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예언은 미래를 훔쳐보는 창문이 아니라, 오늘의 백성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존 H. 월튼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는 지금까지 “창세기 1장”, “아담과 하와”, “노아 홍수”, “성경의 권위”, “토라”, “가나안 정복” 사건을 다루어왔고, 이제 일곱 번째로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예언과 묵시”로 눈길을 돌려서 구약 예언서를 미래 예측의 자료나 종말론적 시간표로 축소해 온 오래된 독법을 근본적으로 교정하려고 시도한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구약성경 예언서를 먼 미래의 종말론적 프로그램을 예견하는 신비로운 암호문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한 변증적 도구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접근이 예언자와 그 시대 청중이 공유했던 본래의 메시지를 놓치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나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라는 해석학적 원칙을 제시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예언서를 고대 근동이라는 “문화의 강” 안에서, 즉 문화적 맥락 안에서 다시 읽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특히 고전 시대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수호한 증언자들이다. 따라서 예언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윤리적 실존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월튼은 예언의 메시지와 그 성취를 엄격히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예언의 메시지는 예언자가 당대 청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의도이며, 성취는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방식이다. 또한 저자는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여, 묵시 문학의 환상을 메시지 자체가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배경으로 읽도록 안내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주요 논거는 고대 근동의 예언 전통과 이스라엘 예언의 비교 연구에 기초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은 주변 세계의 신탁 문화와 유사한 형식을 공유하지만, “언약”이라는 결정적인 요소를 통해 독특성을 지닌다. 구약의 예언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니라 현재의 불충실함에 대한 고발과 심판, 그리고 회개와 회복을 촉구하는 역동적인 하나님의 음성이다. 또한 신약 저자들이 구약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은 단순한 직선적 성취가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맞게 메시지를 재포장(repackaging)하고 각색하는 과정임을 논증한다.
이러한 통찰은 21세기 한국 사회와 교회 상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오랫동안 한국교회는 예언서를 종종 개인의 기복 욕구나 특정한 정치적,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해 왔다. 그 결과 구약성경 예언서는 파편적, 선택적, 자의적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하듯 예언서의 본질이 “지금 이곳에서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예배의 진실성에 있다면, 현대의 독자들은 예언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또한 기후 위기나 전쟁의 위협 같은 현대의 징조들을 예언서의 암호 해독으로 풀려 하기보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신뢰하며 현재의 삶에서 책임 있게 응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고 가르치며 오늘날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적용하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의 정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지은이 소개]
지은이 | 존 H. 월튼(John H. Walton)
히브루유니언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무디 성경 대학에서 20여 년간 가르쳤으며, 현재는 휘튼 칼리지에서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 『토라의 잃어버린 세계』,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이상 새물결플러스),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그리심)라는 독창적인 저술을 통해 구약성서 특히 창세기와 고대 근동 문헌 간의 비교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신학자다. 『창세기 격론』(IVP), 『창조 기사 논쟁』, 『아담의 역사성 논쟁』, 『기원 이론』(이상 새물결플러스) 등의 책에도 글을 기고했다.
옮긴이 | 왕희광
연세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성서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새물결플러스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차례]
감사의 글
서론
제1부 고대 근동
명제 1 –예언은 점술의 하위 개념이다
명제 2 –고대 근동의 예언자와 예언은 이스라엘과 비교할 때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제2부 제도
명제 3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다
명제 4 –구약의 예언은 획일적이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
명제 5 –고전 시대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활동했던 언약의 대변자들이다
명제 6 –예언은 구약 시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제3부 문헌
명제 7 –예언 메시지의 범주를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명민한 독자가 될 수 있다
명제 8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저술가가 아니었다
명제 9 –예언서가 염두에 둔 청중이 반드시 예언자의 청중은 아니다
제4부 방법론적·해석적 문제들
명제 10 –메시지와 그 성취를 구분함으로써 예언 문학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명제 11 –예언의 성취 방식은 직선적이지 않다
명제 12 –신약에서 구약의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은 메시지가 아니라 성취에 초점을 맞춘다
명제 13 –예언은 하나님과 미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종말에 관한 일들을 세세하게 구상할 수 없다
제5부 묵시 문학
명제 14 –묵시 문학은 고전 시대 예언과 구별되어야 한다
명제 15 –묵시 문학에서 환상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이다
명제 16 –신약의 묵시 문학은 구약의 묵시 문학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결론: 읽기 전략
참고 문헌
[추천사 중에서]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는 구약 예언서를 미래 예측의 자료나 종말론적 시간표로 축소해 온 오래된 독법을 차분히 교정하는 책이다. 존 H. 월튼은 예언을 고대 근동의 예언 전통이라는 넓은 배경 속에 두고, 이스라엘 예언이 주변 세계와 어떤 점에서 닮았고 또 어떤 점에서 결정적으로 달랐는지를 설명한다. 그에게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고전 시대의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수호한 증언자들이다. 따라서 예언서를 읽는 일은 미래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라, 예언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 본래의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맥락 안에서 듣는 일이다. 이 책의 중요한 공헌은 예언의 메시지와 성취를 구분하도록 돕는 데 있다. 월튼은 예언의 성취가 단순히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신약이 구약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도 예언자의 본래 메시지와 성취의 관계를 신중히 살필 때 더 잘 이해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고, 묵시 문학의 환상을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배경으로 읽도록 안내한다. 이러한 설명은 예언서를 종말의 세부 일정표로 만들려는 유혹을 경계하게 하면서도, 예언서가 오늘의 교회에 여전히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월튼이 강조하듯,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나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의 해석학적 중심을 잘 보여 준다. 월튼의 다른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와 함께 읽는다면(참조. 16쪽 각주 1), 독자는 고대 세계에 뿌리를 두는 구약성경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고, 바르게 가르치며, 오늘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적용하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진지한 성경 독자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한다.
