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지복직관』 출간 안내

새물결플러스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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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복직관”의 사전적 의미는 “신의 얼굴을 직접 목격하는 가운데 지극히 큰 희열과 행복을 체험한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지만,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개신교 신학자인 한스 부어스마는 “지복직관”이야말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 개념과 정확히 상응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증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개신교 신학자에 의해 쓰인 “지복직관”에 대한 가장 방대하고 치밀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크게 두 부분에 걸쳐 지복직관 개념이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역설한다. 먼저, 저자는 철학과 신학의 역사에 나타난 지복직관 개념을 추적한다. 저자는 기독교 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에도 이미 플라톤과 플루티노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을 통해 현상의 세계를 탈피하여 이데아의 세계를 “관조”하는 전통이 있었음을 밝히는 한편, 이런 초월적 경험들이 어떻게 후대의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끼쳤는지, 또 어떤 한계를 갖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이어서 저자는 종교 개혁가 장 칼뱅이 등장하기 이전의 주요한 기독교 신학자들이 모두 “지복직관” 체험에 큰 강조점을 두었다고 주장한다. 한스 부어마스는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를 시발점으로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신신학자 시므온, 십자가의 요한, 보나벤투라,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단테 등의 방대한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이들의 신학과 신앙에 지복직관 체험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소개한다.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같은 작품은 그의 “관상” 체험, 즉 그가 영적 행위 중에 하늘에 올라가 신의 얼굴을 직접 목도한 경험을 이해하지 않고는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에서 당연시되었던, 그리고 권장되었던 지복직관의 경험은 종교 개혁가 칼뱅에 이르러 그 중요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칼뱅은 지복직관 체험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로 신학적 포인트를 이동함으로써 후대의 개신교 신학의 물줄기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 전통에서 지복직관의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영국의 청교도,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이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개신교 안에서 여전히 지복직관의 신학이 이어졌음을 강조한다.

그다음 저자는 성서에 나타난 지복직관의 자취를 추적한다. 한스 부어마스는 태곳적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인류는 “신의 얼굴을 직접 목격하며 친교를 나눌 수 있었”지만, 인류의 조상이 범죄를 저질러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 인류는 신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제한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성서의 전통에서 간헐적으로 신의 얼굴을 목도하는 특이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아브라함, 야곱,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미가야 같은 예언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들이 “신의 얼굴”을 목격한 체험은 실제로는 “신의 등”을 본 것에 불과하다. 구약성서 시대의 어떤 신앙 위인도 신의 얼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신약성서 시대에 이르러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신의 현현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누구나 신의 얼굴을 목격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시 태곳적의 에덴동산과 같은 이상향에 들어가 신의 얼굴을 보며 자유롭게 친교를 나눌 수 있는 회복과 구원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역사의 종말까지 이 회복과 구원의 완성은 유예되어 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마치 희미한 거울을 보듯이 신의 얼굴에 대해 제한적인 경험과 지식만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우주의 종말이 도래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 모두 흡사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듯이 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분이 베푸시는 무한한 행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 염원하고 희구하는 구원의 완성이다.

저자는 이렇듯 성서와 기독교 신학의 전통이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지복직관 개념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별다른 반향을 못 일으킬 수 있음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지금 이곳에서의 물질적 삶에 과도하리만큼 탐닉한 까닭에 초월적 세계에 대한 감각과 염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서가 말하는 지복직관 경험은 단지 종말에 완성될 천국에 들어가서만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신의 얼굴을 계시하고 중개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연합을 통해 지금 이곳의 삶에서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의 삶에서 추구하는 신의 얼굴 보기는 내재의 세계에 임하는 초월의 신비를 상징하고 예표하는 성례전적 행위다. 예수는 팔복의 한 대목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다!”(마 5:8)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 한스 부어스마(Hans Boersma)

캐나다 레스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B.A.)을 공부하고, 캐나다 개혁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석사(Th.M.),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트리니티웨스턴 대학교, 리젠트 칼리지에서 가르쳤으며, 지금은 북미 성공회 사제이면서 미국 내쇼타 하우스에서 성 베네딕투스 그리스도의 종 수덕신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개혁파 목회자의 자녀로 나고 자라 자신도 개혁파 목회자로 수년 동안 활동했던 그는, 오랜 기간 기독교 전통을 풍부하게 연구하며 신학을 다짐으로써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주요 관심사는 교부 신학, 20세기 로마 가톨릭 신학, 성경의 영적 해석이며 그 핵심은 기독교의 “위대한 전통”이라는 원천으로 돌아가 근대 이전의 “성례전적 존재론” 회복을 모색하는 것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천상에 참여하다』(IVP), 『십자가, 폭력인가 환대인가』(기독교문서선교회)가 있으며, 그 외 저서로 Nouvelle Theologie and Sacramental Ontology: A Return to Mystery, Embodiment and Virtue in Gregory of Nyssa: An Anagogical Approach, Scripture as Real Presence: Sacramental Exegesis in the Early Church 등이 있다. 

