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하늘의 문』 출간 안내

새물결플러스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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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스라엘 성전의 역사, 재료, 기구, 기능 등 성전에 관한 백과 사전적인 책이다. 성경과 성경 밖의 다양한 유대교 문헌을 통해 성전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으며 초기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에 대한 탐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누리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서평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부른다. ㅇㅇ 성전, XX 성전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성전의 역사, 기능, 의미 등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성전은 단순한 건물 이상이다.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삶은 성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에도 성전은 유대인의 사고와 문헌에 계속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는 그 성전이 파괴되기 몇 년 전에 탄생했으며,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쓴 최초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성전 전통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요한복음,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모두 성전의 세계에 의해 직접 영감을 받았다.


저자는 우선 성전의 외적인 사항들―구조 자체, 성전의 건축 및 재건축, 성전 비품, 예배가 수행된 방식―을 간략히 설명한다. 저자의 주된 관심은 성전 신화의 덜 알려진 측면들에 놓여 있는데, 그녀는 주로 덜 알려진 성경 밖 텍스트들로부터 그 측면들을 재구성하여 광범위한 주제들과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로 성전에 공통의 뿌리를 두고 있는지 세밀히 보여준다. 첫째, 창조와 갱신의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한 증거가 제시된다. 이 주제들은 에덴동산에 초점을 맞추는데, 성전은 그곳을 나타내도록 건축되었다. 둘째, 매개와 속죄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한 증거가 제시된다. 이는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 사이의 경계를 상징한 성전의 휘장과 관련이 있는 주제들이다. 셋째, 혹자가 휘장을 넘어 하나님의 환상을 체험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의 정수를 보는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한 증거가 제시된다. 이것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잘 알려진 신적 보좌의 환상들이었다. 각각의 경우에 저자는 이런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처음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고 안으로 들어왔으며 이후에는 잘 알려진 많은 찬송의 이미지 안으로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한두 가지 예를 제시한다.


저자는 1장에서 성전의 역사, 성전의 기구들과 제의들을 개괄한다. 그것은 이어지는 설명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는 기초 작업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신화적인 공간과 시간 안에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고도로 장식된 건물이 아니라 영원한 것과 속세의 것이 하나였던 장소였다. 성전의 장식들은 천상의 세계를 나타냈지만, 그것은 단순한 표상이 아니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성전이 천상의 세계 자체였으며, 성전의 장식들이 실제로 살아 있었던 몇몇 예도 있다.


성전은 공간과 시간 모두의 중심이자 핵심 지점이었다. 그것은 땅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였다. 동심원적인 거룩함의 영역들이라는 개념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순례자들이 두 의미 모두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다. 성전의 거룩함은 그것이 순결의 장소임을 의미했다. 거룩은 또한 능력의 장소를 의미했는데, 능력은 생명일 수도 있었고 죽음일 수도 있었다.


