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기독교와 과학이 교차로에서 만나려면』 출간 안내

새물결플러스
2024-08-20
조회수 288

책 소개

사회과학자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방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이 과학을 두려워하거나 과학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신앙과 과학의 공통 덕목을 통해 상호 이해와 협력을 추구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과학의 발견 사항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독실한 신앙을 유지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서평


얼마 전에 모 신학대학교에서 어느 교수가 소위 “유신 진화”를 신봉한다는 사유로 해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당시 다른 신학대학교의 아무개 교수가 운영하는 과학과 신앙에 관한 유투브에 게시한 내용에 그를 “마귀의 바지사장”이라고 비난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개신 교단에는 하나님이 6,000년 전에 특별하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우주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를 엿새 동안 만들었다는 소위 “젊은 지구 창조론”을 신봉하면서 이 견해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신자가 많이 있다. 여기에는 현대 과하학의 발견과 성과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과학에 대한 어떤 적대적인 태도는 교회 안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과학은 과연 신앙, 특히 기독교 신앙에 적대적이며 따라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런 과학에 대항하여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과학을 거부하거나 무시하거나 과학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분노의 근저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는데, 우리는 신앙과 과학 사이의 갈등을 발견할 때 근저의 두려움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특정한 과학적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신앙이 약해지거나 신앙에서 완전히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두려움에 근거하여 과학에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두려움을 진정시키거나 좀 더 생산적인 습관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그리스도인들과 과학자들의 관행 및 습관들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같은 미덕을 많이 공유하는 한편 몇 가지 중요한 차이들도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기독교 신앙과 과학 사이의 미덕과 가치들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거나 분기되는지를 인식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과학 및 과학자들과 좀 더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공통 미덕으로서 호기심, 의심, 겸손, 창의성, 치유, 경외심, 샬롬, 감사라는 여덟 가지 미덕을 열거하고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이러한 미덕들이 신앙과 과학 각각의 영역에서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또한 상호 이해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풀어간다.


저자는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미덕을 함양하고 과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장이 됨으로써 우리의 신앙 역시 좀 더 깊어지게 하는 건전한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 각 장의 끝에 이 주제를 갖고 토론할 수 있는 문제의 예를 제시함으로써 교회 안에 이러한 모임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염원을 드러낸다. 자신이 이 문제로 고통당해 본 사람으로서, 주위에서 이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를 원하는 사회학자로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저자의 시선이 매우 따뜻하다.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로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사람,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 이런 문제 때문에 신앙의 길에서 떠났거나 떠날 것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과학과 기독교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더 많은 실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


일레인 하워드 에클런드(Elaine Howard Eckland, 코넬 대학교 Ph.D.)

라이스 대학교(Rice University)의 사회학 교수인 그녀는 그곳에서 종교와 공적 생활 프로그램(Religion and Public Life Program)을 개설했으며 사회 과학 분야 허버트 S. 오트리 석좌교수다. 『과학 대 종교: 과학자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가』(Science vs. Religion: What Scientists Really Think)를 포함하여 다섯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과학과 영성 사이의 교집합에 관해 정기적으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연구는 미국과 해외의 미디어에 자주 인용된다.

 

역자


홍수연

영국에서 종교사회학을 공부했다. 교회의 세속화 현상 및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요한계시록의 심장』,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교회와 유아 세례』, 『하나님은 왜 폭력에 연루되시는가?』, 『로마 세계의 초기 기독교 이해』, 『신약성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읽기』, 『트렌스젠더 경험 이해하기』, 『기독교 시온주의의 역사』, 『현대를 위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이상 새물결플러스)가 있다.

 


차례


감사의 글

1부 기초 요소

1장 두려움에서 이해로

2장 겹치는 공동체

3장 창조적 진화: 기원 논쟁을 넘어

2부 과정

4장 호기심

5장 의심

6장 겸손

7장 창의성

3부 구속

8장 치유

9장 경외심

10장 샬롬

11장 감사

더 읽을 책


 

본문 중에서

 