 

옮긴이 | 김광남

 숭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동 대학교 기독교대학원에서 성서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기독교 출판 분야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고 집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기독교와 이성의 승리』, 『목회자 바울』, 『아담의 역사성 논쟁』, 『예수의 부활』, 『유배된 교회』, 『천지창조에서 에덴까지』, 『하나님 나라의 비밀』, 『성령은 어떻게 공동선을 증진하는가?』 등 다수가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 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신앙을 위한 아포리즘』, 『거룩하지 않은 독서』가 있다.

 

 



차례


머리말 16

감사의 글 19

약어표 22

 

서론_ 어째서 지복직관인가? 27

역사와 유비 34

성례전적 존재론과 지복직관 41

각 장에 대한 개요 48

 

1장 타당성과 직관_ 근대성 안에서의 지복직관 53

성례전적 목적론 53

하나님의 얼굴 찾기: 안셀무스의 『프로슬로기온』 61

역동적인 교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69

“용해하는 연합”은 없다: 헤르만 바빙크 78

결론 89

 

1부 초기 기독교 사상에서의 지복직관 93

 

2장 철학과 직관_ 플라톤과 플로티노스 그리고 기독교 신앙 94

신학 및 철학 그리고 지복직관 94

플라톤의 『향연』: 디오티마와 아름다움의 광경 98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 동굴에서 태양으로 110

가장자리 보기: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영혼 116

플로티노스와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로서의 덕 123

직관을 향하여: 위로 그리고 안으로 131

다른 종류의 직관 135

결론 141

 

3장 진보와 직관_ 니사의 그레고리오스의 끝없는 추구 144

영적 탐구 144

지복에 관한 설교: 청결함을 가로막는 것들 147

『모세의 생애』: 지속적인 욕구로서의 직관 155

『아가에 관한 설교들』: 그리스도를 더 많이 보는 것 164

결론 174

 

4장 기대와 직관_ 신현과 황홀경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 178

표지와 실재: 성례전적 얽힘? 178

편재라는 배경과 참여 184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논쟁 188

피조물 통제와 성례전적 임재 194

하나님의 본체를 보고자 하는 모세의 욕구 205

『영혼의 위대함』에서의 관조 213

성령의 첫 열매 219

결론 225

 

2부 중세 사상에서의 지복직관 229


5장 변용과 직관_ 토마스 아퀴나스와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 230

변용과 근대성 230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238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 262

기독교 영성과 지복직관 271

결론 279

 

6장 신비로운 연합과 직관_ 신신학자 시므온과 십자가의 요한 282

빛과 어둠의 신학 282

시므온의 빛에 대한 환상들 285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서 직관 294

산을 오름: 요한의 스케치와 시 300

영혼의 어두운 밤 307

상상의 환상 315

결론 321

 

7장 능력과 직관_ 보나벤투라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329

지식과 사랑의 결합 329

보나벤투라, 『영혼의 하나님 안으로의 여행』 339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하나님을 보는 것에 관하여』 352

결론 365

 

8장 말과 직관_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는 단테의 여행 369

어휘와 현상 369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는 것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373

“그런 이유로 성서가 자신을 낮춘다” 378

“욕망으로 가득 차고 소망 속에서 만족을 찾는 사람” 383

“지복 자체는 보는 행위에 근거한다” 393

“본 것을 그려내지 못하는 말의 능력” 399

“나는 좀 더 담대해졌고, 나의 응시를 계속했다” 407

“빛을 발하는 것, 그것이 모든 선의 근원이다” 413

결론 419

 

3부 개혁파 사상에서의 지복직관 423

 

9장 적응과 직관_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는 것에 대한 칼뱅의 주장 424

칼뱅과 지복직관? 424

교육적 적응 431

기독론적 적응 437

임시적 적응 443

결론 453

 

10장 근대성과 직관_ 존 던의 “하늘과 땅의 교류”의 회복 458

순수한 자연에 대한 던의 거부 458

기일: “모든 것이 조각났고, 모든 일관성이 사라졌다” 462

“성금요일, 1613년”: “하나님이 죽는 것을 보는 것” 484

설교들: “그의 눈이…우리를 그 자신으로 만든다” 495

결론 514

 