제1성전에 대한 묘사와 후대의 저자들이 하늘을 에덴으로 및 성전으로 묘사한 방식에 성전이 에덴을 나타냈다는 많은 암시가 존재한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에덴은 하나님의 동산이자 나무들과 강들과 그룹들과 사악한 뱀이 있는 장소였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났을 때 문을 지키도록 그룹들과 불 칼이 배치되었다. 성전의 묘사들은 그것이 에덴이었음을 암시한다. 에스겔은 높은 산 위에 세워진 성전을 묘사했는데, 그것의 뜰은 종려나무들로 장식되었다. 내부는 종려나무들과 그룹들로 장식되었으며, 그 성전으로부터 강 하나가 흘러나와 초자연적인 소출을 가져왔다. 에스겔 28장에는 거의 확실히 창세기의 묘사보다 오래된 에덴 묘사가 있다. 그것은 심판 장면이기도 한데, 그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가 묘사하는 에덴이 성전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에스겔의 동산은 창세기의 동산과 아주 다르지만 저자는 이것이 원래의 에덴, 즉 큰 심판의 장소를 어렴풋이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성전 내부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이 있었다. 그 휘장은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시간과 영원 사이의 경계를 나타냈다. 휘장 안에서 수행된 행동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고 천상의 예전의 일부였다.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간 존재들은 신적인 인물이든 인간이든 간에 중재자들로서 두 세계 모두에서 사람들의 기도들과 회개를 하나님께 가져가고 하나님의 복 주심과 현존을 그의 백성에게 가져오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 모든 것은 복잡한 상징을 통해 표현되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휘장은 성육신, 즉 하나님이 물질적인 형태로 이 땅에 현존하신다는 아이디어의 가장 이른 표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기독교의 용례 안으로 직접 들어왔다. 휘장은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 사이 및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나타냈으며, 이 점에서 그것은 신성을 은폐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제사장이 가시적인 세상 안으로 들어갔을 때 천상의 대제사장의 의복이었다는 점에서 신성을 계시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성전의 휘장을 사용하여 성육신을 묘사했다. 또한 그들은 휘장뿐만 아니라 휘장의 물질세계를 입은 버금 신적 존재를 상징한 대제사장의 의복도 사용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알았다. 휘장에 대한 가장 이른 언급은 히브리서에 등장하는데, 그곳에서 휘장은 예수의 육체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가 자신의 피를 취해 휘장을 지나 성소 안으로 가져가신다. 복음서들은 예수가 사망하시던 순간에 휘장이 둘로 찢어졌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육체와 휘장이 같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휘장 너머에는 시간 밖의 세상이 있었으며, 따라서 휘장은 영원으로부터의 그리고 영원에 대한 환상들을 보는 장소였다. 이것들이 심판의 환상들일 때도 있었고, 역사를 파노라마 같이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후대의 텍스트들에 나타나는 성소 환상들은 종종 그 예언자가 높은 곳으로부터 자기 앞에 펼쳐지는 시공간 안의 모든 창조세계를 동시에 보는 것을 묘사한다.


휘장 너머에는 성전의 가장 신성한 부분인 지성소가 있었다. 솔로몬 시대 때 지성소에는 그룹 보좌가 있었다. 광야 성막의 묘사에서 이것은 속죄소, 야웨의 현존의 장소가 되었는데 이는 그 종교의 핵심에 놓여 있었다. 가장 높은 하늘을 상징한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기독교의 모든 최후 심판 이미지 안으로 들어왔다. 보좌 주위의 천사들은 가장 이른 시기의 삼위일체 표현들의 토대였으며 원래는 고대 왕들에 대한 기억이었던 보좌에 앉은 인간 같은 존재는 성육신, 즉 야웨의 현존이 인간의 형태로 사람들과 함께함을 미리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보좌 및 그것과 관련된 것들이 초기 기독교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비옥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의 성전에 좌정하신 야웨는 몇몇 예언적 환상의 주제였다. 예언자들의 환상들이 성전의 의식에 기초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성전의 의식이 신적 실재인 천상 세계의 성전을 가시적으로 만들었다. 예언자들은 바로 이것을 보았다. 달리 말하자면 성전의 의식들이 예언자들의 환상의 세계로부터 나온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에는 신화가 없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우리는 유일신교 문화에서는 신화가 존재할 수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견해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있었고 학자들은 시편과 예언서들 배후를 읽어내 고대 종교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해왔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별도로 이해될 수 없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약성경의 신화가 신약성경에 생명을 불어넣고 초기 기독교의 예전들을 형성했다.


신화들을 역사로 만든 사람들에 의해 신화론에 치명타가 가해졌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아담과 하와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신화를 단번에 역사 안으로 편입함으로써 신화의 힘이 깨졌다. 에덴은 역사 과정의 일부가 되었고 최후의 심판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되었다. 그 두 사건 사이에 역사, 즉 실제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에게 있어 “역사”는 그 신화의 두 부분 사이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병행했다. 그 신화들은 항상 타당한 자연법칙을 표현했다. 즉 에덴과 심판은 일상의 사건들 너머에 있었고 그 사건들에 형태를 부여했다. 신적 현존이 물질세계의 휘장을 넘어와 가시적인 형태를 띠었다.


