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천년왕국 논쟁』 출간 안내

새물결플러스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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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천년왕국에 관해 네 가지 견해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먼저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이어서 다른 학자들의 입장에 대해 비평하고 자기의 입장을 방어하는 책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가 기독교 역사의 시기에 따라 어떻게 다양하게 변해왔으며 그 함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독교 종말론, 특히 천년왕국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서평


기독교 성서를 억지로 혹은 자의적으로 그릇되게 해석하면 이단이나 사이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이단 혹은 사이비는 대체로 성서의 묵시묵학이라 불리는 장르를 잘못 해석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묵시문학이란 인간의 불의하고 사악한 역사가 계속되어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에 과격하게 개입하여 정의를 실현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개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책을 가리키며,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와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이 대표적이다. 묵시문학은 난해한 상징과 은유적 표현이 가득하기 때문에 이를 억지로 해석하려 하면 이단이나 사이비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왕국” 논쟁 역시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요한계시록 20:1-3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천사가 사탄을 체포하여 1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가둔다는 내용이 나오고, 이어서 4절에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1천 년 동안 왕노릇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천년왕국”이란 개념이 생겨났다. 천년왕국이란 지상의 역사에서 악의 세력이 크게 패배하고 흡사 낙원과 같은 시절이 1천년 동안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은 실재하는 나라인가, 아니면 신학적인 상징적 개념인가? 만약 천년왕국이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 실재한다면 그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띤 나라일까? 반대로 천년왕국이 상징적 혹은 은유적 표현이라면 그 상징이 지시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크게 네 가지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그것은 크게 보아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고, 전천년설은 다시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나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천년왕국이란 말은 쉽게 접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전천년설, 후천년설을 나누는 기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전천년설과 후천년설을 나누는 기준은 간단하다.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고 믿으면 전천년설이고, 반대로 천년왕국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고 생각하면 후천년설이다. 무천년설은 말 그대로 천년왕국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역사 속에서 실현된 개념이란 입장이다.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채택하는 성서 해석 입장은 간단하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사탄의 세력을 무찌른 다음, 20장에서 천년 간 그리스도인들이 왕노릇하는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있는, 곧 전천년설이 옳다는 것이다. 전천년설은 다시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나뉜다. 이 중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인류와 성서의 역사를 크게 일곱 세대로 나누고 각각의 세대마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변화가 있다는 입장으로, 역사의 종말에 있을 큰 전쟁, 대환난, 휴거 등을 매우 강조하는 그룹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내러티브의 전개를 시간 순서대로 이해하면 전천년설 입장을 채택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더욱이 전천년설의 경우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한 번 재림하셔서 사탄의 세력을 일망타진한 후,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다시 한 번 재림하셔서 악을 최종적으로 일소하는 등, 그리스도의 2중 재림이라고 하는 큰 난제에 봉착한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많다.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세대마다 다르게 작동했다고 가르치는 대신 단일한 구원 경륜을 말하며, 휴거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천년설의 경우 엄밀한 성서해석에 기초하고 있다기보다는 서구 역사에서 계몽주의와 과학기술의 시대를 통과하며 인간의 이성, 도덕성, 문명에 대한 낙관론이 치솟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즉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살았던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 당시의 흐름처럼 인류의 문명이 급격히 발전하다 보면 결국 지상낙원(=천년왕국)이 도래하고 그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역사의 종국에 도달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초중반에 일어났던 양차 세계 대전의 경우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후천년설의 경우 인간의 죄성을 간과한 점뿐 아니라 인류 역사가 지속될 수록 악의 세력이 더욱 팽창할 것이라는 성서의 종말관과 대치된다는 것을 망각했다는 결정적 과오가 있다.


무천년설(또는 실현된 천년왕국론)은 인간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천년왕국이 실재한다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이 천년왕국과 같은 성격을 띤다고 믿는 입장이다.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구조가 직선적 시간관을 지향하기보다는 나선형의 시간 구조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요한계시록 전체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7개의 나선형 구조가 반복된다고 본다. 이 입장을 채택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졌으므로 요한계시록 20장은 그리스도의 초림 시점으로 돌아가야 맞다. 따라서 천년왕국이란 문자적 개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사탄의 세력을 결박한 동안 지상에서는 복음이 왕성하게 전파되고, 천상에서는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한다고 믿는다. 무천년설은 신약성서의 하나님 나라 개념과 조화를 이룬다는 장점이 있다.