김정훈 | 부산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존 월튼이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월튼에 따르면 교회는 오랫동안 예언서를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읽어 왔다. 하나는 종말론적 시간표를 짜는 자료로,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 변증학적 근거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두 접근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예언자들이 처음 전하려 했던 본래의 메시지를 놓치기 쉽다. 월튼은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지만, 우리에게 직접 쓰인 것은 아니다”라는 자신의 익숙한 원리를 예언서 해석에도 적용한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먼저 예언자들과 그 시대 청중이 몸담고 있던 고대 근동이라는 “문화의 강”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에서 볼 때, 예언은 신탁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성경의 참 예언자는 단순한 점술가나 미래 예측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예언은 미래를 훔쳐보는 창문이 아니라 오늘의 백성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참 예언자는 하나님의 법정과 언약의 광장 한복판에 선 사람이다. 이 책은 예언서 읽기의 오독을 바로잡아 준다.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게 해 주며, 예언서를 “미래 정보”가 아니라 언약, 정의, 회개, 소망, 하나님의 통치라는 큰 주제 안에서 다시 읽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학문적으로도 유익하고 목회적으로도 긴요하다. 예언서를 새롭게 배우려는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꼭 필요한 교과서적 안내서다.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현 다니엘의 샘 원장
저자는 본서를 통해 크게 두 가지를 경계한다. 첫째, “문화의 강”(정치, 경제, 종교, 제도, 사회적 관습 등)을 간과한 채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기초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 둘째, 저자는 기록의 “맥락”을 배제하는 행위, 다시 말해 예언서를 본래 문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극히 일부 본문만을 파편적으로 인용하고 소모하는 현실을 경계한다. 이에 저자는 “고대 근동의 환경과 문자적 기록의 맥락 안에서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예언서를 둘러싼 오랜 오해들을 교정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예언을 구체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훈련이 부족했던 한국교회에 예언서가 지닌 본연의 풍성함을 일깨워 주는 탁월한 안내서다. 예언자의 본래 메시지를 깊이 숙고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존중하는 태도임을 본서는 드러낸다. 특별히 이 책은 각 장을 도발적인 하나의 명제로 시작한다. 이는 종종 우리가 가진 통념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우리의 좁은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충돌이다. 독자들은 각 명제를 접할 때마다 자신의 고착화된 신앙적 사고에 대해 자문하게 될 것이다. 이 명제들은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잃어버린 것”이자, 우리가 지금 당장 “회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언서를 고대의 맥락에서 다시 읽음으로써 예언자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회복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민경구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본서는 성경을 고대 근동의 맥락에서 정직하게 읽도록 이끄는 안내서로서 예언서의 가치와 기능을 진정성 있게 조명한다. 저자는 예언자를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존재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와 새 삶으로 부르는 “언약의 수호자이자 대변자”로 제시한다. 본문 고유의 메시지와 신약의 성취를 구분하면서도 두 권위를 균형 있게 수용하도록 돕는다. 난해한 묵시 문학을 자의적 암호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전개되는 역사적 패턴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본래 의도를 드러낸다. 나아가 종말론을 개인 구원에 국한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창조세계 전체가 회복된다는 총체적 비전으로 확장한다. 풍부한 고대 세계의 배경과 엄밀한 방법론을 신앙의 구조 안에 통합한 이 책은 오독되기 쉬운 예언서의 메시지를 명확히 해명하여 현대 독자가 책임 있게 응답하도록 돕는다. 결국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고 진리를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견고한 토대를 마련해 주는 필독서다.