11장 그리스도와 직관_ 지복직관에 대한 청교도와 네덜란드 개혁주의의 설명 517

청교도주의와 신칼뱅주의 517

예수를 바라봄: 아이작 암브로즈 521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비: 존 오웬 527

“관조적·신비적 경건”(1): 리처드 백스터와 아이작 암브로즈 537

“관조적·신비적 경건”(2): 토마스 왓슨과 존 오웬 548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하는 지복과 영광 555

영원한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 562

“마음의 신비주의”: 경험적 경건 568

결론 575

 

12장 중재와 직관_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에드워즈의 수정 579

신플라톤주의자 에드워즈 579

지복직관과 체화 582

지복직관과 그리스도 593

지복직관과 점진적 행복 613

결론 625

 

4부 지복직관: 교리적 평가 627

 

13장 교육과 직관_ 견습을 통한 지복직관 628

교사이신 하나님 628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교육과 섭리 641

교육과 구원사 652

교육과 기독론 664

교육과 변화: 하나님에 대한 육체적 직관 683

결론 696

 

참고문헌 698

인명 색인 731

 

 


 

추천사 중에서

 

그간 한국 개신교회는 지복직관이라는 주제가 신비주의나 동방 정교회 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유물인 양 배척했다. 저자는 이 주제를 칼뱅, 청교도, 에드워즈, 카이퍼 등에게 새롭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개혁신학의 지평을 확장한다. 한국 개신교회가 공교회적인 신학의 장에 참여하고 성숙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이 책이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유해무 |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은퇴 교수

 

이 책은 장구한 기독교 교리의 역사에서 최고봉이었으나 언젠가부터 잊힌 지복직관을 성례전적 존재론의 기획으로 되살려낸 한스 부어스마의 역작이다. 광범위한 문헌을 능숙하게 다루는 부어스마의 박학다식함과 지적인 열정으로 인해 페이지마다 정보와 통찰이 넘쳐난다. 독자들은 낯설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에 마음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과 눈이 마주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윤형철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조교수

 

말씀이 청각과 관련된다면 성례는 시각과 관련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개신교 전통에서 자칫 소홀하게 여겨질 수 있는 성례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다. 교회에서 시각 예술인 미술이 청각 예술인 음악보다 잘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일독이 필요한 책이다.

이경직 | 백석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저자는 신앙의 최종적인 경지인 직관에 대해 기독교 역사를 통시적으로 추림으로써 오늘 우리 자리에서도 입체적으로 더듬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직관도 성례전적 상징을 싸안는 은유라고 함으로써 “직접 본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범람하는 말로 뒤틀어진 종교와 현실에 대한 교정의 지혜도 기대해볼 수 있는 역작이다.

정재현 | 연세대학교 산학특임교수

 

한스 부어스마의 『지복직관』(Seeing God )은 케네스 커크의 고전적 작품 『하나님에 대한 직관』(The Vision of God) 이후에 이 주제와 관련해 영어로 쓰인 가장 중요하고 신학적으로 포괄적인 논의다. 이것은 가장 계몽적인 종류의 신학적 성찰이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 Atheist Delusion과 The Beauty of the Infinite의 저자

 

자신의 전형적인 “성례전적 존재론”에 입각해 한스 부어스마는 우리에게 “하나님 뵙기”라는 인간의 목적이 이 창조 질서 안에서 성례전적으로 드러나는 “성례전적 목적론”을 제공한다. 심오하고 중요한 작품이다.

사이먼 올리버 | 더럼 대학교

 

한스 부어스마만이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는 성서와 개혁주의, 개신교, 로마 가톨릭 전통에 대한 훌륭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동안 무시되었던 지복직관이라는 주제를 다시 검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상기시킨다. 오늘날의 최고의 신학자 중 한 사람이 쓴 아주 멋진 책이다.

쟈넷 소스키스 | 케임브리지 대학교

 

『지복직관』은 기독교적 종말이 단순히 우리가 아는 우주의 개선된 버전일 뿐이라는 개념과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아우구스티누스, 단테, 조나단 에드워즈, C. S. 루이스 같은 기독교적 플라톤주의자들이 모두 완고하게 내세적이었다는 개념에 대한 예민하지만 지속적인 반론이다.

마이클 맥클리몬드 |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한스 부어스마의 『지복직관』은 지복직관의 신학에 관한 풍성하고 포괄적이며 역사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이것은 놀라운 성취다.

