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신약성서의 내러티브 신학』 출간안내

새물결플러스
2021-09-27
조회수 137

책 소개


본서는 신약성서 전체를 유배와 회복이라는 거대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제2성전기 유대교의 맥락에서뿐만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와 연결하여 일관성 있게 해석한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서평


기존의 “신약신학” 연구는 신약성서를 관통하는 특정한 신학적 개념을 설명하거나 신약성서 각 권의 주제를 정리하였다. 하지만 신약학자 에스콜라가 쓴 이 책은 그런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유배와 회복의 메타내러티브가 신약성서 전체를 관통한다고 시종일관 주장하며, 그 메타내러티브가 신약성서 전체의 주요 주제와 사상과 개념을 형성시킨 모태라고 논증한다. 이것은 새로운 신약신학의 구성이다.

본서의 핵심 내용은 “회복 종말론의 메타내러티브”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회복 종말론의 전망이 신약성서 전체에 깔려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교 사상에서 현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회복 종말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전제로 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시작된 실제 포로 생활은 약 반세기뿐이지만, 그럼에도 적지 않은 유대 전승은 바빌로니아에서의 귀환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유배 상황이 계속된다고 판정했다. 본서는 이것을 “영적 유배”의 상황이라고 부른다.

영적 유배 상황에서 회복과 구원을 염원하는 종말론적 기대가 제2성전기 유대교 사상에 편만해 있었고 이런 기대감이 정점에 달했던 때가 예수와 원시 기독교 당시였다. 당시 마지막 회복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믿음은 드물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산다는 것은 그러한 이상주의를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반면, 저자는 예수가 그 회복을 시작하고 완성한 인물임을 신약성서가 증언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저자는 예수와 바울과 요한 및 다른 신약성서 저자들의 글을 회복 종말론이라는 핵심적 메타내러티브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곧 영적 유배 상황에서 종말론적인 해방이 예수를 통해 일어났다는 메타내러티브가 신약성서 전체의 매트릭스에 해당한다. 이러한 주장은 신약학 분야에서 매우 자주 거론되는 샌더스(E. P. Sanders)와 라이트(N. T. Wright)의 연구와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신약성서를 새 관점으로 읽는 것과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유배와 해석의 틀로 신약성서를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옛 관점과 새 관점의 대립을 뛰어넘는 더 나은 성서해석이라고 강조한다.

본서는 내러티브 방법론의 중요성을 쉽게 설명하고 내러티브 분석에 따른 최근 연구 결과물들을 신약성서 전반에 충분히 적용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내러티브 신학이 역사비평과 모순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방법론적 통합을 시도한다. 또 구약과 신약, 예수 및 초기 기독교와 당시 유대적 전승, 나아가 신약성서 각 책이 거대한 이야기를 모태로 태어난 연관 관계를 분명히 한다. 이로써 신약성서 각 책의 정교한 서술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거대한 그림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그림의 중심에 “새로운 성전 건설”이라는 핵심 요소가 자리한다. 예수를 통해 도래한 회복과 구원의 요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종말론적인 새 성전의 건축이다.

독자들은 본서를 통해 구약과 유대교 전승, 그리고 신약성서와 초기 기독교 전체를 아우르는 전망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신약연구 방법론, 예수에 대한 새 관점, 바울에 대한 새 관점 등 학문적 논의에 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성전 신학” 관점에서 신약성서 전반을 일목요연하게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통찰을 제공한다.




 

지은이 및 옮긴이 소개


지은이 | 티모 에스콜라

티모 에스콜라(Timo Escola)는 1955년생으로 헬싱키 대학교(University of Helsinki)에서 1992년 신학박사, 2011년 철학박사, 1998년 교수 자격 학위를 받았다. 핀란드 신학 연구소(Technological Institute of Finland) 소속 신약학자이며, 헬싱키 대학교의 강사(Privatdozent)다. 신약신학, 해석학, 바울의 구원론(새 관점), 초기 기독론, 역사적 예수, 포스트리버럴 신학, 신약고고학과 초기 유대교 문헌 등을 연구한다. 비교문학, 기호학, 언어학 등에 관련해서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울의 구원론에 나타난 신정론과 예정』(Theodicy and Predestination in Pauline Soteriology, 1998), 『메시아와 보좌』(Messiah and the Throne, 2001) 등의 저술을 비롯하여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옮긴이 | 박찬웅

연세대학교 신학과(B.A.)와 대학원(Th.M.)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학과에서 누가-행전과 요세푸스의 세례 요한과 예수에 관한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초기 기독교와 요세푸스』(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한국기독교학회 소망학술상 수상), 『연세신학백주년기념 성서주석: 히브리서』, 『예수의 비유』(공저)가 있고 번역서로는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공역), 『기독교의 탄생: 예수운동에서 종교로』(공역), 『IVP 성경신학사전』(공역)이 있다. 현재 목원대학교 신학과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이 | 권영주