윤철원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약학 교수
구약 예언서만큼 오늘날 독자들에 의해 외면당하거나 잘못 읽히는 책도 없을 것이다. 특별한 절기나 각 교회의 필요에 따른 이벤트성 설교를 몇 번 했다고 해서 구약 예언서를 충분히 살펴봤다고 말할 담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구약 예언서가 다시 봉인되었다고 말할 정도일까?!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예언”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문화적 관점과 시대적 배경에 관한 이해 없이 구약 예언서를 교조주의적으로 설교하거나 해석해 온 전통은 그 문제적 양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월튼은 예언을 “현재에 초점을 맞춘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표현 수단”이라고 올바르게 정의함으로써 그것을 미래와 관련된 일들을 점치거나 말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간주하는 환원주의적 개념을 과감히 수정한다. 그에 따르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야웨 하나님을 대변하는 이들로서 과거 시내산과 모압 평지에서 체결된 언약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토라에 입각해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재(당대) 상황을 진단 및 평가하고 앞으로 성취해야 할 대안을 제시한 인물들이었다. 월튼은 구약성서에 포함된 예언 자체가 역동적이고 다양하며,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 사이에는 간극 내지는 미묘한 긴장이 존재하며, 그것의 성취에도 다양한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피력한다. 가령 그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구약(예언)을 인용하는 방법론을 영감의 차원에 포함시켜 정경 공동체의 “각색”으로 설명한다. 특히 성서의 영감은 구전 형태가 아닌 기록된 문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월튼의 제언은 귀담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월튼의 전망 안에서 묵시 문학은 예언서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구약 예언서에 대한 월튼의 이해와 접근은 구약과 신약 전체 성서를 하나로 이어주는 통전적 이해를 갖도록 우리를 안내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망각해 버렸던 성서의 세계를 우리가 다시 새롭게 탐험하고 재발견하도록 도전한다. 구약 예언서 본문 자체의 의미와 가치, 신약과의 관계, 그리고 구약 예언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신학도들과 신실하게 설교 강단과 회중을 섬기는 목회자들에게 정독을 추천한다.
주현규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유명한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에 드디어 예언서가 담기게 되었다. 저자는 성경의 예언서를 주로 마지막 때의 모습과 순서에 초점을 맞추어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변증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러한 해석은 예언의 진정한 메시지를 놓친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이는 예언자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본래의 정황과 의도를 무시하는 것이며, 오늘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포착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문화적 배경을 분석하여, 예언과 묵시는 우리의 현재 생각이나 상황에 맞게 재구성된 성취를 확인할 필요가 없으며, “인류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점은 성경의 예언과 묵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정곡을 찌르는 통찰이다. 고대 근동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는 구약의 예언과 묵시를 고대 배경하에서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대중적인 눈높이로 독자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근동의 예언과 묵시, 구약의 예언과 묵시, 제2성전기 관련 문헌, 신약의 예언과 묵시 등을 총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성경의 예언과 묵시에 대한 종합적 안내서라고도 할 수 있다.
차준희 |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 한국구약학회 회장 역임
존 H. 월튼은 “잃어버린 세계”라는 렌즈를 예언서로 돌려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다.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의 이전 책들도 유익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예언서가 너무나도 오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그의 순차적 명제 접근 방식은 우리가 왜 종종 예언서를 종말론이나 변증론의 관점에서만 읽음으로써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를 예언자들의 메시지—오늘날 독자인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여전히 지닌 메시지—로 다시 인도함으로써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교정책을 제공한다.
빌 T. 아놀드 | 애즈버리 신학교 구약 해석학 폴 S. 아모스 교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의 최신작인 본서에서 존 H. 월튼은 중요하고 유익한 많은 명제를 공유한다. 이 시리즈의 독자들이 기대하듯이, 그는 예언서를 읽는 방법에 대한 대중적인 가정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성경의 고대 세계를 열어 보여주며, 또한 현대 학문의 주요 흐름을 신앙고백적 틀 안으로 끌어들인다. 결국 그는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서 예언서의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의 삶을 위해 신중하게 적용하도록 도와준다.
존 W. 힐버 | 맥매스터 신학교 구약학 교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는 교회가 성경 해석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고, 사상가들의 무대에서 신앙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합리성을 갖추도록 돕는 데 기여했다. 이 최신작도 예외는 아니며, 우리를 과거로 인도하여 메시아적 성취를 훨씬 뛰어넘는 우리를 향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새롭게 들려준다. 고대 근동 세계에 대한 월튼의 풍부한 지식은 때때로 혼란스럽고 난해한 예언서들에 명료함을 더해줌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에서 예언자의 말씀에 충실하게 해준다.