본서는 네 가지 서로 다른 천년왕국론을 가진 신학자들이 각자의 입장을 개진한 다음 상대의 입장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독자들은 본서 한 권을 통해서 기독교 역사에 등장했던 다양한 천년왕국론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받는 동시에 각각의 입장이 지닌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경우 요한계시록 해석뿐 아니라 종말론 전체 구조가 그릇된 성서해석에 기초한 내용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교회 현장에서는 여전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신봉하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종말론이라는 울창하고 빼곡한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고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 본서를 읽으면서 천년왕국론에 대한 바른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절실하다.

 


 

저자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

미주리주 북서부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고(故)C. W. 하지의 지도로 조직신학을 공부했다(Th. B., 1928; Th. M., 1929). 그전에는 미주리주 타키오 대학을 졸업했고 미주리 대학교에서 단기 농업 과정을 수료했다. 1933년에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57년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켄터키주 파이크빌 대학에서 8년 동안 성경을 가르쳤다. 워싱턴 D. C.에서 1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3년간 살았고 현재는 미주리주 락포트에서 거주하고 있다. 저서로는 『개혁주의 예정 교리』(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 1932), 『신학 연구』(Studies in Theology, 1947),『불멸』(Immortality, 1956), 『로마 가톨릭주의』(Roman Catholicism, 1962) 등이 있다.

 

안토니 A. 후크마(Anthony A. Hoekema)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1923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칼빈 대학(A.B.), 미시간 대학교(M.A.), 칼빈 신학교(Th.B.)와 프린스턴 신학교(Th.D., 1953)를 졸업했다. 몇몇 기독교 개혁 교회의 사역자로 섬긴 후(1944-56) 칼빈 대학의 성경 부교수가 되었다(1956-58). 1958년 이후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해왔다.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두 번의 안식년을 보냈고(1965-66, 1973-74) 『4대 주요 이단』(The Four Major Cults, 1963), 『방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What about Tongue-Speaking?, 1966), 『성령 세례』(Holy Spirit Baptism, 1972), 『그리스도인, 자신을 보다』(The Christian Looks at Himself, 1975), 『성경과 미래』(The Bible and the Future, 1979)를 썼다.

허먼 A. 호이트(Herman A. Hoyt)는 인디애나주 위노나 레이크 소재 그레이스 신학교와 그레이스 대학의 기독교 신학 학장이자 교수다. A.B., B.D., M.Th., Th.D. 학위를 취득했고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지막 때』(The End Times, 1969) 등을 저술했으며, 많은 기독교 정기 간행물과 심포지움에 천년왕국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현재 위노나 레이크 기독교 총회 이사회 의장이며, 그레이스 신학교와 그레이스 대학이 1937년에 설립되었을 때 초대 총장이었던 알바 J. 맥클레인 박사와 함께 일했다.

 

조지 엘던 래드(George Eldon Ladd)

1950년부터 풀러 신학교에서 신약 해석과 신약 신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고든 대학과 고든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B.D.) 하버드 대학교에서 Ph.D. 학위를 받았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와 바젤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를 하기도 했다. 미국 침례교 사역자로 서품을 받은 래드 박사는 그 교파의 몇몇 교회들을 섬겼다. 고든 대학 그리스어 교수(1942-45)와 고든 신학교 신약 부서의 학과장(1946-50)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중대한 질문들』(Crucial Questions about the Kingdom of God, 1952), 『복된 소망』(The Blessed Hope, (1956), 『그 나라의 복음』(The Gospel of the Kingdom, 1959), 『예수 그리스도와 역사』(Jesus Christ and History, 1963), 『신약성경과 비평』(The New Testament and Criticism, 1965), 『신약성경의 진리의 양상』(The Pattern of New Testament Truth, 1968), 『요한계시록 주석』(Commentary on The Revelation, 1972) , 『신약성서 신학』(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1974) 등이 있다.


