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복음 전도를 빙자한 폭력과 수탈의 역사』 출간안내

새물결플러스
2020-09-15
조회수 238

책 소개

본서는 아메리카 발견 직후부터 로마 교황청을 등에 업은 스페인 왕조가 복음 전도라는 명목하에 어떻게 아메리카를 수탈하고 그 원주민을 살상해 왔는지, 그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학이 어떻게 동원되었는지 자세히 고찰한다. 또한 일부 도미니코회 소속 수사들이 그러한 위선과 탐욕에 맞서 어떻게 그들의 죄를 질책하고 회개를 촉구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복음이 부와 권력 추구 수단으로 전락한 작금의 교회 현실을 우려하며 복음의 공공성 회복을 염원하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서평

1492년 8월 세 척의 배에 120명의 선원을 태우고 스페인의 팔로스 항구를 출발한 콜럼버스는 10월 12일 (오늘날) 아이티와 쿠바 부근의 섬에 도착한다. 그는 이곳이 아시아의 동쪽 끝이라 확신하고서 서인도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그곳 원주민들을 인디아스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상륙한 대륙은 기존의 유럽인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낯선 대륙이었고, 사람들은 훗날 그 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으며, 이 사건을 통해 당시 사면초가에 빠져 있던 유럽은 일약 세계 최강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갖게 된다. 이때로부터 500년이 흐른 1992년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는데, 과연 이것이 '발견'인지 아니면 '강제 수용' 행위였는지와 더불어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상륙한 사건이 정말 '기념'할 만한 것이었는지를 되묻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본서가 바로 그책이다. 즉 본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직후부터 스페인과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면밀히 추적하고 재구성하면서 정복자들이 '기념'할 만한 일들이 인류의 양심에 비춰볼 때 실제로는 수치스럽기 그지 없는 잔혹한 행위들로 점철되었음을 냉정하고 차분한 어조로 밝힌다.

페루의 지식인 프란시스코 미로 케사다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그 이후의 정복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라고 표현했듯이, 콜럼버스와 아메리카 대륙의 만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 중 하나다. 당시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인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우선 막대한 전비를 소진한 까닭에 국가 재정이 고갈된 상태였고,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망을 조여오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공포심이 상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메리카의 발견은 이슬람의 포위망을 뚫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남쪽과 동쪽으로는 이슬람교에, 북쪽으로는 가파르게 세력을 넓혀가는 개신교에 포위된 형국이었던 가톨릭 세력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 나아가, 아메리카의 발견을 계기로 유럽은 비로소 ‘근대’에 돌입하게 된다. 곧 유럽인들은 기존의 대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을 넘어서서 훨씬 더 넓고 큰 세상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통해 세계에 대한 보편적 관점을 획득하며, 아메리카에서 착취한 막대한 노동력과 부를 바탕으로 근대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의 선봉에 선 국가가 스페인이다.

열혈 가톨릭 국가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야만인의 습속을 벗어나지 못한 아메리카 원주민을 문명화시키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원주민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미신과 우상숭배로부터 해방되어 (유럽인들처럼) 사람답게 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아메리카 대륙을 기독교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당시 로마 교황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에게 독점적 권리를 주었듯이) 스페인 국왕에게 아메리카의 지분과 복음화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위임하는 공식 칙서를 발표한다. 신적 대리인으로 간주된 교황이 스페인 국왕에게 아메리카에 대한 영적-물적 소유권을 위임했으므로, 아메리카에 대한 일체의 지배권은 스페인 국왕에게 귀속되고, 스페인 국왕은 거기서 얻는 이익의 얼마를 교황청에 헌납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고 새로운 대륙에 대한 본격적인 수탈과 억압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표면적 이유는 ‘복음화와 문명화’에 있었지만 실상 ‘경제적 야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시초부터 그곳의 ‘금’을 언급하면서, 마치 구약성경의 솔로몬이 바르와임 금을 가져다 황금으로 도배된 성전을 건축했듯이 자신도 스페인 왕실을 위해 아메리카에서 막대한 금을 공수할 것을 공언했다. 실제로 이후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갖은 잔인한 방법으로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각종 자원을 약탈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심지어 아메리카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상쇄할 목적으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잡아다 강제로 신 대륙에 이식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극심한 과로, 현저한 영양결핍, 열악한 위생 상태, 잔혹한 폭력과 학대 등으로 엄청난 숫자의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들이 입술로는 성경에 나온 신을 믿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섬기는 신이 ‘황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처럼 유럽과 아메리카의 만남은 유럽 입장에서는 막대한 자원과 부 그리고 노동력을 확충하여 세계사를 좌우하는 제국주의 길로 접어드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고유한 역사와 전통의 처참한 파괴, 재산과 자유의 박탈, 무엇보다 대재앙에 가까운 수준의 인구 멸절로 이어졌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으면 , 스페인에 극렬히 저항하다 체포된 어느 원주민 추장은 화형을 앞두고서 죽기 전에라도 세례를 받고 개종하여 천국에 가라는 가톨릭 수사의 권유에 답하기를 자신은 죽어서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천국에 있느니 차라리 지옥행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을까!