나는 이 교훈을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에 대해 그리고 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한 학문적 연구에 적용한다. 두려움은 분노로 가장하여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신앙과 과학 사이의 갈등을 발견할 때 우리는 근저의 두려움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학이 신앙의 요소들과 충돌하거나 그 요소들을 손상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가? 특정한 과학적 아이디어들을 받아들이면 신앙의 힘이 약해지거나 신앙에서 완전히 멀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가? 논란이 되는 윤리적·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특정한 과학적 발견과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두려움에 근거하여 과학에 반응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두려움을 진정시키거나 좀 더 생산적인 습관이나 관행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과학자들과 공유하는 가치들을 보여주고,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그들의 과학 작업에서 종교적 가치를 어떻게 보는지를 보여주며, 기독교 공동체가 어떻게 그들이 과학 공동체와 공유하는 미덕들을 활용하여 과학 및 과학자들과 더 잘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목적으로 쓰였다. 나는 각 장의 끝에 평신도들과 목회자들이 계속 토론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질문들을 제공할 것이다.

_1장 두려움에서 이해로


내가 미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를 조사했을 때 14%가 과학과 종교가 충돌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자신은 종교 편에 서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그들이 종교와 과학 사이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사례를 인식할 경우 자신의 신앙이 가르치는 내용을 지지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그 수치가 25%로 상승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발견은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과학과 종교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과학과 종교가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전체 미국 성인 중 38%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그 두 영역 사이의 협력이 가능하고 유익하리라고 믿는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비율이 46%로 올라간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인 과학자들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협력이 가능하고 그런 협력이 유익하다고 믿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들 중 거의 60%가 두 영역 사이의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대학교 밖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나는 일반적으로 좀 더 많은 과학자가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가 충돌하거나 완전히 독립적인 관계라기보다는 협력관계라고 믿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 그리스도인에게는 “과학적” 미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들은 과학 공동체의 기초를 형성하고, 과학자들이 자기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한 토대를 형성한다. 가치들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한 기초를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이런 미덕들을 탐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미덕을 지닐 역량을 주는 또 다른 기초 요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간 됨인데,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진화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때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_2장 겹치는 공동체

 

일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우주의 기원과 지구상 생명의 발달을 설명하기 위한 내러티브를 생각할 때 그 내러티브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학적 믿음—즉 하나님의 창조자 역할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을 설명하는지를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가톨릭 교도나 유대인보다 하나님이 “세상사에 직접 관여하신다”라고 믿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들은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창조세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인다.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발달에 관한 엄격한 창조론 외의 다른 설명들이 인간의 독특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그런 설명들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끝으로 진화와 종교적 신앙을 조화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면서도 진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발견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교회는 그들이 진화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 근저의 핵심적이고 변할 수 없는 신념들을 숙고하고 진화의 증거를 수용할 경우 어떤 사항들이 위기에 처하거나 포기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_3장 창조적 진화: 기원 논쟁을 넘어

 

나는 연구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 및 과학과 신앙을 통합하는 방법에 관해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호기심은 고통스러우며,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도 있다. 리비오는 어느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지각적 호기심은 갈증과 비슷한 부정적인 욕구와 박탈감을 생성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말한다. 그 연구는 이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이 보상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기독교 공동체들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 특히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에 관해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게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있다. 기독교 공동체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은 개인적 경험과 성취를 지닌 신자들, 즉 자기의 교회에서 청소년들보다 먼저 과학과 신앙을 성공적으로 통합한 경험이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이다.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들과 교회에서 왜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강화되고 뒷받침되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에 관해 생각할 때 느끼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장소, 호기심을 배양하고 충족시키는 보상을 제공하는 장소가 될 필요가 있다. 호기심은 과학적 발견 과정과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있어 호기심은 신앙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_4장 호기심

 

이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의심이 과학 공동체에서처럼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힘과 미덕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의심을 미덕으로 인식하면 과학 및 과학과 신앙을 조화시키는 것에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또한 교회 공동체들이 과학이 제기한 의심과 씨름할 수 있는 생산적인 장소—아마도 가장 생산적인 장소—가 될 수 있으며, 과학을 좀 더 많이 수용하고 좀 더 강하고 회복력을 지닌 신앙으로 이끌어주는 방식으로 이런 의심들을 탐구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신실한 공동체에서 의심이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다. 의심은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기독교 공동체들은 의심을 우리의 신앙을 철저히 조사하는 도구이자 우리의 신앙의 기개를 시험하고 증명할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 위한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로 여기고, 의심을 수용할 수 있다. 과학을 통해 제기된 의심들이 반드시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내 경험—그리고 내가 연구를 수행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교회들과 기독교 공동체들에서 신중하고 생산적으로 다뤄진다면, 그 의심은 우리의 신앙을 연마하고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우리가 의심이라는 과학적 미덕을 종교적 미덕으로도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공동체들은 의심이 존중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신중한 의심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더 큰 창의성과 경외심으로 가는 경로가 될 수 있다. 작가 앤 라모트(Anne Lamott)의 말마따나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말을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자면, 신앙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다.”