성전을 무미건조하게 단순한 건물로 이해하거나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단번에 속죄 제사가 드려져 이제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가 드려지지 않으므로 성전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식의 피상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성전의 신화와 상징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기독교의 기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한다면 우리의 성경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성전 모티프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모티프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성전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전의 역사, 기능, 신화, 상징 등 성전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


마가레트 바커(Margaret Barker)

세계 구약 학회(Society for Old Testament Study) 회장을 역임했다. 히브리 성경과 초기 유대교에 나타난 신약성경 사상의 배경 재구성 분야의 전문가다. 『성전 신학 개론』(Temple Theology: An Introduction), 『대천사: 이스라엘의 버금 신 연구』(The Great Angel: A Study of Israel’s Second God) 등 여러 책을 썼다.

 

역자


노동래

서울대학교 공법학과와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금융공학 MBA 과정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기원 이론』, 『예수의 왕권 사상과 바울신학』, 『죄의 기원』, 『아담과 게놈』, 『칭의 대신 정의의 시선으로 로마서 읽기』, 『성경 너머로 성경 읽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감사의 글

서론

1장 야웨의 집

2장 동산

3장 휘장

4장4보좌

5장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신화가 없었다”

참고문헌

1차 자료 색인

 


본문 중에서


내 주된 관심은 성전 신화의 덜 알려진 측면들에 놓여 있는데, 나는 주로 역시 덜 알려진 성경 밖 텍스트들로부터 그 측면들을 재구성하여 광범위한 주제들과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로 성전에 공통의 뿌리를 두고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첫째, 창조와 갱신의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한 증거가 제시될 것이다. 이 주제들은 에덴동산에 초점을 맞추는데, 성전은 그곳을 나타내도록 건축되었다. 둘째, 매개와 속죄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한 증거가 제시될 것이다. 이는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 사이의 경계를 상징한 성전의 휘장과 관련이 있는 주제들이다. 셋째, 혹자가 휘장을 넘어 하나님의 환상을 체험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의 정수를 보는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한 증거가 제시될 것이다. 이것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잘 알려진 신적 보좌의 환상들이었다. 각각의 경우에 나는 이런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처음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고 안으로 들어왔으며 이후에는 잘 알려진 많은 찬송의 이미지 안으로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한두 가지 예를 제시할 것이다. 성전 신화의 가장 이례적인 측면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기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매우 친숙하다는 것이다.

_서론

 

신명기의 가르침을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선전한 현자들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과거에 어떠했으며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 매우 명확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들의 계승자들인 소위 신명기 사가들이 이스라엘의 많은 신화와 그것들과 관련된 제왕 이데올로기를 억압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왕정과 성전에 관해 남아 있는 두 개의 설명 가운데 하나(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 즉 신명기 역사)를 썼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텍스트들을 읽을 때 개혁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은 왕들에게 아부하지 않았으며, 성전의 특정한 측면에 관해 기록하지 않았다. (우리는 뒤에서 이 점을 살펴볼 것이다.) 그들의 관점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바로 그 관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들이 기록하지 않기로 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과 그것의 종교에 관해 상당히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다른 자료들이 있으며, 우리가 고대 왕들을 소환해 내려면 이 자료들을 살펴봐야 한다. 예언서들과 시편은 한때는 단순한 이미지 이상이었을 수도 있는 다채로운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후대의 많은 텍스트가 사실은 과거의 실제 관습들에 대한 기억임에도 순수한 옛 종교를 토대로 성장한 기이한 산물로 생각되었다. 기독교 신앙의 많은 “혁신”은 실제로는 고대의 관습들이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비춰 새로운 의미를 띤 것이다. 신명기 사가들은 열렬한 일신론들자이었는데, 그 점이 우리로 하여금 구약성경의 모든 책이 엄격하게 일신론적인 종교를 묘사한다고 믿게 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고 들리시기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과 다르게 말하는 고대의 전통들이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인간의 형태를 지닐 수 있는 버금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며, 이것이 기독교의 토대가 되었다.