하지만 당시 모든 종교인들이 스페인의 아메리카 수탈에 적극 가담하거나 앞장선 것은 아니었다. 라스 카사스 신부를 비롯하여 일부 도미니코회 수사들은 구약성경의 예언자 전통에 입각하여 스페인 왕실과 로마 교황청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하는 동시에 원주민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런 정신은 수백 년이 지난 다음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전통으로 재현되었다.

본서는 4, 5세기 전에 정치와 종교가 공교하게 결합된 스페인 제국이 어떻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유린하고 수탈했는지를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추적함으로써 그동안 서구 백인 중심의 역사관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세상에 고발할 뿐 아니라, 나쁜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을 때 어떤 역사적-사회적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해주는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본서를 통해 단순히 500년 전 발생한 남의 나라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 이 땅에서도 한편으로 탐욕을 숭배하며 다른 한편으로 타자에 대한 증오와 배제의 논리로 무장한 종교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혹은 신앙의 논리를 앞세워 얼마나 무서운 행위를 반복할 수 있는지를 성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땅의 종교에도 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에 입각한 사회적 약자의 보호 및 정의 실천의 함성과 몸부림에 대한 필요가 절실하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본서는 정의와 인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밀한 학문적 논증이란 두 기둥 위에 세워진, 이 분야의 고전이 될 것이다.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 루이스 N. 리베라

푸에르토리코 복음주의 신학교 M. Div. 과정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M.A. 및 Ph.D.를 취득한 후 독일의 튀빙겐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푸에르토리코 복음주의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푸에르토리코 대학교 인문학 조교수,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푸에르토리코 대학교 교양학부 인문학 학장이다. 그는 본서를 비롯한 많은 책과 논문을 썼다.


옮긴이 | 이용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KBS 취재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으나, 이후 교회를 섬기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고 기독교 전문 번역자이자 개혁파 목사로 일하고 있다. 모순된 현실을 복음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인 신학에 관심이 많다. 『현대를 위한 성령론』, 『새 하늘과 새 땅』, 『인간의 타락과 진화』, 『신정론 논쟁』, 『초기 기독교와 축귀 사역』(이상 새물결플러스), 『ESV 스터디 바이블』, 『개혁주의 조직신학』(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60여 권의 신학 서적을 번역했다.




차례


서문

영문판 서론


1부 발견, 정복, 복음화

1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신화와 현실

2 알렉산데르 교황의 칙서

3 국가적 섭리론과 메시아 사상

4 기독교 제국: 라스 카사스와 비토리아의 저술 고찰


2부 아메리카 대륙 정복에 있어서의 자유와 예속

5 자유와 예속: 원주민의 노예화

6 자유와 예속: 엥코미엔다

7 이성적인 피조물인가, 아니면 우매한 짐승인가?

8 신들의 전투

9 원주민 대학살

10 흑인 노예제


3부 정복에 대한 신학적 비평

11 신학적·법률적 논쟁

12 복음 전도와 폭력

13 예언과 압제

14 정복자들의 하나님

참고문헌




추천사 중에서

신학은 아이러니하게 인간의 포악과 탐욕을 정당화해주곤 했다. 본서에서 저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포악의 역사 500년을 되살피며 구원의 종교라는 가면에 숨겨진 기독교의 진면목이 약탈과 정복자의 종교였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이 땅의 기독교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이라면 반드시 살펴 읽어야 할 책이다.

박충구, 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제국주의 세력이 콜럼버스 이후 중남미 대륙을 착취, 약탈하면서 보여준 일련의 식민화 과정은 그토록 영광스럽게 추앙해온 서구 기독교 신학과 교리는 물론, 철학과 법률 등 온갖 지성적 신앙적 도구들이 기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탐욕의 기제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을 본서는 상세한 역사 자료의 논증을 통해 재현한다. 성경마저 그 가운데 편취되어 중남미 원주민의 노예화를 정당화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일부 열광적인 기독교 세력의 ‘내가복음’의 선례를 보는 듯하다. 본서는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고 뜸한 중남미의 제국주의적 침탈의 역사를 소재 삼아 풍성한 자료 분석과 비평적 재구성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현주소를 통렬하게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한국신약학회 회장


저자는 본서에서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적용이 낳은 비참한 결과인 착취, 대학살, 질병, 노예화 등과 더불어 신학적 반성과 신앙적 참회의 절실한 필요성을 제시한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기독교 선교와 복음화를 앞세워 저질러진 모든 악행을 참회의 눈물로 기억하여 기록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몫이며 미래의 선교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한국 기독교와 교회의 변혁을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귀중한 책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최형근, 서울신학대학교 선교학 교수


이 책은 아메리카의 이른바 ‘발견’ 500주년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보다 훨씬 더 오래 갈 것이다.