듀크 신학대학원(Th.M.)에서 바울의 신학과 윤리의 연결성에 대해 공부하고 애즈베리 신학대학원(Ph.D.)에서 구술, 기억, 장르의 관점으로 예수 전승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 지도교수인 크레이그 키너 박사가 책임 편집을 맡은 Biographies and Jesus: What Does It Mean for the Gospels to be Biographies?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현재 복음서를 그리스-로마 전기 장르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그 외 신약학 분야의 다수의 논문을 출판했다. 현재 한국침례신학대학교에서 신약성서를 가르치고 연구한다.

 

옮긴이 | 김학철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고전으로 읽는 성서-마태복음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사도 바울과 새 시대의 윤리』 외 다수가 있으며, 신약학 및 기독교 교양학을 주제로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 대학에서 기독교 교양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 한국기독교교양학회 연구진흥위원장이기도 하다.

 




차례


서문

약어표


제1장 서론

I. 내러티브 신학의 목적과 방법

1. 역사와 내러티브

2. 방법론의 변화

3. 기호론과 의미화 과정

II. 샌더스와 라이트의 도전적 가설 검증

1. 메이어에서부터 샌더스 그리고 라이트까지의 연구

2. 새로운 연구의 발전과 방향

3. 패러다임 확장에 기여한 연구: 계속된 유배와 성전 비판

III. 과제의 설정: 통합의 시도


제2장 예수의 메시지

I. 유배와 회복

1.바빌로니아 유배의 역사와 신학

2. 유배 개념의 확장

3. 회복의 패턴

4. 이스라엘의 계속된 유배 문제

5. 신정론(神正論) 주제

II. 종말론적 성전을 세우는 다윗의 후손

1. 예수의 승리의 입성과 회복에 대한 예언

2. 황폐해진 성전에 대한 거부

3. 예수의 성전 설교

4. 영적 유배의 기호들

5. 종말론적 성전에 대한 기대

III. 유배의 종결을 가져오는 환난의 시대

1. 환난의 시대의 시작: 세례자 요한의 죽음

2. 가족의 화평 주제: 아버지의 마음

3. 복음 전파를 통해 지파들을 불러모음

4. 변화의 시대

5. 예루살렘 멸망과 메시아적 묵시 사상

IV. 왕이신 하나님과 희년

1. 회복의 복음

2. 시온으로 돌아오는 왕이신 하나님

3. 메시아와 희년의 시작

4. 희년의 축복

5. 메시아의 성전으로서의 새로운 공동체

V. 근본적인 유대교 신앙의 회복

1. 쉐마 기도와 철저한 신앙

2. 산상설교: 너의 삶에 대해 근심하지 말라

3. 포기에 관한 시험

4.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이스라엘은 들었는가?

5. 첫 번째 계명을 성취하는 아바(abba)