_5장 의심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이라는 신학적 개념에 익숙하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은 신이시고 우리는 신이 아니라는 것과,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는 우리가 지닌 능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완전한 진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는 진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목사이자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 성경을 다른 말로 풀어 쓴 『메시지 성경』(The Message)에서 말하듯이 인간으로서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적 겸손을 실천하는 과학자들은 기꺼이 “자신의 견해를 재고하고, 도전받을 때 방어적인 태도를 피하며, ‘옳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필요를 누그러뜨린다.” 그들은 “좀 더 깊은 지식, 진실,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 그들의 지적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인정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과학의 도구들이 우리가 세상과 자연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인간의 지식과 이해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발견 사항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한다.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의 말로 표현하자면 “자연은 자연의 밑바탕을 이루는 진리가 가장 탁월한 지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거듭 보여주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과학적 지식의 한계와 다른 방식의 앎에 대한 존중에 관해—과학자들에게서 겸손을 바란다면, 우리는 신앙의 핵심적인 미덕인 겸손의 본을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역시 다른 믿음을 존중하고, 우리의 결론 중 일부가 틀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며, 우리 모두 불완전하게 알고 있음을 인정하고, 과학이 우리의 신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신앙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많은 요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겸손한 접근법을 취함으로써 과학과 신앙 사이에 다리를 놓기 시작할 수 있다.

_6장 겸손

 

오늘날 불임과 싸우는 그리스도인 중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임신하기 위한 도움을 받기 위해 (그들의 신앙과 더불어 또는 신앙의 한 부분으로서)과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 기술의 존재는 불임의 고통을 완화해주기 위한 과학자들의 창의적 연구의 결과물이다. 체외수정은 불임 치료에 사용되는 가장 흔하고 효과적인 보조생식기술이다. 체외 수정 때 여성의 몸에서 난자들을 채취해서 정자와 결합하여 배아(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직후의 초기 형태)들을 만든 후 배아들을 다시 그 여성의 몸에 이식한다. 보조생식기술은 때때로 기증자의 난자나 정자를 사용하거나 이전에 냉동된 배아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기술에는 전통적 대리모(surrogate) 또는 자궁 대리모(gestational carrier)가 관여할 수도 있다. 전통적 대리모는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는 반면 자궁 대리모는 “여성 파트너의 난자와 남성 파트너의 정자를 통해 임신하게 된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기술들 및 새로 발견된 능력들과 씨름해야 한다. 우리는 신학적 이상과 경쟁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과학적 창의성의 한계가 어디인지,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지, 우리가 그 기술들을 어떻게 선용할 수 있는지, 그 기술들이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생식 기술을 넘어, 우리는 우리가 창조해내는 모든 것과 우리가 이 세상에 가져오는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조 능력에 대한 책임을 행사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들을 구속적인 치유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_7장 창의성

 

내 연구에 따르면 과학계와 종교계 구성원 모두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그리스도인 생물학 교수는 “고통은 커다란 신비입니다. 나는 우리에게 인간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사용해서 고통을 완화하는 것이 과학자로서 자신의 소명의 일부라고 믿는다. 복음주의자인 또 다른 생물학자는 과학 연구와 기술을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개입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본다고 말했다.

질병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시행하는 연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생식 유전 기술 사용과 마찬가지로 많은 신학적·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두 가지 중요한 도덕 원칙, 즉 인간 생명의 가치를 존중할 의무와 고통을 예방하거나 경감할 의무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도록 강제한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배아가 자궁에 이식되기 전에 배아에서 발견되는 세포들이다. 이 세포들은 “근육, 신경, 혈액 등 다양한 세포들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기초적 연구를 위한 특정한 유형의 세포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과학자들은 이 세포들을 이용하여 심장병이나 백혈병 등 많은 질병을 연구할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초기 배아를 파괴해야 한다. 이것은 잠재적인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수백만 명의 고통을 덜어줄 새로운 치료법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갈등하는 이유다.