브리트니 N. 멜튼 | 리젠트 칼리지 구약학 부교수
존 월튼은 오늘날 교회를 위한 가장 탁월한 구약 해석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는 구약 예언자들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진지한 성서학적 연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함과 신실함으로 예언서의 메시지를 읽도록 돕는 훌륭한 안내서다. 이 뛰어난 저작에 깊이 감사한다.
J. 리처드 미들턴 | 노스이스턴 신학교 성경적 세계관 및 주해 교수
[본문 중에서]
예언은 고대 세계에서 잘 알려진 제도였으며, 그 당시의 많은 예언 신탁, 특히 고바빌로니아(기원전 제2천년기 전반)와 신아시리아(기원전 제1천년기 중반) 텍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져 왔다.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이 주변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언을 대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예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고대 세계에서 통용되던 보편적인 사상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구약의 예언은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예언자의 동시대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더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들 주변의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인식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 문학 장르 자체에 발전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고대 세계에 존재했던 예언을 조사한 후 이스라엘 예언과의 유사점 및 차이점 모두를 논의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예언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 사고방식을 탐구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이다.
_ “서론” 중에서
결과적으로 비록 우리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는 전제를 수용한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메시지가 종종 황홀경에 빠진 점술가의 점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설령 우리가 예언자들의 역할에서 전망가의 모습을 더 많이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예언자들을 통찰력 있는 문화 비평가로 격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미래에 대한 무작위적이고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며, 그것들은 언약,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정황과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_ “명제 3 :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다” 중에서
이전 명제들에서 다양한 유형의 예언 메시지를 언급하는 이유를 이미 설명했었는데, 이제 그런 문학적 유형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분류는 고전 시대에 속한 예언 문서들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구약/히브리 성경의 정경을 구성하는 고전 시대 예언자들의 책에 담긴 거의 모든 신탁 자료는 “고발”(indictment), “심판”(judgment), “교훈”(instruction), 혹은 “결말”(aftermath)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_ “명제 7 : 예언 메시지의 범주를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명민한 독자가 될 수 있다” 중에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확인하거나 예견할 수 있는 성취에 근거하여 예언자들의 해석을 전용하는 일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예언은 성취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선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록 그것이 우리의 기대와는 매우 다른 형태를 보이더라도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수행하고 계심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성취가 어떤 양태로 나타날지 예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신약 저자들뿐 아니라 구약 예언자들조차도 종종 성취가 그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서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았던가!
_ “명제 10 : 메시지와 그 성취를 구분함으로써 예언 문학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중에서
묵시 문학의 이국적인 상징주의(symbolism)는 독자들의 주의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 돌리게 함으로써 전후 사정을 연결하는 창의적인 전략들을 독자들에게 제안할 수 있다. 방정식이 수학을 전개하는 수단이듯이 상징은 묵시적 환상의 소통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징이 묵시 문학의 주요 자산(stock in trade)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해석자는 그 상징들에 어떻게 접근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상징의 특징은 두 가지 관점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하나는 자체적 의미(the thing in itself)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적 의미(the thing that it stands for)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에서 “뿔”(자체적 의미)은 상징적으로 “왕”(상징적 의미)을 가리킨다. 그런 상징들은 대체로 문학과 문화에 전통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징을 우리가 해독해야 할 암호(ciphers)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묵시 텍스트에서 상징을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뿐 아니라 그런 표상에 어떤 문화적 중요성이 덧붙여져 있는지도 함께 탐구해야 한다.