 

그런 독설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성전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서조차 그들의 희망에 매우 중요했다. 성전의 이 힘은 틀림없이 성전이 그런 신랄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 전 시기인 성전의 가장 먼 과거에 뿌리를 두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실제 성전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유산에 핵심적이었던 성전에 대한 이상적인 기억이 이런 논쟁에 참여한 모든 당사자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지금은 상실된, 고대 의식의 핵심에 놓여 있던 이 이상과 이 비전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는 그것 자체로 중요한 질문이다. 예언서들과 시편의 여러 곳에 성전의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는데, 우리는 이런 문서들로부터 성전의 의식들을 고무한 믿음들과 성전이 나타낸 하늘의 세계를 추측해야 한다. 환상가들과 후대의 신비주의자들의 글들도 이 고대 성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를 재구성하려면 우리는 성전을 묘사하는 그런 저작들 외의 문서들도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성전을 배경으로 하는 문서들, 즉 솔로몬의 성전 벽에 새겨진 황금 그룹이 하늘 성소의 살아 있는 생물들이 되고 금으로 도금한 올리브나무 그룹들이 하나님의 마차 보좌가 되는 문서들도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성전 건축에 관한 이 두 설명을 비교해 보면 저자의 특별한 관심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열왕기상의 저자는 왕정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성전을 위해 지급해야 했던 막대한 비용의 모든 세부 사항을 기록한다. 그 작업은 강제 노동을 통해 이뤄졌다. 이스라엘 사람 3만 명이 나무를 베러 한 달에 만 명씩 교대로 레바논에 파견되었으며, 그 외에 8만 명이 채석장에서 일했다. 그렇게 20년이 걸린 건축 작업이 끝난 뒤 솔로몬은 두로에서 사온 목재와 금의 값으로 히람에게 갈릴리에 있는 성읍 스무 개를 줌으로써 자신의 빚을 갚았다(왕상 9:10-11). 솔로몬 사후에 백성들은 그런 가혹한 부역과 징세에 반기를 들었으며,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부담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르호보암이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자 북쪽 지파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왕국은 둘로 나뉘었다. 북왕국의 새 통치자는 이집트 망명에서 갓 돌아온 여로보암이었다. 그는 강제 노역 집단들 중 하나의 지도자였는데 솔로몬에 대항하는 그의 조치에 대해 예언자 아히야로부터 지지를 받았었다. 예언자들의 권력이 다시 드러났으며, 아히야가 이전에 성전이 있던 장소인 실로 출신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왕상 11:26–12:20)

역대기 편찬자는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는 건축 작업이 외국인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하며(대하 2:17-18; 8:7-10), 대금으로 양도된 성읍들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의 기사들의 나머지 부분들을 읽을 때 이런 경향들을 명심해야 한다. 역대기 편찬자는 성전을 뭔가 영광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그는 성전의 아름다움과 성전 음악의 세부 사항들에 관해 길게 언급한다. 신명기 사가들의 개혁적인 이상에 영향을 받은 열왕기 저자는 그것을 다르게 보았다. 우리가 그 저자가 성전과 그 예배의 일부 측면들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믿을 좋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효과적인 검열의 한 형태인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재구성이 매우 어려워진다.

_1장 야웨의 집

 

솔로몬은 동산 성소로서의 성전을 건축했다. 헤칼의 벽들은 금으로 된 종려나무와 꽃들로 장식되었으며 보석들이 박혔다. 놋 기둥들은 석류의 패턴으로 장식되었고 큰 등잔은 아몬드나무의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그 성전은 또한 땅에서 하나님의 동산을 나타내기 위해 천상의 계획에 따라 지어졌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라는 표현은 성전의 구조와 성전의 의식들 모두를 잘 묘사할 수 있었다. 에덴동산은 원시의 물들 가운데서 창조된 최초의 육지였으며 따라서 성전은 창조 질서의 중심이자 그것의 복지에 핵심적인 요소였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성전의 존재는 창조세계를 위협한 깊은 지하의 물들을 억제하고 통제한 것으로 믿어졌다. 에덴동산으로부터 네 강으로 다른 물들이 흘러서 창조세계에 생명을 주었다. 이 강들은 성전 신화에 등장하는데 거기서 그 강들은 신적 보좌에서 흘러나와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는 지혜였다. 생명의 물줄기들과 위협하는 물들의 억제는 다른 곳에서 타락한 천사들의 신화에 표현된, 하나님과 별도인 지혜는 악과 파괴의 원인이라는, 지혜에 대한 매우 정교한 태도의 표현일 수도 있다.