로버트 맥아피 브라운,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태평양 종교학부 신학 및 윤리학 명예 교수


책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루이스 N. 리베라 박사의 본서는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오래 갈 것이다. 첫째, 이 책에 담겨 있는 풍부한 원천 자료들로 인해 본서는 여러 학문 분야 중 특히 역사, 문화, 신학 방면의 연구서가 되었다. 둘째,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한 동기와 이유를 꿰뚫어 보는 리베라 박사의 능력은 오늘날의 많은 히스패닉에 관한 문제들과 관점들의 밑바탕에 깔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독특한 자원이다. 셋째, 이 책은 아메리카의 발견과 정복에 대해 열정적으로 재고한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

아다 마리아 이사시-디아스, 드루 대학교 윤리학 및 신학 조교수


본서는 탁월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책으로서, 풍부하고 탄탄한 역사 연구에 충분한 근거를 두고 유럽의 기독교와 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광범위하고 다차원적이며 고도로 정교한 신학적 연구 결과를 제공한다.

페르난도 F. 세고비아, 반더빌트 대학교 신학부 신약 및 초기 기독교 교수




본문 중에서

본서는 스페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정복을 자의적이고 이질적인 해석의 패턴을 부과하지 않고, 그 자체의 이념적 배경 안에서, 그리고 그 사건에 의해 촉발된 이론적 논쟁의 지평 안에서 재고하려는 시도다. 내가 사료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당대에 벌어졌던 논쟁의 주인공들은 유럽의 패권과 기독교라는 종교가 전 세계로 확대되어가는 역사 형성의 과정에 개입된 여러 쟁점에 대해 그들 각자가 인식을 달리하고 있음을 분명하고 명철하게 진술했다. 나는 강력한 한 국가가 무력을 통해 제국을 건설함과 동시에 자신의 헤게모니에 대한 찬반 토론을 그토록 강력하게 전개했던 다른 사례를 알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역사 논쟁의 주인공들이 각자의 언어와 담화로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도록 허용하려고 한다.

_영문판 서론

 

신세계를 정복함으로써 유럽은 이슬람의 포위에서 탈출할 길이 생겨났을 뿐 아니라 유럽의 세계 패권도 시작되어, 여러 단계를 거친 제국주의 체계가 근대 시대의 특징이 되었다. 유럽의 식민주의는 1492년 10월 12일에 시작되었다(교황 레오 13세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교묘한 말로 표현한다. “유럽이라는 이름이 가진 권위가 이례적으로 높아졌다”[Terradas Soler 1962, 128]).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자기들의 땅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최초의 무장 반란을 일으킴에 따라 유럽의 식민주의에 맞선 투쟁도 시작되었다. “신세계의 야만인들”에 관한 비토리아의 해설(Urdanoz 1960, 641-726)은 스페인이 아메리카의 땅과 주민에 대한 지배를 자신에게 귀속시킨 것을 합리화하는 정당한 이유와 부당한 이유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뿐만 아니라, 훗날 유럽의 여러 제국주의 체제가 내놓는 온갖 정당화 논리들에 대해서도 능숙하게 예견한다.

(나침반·인쇄술·화약이라는 기술 진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유럽의 그러한 팽창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은 제국주의 이념으로서 독보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 사실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천박한 물질주의에 빠지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대는 이 표식으로 정복할지니라”(In hoc signo vinces)는 콘스탄티누스의 표어였지만, 그것은 또한 스페인의 두 가톨릭 군주의 심리를 충실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은 우리가 가진 역사적 정체성의 뿌리에 관해 비판적으로 성찰함과 동시에 공통의 연결 고리와 과제를 가진 사람들로서의 우리의 미래에 관해 심사숙고하기에 아주 좋은 그리고 다시 없을 기회이기도 하다. 칠레의 역사가인 페르난도 미레스(1986, 13)가 확언하듯이 “그러므로 기념의 개념을 뒤집어서 그날을 성찰을 위한 날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의무다.”

_1장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신화와 현실


알렉산데르 교황의 칙서 가운데 가장 유명한, 1493년 5월 4일 두번째 「특히」(Inter caetera)의 몇 대목을 인용해보자.


하나님의 종들 중의 종인 알렉산데르 주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아들인 페르난도 왕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딸인 이사벨 여왕, 곧 카스티야와 레온과 아라곤과 시칠리아와 그라나다의 군주들에게 문안 인사와 더불어 사도적 축복을 전합니다.