_ “명제 15 : 묵시 문학에서 환상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이다” 중에서
나는 “과연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러한 비교를 전개했다. 우리는 아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이 태도를 고수한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든 전쟁의 위협에 대해 논평하는 정치인이든 제도권 종교와 교회의 붕괴를 논하는 신학자이든, 우리 시대의 전문가들은 오직 현재의 징후를 평가하고 장차 일어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경고할 수 있을 뿐이다. 고전 시대 예언자들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경고받았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현시대가 파괴적이고 문제투성이인 위기의 때라고 해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실현되고 있음을 믿는다. 절망적인 시대에도 운명론은 답이 아니며, 세상이 파멸과 붕괴로 치닫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길 것이라고 치부하는 방관적인 태도도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예언과 묵시를 해독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가 결코 빠져들어서는 안 될 허망한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_ “결론 : 읽기 전략” 중에서
[책소개]
“예언은 미래를 훔쳐보는 창문이 아니라, 오늘의 백성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존 H. 월튼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는 지금까지 “창세기 1장”, “아담과 하와”, “노아 홍수”, “성경의 권위”, “토라”, “가나안 정복” 사건을 다루어왔고, 이제 일곱 번째로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예언과 묵시”로 눈길을 돌려서 구약 예언서를 미래 예측의 자료나 종말론적 시간표로 축소해 온 오래된 독법을 근본적으로 교정하려고 시도한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구약성경 예언서를 먼 미래의 종말론적 프로그램을 예견하는 신비로운 암호문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증명하기 위한 변증적 도구로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접근이 예언자와 그 시대 청중이 공유했던 본래의 메시지를 놓치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나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라는 해석학적 원칙을 제시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예언서를 고대 근동이라는 “문화의 강” 안에서, 즉 문화적 맥락 안에서 다시 읽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특히 고전 시대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수호한 증언자들이다. 따라서 예언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윤리적 실존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월튼은 예언의 메시지와 그 성취를 엄격히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예언의 메시지는 예언자가 당대 청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의도이며, 성취는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방식이다. 또한 저자는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여, 묵시 문학의 환상을 메시지 자체가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배경으로 읽도록 안내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주요 논거는 고대 근동의 예언 전통과 이스라엘 예언의 비교 연구에 기초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은 주변 세계의 신탁 문화와 유사한 형식을 공유하지만, “언약”이라는 결정적인 요소를 통해 독특성을 지닌다. 구약의 예언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니라 현재의 불충실함에 대한 고발과 심판, 그리고 회개와 회복을 촉구하는 역동적인 하나님의 음성이다. 또한 신약 저자들이 구약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은 단순한 직선적 성취가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 맞게 메시지를 재포장(repackaging)하고 각색하는 과정임을 논증한다.
이러한 통찰은 21세기 한국 사회와 교회 상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오랫동안 한국교회는 예언서를 종종 개인의 기복 욕구나 특정한 정치적,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해 왔다. 그 결과 구약성경 예언서는 파편적, 선택적, 자의적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하듯 예언서의 본질이 “지금 이곳에서의” 공의와 정의, 그리고 예배의 진실성에 있다면, 현대의 독자들은 예언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또한 기후 위기나 전쟁의 위협 같은 현대의 징조들을 예언서의 암호 해독으로 풀려 하기보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신뢰하며 현재의 삶에서 책임 있게 응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이 책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고 가르치며 오늘날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적용하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의 정독을 강력히 추천한다.
[지은이 소개]
지은이 | 존 H. 월튼(John H. Walton)
히브루유니언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무디 성경 대학에서 20여 년간 가르쳤으며, 현재는 휘튼 칼리지에서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아 홍수의 잃어버린 세계』, 『토라의 잃어버린 세계』,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이상 새물결플러스),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그리심)라는 독창적인 저술을 통해 구약성서 특히 창세기와 고대 근동 문헌 간의 비교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신학자다. 『창세기 격론』(IVP), 『창조 기사 논쟁』, 『아담의 역사성 논쟁』, 『기원 이론』(이상 새물결플러스) 등의 책에도 글을 기고했다.
옮긴이 | 왕희광
연세대학교(B.A.), 합동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성서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새물결플러스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차례]
감사의 글
서론
제1부 고대 근동
명제 1 –예언은 점술의 하위 개념이다
명제 2 –고대 근동의 예언자와 예언은 이스라엘과 비교할 때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제2부 제도
명제 3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다
명제 4 –구약의 예언은 획일적이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
명제 5 –고전 시대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활동했던 언약의 대변자들이다
명제 6 –예언은 구약 시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제3부 문헌
명제 7 –예언 메시지의 범주를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명민한 독자가 될 수 있다
명제 8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저술가가 아니었다
명제 9 –예언서가 염두에 둔 청중이 반드시 예언자의 청중은 아니다
제4부 방법론적·해석적 문제들
명제 10 –메시지와 그 성취를 구분함으로써 예언 문학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명제 11 –예언의 성취 방식은 직선적이지 않다
명제 12 –신약에서 구약의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은 메시지가 아니라 성취에 초점을 맞춘다
명제 13 –예언은 하나님과 미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종말에 관한 일들을 세세하게 구상할 수 없다
제5부 묵시 문학
명제 14 –묵시 문학은 고전 시대 예언과 구별되어야 한다
명제 15 –묵시 문학에서 환상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이다
명제 16 –신약의 묵시 문학은 구약의 묵시 문학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결론: 읽기 전략
참고 문헌
[추천사 중에서]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는 구약 예언서를 미래 예측의 자료나 종말론적 시간표로 축소해 온 오래된 독법을 차분히 교정하는 책이다. 존 H. 월튼은 예언을 고대 근동의 예언 전통이라는 넓은 배경 속에 두고, 이스라엘 예언이 주변 세계와 어떤 점에서 닮았고 또 어떤 점에서 결정적으로 달랐는지를 설명한다. 그에게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며, 고전 시대의 예언자들은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수호한 증언자들이다. 따라서 예언서를 읽는 일은 미래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라, 예언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 본래의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맥락 안에서 듣는 일이다. 이 책의 중요한 공헌은 예언의 메시지와 성취를 구분하도록 돕는 데 있다. 월튼은 예언의 성취가 단순히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신약이 구약 예언을 사용하는 방식도 예언자의 본래 메시지와 성취의 관계를 신중히 살필 때 더 잘 이해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고, 묵시 문학의 환상을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배경으로 읽도록 안내한다. 이러한 설명은 예언서를 종말의 세부 일정표로 만들려는 유혹을 경계하게 하면서도, 예언서가 오늘의 교회에 여전히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월튼이 강조하듯,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으나 우리를 대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의 해석학적 중심을 잘 보여 준다. 월튼의 다른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와 함께 읽는다면(참조. 16쪽 각주 1), 독자는 고대 세계에 뿌리를 두는 구약성경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고, 바르게 가르치며, 오늘의 삶 속에서 책임 있게 적용하고자 하는 목회자와 신학생, 그리고 진지한 성경 독자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한다.