성전은 자연 질서에 관한 진술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창조의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 대목에서도 창조 신화는 세상이 오래전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한 묘사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계속 형성되고 유지되었는지에 관한 묘사이기도 했다. 성전은 하늘과 땅의 교차 지점에 있었으며, 따라서 그곳으로부터 물질세계가 질서를 잡은 최초의 장소였다. 고대 근동에서 이 장소는 대개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를 함께 지탱한 우주적인 산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신들의 집이었다. 위대한 창조의 신의 신전은 그 우주적인 산의 꼭대기에 지어졌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들에서 마르두크는 혼돈의 세력들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정돈된 창조세계를 확립했으며, 그의 승리는 거대한 인공 산인 지구라트 위에 그의 거대한 신전을 세움으로써 표시되고 인이 쳐졌다(Gray, N.E.M., p. 32). 이집트의 신전들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는 원시의 물들에서 떠오른 최초의 작은 언덕으로 생각되었다(Bib. Arch. [1944], p. 78). 가나안에서는 사나운 바다에 대한 바알의 승리가 그가 창

조세계에 질서를 확립했다는 표지였으며, 이는 그의 신전 건립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야웨가 창조 사역을 마치셨을 때 그는 자신을 위해 성전을 지으신 것이 아니라 동산을 만드셨다. 이스라엘의 전통에서 에덴동산이 다른 창조 신화들의 신전을 대체했음이 종종 지적되었는데, 이는 확실히 현재 형태의 구약성경에도 해당한다. 그러나 에덴동산과 성전이 한때 하나였으며 동일했다고 암시하는 많은 자료가 있다. 야웨가 혼돈에 대해 승리하시고 창조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을 때 그는 실제로 시편에서 전제된 창조 이야기에 따라 예루살렘에 자신의 성전을 세우셨다. 이 성전은 거룩한 산의 정상에 있는 하나님의 동산“이었다”.

 

성전에서 야웨가 메노라이셨던 것처럼, 에프렘의 동산에서 예수가 생명나무이셨다. 나무의 이미지는 성례전에서 다양한 가르침을 지니는 것으로 발전했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왕이라는 인물 안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셨던 야웨의 현존이었던 이전의 에덴/성전의 나무/등잔대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그[낙원] 안에 있는 생명나무는 교회의 생명의 원천으로서 그리스도의 모형인데, 그것은 성찬식과 특히 세례를 베풀기 위한 표시로서 기름 바름 모두를 언급한다. 이는 생명나무가 동시에 포도나무로서 및 감람나무로 나타내짐을 의미한다(Murray, p. 125). 야웨의 상징으로서의 나무/등불은 생명나무가 다른 모든 나무가 그것에 절하는 “낙원의 태양”으로 묘사되는 것도 설명해 준다.

_2장 동산

 

헤칼은 땅을 나타냈고 데비르는 하늘을 나타냈다. 그 사이에 성소를 지성소로부터 구분한 휘장이 있었다(출 26:33). 그 휘장은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시간과 영원 사이의 경계를 나타냈다. 휘장 안에서 수행된 행동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고 천상의 예전의 일부였다.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간 존재들은 신적인 인물이든 인간이든 간에 중재자들로서 두 세계 모두에서 사람들의 기도들과 회개를 하나님께 가져가고 하나님의 복 주심과 현존을 그의 백성에게 가져오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 모든 것은 복잡한 상징을 통해 표현되었다. 성전에 관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남아 있는 조각들로부터 재구성되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지식에 많은 틈새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장에서 나는 남아 있는 그 그림의 조각들을 조립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휘장은 성육신, 즉 하나님이 물질적인 형태로 이 땅에 현존하신다는 아이디어의 가장 이른 표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기독교의 용례 안으로 직접 들어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그의 죽음의 순간에 그의 육체와 성소의 휘장이 모두 찢어졌으며(막 15:38) 하늘, 곧 하나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히 4:14). 그 상징이 이른 시기의 기도서 안으로 들어갔다.

성전의 휘장은 숨김의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계시의 수단이기도 했다. 신적인 존재가 물질세계로 가려질 때 볼 수 있게 된다. 가장 이른 시기의 성경 텍스트들에서 이 점이 암시된다. “그들에게 내가 그들 가운데서 보일 수 있도록 성소를 짓게 하라”(출 25:8, 그리스어 번역본에서 취한 내용으로서 개역개정을 사용하지 아니함). 이 그리스어 번역본이 성막에 대한 오리게네스의 이해를 고취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를 위한 성소를 만들 것을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자기를 위한 성소를 만들면 자기가 우리에게 보일 수 있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Homily on Exodus, IX).