엄위하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들 가운데 우리 마음의 소원에 따라 가톨릭 신앙과 기독교가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모든 곳에서 높임 받고 확대되고 확장되며 그로 말미암아 영혼들의 건강이 확보되고 야만스런 민족들이 굴복되어 믿음에 이르도록 하는 이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그대들은 우리가 언제나 알아온 대로, 그리고 그대들의 존귀하고 합당한 행동이 분명히 보여주는 대로 참된 가톨릭 국왕이자 군주이며…또한 그대들이 그라나다 왕국을 사라센의 폭정에서 회복시킨 원정은 그대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이름의 더 큰 영광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우리는 근래에 그대들이 원격지에 자리한 미지의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않은) 도서와 본토를 발견하겠다고 결심한 것에 대해 들었으며, 그 동기가 그곳 주민들로 하여금 우리의 구세주를 높이고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대들이 우리 주님 안에서 품은 경건하고 칭찬할 만한 목적을 크게 칭송하며. 그 같은 목적이 합당한 결실을 맺고, 그런 지역들에서 우리 구주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대들이 가톨릭 신앙에 대한 열심에서 그러한 시도를 실행에 옮기며…앞에서 말한 본토와 도서의 주민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고자 의도한 일을… 우리 주님 안에서 그대들을 사도적 순종에 구속받게 하는 그대들이 받은 거룩한 세례에 힘입어 그대들에게 권면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내밀한 자비에 힘입어 진지하게 요청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대들에게 앞서 말한 육지와 섬들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주민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정직하고 고결하며 학식 있는 사람들을 보낼 것을… 명합니다.

_ 2장 알렉산드르 교황의 칙서


1511년 6월 6일 페르난도 왕은 콜럼버스 제독의 아들 디에고 콜럼버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그 지역을 정복한 것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이기 때문”에 “우리의 거룩한 가톨릭 신앙”에 관해 인디오들을 가르치도록 명령했다(Hanke 1967, 54). 스페인 국왕이 스페인 사람과 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승인한 최초의 법전인 부르고스 법(The Laws of Burgos)은 원주민들을 가톨릭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이 왕실의 제일가는 관심사임을 재확인한다. 이 법령들은 신세계의 원주민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최초의 신학적·법률적 논쟁이 있은 뒤 1512년 말에 승인되었다. 그러한 논쟁은 히스파니올라의 급격한 인구 감소, 산후안(푸에르토리코) 섬에서 일어난 봉기, 도미니코회 수사들 편에서 나타난 최초의 비판적 문제 제기 등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그 텍스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돈 페르난도 국왕이 보낸다. 짐과 짐의 친애하는 아내인 가장 평화로운 여왕 도냐 이사벨은─그녀가 하늘의 영광을 누리기를!─인디오들과 그 추장들이…우리 가톨릭 신앙에 대해 배우게 되기를 언제나 간절히 원하였고, 또한 그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는 법령을 기안할 것을 명하였으며, 그 법령이 기안되었다.…” 이러한 의도는 인디아스에 대한 새 법령에서도 재확인된다. “이는 나의 첫 번째 소망과 앞서 말한 가장 평화로운 여왕과 매우 친애하는 딸[후아나]의 소망은 그러한 지역들과 그들 각 사람 안에 우리 가톨릭 신앙이 심기고 깊이 뿌리내려져서, 앞서 말한 인디오들의 영혼이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Konetzke 1953, 1:38, 45).

_ 3장 국가적 섭리론과 메시아 사상


우리가 서인디아스라고 부르는 영토에 대해 원주민들이 지니는 권리 및 카스티야와 레온의 군주가 지니는 최고의 보편적인 주권의 근거이자 양자 간에 균형이 잡힌 참되고 강력한 토대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이 영토에서 많은 왕들 위에 군림하는 보편적 주군이자 황제로 세워진다(같은 책, 461).


이 논문의 중심 내용을 이런 식으로 명확히 밝힘으로써 그는 카스티야국왕과 원주민 당국들 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드러낸다. 전자의 지배가 후자를 근절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것은 “많은 왕들 위에 군림하는 황제”가 되는 것과 관계된다(Las Casas 1965, 2:1129). [스페인의] 가톨릭 군주들의 권위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그들에게 양도한 특권으로부터 나오며, 그 특권은 로마의 주교직을 맡고 있는 베드로의 계승자에게 모든 나라에 대한 보편적인 영적 권위를 부여한 대리직에서 발생한다. 이 권한은 이 나라들의 복리를 위해 행사되며 그들의 영원한 구원과 관련된다. 자연적 목적을 가진 사회는 초자연적 목적을 가진 사회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교황은 스페인 군주들에게 인디아스의 불신자들에 대한 지배권을 수여할 수 있다. 군주들의 의무는 원주민들의 회심과 그들의 영적 향상을 촉진하는 것이다. 알렉산데르 교황의 칙서들은 스페인 군주들에게 주는 선물이기는커녕 “그들에게 어마어마하고 무서운 공식적인 계율”, 즉 이미 발견하였거나 장차 발견하게 될 도서와 본토 주민들을 위해 공공선을 확보할 의무를 “부과한다”(Las Casas 1986, 1.1.79:339).