_8장 치유

 

일부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에게 있어 과학 연구는 그들을 과학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이감도 강화해주는 경외심과 경이감으로 충만하게 해준다. 역사상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했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과학자가 자연 세계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을 의식하면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과학 연구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를 더 잘 관찰하고 이해하게 해주며, 그들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예배의 한 형태다.

우리가 교회에서 어떻게 과학을 사용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체험할 수 있는가? 교회 지도자들은 청소년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과학이 그들의 신앙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앙을 지지하고 풍성하게 해줄 잠재력을 갖춘 좋은 진로라고 보도록 돕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목사들은 설교 중에 과학자들이 과학을 통해 아름다움을 인식했던 경험에 관해 과학자들과 대화할 수 있다. 목사들은 우선 시편 저자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에 관해 경탄하는 시편 104편을 설교하고 나서, 과학자들과 대화할 수도 있다. 또는 교회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을 초대하여 자연 세계에 대한 그들의 탐구가 창조 세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심화시켰는지에 대해 강연하게 할 수도 있다. 더 좋은 방법으로는, 신자들이 직접 과학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도록 돕는 행사—과학자들이 직접 실험을 진행하는 행사나 연구소・관측소・현장 방문—를 기획할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신자들은 과학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외심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_9장 경외심

 

그리스도인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들 가운데 다수가 자신의 일과 목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때때로 샬롬과 청지기 직분이라는 개념에 의존한다. 샬롬(shalom)은 “완전함”과 “완벽함”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온 히브리어로서 모든 피조물이 번창함으로써 나오는 평화, 조화, 복지, 번영을 의미한다.1 샬롬은 혼란스러운 세상에 관여하여 정의롭지 않은 구조들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그 구조들을 좀 더 정의롭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청지기 직분 또는 (특히 환경 보호의 형태로) 세상을 돌보는 것은 종종 과학의 미덕이라고 여겨지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뿌리 깊은 미덕이기도 하며 우리를 샬롬으로 좀 더 가깝게 이끄는 관행이다. 기독교의 청지기 직분은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나머지를 돌보고 보살필 책임이 있다는 인간의 독특성 개념을 포함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은 흔히 타인을 소외시키는 사회 구조에 맞서 싸우게 된다. 과학을 청지기 직분을 위한 통로를 제공하는 소명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과학 분야에 진출하도록 격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과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고치고, 치유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일하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과학에 종사하는 직업은 환경을 돌보는 데뿐만 아니라 정의, 평등, 인간의 번영을 도모하여 사람들을 돌보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학 분야의 직업을 통해 어떻게 샬롬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과학자들을 초청해서 그들이 과학 연구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지에 관해 신도들에게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다.

_10장 샬롬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감사를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라고 묘사했다. 깊은 감사는 내게 일반 은총 개념, 즉 선한 것들은 특별히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생겨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한다. 과학은 또한 감사가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사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상당히 이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한다. 감사는 우리의 심장을 좀 더 건강하게 하고, 우리의 정신을 좀 더 강하게 만들고, 우리의 행복감을 높여준다. 예를 들어, 심부전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감사하는 정도가 높을 수록 잠을 더 잘 자고, 피로를 덜 느끼며, 염증의 정도가 더 낮아진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에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감사의 표현이 신경계에서 진정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진정 기능이 활성화되면 코르티솔(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지고, 심지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화학 물질인 옥시토신(아기들이 엄마에게서 분비되게 하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호르몬)이 증가할 수도 있다. 감사는 더 많은 소유를 축적하고자 하는 욕구를 줄여주고, 직장에서 탈진할 가능성을 줄여줄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감사라는 주제로 끝맺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몇몇 과학자는 이제 감사는 우리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깊이 뿌리박힌 미덕이자 감정이라고 믿는다. 감사는 우리가 서로 주고 받으며, 좀 더 나은 관계를 쌓고, 상호 관계를 발생시키도록 돕는다. 감사는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협력으로 이끈다. 감사는 우리의 생각을 우리 자신 너머로 넓히고, 좀 더 큰 공동체 의식을 얻을 수 있는 협력으로 이끈다. 감사는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며, 인내심과 자제력을 향상하도록 돕는다. 따라서 감사는 우리 각자와 우리의 교회 공동체들이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도움을 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즉 감사는 우리가 과학과 신앙 각각이 제공하는 유익들과 우리의 삶에 가져다주는 가치들 그리고 양자가 협력할 수 있는 방식에 감사하도록 상기시켜 준다.