휘장 너머에는 시간 밖의 세상이 있었으며, 따라서 휘장은 영원으로부터의 그리고 영원에 대한 환상들을 보는 장소였다. 영원한 것은 숨겨졌다. “영원”과 “숨기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들은 같은 어근 ‘lm에서 나왔다. 이것들이 심판의 환상들일 때도 있었고, 역사를 파노라마 같이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후대의 텍스트들에 나타나는 성소 환상들은 종종 그 예언자가 높은 곳으로부터 자기 앞에 펼쳐지는 시공간 안의 모든 창조세계를 동시에 보는 것을 묘사한다.

_3장 휘장

 

가장 높은 하늘을 상징한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기독교의 모든 최후 심판 이미지 안으로 들어왔다. 보좌 주위의 천사들은 가장 이른 시기의 삼위일체 표현들의 토대였으며―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원래는 고대 왕들에 대한 기억이었던 보좌에 앉은 인간 같은 존재는 성육신, 즉 야웨의 현존이 인간의 형태로 사람들과 함께함을 미리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보좌 및 그것과 관련된 것들이 초기 기독교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비옥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기원전 7세기 말에 성전의 역사에서 큰 사건 두 개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는데, 그 사건들은 신명기 사가들의 개혁과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한 성전과 왕조의 파괴였다. 그 사건들은 고대의 종교를 파괴했다. 신명기 사가들은 우리가 현존하는 그들의 저작에서 알 수 있듯이 왕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왕의 사악함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말했다(왕하 24:3).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를 군주가 더 이상 그 종교에 핵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형성하려고 했다. 그리고 매우 많은 사람이 바빌로니아로 유배됨에 따라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의 중심이었던 성전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되었다. 이 두 상황이 결합해서 하나님이 성전에 계신다는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역사의 사건들이 하나님이 거룩한 한 장소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함께 이동하신다는 아이디어를 필요하게 했으며, 신명기 사가들은 고대의 제왕 종교의 모든 신인동형론을 거절했다. 그들의 하나님은 인간이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는 있지만, 가시적인 형태는 없는 하나님이어야 했다. 신명기 사가들이 이스라엘의 신성한 텍스트들을 후대에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 종교에 존재하던 이전의 신인동형론이 대체로 사라진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기원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미치는 영향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이전의 많은 전통이 살아남았는데,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의해서만 보존된 묵시 문헌들에서 추적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텍스트들에서 신적 보좌와 그 위에 앉은 인간에 대한 증거의 대다수를 발견한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묵시 문헌은 요한계시록인데, 그것은 다른 보좌 환상들의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체 묵시의 배경은 천상의 성전이다. 요한은 일곱 등잔(계1:12)과 제단(계 6:9)과 흰옷을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든 군중과 고대 왕들의 즉위의 때인 천상의 초막절(계 7:9-12)과 보좌 앞에 있는 금 향단(계 8:3; 8:5; 9:13)과 언약궤(계 1:19)를 보았다. 그는 큰 추수로서의 심판을 보았다(계 14:14-16). 그는 하늘의 음악을 들었다(계 4:8, 11; 5:9; 11:17; 15:3-4; 19:6-7). 그는 짐승이 원시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계 13:1). 그는 보좌를 보았는데(계 4:1-4), 보좌 앞에 일곱 횃불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스가랴서에 등장하는 “야웨의 눈”(계 4:5)이 있었다. 보좌 주위에는 그룹들이 있었으며(계 4:5-8) 보좌 앞에 바다가 있었다(계 4:6; 15:2). 보좌 위에 벽옥과 홍보석 같은 이가 있었는데(계 4:3), 그에게 손이 있었고(계 5:7)―우리는 아마도 인간의 형태를 가정하겠지만 그는 인간으로 묘사되지 않았다―천상의 재판관이 드러났다(계 5:6-7). 그는 야웨의 일곱 영 가운데 하나, 즉 고대의 메노라에 의해 상징된 존재였다. 그는 또한 희생된 어린양이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드러났으며 그의 나라가 선포되었다(계 11:15). 심판이 시작되었고, 천상의 대리인들인 말 탄 자 넷이 거룩한 곳에서 나와 땅으로 내려갔다(계 6:1-8). 에스겔의 환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선택된 자들은 야웨의 이름으로 표시되었는데(계 14:1), (에스겔서를 필사한 서기관은 그들을 문자 “타우”로 표시했는데 그것은 신성한 이름의 표지였다[겔 9:4]. 그 표시는 고대 히브리어 필사본에서 십자가 모양이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이것이 십자가로 서명하는 기독교의 관행의 기원이다. 그것이 훗날 십자가 처형의 십자가와 관련이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에스겔의 환상(겔 10:2)에서처럼 향단에서 취해진 불이 땅 위에 던져졌다(계 8:5). 신적 전사가 하늘에서 말을 타고 땅에 내려와 싸웠다(계 19:11-16). 그의 눈들은 불같았으며 그에게 비밀스러운 이름이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신성한 이름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름은 요한계시록과 거의 동시대의 문헌인 솔로몬의 지혜[지혜서]에 등장하는 신적 전사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던 날 밤에 죽음의 천사가 이집트 전역을 지나갔는데, 원래의 출애굽 기사는 이 천사가 야웨 자신이었다고 말한다(출 12:12, 29).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의 저자는 장자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하늘의 옥좌로부터 주님의 전능하신 말씀이 마치 사정없는 전사처럼 멸망한 땅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는 날카로운 칼과 같은 주님의 확고부동한 명령을 가지고 와 우뚝 서서 온 세상을 시체로 가득 채웠다. 그는 아래로는 땅을 딛고 위로는 하늘까지 닿았다”(지혜서 18:15-16). 요한계시록의 전사도 왕의 왕과 주의 주로 불렸다. 그는 심판의 검과 (사 11장에 등장하는 메시아적 인물처럼) 막대기를 지녔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을 터였다.