 

편집자


로버트 G. 클라우스(Robert G. Clouse)

테레호테 소재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역사 교수이자 서품을 받은(ordained) 형제회 사역자로서 아이오와주와 인디애나주에서 교회들을 섬겨왔다. 브라이언 대학(B.A.), 그레이스 신학교(B.D.), 인디애나 주립대학교(M.A.와 Ph.D.)를 졸업했다. 기독교 사상사가 그의 전공 분야다. 『시위와 정치』(Protest and Politics, 1968)를 공동으로 편집했고 『청교도, 천년왕국, 이스라엘의 미래』(Puritans, The Millennium and the Future of Israel, 1970), 『그리스도와 현대의 정신』(Christ and the Modern Mind, 1972), 『십자가와 깃발』(The Cross and the Flag, 1972)의 몇몇 장을 썼다.


 

역자


노동래

서울대학교 공법학과와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금융공학 MBA 과정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최초의 7일』, 『그랜드캐니언』, 『예수와 십자가 처형』, 『예수와 성전』,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상, 하)』, 『기원 이론』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차례


서론 _ 로버트 G. 클라우스

1장 역사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_ 조지 엘던 래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응답 _ 허먼 A. 호이트

후천년설의 응답 _ 로레인 뵈트너

무천년설의 응답 _ 안토니. A. 후크마

2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_ 허먼 A. 호이트

역사적 전천년설의 응답 _ 조지 엘던 래드

후천년설의 응답 _ 로레인 뵈트너

무천년설의 응답 _ 안토니 A. 후크마

3장 후천년설

후천년설 _ 로레인 뵈트너

역사적 전천년설의 응답 _ 조지 엘던 래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응답 _ 허먼 A. 호이트

무천년설의 응답 _ 안토니 A. 후크

4장 무천년설

무천년설 _ 안토니 A. 후크마

역사적 전천년설의 응답 _ 조지 엘던 래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응답 _ 허먼 A. 호이트

후천년설의 응답 _ 로레인 뵈트너

후기

후기 _ 로버트 G. 클라우스

참고 문헌

저자・편집자 소개

 



본문 중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는 것은 성경 해석자들이 다뤄야만 하는 주제 중 좀 더 어려운 주제다. 신자들이 다니엘 2장이나 요한계시록 20장 같은 구절들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제시할 때 그 문제가 예리해진다. 이런 텍스트들을 인간 역사의 흐름과 관련지으려는 시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의 통치를 설명하는 몇 가지 시스템을 만들어냈는데, 그것들 세 가지에 전천년설, 무천년설, 후천년설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이 범주들은 유익하고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어떤 면에서는 유감스러운 구분이다. 그 구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와 좀 더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천년주의자들이 고대하는 왕국은 후천년주의자들이 고대하는 왕국과 판이하다. 차이는 그 왕국이 수립될 시기와 방식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그 왕국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제 행사의 본질과 방식에 관해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그 견해들을 자세히 정의함으로써 그 견해들과 그 함의들을 이해할 수 있다.

_서론

 

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 도래할 시대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 목적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 전에 그가 땅에서 1,000년 동안 다스리실 것이라고 진술하는 교리다. 이는 요한계시록 20:1-6의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요한계시록 19:11-16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정복자가 자신의 적들, 곧 적그리스도와 사탄과 죽음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는 것으로 묘사한다. 요한계시록 19:17-21은 먼저 적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반대하여 그를 지원한 무리들의 멸망을 묘사한다. 요한계시록 20장은 이어서 적그리스도 배후에 있는 악한 힘,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인 용의 멸망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두 단계로 일어난다. 우선, 사탄이 적그리스도를 통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결박되어 “무저갱”(계 20:1)에 감금된다(계 20:3). 이때 성도들의 “첫째 부활”이 일어나(계 20:5) 그리스도가 이 땅을 1,000년 동안 통치하시는 데 참여한다. 이 일 후에 사탄이 결박에서 풀려나고, 사탄은 그리스도가 이 땅을 1,000년 동안 다스리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반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발견한다. 최후의 종말론적 전쟁이 뒤따르고 마귀가 불과 유황의 못에 던져진다. 그때 천년왕국 전에 부활하지 않은 사람들의 둘째 부활이 일어난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석 앞에 나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그때 사망과 무덤이 불 못에 던져진다.