_11장 감사



추천사 중에서


인터뷰와 설문 조사로써 과학자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를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한 사회학자의 눈은 신선하고 예사롭지 않다. 그 신뢰할 만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저자는 과학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고질적인 불협화음에 대한 통찰을 나눈다. 나아가 해결 방안으로서 불필요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서로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로 나아가길 소망하는 동시에, 호기심·겸손·경외심·감사를 포함한 여덟 가지 공통된 미덕을 서로 적극적으로 공유하기를 제안한다. 일독을 권한다.

김영웅│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과학자의 신앙공부』 저자

 

2018년 에든버러 대학교 기포드 강연 연사이기도 한 일레인 하워드 에클런드는 저명한 사회학자이며 크리스천으로서 과학과 신앙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전문가다. “과학과 신앙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라는 그녀의 주장은 자신의 사회과학적 조사의 결과인 동시에 변증이기도 하다. 두 영역(과학과 신앙)은 구속(救贖)을 지향한다는 주장이 일레인 에클런드의 빛나는 공헌이다. 본서는 학문적이지만 대중적이고, 과학적이지만 신앙적 얼굴을 담고 있는 경건 서적 같기도 하다. 글이 따스하고 온화하다. 그래서 베이커 출판사의 대중 서적 출판 브랜드인 브라조스에서 출판했다. 목회자들, 신학생들 및 교회의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과 학구적 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류호준│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본서는 과학과 신앙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를 잘 분석한 책이다. 본서를 통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창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닫고 겸손한 자세로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정립해 가기를 기대한다.

장재호│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유투브 “과학과신학연구소” 운영자

 

이 책은 신앙과 과학이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두려움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한다. 에클런드는 사회과학적 연구방법을 바탕으로 호기심, 의심, 겸손, 창의성 등의 덕목이 과학과 신앙 모두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덕목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가 세계와 초월적 실재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신앙과 과학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정대경│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부교수, 종교와 과학 전공

 

사람들이 과학과 신앙에 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분야에 관한 에클런드의 세계적인 연구는 과학자들과 신앙인들의 관점에 빛을 비춰준다. 이 간략한 책은 그녀의 학자적 통찰과 개인의 이야기들을 결합하여 과학과 기독교가 어떻게 건설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아름답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목회자, 캠퍼스 사역자, 그리스도인 과학자, 소그룹 토론을 위한 완벽한 책이다.

데보라 하스마│천문학자, 바이오로고스 CEO

 

에클런드는 탁월하고 통찰력이 있는 책에서 많은 신앙 공동체와 과학 공동체를 질식시키는 분위기에 절실하게 필요한, 은혜로 가득 찬 공기를 가져온다. 신앙 공동체의 리더인 나는 내 교구민 모두 이 책을 읽고 충심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며,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톰 넬슨│크라이스트 커뮤니티 처치 시니어 목사, 메이드 투 플로리시(Made to Flourish) CEO

 

이 책은 사려 깊고 영감이 넘치는 책이다.

후아니타 라스무스│텍사스주 휴스턴 소재 세인트 존스 처치 시니어 목사, Learning to be 저자

 

에클런드는 사회학 데이터와 개인적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 과학과 기독교 신앙이 적절하게 이해될 경우 어떻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겸손, 지적 호기심, 심지어 의심이라는 공유 가치를 배양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사고를 자극하며 설득력이 있는 그림을 보여준다.

프라빈 세투파시│코넬 대학교 척추동물 유전체학 센터

 

하나님의 백성이 과학의 경이를 통해 그분의 영광의 넓이와 깊이를 명백히 알기를 바라는 에클런드의 전염성 있는 염원은 우리에게 영감을 고취한다.

코리에 에드워즈│오하이오 주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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