존 밀뱅크 | 노팅엄 대학교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응시하는 우리의 최종적 운명에 관한 교회의 오랜 성찰에 대한 부드럽고, 민감하며, 감동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여행의 형태로 제공된 놀라운 선언이다. 부어스마는 우리가 뼛속까지 그런 직관을 갈망하도록 지음받았으며 우리의 삶의 질서가 그 목적을 향해 적절하게 맞춰져 있다는 강력한 사실을 웅변적으로 드러낸다.

에프라임 래드너 | 위클리프 칼리지

 

이 풍요롭고 흥미로운 연구에서 한스 부어스마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모험, 즉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가 되기를 바라셨던 대로 되고 그럼으로써 그분을 온전하게 보게 되기를 기대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모험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이 책은 아주 놀랍고 가치 있는 위업이다.

리디아 슈마커 | 런던 킹스 칼리지

 



 

본문 중에서

 

인간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 이 진리는 자명해 보일 수 있다. 어떻게 우리가 그보다 더 큰 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 책의 모든 독자가 이런 주장에 즉각 공감하리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영생에 대해 하나님 뵙기(visio Dei)라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의 타당성에 도전하고 싶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본다는 전망은 교부 시대와 중세 시대의 성서 독자들에게 핵심적인 것이었을 수 있으나 우리로서는 근대 이전 세계관의 여러 요소를 버려야 했던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천상적인 것에서 세상적인 것으로 변화되면서 “하나님을 본다”(seeing God)라는 개념은 종말을 묘사하는 데 타당하지 않은 은유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1장_ 타당성과 직관 중에서

 

내세에서 하나님을 대면해서 본다는 기독교의 소망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지복직관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표현했을 때, 일반적으로 그들은 비기독교 자료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렇게 했다. 특히 플라톤 전통이 지복직관 교리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 플라톤주의—단연코 기독교 사상사의 다수파다—는 일반적으로 플라톤 전통이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방식으로 기독교의 계시를 예견했고 따라서 지복직관의 가르침을 포함해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가정 위에서 작업해왔다.

1부 2장_철학과 직관 중에서

 

그레고리오스에게 지복직관은 추상적으로 숙고해야 하는 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기독교적 삶의 목표로 생각했고 따라서 자기 자신이 실천해야 할 개인적 여정의 목표로 여겼다. 그레고리오스는 죽음의 순간에 지복직관을 경험하기를 분명하게 고대했다. 이 직관이 그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추구했던 목표를 구성했고 그런 직관이 삶에 대한 그의 전망 전체를 결정했다. 그레고리오스는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구하는 것을 자기 존재의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이었다.

1부 3장_진보와 직관 중에서

 

우리는 디오니시오스의 신비주의의 감정적 요소와 지적인 요소 사이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보나벤투라에게 지성의 포기는 순례를 추동하며 궁극적으로 지성을 앞지르고 하나님에 대한 직관으로 이어지는 것은감정적 욕구다. 쿠자누스에게 우리가 낙원 안으로 들어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허락하는 것은 지적 추구다. 그리고 주목할 만하게도 우리가 모순되는 것들의 벽에서 절정에 이를 때 맛보는 것은 지적 추구의 실패다. 물론 그 두 신학자는 모두 우리가 지복직관에 이르는 방식에 관해 신중하게 미묘한 차이가 나는 논의를 제공한다. 보나벤투라는 감각 지각과 지성의 역할을 경멸하지 않는 반면에 쿠자누스의 신비주의는 사랑과 감정에 호소한다.

2부 7장_ 능력과 직관 중에서

 

칼뱅에게 하나님에 대한 대면 직관은 지복직관의 동의어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대면 직관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밀함에 대한 표현, 즉 어느 정도의 강도를 허용하는 그 무엇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칼뱅이 “대면하여”와 “공개적으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구원사와 하나님의 교육을 강조한다. 2세기의 이레나이우스(Irenaeus)를 제외하고 그 어떤 신학자도 칼뱅만큼 하나님에 대한 직관을 하나님의 교육 프로그램과 밀접하게 연결시킨 이는 없다.

3부 9장_ 적응과 직관 중에서

 

지복직관에 대한 카이퍼의 가르침에는 우리가 성례전적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 특히 마음의 신비주의(mystiek)를 위한 적절한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그는 종말론적 지복직관의 실재가 이생에서 미리 경험될 수 있음을 인식했다. 우리는 카이퍼에게는 하늘에서의 미래가 세상에 이미 현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카이퍼가 전통적인 네덜란드의 칼뱅주의의 경험적(bevindelijk) 신비주의를 발견한 것이 그를 네덜란드의 청교도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3부 11장_ 그리스도와 직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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