_1장 역사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핵심적인 현안에 초점을 맞추면서 래드는 “세대주의는 구약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의해 종말론을 형성하고 신약성경을 그것에 맞춘다. 비세대주의 종말론은 신약성경의 명시적인 가르침을 통해 종말론을 형성한다”라고 단언한다(본서의 38쪽을 보라). 내가 판단하기에 이것은 사실에 대한 공정한 진술이 아니다. 세대주의자는 구약성경에 비추어 신약성경을 해석하는 반면 비세대주의자는 구약성경에서 도출된 것이 아닌 해석 체계를 통해 신약성경에 접근하고 이를 신약성경에 부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래드가 “(a) 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약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통해 예견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성취되었고, (b) 구약성경의 약속들이 기독교 교회에서 성취되었다는 피할 수 없는 징후들이 있다”고 단언할때(본서의 38쪽을 보라) 그의 말은 무천년설처럼 들릴 뿐만 아니라 무천년설과 아주 가깝다. 이 지적을 피하기 위해 그는 교회가 명확히 이스라엘과 구분되는 로마서 11장 같은 구절들을 해석할 때 영적 해석에서 문자적 해석으로 이동할 필요를 느낀다.

_1장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응답

 

래드는 “천년왕국 교리는 구약성경의 예언들에 근거할 수 없고 신약성경에만 근거해야 한다”는 것과 “성경에서 실제로 천년왕국에 관해 말하는 곳은 요한계시록 20:1-6뿐이다”라는 것을 인정한다(본서의 44쪽을 보라). 그는 “그리스도는 현재 하나님의 섭정으로서 하늘에서 다스리고 계신다”라고 말한다(본서의 41쪽을 보라). 그는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하는 히브리서 1:3을 인용하고 그리스도가 이제 힘과 탁월함의 자리인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고 말한다. 시편 110:1의 성취로서 그리스도는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판이 될 때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실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는 그리스도가 “지금 주님이시다. 그가 지금 하나님의 오른쪽에서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나 그의 현재의 통치는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인다. 그것은 세상에게는 보이지 않고 인식되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도래는 이미 그분의 것인 주권을 드러내는 것, 즉 계시를 의미할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실 무천년주의자나 후천년주의자가 이렇게 썼더라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천년주의자로서 나는 교회 시대 동안 세상이 의로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그 통치의 결과가 강조되지 않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_1장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의 응답

 

우리의 기본적인 의견 불일치는 요한계시록 20:1-6의 해석과 관련된다. 나는 래드가 이 구절이 성경에서 천년왕국에 관해 말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보고 반가웠다(본서의 44쪽을 보라). 이 점에 관해서도 우리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_1장 역사적 전천년설: 무천년설의 응답

 

그것은 그 단어의 모든 의미에서 문자적인 왕국일 것이다. 이 왕국은 인간이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상의 여느 왕국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이스라엘 왕국만큼이나 실제적일 것이다. 그것의 중심지의 실제 장소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일 것이다(옵 12-21절). 실제 왕이 물리적인 왕좌에 앉을 것이다(사 33:17). 인간의 나라들이 그 왕국의 복지와 구원의 사역에 참여할 것이다(사 52: 10). 이 세상의 사악한 왕국들은 그리스도가 도래하실 때 갑작스럽고 재앙적인 종말을 맞이할 것이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그 왕국들을 대신할 것이다(단 2:31-45). 이 왕국은 역사적 다윗 왕국의 부활이자 연속일 것이다(암 9:11; 행 15:16-18을 보라). 신실하고 거듭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회복되고 이 왕국의 핵심이 될 것이며 그리하여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이 실현될 것이다(미 4:7-8; 렘33:15-22; 시 89:3-4, 34-37).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수도가 되고 그는 그곳에서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사 2:3; 24:23).

_2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호이트는 천년왕국이 유대인의 왕국이라는, 세대주의에서 두드러진 중요한 점 한 가지를 경시한다. 그가 “이 왕국은 역사적 다윗 왕국의 부활이자 연속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본서의 98쪽을 보라), 그는 이것이 성전의 재건과 구약성경의 전체 제의 및 끝없는 피 제사의 사이클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약 시대의 제의로 돌아가는 것은 히브리서 8:13에 의해 불가능해졌다.