_4장 보좌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별도로 이해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대 이스라엘의 광야 방랑이나 지파의 구조를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학문적이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약성경의 신화가 신약성경에 생명을 불어넣고 초기 기독교의 예전들을 형성했다. 어느 단계에서 성전 신화는 그것의 핵심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는 바빌로니아인들과 신명기 사가들에 의한 최초의 파괴와 더불어 일어났을 수도 있지만, 후대 저자들이 성전 이미지를 빈번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 신화가 몇몇 진영에서는 제2성전기까지 얘기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성전의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올려져 있지 않게 된 날들이 왔는데, 이렇게 고립된 돌들조차도 고대의 양상의 조각들로 꾸며져 있다. 그 양상들의 재구성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체를 재구성하여 그 양상들이 서로에 대해서 및 건물 전체에 대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보는 것은 좀 더 큰 과제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신화의 이런 조각들이 이스라엘의 초기의 종교에 어떻게 들어맞는가? 그리고 그 초기는 얼마나 이른 시기였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기독교의 기원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빛을 비춰줄 것인가?

이스라엘의 신화들은 로버트 그레이브스(Robert Graves)의 그리스신화 모음집처럼 이야기들의 기록된 일람표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세계관, 즉 정상 상태의 표현이나 명백한 것에 대한 진술이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이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서 그것들과 관련을 맺고 살았다. 중력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시도할 일에 제한을 가하듯이 말이다. 세상의 다른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이런 신화들은 성장하고 발전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영화에 비유하자면 그 영화에는 우리가 재생을 중단하고 “이 대목이 그 신화들의 가장 완전하고 가장 명확한 지점이다. 그것들은 이 지점 전에는 불완전했고 이 지점 후에는 쇠퇴했다”라고 말할 만한 지점이 없다. 신화의 회복과 이해는 결코 정확한 작업이 될 수 없다. 정확성과 확고한 증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부정확해서 배제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신학, 즉 신화를 대체한 단어의 문제에는 결코 정확성과 확고한 증거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인간의 형태로 현현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그 신화들에 핵심적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인물이 신적 보좌에 앉았고 심판을 가져왔다. 그 인물의 현존은 또한 새로워진 삶과 비옥함을 가져왔다. 인간의 형상을 한 그 인물은 아마도 한때는 대제사장이기도 했던 왕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장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후대에 대제사장은 보좌가 있는 곳, 곧 그곳으로부터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너머의 지점으로 생명-피를 가져갔다. 혹자는 위로 올라가 그 보좌에 앉은 이전의 왕들에 의해 무슨 일이 행해졌는지 궁금해한다. 히브리서의 배후에 대제사장이 자신의 생명-피를 위한 대체물을 가져갔다는 믿음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의식의 배후에 어떤 실제가 놓여 있었는가? 신적 현현인 인간이 왜 자신의 생명-피를 성소 안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었는가? 하늘과 땅의 이 합류가 무엇을 성취했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고대 성전의 신화와 상징이 기독교의 기원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 이미지를 모호하게 만드는 현대의 신약성경 번역본은 비생산적이다. 우리는 이 상징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정도로까지 그것을 현대화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해를 회복해야 한다. 이런 상징들의 의미가 상실되면 기독교의 의미 역시 상실될 것이기 때문이다.