6. 예수와 율법

VI. 제사장적 정결 공동체

1. 정결 규정

2. 새 성전의 정결

3. 안식일 준수

4. 금식 논쟁

VII. 제사장적 식사로서의 마지막 만찬

1. 피의 언약

2. 성전에서의 제사장적 식사

3. 희생제사 참여에 대한 바울의 해석

4. 환난의 마지막 희생자

VIII. 고난 받는 메시아: 예수의 정체성

1. 순교자로서의 인자

2. 구속과 대속의 속죄

3. 유배기의 타락에 대한 속죄제

4. 인자의 높여짐

5. 죽은 자의 부활


제3장 원시 기독교의 가르침

I. 부활 사건에 대한 해석

1. 서막으로서의 오순절 사건

2. 부활한 주님에 대한 초기의 고백과 믿음

3. 승귀 기독론을 위한 근거로서의 시편 110편

4. 그룹-보좌 위의 그리스도

5. 보좌 신비주의에서 왕적 기독론으로

II. 여섯 개의 기독론 내러티브

1. 다윗 가문 왕의 하늘 보좌

2.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왕

3. 자신을 바친 고난 받는 종

4. 지성소에 들어가신 영원한 대제사장

5. 심판대의 재판장이신 메시아

6. 회복의 왕에 대한 믿음

III. 초기 기독론과 유대교 회당 예배

1. 아미다와 회복 종말론

2. 사가랴의 노래

3. 마리아의 노래에 나타난 기독론

4. 스데반과 초기의 회당 설교


제4장 신학자 바울

I. 회복 종말론 : 성취와 해방

1. 시대(ages)의 교체와 카이로스(kairos)의 성취

2. 아보다트 이스라엘(Avodat Israel)과 토라 준수에 대한 비판

3. 율법의 행위를 버림

4.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전

5. 바울 그리고 유배와 회복의 메타내러티브

II. 사랑의 법에 대한 바울의 지혜 전승

1. 바울과 모세

2. 창조의 지혜로서의 율법

3. 사랑의 핵심

4. 죽음의 직분

추기: E. P. 샌더스와 언약적 율법주의 이론

III. 화해에서 십자가 신학으로

1. 희생과 대속

2. 아케다(Akedah)─모델로서의 이삭

3. 저주로서의 그리스도

4. 대표, 속전, 구속

5. 십자가에 참여하기

IV. 신정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칭의

1. 유대교 위기의 신학에 대한 바울의 견해

2. 의와 신정론의 문제

3. 갇힌 인류

4. 이신칭의

추기: 새 관점과 칭의 이론

V. 디카이오쉬네 테우(dikaiosynē theou)에서 이스라엘의 지위

1. 옛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

2.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

3. “해로 여기는 것”의 원리

4. 회복 종말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VI. 바울 서신에 나타난 즉위 기독론

1. 그리스도와 고백

2. 바울과 부활하신 분

3. 왕적 통치의 기독론

4. 낮아짐과 높아짐

VII. 새로운 이스라엘을 모으는 것

1. 새로운 성전에서의 사역

2. 이방인의 사도 바울

3. 세례와 구원

4. 종말론과 새로운 세상의 창조


제5장 유대적 기독교

Ⅰ. 유대교적 기독교와 회복 종말론

1. 히브리서: 하늘 성전의 창조

2. 야고보서: 희년을 축하하는 공동체

3. 베드로전서: 하늘의 제사장직

Ⅱ. 요한복음과 요한 신학

1. 영적 유배 생활은 끝이 났다.

2. 육에 장막을 치신 영원한 말씀

3. 환난의 시대에서 새 성전으로

4. 요한1서의 심층 구조에 나타난 회복 종말론

Ⅲ. 요한계시록의 성전, 창조, 새 예루살렘

1.이스라엘 지파를 위한 해방

2. 다윗의 뿌리의 왕위 등극

3. 정원-성전(the garden-temple)을 다시 세우기


제6장 결론: 메타내러티브에서 신학으로

참고문헌

고대 문헌 색인

 




추천사 중에서


본서는 내러티브 방식으로 신약신학에 접근한다. 그중에서도 유배와 회복이라는 메타내러티브로 신약 문헌 전체를 고찰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쓰인 새로운 신약신학 책인 본서는 학자들과 일반 독자들의 독서욕을 끌어당기는 책이다.

김동수, 평택대학교 신학과 교수, 전 한국신약학회 회장

 

저자는 “유배와 회복”이라는 구약신학의 핵심 모티프(예컨대 월터 브루그만)를 가져다가 신약신학의 얼개로 사용한다. 이런 안목으로 저자는 복음서부터 바울 서신과 공동 서신 및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신약성서 전체를 일관되게 읽는다.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 성전과 새 성전, 옛 제사장과 새 제사장, 다윗 왕국과 새 다윗 왕국, 옛 언약과 새 언약 등 미완결 상태로 남은 구약 내러티브가 예수 그리스도 사건으로 회복을 시작하였고 장차 온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통전적 성경 읽기에 큰 도움을 준다. 매우 흥미롭고 진지하고 통찰력과 설득력을 겸비한 수작이다.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어야 하는 목회자들과 신학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은퇴 교수

 

저자는 성서의 메타내러티브에 담긴 유배와 회복이라는 광대한 이야기를 주목할 때 신약신학의 새로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본서는 필독서의 영예로운 자리를 거머쥘 것이며, 21세기 신약신학 연구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다.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본서는 메이어(Ben F. Meyer)를 거쳐 샌더스(E. P. Sanders)가 개척한 “회복” 종말론과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가 정초한 ‘유배와 회복’이란 패러다임을 활용하여 신약성서 전체를 메타내러티브의 방법으로 재구성한 방대한 신약신학 저작이다. 그러나 이 “재구성”은 안이한 짜깁기가 아니라 한 메타내러티브의 장구한 전승과 해석, 적용으로 이어지는 “의미화 과정” 가운데 기호학과 언어학을 포괄하는 내러티브 신학 방법론에 입각하여 치밀하게 신약성서의 여러 주제와 본문을 창의적으로 요리한 열정의 산물로 평가할 만하다. 이 진지한 또 하나의 신약성서 신학의 연구물이 행여 모든 내용물을 하나의 틀 속에 가두려는 환원주의의 의혹에서 그 핵심 논지를 탄력적으로 방어하고 보완해나간다면 본서는 내러티브 신학으로 신약성서를 다시 읽고자 하는 계통 가운데 우리 시대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차정식, 한일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티모 에스콜라의 작품은 “신약학” 현대주의 사상의 유행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내러티브 서사학과 기호학의 해석 방법을 활용하여 “신약신학”을 재구성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신약학적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그 유행에 거스르고 있는 한 편의 성경신학적인 작품을 제안한 셈이다. 신약학과 신학이 이혼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신학생과 목회자라면 그 믿음을 따라 신실하게 읽어나가야 할 책으로 손색이 없다.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회장