_2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의 응답

 

사실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거절당하셨을 때 그분은 배교한 유대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을 폐하시고 일련의 새로운 관리들인 사도들을 임명하셨으며, 그들을 통해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다. 한번은 그가 유대인 통치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마 21:43). 그리고 그들이 메시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교회가 세워진 후에도 계속 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에 그들은 바울이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다”(살전 2:16)라고 엄숙하게 말하는 상태에 들어갔다. 그것은 미래의 민족적인 개종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제 새 언약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다루시는 권위 있는 도구다. 나는 언약들에 관한 성경의 이 교리가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모두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과 양립할 수 있다.

_2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후천년설의 응답

 

중요한 문제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건전한 성경 해석 방법에 토대를 두고 있는가?”인데,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다. 실제로 호이트의 논문을 떠받치는 기본적인 해석 원칙은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을 해석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호이트는 장차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라는 자기 주장의 근거를 주로 구약성경 예언들에 두고, 나아가 이러한 구약성경 예언들의 문자적 해석에 비추어 신약성경을 해석한다. 그러나 그는 믿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믿는 비이스라엘의 미래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한다.

_2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무천년설의 응답

 

후천년설은 하나님 나라가 지금 복음 전도와 개인들의 마음속에서의 성령의 구원 사역을 통해 세상에서 확장되고 있다는 것과 세상이 궁극적으로 기독교화되리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흔히 천년왕국이라 불리는 의(righteousness)와 평화의 긴 기간 끝에 일어나리라는 것을 주장하는, 마지막 일들에 관한 관점이다. 후천년설의 원칙에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 일반적 부활, 일반적 심판, 천국과 지옥이 완전히 도래하는 일이 후속되리라는 점이 덧붙여져야 한다. 후천년주의자들이 고대하는 천년왕국은 따라서 현재 시대(dispensation), 즉 교회 시대 동안의 영적 번영의 황금시대다. 이것은 현재 세상에서 활동 중인 세력들을 통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매우 긴 기간, 아마도 문자적인 1,000년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다. 개인들의 특성이 변하여 인류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삶이 향상될 것이다. 그때 세상은 대체로 지금까지는 예를 들어 몇몇 가족과 몇몇 교회 및 유사 조직 같은 소수의 격리된 집단에서만 발견된 의의 상태를 누릴 것이다.

_3장 후천년설: 후천년설

 

세상이 점점 나아진다는 주장은 양날의 칼이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주장도 똑같이 타당하다. 신약성경 시대에 문명은 위대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누렸다. 당시에 지중해 세계는 두 세기 동안 평화로웠다. 이런 시기는 결코 반복되지 않았다. 우리의 생애에 우리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한민국, 베트남, 근동, 아일랜드, 레바논 등에서 일어난 끊임 없는 일련의 좀 더 작은 규모의 전쟁을 목격했다. 우리는 나치주의가 발흥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것과 파시즘의 발흥과 몰락, 공산주의 정부의 발흥과 안정화를 목격했다. 오늘날 세상은 말 그대로 무장한 캠프다. 뵈트너는 전천년설을 세대주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내가 쓴 장이 보여준 바와 같이 나는 뵈트너가 “전천년주의자들”에게 귀속시키는 문자주의적 주해를 추구하지 않는다.

_3장 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의 응답

 

아마도 우리가 언제 또는 어떤 단계에서 이 왕국이 실제로 실현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뵈트너는 이것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모든 죄가 근절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많은 형태의 모든 악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축소될 것이고 기독교의 원칙들이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그리스도가 돌아오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과 일치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지금 어떤 증거라도 보고 있는가?