_5장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신화가 없었다”

 


추천사 중에서


저자는 성전과 관련한 성경의 역사를 되짚는 데서 시작해서, 성전과 관련한 중요한 상징들을 고대 근동의 배경은 물론, 구약성경 전통, 신구약 중간기의 문헌을 거쳐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자료들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성전이 구약성경에서 시작해서, 유대 전통을 거쳐서 신약성경에 이르고 독자에게까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통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성전에 관심을 두는 독자들은 누구라도 성전의 상징 체계를 상세히 풀어주는 이 책을 손에 잡고 정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정훈 | 부산장신대학교 교수(구약학)

 

『하늘의 문』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은 유대교 성전에 관한 전통과 그 발전 과정을 자세히 탐구하며, 기존의 학계 입장에 대해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성전의 신화와 상징을 깊이 파고들며,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성전에 관한 구약성서의 신화적 기반과 기독교 전통 사이의 연결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바커의 저작은 성막과 성전 관련 본문을 알레고리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설교해 온 메마른 해석 전통과 척박한 강단을 촉촉히 적셔 줄 단비와 같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야웨 하나님 그분의 숨결과 입김이 깊고 충만하게 스며든 성막과 성전 본문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성경”(Two Testaments and One Bible)을 절실한 마음과 진지한 자세로 읽고 공부하며 또 설교하고자 하는 주님의 신실한 목회자들과 신학도들에게 바커의 작품을 정독하기를 권하며 기꺼이 추천한다.

주현규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구약학)

 

저자는 “성전 신학”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여성 구약학자이며, 이 분야와 관련된 여러 권의 주목할 만한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저자는 성전 신학이 기독교의 뿌리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창조와 갱신의 장소로서의 성전, 매개와 속죄 장소로서의 성전, 하나님의 환상을 체험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의 정수를 보는 장소로서의 성전에 대한 증거를 자세하게 제시한다. 예루살렘 성전에 담긴 깊은 의미가 낱낱이 드러나는 장면을 접할 때마다 구약과 신약에서 간과하거나 놓쳤던 내용들이 아주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차준희 | 한세대학교 교수(구약학),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 한국구약학회 회장 역임

 

저자가 제시하는 성전의 의미는 “공간과 시간” 모두의 중심이자 핵심 지점이다. 성전은 하늘과 땅의 교차 지점에 있다. 높은 곳에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는 성전의 구조는 “높이올라감”과 “깊이 들어감”이라는 거룩의 두 가지 방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우주의 축소판이면서 동시에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성전의 의미는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 신학을 제시한다. 성전에는 처음과 마지막이 동시에 존재한다. 에덴과 새 하늘 새 땅, 창조와 종말이 동시에 계시된다. 저자는 이러한 성전의 의미를 고대 중동의 맥락과 신구약 중간기 문헌을 거쳐 신약성서에 이르는 전통과 성서 시대 이후 유대교 문헌에 나타난 성전 이해에 대한 고찰을 통해 탁월하게 분석했다. 이 책은 성전 신학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하경택 |장신대학교 교수(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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