 

『신약성서의 내러티브 신학』은 성전 모티프와 유배와 회복의 종말론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방법론, 상호 본문성, 예수의 가르침과 메시지의 신학적 내용과 형성, 그것과 구약성경 및 제2 성전기 문헌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한 그것의 전용에 관해서도 의미 있고 유용한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앱슨 조지프, 인디애나 웨슬리언 대학교 교수

 

에스콜라는 신약신학 연구를 위한 가장 박식하고 유용한 내러티브 신학 책을 썼다.

크레이그 L. 블롬버그, 덴버 신학교 교수





본문 중에서

 

그러므로 신약신학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재구성을 기반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예수의 메시지의 내용을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복음서의 내러티브들에 관한 적절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런 분석은 필연적으로 특정한 메타내러티브에 대한 재구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 메타내러티브는 예수의 추종자들의 사상에 영향을 준 신학의 기본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초기 기독교의 기독론과 구원론이 형성된 구체적 과정을 탐구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또 이러한 과정에 주목을 하면 바울의 좀 더 정교한 신학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종합적인 해석을 위해서는 예수의 가르침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구원론적 메시지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대체로 기독론적인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본서에서는 유대교 회당 예배와 관련된 다른 측면도 고려될 것이다. 역사비평의 시대에는 예수와 바울의 관계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그런데 이 새 관점은 “유대인 바울”을 제2성전기의 유대교 종말론 및 회복의 신학이란 맥락에서 해석함으로써 이 주제에 관한 새로운 빛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한 예비적 가설은 신약성서 대부분의 저자 및 초기 기독교의 신학자들이 그런 기본적 메타내러티브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 메타내러티브가 그들의 사고를 형성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신학을 위한 자료를 제공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합을 시도할 수 있고 또 신약신학 분야에서 초기 기독교 사상에 나타난 기저의 요소와 예외적인 요소 모두를 탐구하는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문제를 서서히 해결할 수 있는 재구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_제1장 서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계속된 유배 주제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결국 새로운 성전이 건축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일부 학자도 있다. 계속된 유배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냐하면 대예언자들의 약속에는 하나님이 고민을 끝내시고 이스라엘 지파들을 바빌로니아에서 떠나게 한다는(이는 또한 실현된 일이기도 하다)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이견에도 불구하고 앞서 분석한 내용은 많은 유대교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적어도 영적인 현실에서는─제2성전기의 이스라엘 사회에는 여전히 유배의 상황이 만연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계속된 유배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게 여겨진다. 만일 이 용어가 정확하게 표현된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제2성전 시대에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더 많은 의견일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 시기의 어떤 저자도 이스라엘의 회복이 만족스럽게 실현되었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로마 제국의 지배는 유대 백성에게는 결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아니었다. 이런 유대교 신학의 관점에서는 회복은 오직 미래의 시점에 실현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성전 건축자로서의 다윗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예수의 메시지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해석학적 열쇠가 된다. 그것은 예수의 정체성과 그의 가르침의 핵심을 모두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예수는 진정한 벧엘, 즉 쉐키나가 거하는 하나님의 집인 종말론적 성전을 일으키는 자로 운명지어졌다. 이 메시지 때문에 그는 현재의 성전에 저항했고 또 그 행동은 불가피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한 회복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대교의 해방 개념은 종말론과 관련하여 이미 몇 가지 역할을 했다. 그런 가르침에 따르면 회복의 날은 희년, 구원의 성전, 속죄,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져올 것이다. 예수의 선포에는 이 모든 주제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종말론적 성전 건설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 자신과 그의 추종자들, 특히 그의 제자들이 종말론적 실재를 이해하기 위한 메타내러티브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이 메타내러티브는 복음서 전승에 나타난 예수의 다른 여러 말씀을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구조적 원리가 된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의 종말론과 신약성서 신학 모두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 사건이 내러티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유배와 회복의 메타내러티브에 아주 잘 부합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의 삶에서 경험한 냉혹한 사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신학에는 묵시 사상의 기조가 담겨 있다. 진노의 시대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유배의 상황이 이스라엘이 끔찍한 환난의 때를 경험하기 이전에는 종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다니엘서의 전승은 옳았다. 제2의 엘리야가 오겠지만 그를 통해서는 아직 평화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첫 번째 엘리야의 경험을 또다시 겪게 될 것이다. 죄가 만연하고 백성은 그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예수는 이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에게 박해의 때를 준비하게 했다. 유배의 고통이 끝나고 구원이 실현되기 전에는 험난한 길을 가야 하고 인자 자신도 고난을 겪게 될 것이다.