라스 카사스는 유례없는 열정을 발휘하면서 최고 사제인 교황의 영적 권위와 스페인 군주들의 세속적 지배와 원주민 군주들의 보존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알렉산데르 교황의 칙서들을 유익하고 선교적이며 교육적인 명령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둘째, 유럽인들의 탐욕과 욕심을 과감하게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셋째, 교회와 정부 당국자들이 원주민을 보호하고 원주민 착취자를 처벌하기 위한 엄격하고 엄정한 법률을 승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주민들의 자유 의지에 따른 심사숙고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스페인의 지배권이 정당해질 수 있는 핵심 요인이다.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 그들의 이해력에 호소하며 그들의 의지에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이 좋다는 점과 스페인의 주권이 지닌 미덕이 원주민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그 목표는 일차적으로 개종한 추장들을 통해 통치되고 이차적으로 카스티야 왕국에 의해 통치되며, 그들이 가톨릭 신앙을 고수함으로써 영적으로 연결되는 기독교 제국을 세우는 것이다.

_ 4장 기독교 제국: 라스 카사스와 비토리아의 저술 고찰


원주민의 자유 또는 예속화에 관한 논쟁에서 법의 보호를 받는 인간으로서의 원주민의 천부적 자율성을 존중할 것을 라스 카사스처럼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그 인디오들은 자유인이므로 인간이자 자유로운 존재로 대접받아야 한다”(Las Casas 1972, 66). “대양 건너편 인디아스가 발견된 뒤 오늘날까지 노예가 되었던 모든 인디오들은 부당하게 노예가 되었다”(Las Casas 1965, 1:595).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은 본성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원주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중대한 자연법 위반이며, 원주민이 스페인에 대해 그들의 노예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의 법에 반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율성을 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신율에 반한다.

_ 5장 자유와 예속: 원주민의 노예화


라스 카사스의 견해(16세기에는 가장 혹독한 비판이었다)에 따르면, 엥코미엔다는 비록 원주민의 영적·세속적 복리를 몇몇 스페인 사람들에게 맡기고자 했던 이사벨 여왕의 올바른 의도에서 비롯되었지만, 종국에는 “환상이자 사악한 궤계…그토록 광대한 많은 왕국들을…죽이고 파괴하고 인구를 감소시킨 진정한 죽음이며…”, “아주 맹목적인 탐욕이자…인류의 상당한 비율을 파괴한 역병”이 되었다(Las Casas 1965, 1:799;1986, 1.1.119:417). 이 제도는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원주민들의 죽음을 야기하고 그들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지니는 천부적 권리를 침해했다. 이는 이 제도가 단지 은폐된 노예제로서 원주민의 땀과 노고를 통해 부를 뽑아낸 것을 악하게 위장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그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옹호하고 촉진하는 사람은 누구든 “기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참으로 하나님의 원수이자 그 이웃을 멸절시키는 자다”(1965, 1:803, 837). 라스 카사스는 인디오의 예속을 정당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법률적으로 및 신학적으로 맞서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긴 투쟁을 계속했다. 1555년 8월 바르톨로메 카란사 데 미란다에게 보낸 편지(출처: Fabié [1879] 1966, 71:409)에 나타난 그의 견해에 따르면 노예 노동에 기초한 부당한 치부 체제로 운영된 엥코미엔다는 이것이 복음화 제도라는 이론이 허위임을 보여준다.

그 속임수는 앞에서 말한 엥코미엔다 또는 할당이 스페인 사람들로 하여금 인디오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데서 생겨난다. 이는 거짓이다. 오히려…이 제도를 만든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그들은 인디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다만 스페인 사람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_ 6장 자유와 예속: 엥코미엔다


사제이자 공식 대표였던 토마스 로페스는 야수라는 묘사를 뒤집어 그것을 원주민의 노동과 생명을 착취하는 자들에게 적용했다(출처: Hanke 1985, 1964). “우리는 인디오들이 짐승이라는 거짓말을 일삼았지만 실상 야만스러운 짐승으로 전락한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짐승이라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소유인 짐승들은 아주 잘 돌보는 반면 그로 인해 인디오들은 식량 부족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아코스타(1985, 6.1:280)도 원주민들이 이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한 것과 그들을 부리는 짐승으로 이용하는 행태 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그들이 이성이 없는 인간이고 이해력이 없는 짐승이라는, 보편적으로 퍼진 그릇된 견해”를 비판했다. 이 점이 훨씬 더 중요한데, 그는 그러한 경시의 근저에 사리사욕이 깔려 있음을 인식했다. “그들은 너무도 많은 속임수를 사용해서 원주민들에 대해 커다란 해악을 많이 저지르고 그들을 동물처럼 부린다.”