_3장 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응답

 

하지만 혹자가 세상이 실제로 나아지고 있다는 뵈트너의 말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어떻게 세상이 1,000년 동안의 황금시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증명하는가? 인류의 운명이 갑자기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시대 다음에 새로운 암흑시대가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서 뵈트너의 논문에서 배교(또는 “신앙의 포기”), 대환난,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은 당황스럽다. 누가복음 18:8에 기록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예수의 말씀에 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런 말씀들은 그리스도가 돌아오실 때 참된 신자들의 수가 참으로 적을 수 있음을 암시하며,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는 기독교화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뵈트너의 주장(155쪽을 보라)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_3장 후천년설: 무천년설의 응답

 

내게 가장 만족스러워 보이는 요한계시록의 해석 체계(그 체계에도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는 점진적 병행(progressive parallelism)으로 알려진 체계인데, 이 체계는 윌리엄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의 요한계시록 주석인 『정복자들 이상』(More Than Conquerors)에서 훌륭하게 방어되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요한계시록은 서로 병행하여 전개되는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그 부분들 각각은 그리스도의 초림 시부터 재림 시까지의 교회와 세상을 묘사한다.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인 숫자들로 가득하다. 확실히 이 책에서 사용된 “1,000”이라는 수는 문자적 의미로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 숫자 10은 완전함을 나타내고 1,000은 10의 세제곱이기 때문에 우리는 “1,000년”이라는 표현을 완전한 기간, 즉 확정되지 않은 매우 오랜 기간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조에 관해 앞서 언급된 내용과 일치하도록, 그리고 요한계시록 20:7-15(사탄의 “짧은 시절”과 최후의 전쟁 및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다)에 비추어 우리가 1,000년의 기간이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시작하여 그의 재림 직전까지 이어진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_4장 무천년설: 무천년설

 

나는 그의 요한계시록 20장 주해를 제외하고 후크마가 쓴 내용의 사실상 모든 부분에 동의한다. 나는 마태복음 12:29이 예수의 지상 사역이 하나님 나라가 역사 안으로 침투한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사탄의 결박을 의미한다고 명확히 가르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 결박은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사탄의 결박과 다르다. 전자는 사탄의 힘이 분쇄되어 남녀 개인들이 그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후자는 그가 민족들을 더 이상 속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이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을 보았다는 사실이 그 장면이 하늘의 장면임을 증명하지 않는다. 사실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요한이 언제 하늘에 있고 언제 땅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 맥락에서 요한은 명확하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라고 말함으로써(계 20:1) 그 장면이 하늘에서 땅으로 전환되었음을 단언한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서”라는 진술(계 20:4)이 우리가 믿는 바와 같이 몸의 부활을 의미한다면 그 장면은 땅이다.

_4장 무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의 응답

 

후크마가 정직하게 인정하듯이 요한계시록을 다루는 이 방법이 그에게는 가장 만족스러워 보이지만 이 방법에도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미래주의의 함의를 제거하고 그의 체계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문자주의를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는 요한계시록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추론이 학문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어려움들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요한계시록이 묵시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책이 모호해지지 않는다. 묵시적인 제시 방법은 그 책을 한층 더 생생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성경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이 이미지는 평균적인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이 책에서 비유적인 내용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수준보다 훨씬 적다. 평균적인 사람들에게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위치시키려는 노력은 인간의 정신으로 하여금 텍스트에 나오지 않는 뭔가에 동의하도록 요구하는 처사다. 그보다 더 심각한 요소로서, 혹자가 일곱 부분이 같은 시기(초림과 재림 사이)를 다루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사람은 그것의 타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혼동에 직면할 것이다. 이것은 무천년설의 견고한 기초를 세우기에는 허약한 토대다.

_4장 무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응답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이 역사적 전천년설이나 세대주의와 비교될 경우 후천년설과 무천년설 사이에는 비교적 별로 차이가 없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후천년설은 하나님 나라가 현재 복음 선포와 성령의 사역을 통해 확대되고 있으며, 세상이 궁극적으로 기독교화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오랜 의와 평화의 기간 끝에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천년설은 성경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그런 의와 평화의 기간이 있으리라고 예언하지 않는다는 것과 선과 악,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가 병행하여 동시에 발전하기를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하리라는 것을 주장한다. 후천년설과 무천년설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 후 즉시 부활과 심판 및 영원한 상태가 이어지리라고 주장한다.