유대교 신학을 다룬 많은 저자는 최종적 회복의 성전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세워지는 성전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몇몇 묘사에서 그 성전은 이상적 성전이자 여러모로 신비한 성전으로 제시된다. 쿰란 공동체의 신학자들이 그 성전이 단순히 돌로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가리킬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옳았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성전은 주님과 완전히 하나가 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는 또한 예수가 자신의 회복의 복음을 통해서 가르친 내용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새로운 다윗의 후손이 구원의 성전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시편 118편은 이 가르침에서 매우 중요했다. 거부당한 아들은 새로운 건물의 머릿돌이 될 것이고 따라서 종말론적 성전은 산 돌들로 지어져야만 한다. 베드로의 고백에 따르면 예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저주받은 유배를 종결시킬 것이다. 이것이 그 위에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성전이 세워질 반석이다.

그러므로 쉐마 기도의 이상적 관점에서 보면 신앙 준수에 관한 주제는 반드시 회복 종말론 개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는 율법의 본질에 관해 가르칠 때 유대교 전통을 확고하게 붙들고 있었다. 신적 계시로서의 토라는 사랑 자체가 구체화된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삶의 원칙이고 창조의 목적이다. 마음과 뜻과 힘은 하나님 아래 놓여야 하며 맘몬이 이스라엘의 주님을 대신하는 새로운 우상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예수의 선포는 백성을 잠에서 깨어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에 취한 상황은 배교를 강요했던 왕들의 통치 시대에 시작하여 유배의 상황 속에서 더 심화되었다. 그들은 눈이 있지만 볼 수는 없다. 마음의 상태는 영적인 유배 가운데 있으며 이는 단순히 신인협력 사상 같은 특정한 가르침으로는 바로 잡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을 보내셔서 죄로 더럽혀진 타락한 민족을 제거하시는 행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징벌을 모면할 수 있다. 이 때가 바로 갱신과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제2성전기의 묵시적 집단들이 선언한 모호한 언약주의적 기대는 이제 믿음의 순종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하나님의 종을 따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순결한 마음을 가지게 되며 회복의 새 “언약”을 통해 그들의 죄는 용서함을 받는다.

이 모든 논의가 증명하는 바는 분명히 예수는 모세의 율법 자체를 거부하지 않은 채 유대교 전통의 예식 규정들을 재해석했으며, 동시에 추방된 사람들을 위한 복음을 선포하고 최종적인 회복을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리고 부정한 자들을 깨끗케 하는 시대가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이미 이러한 갱신에 참여하고 있다. 형식적인 예식은 종말론적 실재에 아무런 보탬이 될 수 없다. 그러한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 예수는 최선의 것을 위해 차선의 것을 포기한다. 예수의 공동체는 제사장적 정결함을 갖춘 하나의 성전과도 같지만 사실상 그 정결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성전에 대한 암시적인 비판이 예수의 가르침 곳곳에서 탐지된다. 신적 자비가 베풀어지는 일에 제사장은 필요 없다. 오히려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성전 제사장의 지위가 부여되며 그들은 예수 외에는 다른 어떤 희생제물의 매개 없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성만찬 제정 말씀에 내재되어 있는 제사장적 측면들은 이처럼 예수의 사명 속에서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된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와의 친교 장면은 대제사장이 성전 구역에서 집행하는 희생제사 가운데 제사장들이 친교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떡과 포도주는 그 제자들을 위한 거룩한 제사 음식이 된다. 신자들의 삶 속에서 이 식사는 두 가지 차원으로 작용한다. 제물로서의 그 식사는 신자들에게 죄 용서를 제공하며, 친교의 의미에서의 그 식사는 그들을 생명의 근원인 예수와 연합하게 만든다. 성전 이데올로기와 제사장적 메시아 사상의 렌즈를 통해서 보면 예수의 죽음은 주로 이스라엘의 죄를 위한 대속적 죽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 자신이 이런 구원론에 충실한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즉 예수는 종말론적 회복이 순교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런 희생은 회복의 열매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속죄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것이 바로 성만찬 제정 말씀이 선포하는 내용이다. 구약성서에서 피의 제사는 제의적 행위로서 그 결과로 속죄를 가져왔는데, 이는 성전에 입장하는 각 개인의 죄에 대한 속죄인 동시에 유배의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에 대한 속죄를 의미했다. 주의 만찬의 신학에는 이 양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

_제2장 예수의 메시지

 