특히 라스 카사스는 원주민을 우매한 짐승으로 묘사하는 태도 뒤에 물질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음을 충분히 인식했다. 그렇게 하면 식민지 개척자의 치부를 위해 원주민을 짐 부리는 짐승처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신화 파괴적인 그의 비판에 의하면 원주민의 본성에 대한 이론적 입장인 것처럼 보였던 주장이 사실은 원주민을 생산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악한 은폐였다. “짐승만도 못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은…부를 얻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간주된다”(Las Casas 1965, 1:719). “모든 해악의 근원이 되는 격렬하고 맹목적이며 무도한 탐욕”이 원주민들을 야수로 평가한 원인이었다. 스페인 정착민들은 원주민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의 노동을 이용하기 위해 “그들을 비방했고 원주민을 만나본 적이 없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인간인지 혹은 동물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악평”과 더불어 라스 카사스가 “야수적 이단”이라고 비난한 또 다른 허위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Las Casas 1986, 2.1.1:206-207; 3.3.99:167).

그 논의는 처음에는 신학적이었지만, 신학적 담론과 정치 사이의 불가분의 연관성─우리는 앞에서 이것을 정복 행위에 관한 논쟁을 해석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석학적 열쇠로 제시한 바 있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논의의 교회 외적인 함의를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원주민들에게 사제직을 수행하고 사람들을 영적으로 지도할 능력이 있다면, 그들에게 자신들의 일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그러한 일들을 세속적으로 관리할 능력도 있지 않겠는가? 교육 문제는 개인의 자유 및 민족의 자결 문제와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제 서품에 불가결한 지적양성은 처음에는 교회의 사안에서 그리고 후에는 사회·정치 사안에서 완전한 자치 책임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터였다. 이처럼 예상되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영혼을 지도하거나 독신 생활을 하기에는 권위의 결여, 음주벽, 지적 노동에 적합하지 않음” 등 원주민의 고질적인 “악덕”에 대한 증언이 증가했다(Ricard 1986, 349).

히스패닉계 아메리카의 상황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스페인과 포르투갈)는 자기들이 대양 건너편에 세운 거대한 제국에서 원주민 성직자가 양성되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다. 거대한 스페인─아메리카 제국을 구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18세기 말에야 스페인 국왕은 서둘러 원주민 성직자의 양성을 장려했다. 국왕의 칙령도 임박한 정치적 붕괴를 막지 못했다(Boxer 1978, 1-30).

_ 7장 이성적인 피조물인가, 아니면 우매한 짐승인가?


멕시코의 초대 주교였던 후안 데 수마라가는 1531년까지 스페인사람들이 누에바에스파냐에서 500개가 넘는 신전과 20,000개가 넘는 우상을 파괴했다고 말했다(Höffner 1957, 500). 1554년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인 니콜라스 데 위테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고대 예배 장소를 “귀신들의 신전”이라고 부르면서 이에 대한 파괴 행위를 옹호했다(출처: Cuevas 1975, 222). 우상 숭배적이라고 여겨지는 의식이라면 무엇이든 폐지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대체할 수 없고 종종 복원할 수 없는 문화 유산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파괴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만연한 복음화 개념은 훗날 예수회가 아시아에서 실행한 복음화 개념과 달랐다. 예수회는 통합적인 복음화 이론과 관행을 발전시켜 동양 종교 안에서 섭리적인 신적 은혜의 씨앗을 발견한 반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마귀를 섬기는” 원주민의 우상숭배와 기독교 간의 근본적인 대립을 강조하는 사상이 우세했다. 1537년 11월 30일 멕시코 와하카, 과테말라의 초대 주교들은 “[십계명의] 제1계명이 우리 모두에게 우상숭배를 파괴할 것을 명한다”고 주장했다(Ricard 1986 165). 이러한 인식은 토착 종교에 맞선 가차없는 전쟁, 성전(聖戰), 신들과 신화에 맞서는 진리의 투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인류의 문화유산 가운데 소중한 일부가 파괴되고 말살되는 데서 절정에 이르렀다.

_ 8장 신들의 전투

 

16세기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의 인구 통계는 경악스럽다. 셔번 쿡과 우드로 보라에 따르면(1971, 1:viii), 1518년 멕시코의 원주민 인구는 약 2,520만 명이었는데 1595년에는 137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노블 데이비드 쿡(1981, 114)은 페루 원주민의 수가 1520년에 900만에서 1570년 130만으로 감소했다고 추산한다. 앤틸리스 제도의 인구 감소 또한 엄청났다. 로날도 멜라페(1964, 21)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히스파니올라에는 약 10만 명의 원주민이 있었는데 1570년에는 “500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참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앤틸리스 제도의 원주민을 구하기 위해 스페인 국왕은 1542년 신법의 일부로 원주민에 대한 선처와 공납 면제를 보장하는 훈령을 발표했다.