_4장 무천년설: 후천년설의 응답

 

전천년설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종종 교회를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진하는 기관으로만 본다. 비관적인 세계관을 증진하기 위해 고강도의 압박 전술이 사용되며 그리스도가 돌아오시도록 “마지막 영혼을 얻는 것”이 강조된다.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은 교회를 사교 클럽으로 취급하는 반면 근본주의 회중들은 주님을 위한 선전에 관여하는 대항문화 집단을 만들려고 노력함으로써 과녁을 놓친다.) 이 두 태도와 대조적으로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어 사람을 온전해지게 만들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을 계속 돌보기도 하는 치유 공동체로 묘사한다. 이 관심은 모든 분야의 인간의 필요를 돕는 데 미친다. 따라서 무천년주의자들과 후천년주의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대의 또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다른 많은 전천년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한다. 후천년설은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정한 부흥이 오고 그들을 통해 인간의 모든 제도에 치유하는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을 연다.

_후기

 


추천사 중에서


기독교 종말론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신학적 이론이다. 종말론 논의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천년기(千年其), 혹은 천년왕국(Millennialism)에 관한 논쟁이다. 기독교 역사의 시대마다 우세했던 천년기론이 있었다. 대표적 세 가지 천년기 유형으로는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있다. 한편 19세기에 이르러 전천년설에서 가지치기해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나오고, 전통적 전천년설을 역사적 전천년설이라 부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천년기에 관한 네 가지 견해가 수립된다. 이 책은 역사학자가 좌장 역할을 하면서 네 견해를 각각 대변하는 학자(신약학자와 조직신학자)들이 각자의 신학적 입장에서 천년기를 논하고, 다른 학자들의 논평에 신실하고 친절하게 답한다. 천년기에 관한 큰 그림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류호준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세계 제2의 선교사 파송교회, 한국교회가 이렇게 선교에 열심을 내는 아름다운 전통은 어디에서 왔을까? 전천년설일 것이다! 한국개신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정체성을 교리면에서 보자면, 이신칭의론일까, 아니면 회심이나 방언이나 예정론일까? 전천년설이다! 본서는 전천년설을 위시한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이 주장하는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그리고 조직신학적인 입장을 면밀하게 살피고 꼼꼼히 비교한다. 본서는 독자들이 한국교회의 천년설 이해를 차분하게 살피면서 반성하도록 도우며, 교회가 이 땅에서 종말론적으로 지닌 사명을 새롭게 깨닫도록 인도할 아주 좋은 안내서다.

유해무 | 고려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이 책은 요한계시록 20장을 중심으로 종말론의 주요 주제인 천년왕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를 놓고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을 차례로 소개하며, 각 입장에 대해 다른 입장을 지닌 학자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비평하는 방식으로 저술된 책이다. 자신의 종말론적 입장의 근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다른 입장들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이경직 |백석대학교 교수

 

상징과 은유의 언어로 충일한 고대 묵시문학의 일종인 요한계시록 20:1-6의 본문은 말세에 이루어질 이른바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가지 신학적 이론을 생산해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이 그것이다. 전천년설은 또다시 분기하여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대별되는데 이러한 교리적 관점이 일견 색바랜 옛시절의 고고학적 유물처럼 고색창연해 보이지만 그것이 여전히 다수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심성을 긴장하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의 용어에 위압감을 느끼거나 헷갈려하는 기독 신앙인들, 이 세상의 종말과 그 이후 펼쳐질 내세에 대한 성서의 비전에 관심을 지닌 독자들 모두에게 신앙적 자기계몽의 효과란 측면에서 일정한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차정식 | 한일장신대학교 교수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서로 다른 입장들로 말미암은 분열과 대립 그로 인한 적대감은 적잖게 오해와 부정확한 이해들로부터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천년왕국설 논쟁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예다. 천년왕국설 논쟁은 단순히 종말에 대한 전망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 및 무엇보다 성경해석의 틀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함의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주제이기 때문에, 여러 견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러한 논쟁 시리즈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자칫 복잡할 수 있는 신학적 주제를 이해하기 쉽도록 명쾌하게 소개하는 윗세대 학자들의 깊은 학문성과 서로 간의 꾸밈없는 학문적 대화의 모습을 접할 수 있어 더욱 소중하다.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 주제에 대하여 정확히 알기 원하는 모든 신학자, 목회자, 일반 성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다.

한상화 | 아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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