김정훈 | 부산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존 월튼이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월튼에 따르면 교회는 오랫동안 예언서를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읽어 왔다. 하나는 종말론적 시간표를 짜는 자료로,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 변증학적 근거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두 접근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예언자들이 처음 전하려 했던 본래의 메시지를 놓치기 쉽다. 월튼은 “성경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지만, 우리에게 직접 쓰인 것은 아니다”라는 자신의 익숙한 원리를 예언서 해석에도 적용한다. 예언서를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먼저 예언자들과 그 시대 청중이 몸담고 있던 고대 근동이라는 “문화의 강”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에서 볼 때, 예언은 신탁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성경의 참 예언자는 단순한 점술가나 미래 예측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분명히 드러난다. 예언은 미래를 훔쳐보는 창문이 아니라 오늘의 백성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참 예언자는 하나님의 법정과 언약의 광장 한복판에 선 사람이다. 이 책은 예언서 읽기의 오독을 바로잡아 준다. 예언과 묵시 문학을 구별하게 해 주며, 예언서를 “미래 정보”가 아니라 언약, 정의, 회개, 소망, 하나님의 통치라는 큰 주제 안에서 다시 읽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학문적으로도 유익하고 목회적으로도 긴요하다. 예언서를 새롭게 배우려는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꼭 필요한 교과서적 안내서다.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현 다니엘의 샘 원장
저자는 본서를 통해 크게 두 가지를 경계한다. 첫째, “문화의 강”(정치, 경제, 종교, 제도, 사회적 관습 등)을 간과한 채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기초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 둘째, 저자는 기록의 “맥락”을 배제하는 행위, 다시 말해 예언서를 본래 문맥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극히 일부 본문만을 파편적으로 인용하고 소모하는 현실을 경계한다. 이에 저자는 “고대 근동의 환경과 문자적 기록의 맥락 안에서 예언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예언서를 둘러싼 오랜 오해들을 교정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예언을 구체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훈련이 부족했던 한국교회에 예언서가 지닌 본연의 풍성함을 일깨워 주는 탁월한 안내서다. 예언자의 본래 메시지를 깊이 숙고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존중하는 태도임을 본서는 드러낸다. 특별히 이 책은 각 장을 도발적인 하나의 명제로 시작한다. 이는 종종 우리가 가진 통념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우리의 좁은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충돌이다. 독자들은 각 명제를 접할 때마다 자신의 고착화된 신앙적 사고에 대해 자문하게 될 것이다. 이 명제들은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잃어버린 것”이자, 우리가 지금 당장 “회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언서를 고대의 맥락에서 다시 읽음으로써 예언자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회복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민경구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본서는 성경을 고대 근동의 맥락에서 정직하게 읽도록 이끄는 안내서로서 예언서의 가치와 기능을 진정성 있게 조명한다. 저자는 예언자를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존재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와 새 삶으로 부르는 “언약의 수호자이자 대변자”로 제시한다. 본문 고유의 메시지와 신약의 성취를 구분하면서도 두 권위를 균형 있게 수용하도록 돕는다. 난해한 묵시 문학을 자의적 암호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전개되는 역사적 패턴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본래 의도를 드러낸다. 나아가 종말론을 개인 구원에 국한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창조세계 전체가 회복된다는 총체적 비전으로 확장한다. 풍부한 고대 세계의 배경과 엄밀한 방법론을 신앙의 구조 안에 통합한 이 책은 오독되기 쉬운 예언서의 메시지를 명확히 해명하여 현대 독자가 책임 있게 응답하도록 돕는다. 결국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고 진리를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견고한 토대를 마련해 주는 필독서다.