초기 기독론에서 유배의 종식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내러티브는 부활 이후의 상황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새로운 구원론은 매우 “전통적”이다. 왜냐하면 그 구원론은 유대교 신앙의 핵심인 성전, 지성소, 하나님의 보좌로서의 언약궤 같은 이미지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높여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에서 하늘의 지성소에 있는 영광의 보좌에 앉는다. 그 주는 마침내 선택된 백성의 왕으로 인정된다. 새로운 공동체에 관한 한 환난의 때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을지라도 대전환이 발생했다. 평화의 왕국은 바로 이곳에 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예수의 부활이 바로 그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 그리스도는 부활한 자들 가운데 “맏아들”이었다.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 다윗의 후손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영광의 보좌에 즉위했다. 이 모든 내용은 영적 유배의 종결을 가리킨다. 그 자비의 공동체에 속한 누구든지 회복의 열매들을 향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메시지와 초기 교회의 가르침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 종말론적 성전을 세울 것이라고 선포한 반면 그의 제자들은 부활 직후에 새로운 성전이 임했다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광의 보좌의 장소, 곧 언약궤가 있는 영적인 성전이다. 자신들의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해 “속죄소”라는 보좌에 올랐기 때문에 모든 신자는 그곳으로 나아올 수 있다.따라서 부활 기독론은 회복에 대한 소망의 성취다. 초기의 기독론적 진술들을 형성했던 사도들은 유배의 종식에 관한 예수의 약속이 실현되었다고 확신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함께 시작했다. 마지막 때가 임했다. 이 우주적인 사건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으로 높여져서 영광의 보좌에 앉았다. 그리스도의 왕적 주권은 구약성서의 성전 제의 전체와 신정주의 개념을 재해석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스라엘에서의 하나님의 왕권은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에 앉음으로써 주가 된 것을 통해 드러난다. 신자들이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할 때 그들은 전통적인 예배의 목적도 성취한다. 그것은 곧 그들이 하늘의 왕으로서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회당 예배의 기도가 어떻게 초기 기독교의 복음이 형성되는 데 완벽한 출발점을 제공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쉐마의 보편적 활용, 아미다의 기도, 타르굼식의 설교들이 초기 기독교 신학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공통적인 기반은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메시아적 성전을 건설할 다윗의 후손에 초점을 둔 종말론에 있다. 유배와 회복의 메타내러티브에서 표현된 이 주제들은 위에서 분석한 내용들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졌으며 예수의 가르침과 초기 기독교의 교리를 명료하게 연결시킨다.

_제3장 원시 기독교의 가르침

 

바울의 사상은 독특하다. 그는 고도의 추상화와 방대한 역사적 관점으로 글을 쓴다. 그는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의 정점으로 본다. 선택받은 백성의 메시아가 도래했지만 이스라엘은 진노의 전통을 조장하고 따라서 환난(peirasmos)의 시기, 곧 고통의 때가 조성된다. 이스라엘은 회심하기 전의 바울처럼 자신의 상태를 모르는 채 하나님의 적으로 살았다. 그들은 주님과 토라의 준수를 변호하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회복을 파괴한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구원자를 영접하지 않고 대신 엘리야인 세례 요한과 이 마지막 때의 예언자가 그 출현을 예고한 다윗의 자손 모두를 죽인다.이러한 구원론은 예언서들에서 유래된 또 다른 주제인 남은 자 신학을 도입함으로써 마무리된다. 구원의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만 속한다. 좋은 소식은 잃어버린 지파들을 부르고 진정한 이스라엘인 남은 자를 모은다. 그들은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의 집단이다. 이 남은 자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고─그 결론이 말하듯이─이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받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는 점차 구원의 큰 나무로 자라게 될 회복의 씨다.

예수에게 그랬듯이 바울에게 있어 토라의 핵심은 사랑이다. 계명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울은 황금률을 알았고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 해석은 한층 더 나아갈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율법 신학에서 지혜 전승의 율법주의를 적용했다. 사실 온 세상이 사랑의 원리에 따라 창조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대한 어떤 침해도 토라의 위반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드러날 때 악덕 목록은 학습 도구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사랑의 원리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이 이상을 훼손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를 확인해준다. 하지만 원리는 동일하게 유지되며 따라서 당국을 통해 수호되는 법체계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정의라는 공식적인 원리에 따라 살 것을 강제한다. 사랑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참여 신학에서 제의 담론은 참여 개념의 출현을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성전의 희생제물을 먹음으로써 제단에 있는 다른 신들에 참여하는 자(koinōnoi)가 된다. 그런 제의적 개념이 바울로 하여금 존재론적 참여 용어를 사용하도록 자극한다. 신자들은 주의 식탁에 참여한다(metechein). 따라서 모든 참여 개념은 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존하지, 부활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점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 구별은 있지만 분리는 없다. 모든 구절에서 예수의 부활이 언급되며, 신자가 일단 제의적 용서와 희생제사의 속죄를 거치고 나면 새 생명은 예수의 부활과 심지어 그의 영적인 몸에 참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사고의 흐름은 몸의 메타포, 즉 기독교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을 구성한다는 가르침에서 절정을 이룬다.