저명한 라틴 아메리카 문화 역사가인 페드로 엔리케스 우레냐(1964, 35)는 이 급격한 인구 감소를 “인종의 비극”이라고 묘사했다. 쿠바의 역사가인 페르난도 오르티스(1978, 95)는 이를 “인구 학살”이라고 부른다. 코르도바(1968, 27)는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인 대학살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페루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1989, 10)는 이를 “인구 붕괴”라고 부른다. 니콜라스 산체스 알보르노스(1986, 7)도 이를 가리켜 “인구 재앙”이라고 지칭한다. 영국의 교수인 삼바르디노(1978, 708)는 이를 “지금껏 알려진 가장 큰 인구 재앙 중 하나”라고 부른다. 북미의 과학자인 윌리엄 데네반(1976, 7)은 훨씬 더 단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아메리카 발견 뒤에 아마도 역사상 가장 큰 인구 재앙이 일어났을 것이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스페인의 경제학자인 하이메 비센스 비베스(1972, 353)도 이와 비슷하게 “인구 재앙…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_ 9장 원주민 대학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구가 붕괴되어 예속 육체노동자들을 대체할 필요가 생겨났다. 이러한 필요가 앤틸리스 제도에서 기원한 것을 감안할 때, 필요할 경우 우리가 아메리카 정복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예화라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아메리카의 정복은 근대 노예제의 출발점이다.

아프리카 노예의 도입은 아메리카에서 유럽이 팽창한 것과 동시에 발생했다. 멜라페(1964, 23, 26)는 다음과 같이 올바로 지적한다. “흑인 노예는 아메리카 정복 이후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정복 자체와 더불어 도처에서 성행한 교역 대상이었다.…중요한 정복자의 수화물에는─그의 수행원이 많든 적든─말과 흑인 노예라는 두 가지가 결코 빠지지 않않다.”

라스 카사스는 아프리카인들을 노예화하는 관행이 그들이 사라센인이자 무어인이며 따라서 “기독교의 원수”라는 전제에 토대하고 있음을 의식하고서, 무슬림들을 구별하기 위해 카예타노 추기경이 제시했던 불신자에 대한 세 가지 분류기준─법적으로는 그리스도인 군주의 백성이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으므로 기독교의 원수인 경우(즉 투르크인), 법적으로 및 사실상 그리스도인 군주 아래 있는 경우(예컨대 유대인), 법적으로 및 사실상 그리스도인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경우(예컨대 아메리카 원주민)─을 극복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이는 반(反) 이슬람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당시로서는 위험한 일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은 “무어인”이었지만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을 약탈한 집단에 속하지 않았고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에 아무런 해도 입힌 적이 없으므로, 이들에 대한 교전 행위와 노예화는 부당했다. 그들은 법적으로 및 사실상 기독교권인 유럽 당국들의 관할에 속하지 않았다.

_ 10장 흑인 노예제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뚜렷한 신앙고백적 성격(이는 정복을 선교활동으로 전환했다)과 국왕에 대한 교회의 종속(이는 신앙 전파라는 국가적 사업을 만들었다)은 신세계에 관한 격렬한 논쟁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부여했다. 신대륙과 신대륙의 주민에 대한 모든 신학적 논쟁은 정치적 성격을 띠었고 그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였다. 즉 스페인과 원주민 간의 관계에 대한 정치적 의견 불일치는 신학적 논쟁이 되었다. 따라서 라스 카사스, 세풀베다, 비토리아와 같은 신학자들의 저술과 해설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인디아스 평의회가 공포한 법령들이 종교적 어조를 띠었던 것이다.

특정한 시공간에서 비롯된 그 이론적인 논쟁들은 항구적인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뤘다. 인류는 하나인가, 아니면 다양한가? 어떤 사람들은 지능과 사리 분별 면에서 우월하며 따라서 특별한 권한과 독특한 의무를 갖는가? 몇몇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천부적 또는 역사적 불균등으로 인해 정당화되는가? 귀중한 광물 자원은 그것이 존재하는 영토의 주민들에게 속하는가, 아니면 누구든 그 자원의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자에게 속하는가?

그러한 질문들로부터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의 도움으로 근대 국제법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복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국제법이고, 궁극적으로 무력 정복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비토리아의 저술에 나타난 국제법의 현저하게 호전적인 성격을 종종 망각한다. 인디오에 대한 비토리아의 두 강의가 “신세계의 야만인들”에 대한 전쟁의 목표와 방법의 정당성에 치우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론적 선언과 그들이 겪은 이주, 압제, 학살 간에는 심각한 역사적 모순이 존재한다. 이러한 제국주의 강대국의 관점으로 인해 비토리아가 제안한 주권 국가들 간의 이론적 평등은 추상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 관점은 제국과 피정복지 간에 존재하는 경제·사회·군사적 힘의 심원한 불균등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러한 불균등은 평등과 호혜라는 이론적 도식을 깨뜨린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이들이 이론 수준에서는 승리했지만 정복이라는 역사적 현실에서는 패배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_ 11장 신학적·법률적 논쟁


복음화가 권력과 지배 또는 탐욕 추구를 위한 구실로 사용될 경우 그것은 오염되고 훼손된다. 전도자들의 말과 행위를 통해 “복음을 듣는 자들, 특히 불신자들로 하여금 전도자들이 그것을 통해 자기들을 지배하려는 의도가 없음과 부에 대한 야망이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동기가 아님을 이해하도록” 확신시킬 필요가 있다(같은 책, 249).