윤철원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약학 교수
구약 예언서만큼 오늘날 독자들에 의해 외면당하거나 잘못 읽히는 책도 없을 것이다. 특별한 절기나 각 교회의 필요에 따른 이벤트성 설교를 몇 번 했다고 해서 구약 예언서를 충분히 살펴봤다고 말할 담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구약 예언서가 다시 봉인되었다고 말할 정도일까?!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예언”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문화적 관점과 시대적 배경에 관한 이해 없이 구약 예언서를 교조주의적으로 설교하거나 해석해 온 전통은 그 문제적 양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월튼은 예언을 “현재에 초점을 맞춘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표현 수단”이라고 올바르게 정의함으로써 그것을 미래와 관련된 일들을 점치거나 말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간주하는 환원주의적 개념을 과감히 수정한다. 그에 따르면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은 야웨 하나님을 대변하는 이들로서 과거 시내산과 모압 평지에서 체결된 언약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토라에 입각해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재(당대) 상황을 진단 및 평가하고 앞으로 성취해야 할 대안을 제시한 인물들이었다. 월튼은 구약성서에 포함된 예언 자체가 역동적이고 다양하며,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 사이에는 간극 내지는 미묘한 긴장이 존재하며, 그것의 성취에도 다양한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피력한다. 가령 그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구약(예언)을 인용하는 방법론을 영감의 차원에 포함시켜 정경 공동체의 “각색”으로 설명한다. 특히 성서의 영감은 구전 형태가 아닌 기록된 문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월튼의 제언은 귀담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월튼의 전망 안에서 묵시 문학은 예언서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구약 예언서에 대한 월튼의 이해와 접근은 구약과 신약 전체 성서를 하나로 이어주는 통전적 이해를 갖도록 우리를 안내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망각해 버렸던 성서의 세계를 우리가 다시 새롭게 탐험하고 재발견하도록 도전한다. 구약 예언서 본문 자체의 의미와 가치, 신약과의 관계, 그리고 구약 예언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신학도들과 신실하게 설교 강단과 회중을 섬기는 목회자들에게 정독을 추천한다.
주현규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유명한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에 드디어 예언서가 담기게 되었다. 저자는 성경의 예언서를 주로 마지막 때의 모습과 순서에 초점을 맞추어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기 위하여 변증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러한 해석은 예언의 진정한 메시지를 놓친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이는 예언자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본래의 정황과 의도를 무시하는 것이며, 오늘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포착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문화적 배경을 분석하여, 예언과 묵시는 우리의 현재 생각이나 상황에 맞게 재구성된 성취를 확인할 필요가 없으며, “인류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점은 성경의 예언과 묵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정곡을 찌르는 통찰이다. 고대 근동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는 구약의 예언과 묵시를 고대 배경하에서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대중적인 눈높이로 독자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근동의 예언과 묵시, 구약의 예언과 묵시, 제2성전기 관련 문헌, 신약의 예언과 묵시 등을 총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성경의 예언과 묵시에 대한 종합적 안내서라고도 할 수 있다.
차준희 |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 한국구약학회 회장 역임
존 H. 월튼은 “잃어버린 세계”라는 렌즈를 예언서로 돌려 놀라운 결과를 얻어냈다.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의 이전 책들도 유익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 예언서가 너무나도 오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그의 순차적 명제 접근 방식은 우리가 왜 종종 예언서를 종말론이나 변증론의 관점에서만 읽음으로써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를 예언자들의 메시지—오늘날 독자인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여전히 지닌 메시지—로 다시 인도함으로써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교정책을 제공한다.
빌 T. 아놀드 | 애즈버리 신학교 구약 해석학 폴 S. 아모스 교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의 최신작인 본서에서 존 H. 월튼은 중요하고 유익한 많은 명제를 공유한다. 이 시리즈의 독자들이 기대하듯이, 그는 예언서를 읽는 방법에 대한 대중적인 가정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성경의 고대 세계를 열어 보여주며, 또한 현대 학문의 주요 흐름을 신앙고백적 틀 안으로 끌어들인다. 결국 그는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서 예언서의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의 삶을 위해 신중하게 적용하도록 도와준다.
존 W. 힐버 | 맥매스터 신학교 구약학 교수
“잃어버린 세계” 시리즈는 교회가 성경 해석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고, 사상가들의 무대에서 신앙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합리성을 갖추도록 돕는 데 기여했다. 이 최신작도 예외는 아니며, 우리를 과거로 인도하여 메시아적 성취를 훨씬 뛰어넘는 우리를 향한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새롭게 들려준다. 고대 근동 세계에 대한 월튼의 풍부한 지식은 때때로 혼란스럽고 난해한 예언서들에 명료함을 더해줌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에서 예언자의 말씀에 충실하게 해준다.