칭의는 바울 구원론의 핵심에 속하며 바울의 사상을 (개신교에서) 잘못 해석한 결과가 아니다. 제2성전기 유대교 신학의 난제들을 다루고 회복 종말론의 관점에서 위기의 신학을 설명하려고 하는 바울은 순수한 믿음의 핵심적 이슈인 적절한 의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구원론을 설명할 때 바울은 하나님의 의(dikaiosynē theou)와 인간의 의를 대립시킨다. 인간의 의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하는 행위가 된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희생, 즉 속죄를 이루고 갱신을 가능케 하는 완벽한 희생에 기반을 둔다. 동시에 그것은 신정론 문제, 즉 이스라엘 민족이 대대로 직면한 정치적 참사 내내 하나님이 침묵함으로써 말미암는 고통을 해결한다. 적어도 영적인 의미에서는 유배가 계속되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의가 선물이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부패한 세상에 궁극적인 해방을 가져올 수 있도록 자기의 아들을 보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dikaiosynē theou)에서의 이스라엘의 지위를 설명할 때 회복 종말론을 이사야서의 남은 자 신학과 연결한다. 여기서 유배의 수사 원리들이 매우 현저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부패한 그 민족을 덮었고 그 백성이 모든 참상을 겪는 동안 하나님은 줄곧 침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에게 있어 진노의 그릇들은 구원의 소망을 거의 잃은 채 신적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왔을 때 모든 것이 변했다. 그의 즉위는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진정한 이스라엘, 즉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게 될 남은 자들을 모은다. 열두 지파들이 모이는 것과 더불어 이방인의 충만한 수(plērōma)도 모일 것이다. 바울은 포로기 예언자들의 종말론을 따라서 이방 민족들의 종말론적 순례가 구속사를 완성한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갱신을 가져오기 위해 “모든 사람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었다.” 그때 회심한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시온에서 오는 구원자를 맞이할 것이다. 회복의 신비가 드러났고 에덴은 새롭게 창조될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이처럼 굴욕과 높아짐의 패턴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장 잘 표현한다. 그는 예수의 우주적 사명을 압축한 형태로 제시할 수 있는 그 내러티브를 좋아한다. 비록 바울이 이전의 자료들과 받아들여진 고백 및 찬송을 계속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바울 자신의 기독론이다. 이는 또한 보편 구원론의 근거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장애물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방 민족들의 순례가 시작될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 기독론은 언제나 선교 사역으로 이어진다. 그가 이렇게 하는 근거는 부활한 주님이 그를 복음의 사도로 불렀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종말론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바울이 그의 선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유배가 계속되고 있음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우리는 회복이 계속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말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배교 상태에 있는 세상(kosmos)과 구원의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가 나란히 발전하는 것을 묘사한다. 선택받은 백성의 남은 자가 모일 것이고 이방인들의 순례가 시작될 것이다. 다윗의 후손이 손으로 짓지 않은 종말론적인 성전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나선형적인 종말론 관점은 세상(kosmos)의 부패 역시 심화될 것임을 암시한다. 영적 유배가 끝났지만 환난의 시기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복음은 사람들을 죽음의 상태에서 불러내 부활의 생명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진노의 날 전까지는 새로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새로운 질문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결국 바울에게 있어 회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 사도는 몸의 부활을 통한 새 창조를 선포한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진행 중이고 마지막 날까지 부분적인 회복에 그칠 것이기 때문에 창조세계 전체의 최종적인 갱신은 미래에 놓여 있다. 그것은 에덴동산 성전의 회복에서 드러날 것이다. 회복은 인간 전체와 관련이 있으며 세상(kosmos)의 부패는 모든 것이 새롭게 창조될 때에만 종식될 것이다

_제4장 신학자 바울

 

히브리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린 후에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하늘 성전에 들어 올려진 다윗 가문의 왕이다. 종말론적 즉위를 한 후 그는 진정한 희년의 시대, 곧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게 오는 뉘우치는 사람을 회복하는 성전 건축자다. 새로운 공동체는 새 창조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사이에 머무는 진정한 동산-성전이다. 이 성소에서 신앙인들은 주를 영광스럽게 하고, 또 영광의 보좌에 앉은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한 왕 같은 하나님의 아들을 찬양하면서 파괴의 시대가 끝나는 것을 축하한다.