설득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의 선교 방법은 신세계 주민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라스 카사스는 이들의 성격이 “온건하고 순박하고 친절하며 유순하며”,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교라는 정글에서 경작되지 않은 쓴 야생 포도 나무를 하나님의 가장 소중하고 값진 과원으로 옮겨 심으셔서 매우 단 포도 나무 또는 올리브로 변화시키셨다”고까지 여러 번 주장한다. 만일 “이 종족들을…처음부터 사랑과 자비로 대했더라면” 유순한 이방인을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키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Las Casas 1986, 1.1.45:226).

종교를 성전(聖戰)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마귀가 발명했고 그의 모방자이자 사도인 무함마드가 많은 절도와 피 흘림을 통해 따라갔던” “무함마드의 길” 또는 “무함마드의 법”을 따르는 것이다. 무력으로 불신자들을 정복한 뒤 그들에게 복음을 듣도록 강요하는 것은 곧 “온 세상을 더럽힌 악명 높고 혐오스러운 거짓 예언자이자 사람들을 유혹했던 자인 무함마드의 진정한 모방자”가 되는 것이다.

_ 12장 복음 전도와 폭력


라스 카사스는 하나님이 가난한 이들의 아우성을 듣는다고 암시하는 성경의 전통을 직·간접적으로 자주 언급했다. 그는 또한 신약성경에서 예언자적인 힘이 가장 강한 텍스트 중 하나인 야고보서 5장을 강조했다. 이 텍스트는 부자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 분명히 선포하는데, 이 텍스트에 의하면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함으로써 과도한 수익을 올리지만 가난한 이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며 그들의 부르짖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라스 카사스에 따르면 그 텍스트는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오들에게 부과한 노예제의 결과에 대해 빛을 비춰준다. 즉 노예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숱한 피 흘림 때문에 울부짖는 소리가 이미 하늘에 이르렀다.” “불우하고 비참한 가난한 사람들을 압제하는 것은 밤낮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도달하는 죄들 중 하나다”(출처: Fabié [1879] 1966, 70:473; Las Casas 1965, 1:597). 프란치스코회 수사인 레카르테는 라스 카사스에게 큰 영향을 받아 1584년 성경의 이 주제를 취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하나님은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과 그들에 대한 압제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만일 그 부르짖음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그분의 가장 엄한 심판을 자기 머리 위에 쌓는 일이 될 것이다”(출처: Cuevas 1975, 367). 모톨리니아는 훗날 라스 카사스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지만,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이라는 성경의 주제를 취해서 인디오들의 고통에 책임이 있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그토록 비천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피와 죽음이 앤틸리스의 섬들과 본토뿐 아니라 저 멀리 페루 땅에서도 하나님께 상달될 것”이라고 경고한다(Motolinía 1984, 3.11.167).

_ 13장 예언과 압제


선교적 열정, 애국심, 명예와 영광의 추구, 탐욕과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이런 요소들이 기독교화, 정치적 지배, 값비싼 광물의 징발이라는 다양한 동기들이 수렴된 정복 사업을 견인했다. 금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탐욕에 관한 나우아틀족의 설명은 이보다 덜 복잡하지만 더 시적이다. 사아군은 익명의 전달자들로부터 코르테스의 군대가 그 도시에 가까이 온 것을 알고서 아스텍족의 추장이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에게 보낸 황금 선물을 보고서 그들이 얼마나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 전해 들었다. 목테수마는 그 정복자의 탐욕을 배양하고 자극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그들은 매우 기쁘고 행복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마치 원숭이라도 된 것처럼, 금을 들어올렸다.…그들의 마음은 더 가벼웠다.…그들은 그것을 몹시 갈망했다.…그들은 그것에 몹시 굶주렸다. 그들은 마치 배고픈 돼지처럼 황금에 목말랐다”(Sahagún [1582] 1985, 12.12:70).

틀락스칼라의 주교인 훌리안 가르세스는 앞서 언급한 교황 바오로 3세에게 보낸 서신에서─이 서신은 1535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황금을 허영과 탐욕의 대상에서 신앙을 촉진하는 도구로 전환할 수 있는 또 다른 논거를 제시한다. 유럽에서 무슬림과 투르크인에 맞선 무장 원정에 필요한 자금을 신세계의 광산들에서 캐낸 황금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Hernáez 1879, 1:61). 라스 카사스마저 한때 인디아스에서 나온 “부와 세속적 보화”가 정복자들과 엥코멘데로들의 개인적인 탐욕에 낭비되기보다는 “우리 가톨릭 신앙의 원수들[투르크인들과 무어인들]이 감히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도록” 기독교의 병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Las Casas 1986, 1.1.76:330)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성지를 이슬람의 손에서 “구출”하려는 뿌리깊은 열망을 드러내는 이런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_ 14장 정복자들의 하나님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