도로 인간의 공감 능력은 전 세계에 가득찼지만, 인간은 동시에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공감적 사랑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끝맺습니다.
[진정한 종교는 몸을 구부려 겸손히 섬기고,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며, 약해진 영혼과 대화하고, 그 영혼을 다시 살려내어 하늘의 아버지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스탠리 존스 - 원탁의 그리스도 中> ] 심리학자도 입을 모아 공감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나라는 존재는 너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감적 사랑으로써의 십자가로 언급하며,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약자의 삶으로 들어가셨고, 약자의 아픔을 함께 보셨고, 들었고, 도왔고, 이 모든 것을 즐거이 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공감적 사랑이 죄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우리가 삶 가운데서도 행하시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
그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임을 기억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저자가 결론으로 제시한 문장으로 후기 글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 형상으로써의 인간에 대해 더 이해가 풍부해지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은 위기의 극복을 위한 희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에게 달려 있다. 공감적 사랑만이 오늘날 개인과 사회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공감 의식을 더욱 심화시키고 확장시켜서 우리의 사회와 지구를 무한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의 논리나 소비된 에너지로 인해 증대된 엔트로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감적 사랑으로 세워가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공감적 사랑을 실천하는 관계적 존재인 호모 엠파티쿠스만이 개인과 사회와 인류와 모든 창조세계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다.』
#새물결플러스 #한달한권 #인간 #6번째모임 #필립클레이턴
#프로이트 #호모엠파티쿠스 #함께고통당하는공감적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