회복 종말론의 전망에서 읽으면 야고보서는 히브리서를 제외하고는 예수의 말을 상호본문적으로 읽은 가장 본래적인 글이라 할 수 있다. 종말론적 회복은 그리스도가 영광의 보좌에 등극했을 때 시작한다. 그는 구원의 공동체를 위한 진정한 희생제물이고 모든 죄는 그의 피로써 용서를 받는다. 이 첫 번째 사건이 하나님이 미천한 사람을 들어 올리시고 “가난한 자를 선택하시는” 최종적인 희년을 시작하게 한다. 이제껏 우리가 살펴본 야고보서의 본문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약함을 통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야고보서 자체가 종말론적 선교 활동을 증언한다. 야고보서의 말씀은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향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나라에 선포될 것이고 영원한 죽음에서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널리 읽히던 유대교적 기독교인이 작성한 이 서신이 명백하게 회복 종말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베드로 서신 전체에서 유배와 회복의 메타내러티브가 채택된다. 저자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부상하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성전이자 다윗의 아들이 세우는 성소라고 믿었다. 그 성전은 살아있는 돌들로 구성된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묘사되고, 하늘에서 그가 하는 사역을 통해 화해가 이루어진다. 영적인 유배는 끝났고 신앙인들은 살아있는 희망으로 태어난다. 기대하던 부활은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들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이 머무시는 최종적인 성전, 곧 다시 창조되는 에덴동산으로 그들을 데리고 간다.

유배와 회복의 메타내러티브 전망에서 읽으면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한의 신학도 다윗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되는, 같은 내러티브에 근거를 둔다. 그는 포로기를 끝내고 회복을 시작한다. 성전 비판과 새로운 구원의 성전을 선포하는 것은 유사한 배경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처럼 요한의 구원론은 잘 알려진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1서는 회복 종말론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다. 예수 자신과 초기 유대적-기독교 교회의 선포가 빚은 모티프가 요한1서의 사상 세계에 깊이 스며있다. 저자는 솜씨 좋게 유배 상황과 구원받은 공동체를 대조한다. 그는 죄 속에 사는 세계가 회복을 가져오는 분, 곧 그리스도를 알아채지 못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는 것이 어떻게 구원의 표시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진정한 희년의 이유인지를 많은 시간을 들여 묘사한다. 이것이 그가 회복의 목표를 가르치면서 자기 사역을 마무리하는 이유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4:17). 요한1서는 고통과 가족 사이의 다툼을 속죄와 용서와 형제 자매애로 대체한다.

요한계시록이 끝날 때 메타내러티브는 완성에 도달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유배가 종식되는 이야기, 사실상 에덴에서 추방된 거대한 유배가 끝나는 이야기다. 같은 패턴이 역사를 통해 반복된다. 창조세계 혹은 그것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하나님에게서) 추방된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나서서 타락한 세계의 상황을 바꿀 때라야 에덴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류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했다. 분노와 환난의 시대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한다. 그는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죄를 용서한다. 그 후에 그는 어린 양이 새로운 왕국의 왕위에 등극하도록 한다. 각 지파에게 새로운 희망이 주어진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모으시는 하나님이다. 그는 모든 나라에서 아담의 후손들을 모아 새롭게 창조한다. “복이 있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얻을 권리와 문을 통과하여 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 예복을 빠는 사람!”(계 22:14)

_제5장 유대적 기독교

 

우리가 부활 이후 초기 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교회의 관점을 좀 더 깊이 논의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명백해진다. 첫째, 부활 기독론은 의도적으로 예수의 높아짐을 종말론적 즉위로 묘사한다. 다윗의 아들이 하늘의 권좌에 등극하는 것은 시편 110편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지막 날에 있는 신적인 즉위인데, 이때 하나님 자신이 오고, 이스라엘의 갱신이 명백해지는 희년이 시작한다. 둘째, 초기 찬송 전승을 연구하면 초기 기독론은 회당의 전승과 제의, 그리고 아미다(Amidah, 아미다는 쉐모네 에스레라고도 불리는데 유대교 의식에서 중심부에 놓인 기도다─역자 주)에 나타난 신학에서 자라온 것이 입증된다. 예수가 온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올 것으로 고대하던 다윗 가문의 메시아의 도래로 묘사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학 사상을 조형하는 이 메타내러티브는 서로 관계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신학 운동 가운데 속한 하나의 좁은 부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 연구는 초기 기독교인들과 예수 추종자들의 사상 세계가 이 주요한 메타내러티브에 일관성 있게 연관된 생각들의 광범위한 연결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이 내러티브의 구조를 알면 독자들은 이전에는 서로 독립되어 있거나 분리된 요소로 보이던 여러 신학적 주제들을 묶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몇몇 학자는 신학 사상의 구문론(a syntax of theological thought)에 관해서 말해왔다. 이것 또한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고대에 무엇인가를 쓰고 말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두 내러티브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메타내러티브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_제6장 결론: 메타내러티브에서 신학으로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