브리트니 N. 멜튼 | 리젠트 칼리지 구약학 부교수
존 월튼은 오늘날 교회를 위한 가장 탁월한 구약 해석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예언서의 잃어버린 세계』는 구약 예언자들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진지한 성서학적 연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함과 신실함으로 예언서의 메시지를 읽도록 돕는 훌륭한 안내서다. 이 뛰어난 저작에 깊이 감사한다.
J. 리처드 미들턴 | 노스이스턴 신학교 성경적 세계관 및 주해 교수
[본문 중에서]
예언은 고대 세계에서 잘 알려진 제도였으며, 그 당시의 많은 예언 신탁, 특히 고바빌로니아(기원전 제2천년기 전반)와 신아시리아(기원전 제1천년기 중반) 텍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져 왔다.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이 주변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언을 대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예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고대 세계에서 통용되던 보편적인 사상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구약의 예언은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는 예언자의 동시대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더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들 주변의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인식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 문학 장르 자체에 발전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고대 세계에 존재했던 예언을 조사한 후 이스라엘 예언과의 유사점 및 차이점 모두를 논의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예언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 사고방식을 탐구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이다.
_ “서론” 중에서
결과적으로 비록 우리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는 전제를 수용한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메시지가 종종 황홀경에 빠진 점술가의 점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설령 우리가 예언자들의 역할에서 전망가의 모습을 더 많이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예언자들을 통찰력 있는 문화 비평가로 격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미래에 대한 무작위적이고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며, 그것들은 언약,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정황과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_ “명제 3 : 예언자는 미래를 점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언하는 자다” 중에서
이전 명제들에서 다양한 유형의 예언 메시지를 언급하는 이유를 이미 설명했었는데, 이제 그런 문학적 유형들을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분류는 고전 시대에 속한 예언 문서들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구약/히브리 성경의 정경을 구성하는 고전 시대 예언자들의 책에 담긴 거의 모든 신탁 자료는 “고발”(indictment), “심판”(judgment), “교훈”(instruction), 혹은 “결말”(aftermath)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_ “명제 7 : 예언 메시지의 범주를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명민한 독자가 될 수 있다” 중에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확인하거나 예견할 수 있는 성취에 근거하여 예언자들의 해석을 전용하는 일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예언은 성취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선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록 그것이 우리의 기대와는 매우 다른 형태를 보이더라도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수행하고 계심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는 성취가 어떤 양태로 나타날지 예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신약 저자들뿐 아니라 구약 예언자들조차도 종종 성취가 그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서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았던가!
_ “명제 10 : 메시지와 그 성취를 구분함으로써 예언 문학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중에서
묵시 문학의 이국적인 상징주의(symbolism)는 독자들의 주의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 돌리게 함으로써 전후 사정을 연결하는 창의적인 전략들을 독자들에게 제안할 수 있다. 방정식이 수학을 전개하는 수단이듯이 상징은 묵시적 환상의 소통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징이 묵시 문학의 주요 자산(stock in trade)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해석자는 그 상징들에 어떻게 접근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상징의 특징은 두 가지 관점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하나는 자체적 의미(the thing in itself)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적 의미(the thing that it stands for)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에서 “뿔”(자체적 의미)은 상징적으로 “왕”(상징적 의미)을 가리킨다. 그런 상징들은 대체로 문학과 문화에 전통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징을 우리가 해독해야 할 암호(ciphers)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묵시 텍스트에서 상징을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뿐 아니라 그런 표상에 어떤 문화적 중요성이 덧붙여져 있는지도 함께 탐구해야 한다.
_ “명제 15 : 묵시 문학에서 환상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이다” 중에서
나는 “과연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러한 비교를 전개했다. 우리는 아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이 태도를 고수한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든 전쟁의 위협에 대해 논평하는 정치인이든 제도권 종교와 교회의 붕괴를 논하는 신학자이든, 우리 시대의 전문가들은 오직 현재의 징후를 평가하고 장차 일어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경고할 수 있을 뿐이다. 고전 시대 예언자들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경고받았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현시대가 파괴적이고 문제투성이인 위기의 때라고 해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실현되고 있음을 믿는다. 절망적인 시대에도 운명론은 답이 아니며, 세상이 파멸과 붕괴로 치닫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길 것이라고 치부하는 방관적인 태도도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예언과 묵시를 해독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가 결코 빠져들어서는 안 될 허망한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_ “결론 : 읽기 전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