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죽으러 온 예수 죽이러 온 예수』 출간안내

새물결플러스
2019-11-26
조회수 2358

책 소개

저자 김경집은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개신교의 흐름과 정서에 친숙하다. 또한 여기에 인문학자적 소양이 더해지면서 교회의 문제를 균형 있게 지적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지금의 위기를 넘어서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는 뜯어진 옷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수선하듯 교회의 면면을 바로 세우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동안 교회는 자신을 위해 속죄의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자신을 “죽여야” 하는 책임과 도리는 소홀히 한 결과 소위 값싼 은혜의 악취를 풍기는 종교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교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앙과 교회의 본질에 기초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성찰할 기회를 열어주는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출판사 서평

현재 한국 사회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정치, 법, 교육, 종교 등 어느 영역 하나 성한 곳이 없다. 특히 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계가 보여주는 퇴행과 일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종교 문제는 워낙 예민해서 아무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인문학자 김경집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죽으러 온 예수 죽이러 온 예수』의 저자 김경집은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개신교의 흐름과 정서에 친숙하다. 또한 여기에 인문학자적 소양이 더해지면서 교회의 문제를 균형 있게 지적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지금의 위기를 넘어서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는 뜯어진 옷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수선하듯 교회의 면면을 바로 세우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먼저 “사람 됨”과 “사랑”을 축으로 하는 제1부 “인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이 사랑의 회복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때 그가 말하는 사랑은 책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60대 중 한 사람으로서 그는 깊은 성찰을 통해 다음 세대에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른이 되어야 사랑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또한 약자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제2부 “사회: 깨어 있는 사회에 미래가 열린다”에서 저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선을 고발하며 신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특히 교육계와 법조계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다음 세대가 살기 좋은, 공정하고 희망 넘치는 사회를 향한 저자의 바람에서 비롯한다. 또한 아르바이트생, 장애인, 성 소수자들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참된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제3부 “교회: 교회만 바뀌어도 세상의 절반이 변한다”는 본격적으로 교회의 문제와 그 해결책에 관한 고민을 다룬다. 자정 기능을 상실한 채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교회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그런데도 많은 신앙인이 별다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채 탐욕과 독선에 물들어 몰락으로 치달았던 중세교회나 독일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신자들이 깨어나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저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 종교,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함이라고 갈파한다. 즉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교만과 위선과 탐욕을 “죽이기” 위해, 교회가 불의와 야합하는 모든 방종을 없애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을 일치시키며 “죽이러 오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죽어야만 다시 살 수 있다.

그동안 교회는 자신을 위해 속죄의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자신을 “죽여야” 하는 책임과 도리는 소홀히 한 결과 소위 값싼 은혜의 악취를 풍기는 종교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교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앙과 교회의 본질에 기초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성찰할 기회를 열어주는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지은이 김경집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예술철학과 현대사회철학을 공부했다. 서강대학교에서 시작하여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뒤 계획했던 대로 25년 만에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학교를 떠난 뒤에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신학부)에서 예비 사제들을 몇 해 동안 더 가르쳤다. 이제는 계획한 대로 세 번째 25년을 맞아 글 쓰고, 책 읽고, 문화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방송이나 신문 등을 통해 다양한 소통에 힘쓰고 있다.

인문정신은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미래 의제를 끌어내는 바탕이라는 신념으로 다양한 책을 썼다. 『인문학은 밥이다』(알에이치코리아, 2013) 외에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동아시아, 2018),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들녘, 2017), 『생각의 융합』(더숲, 2015), 『책탐』(나무수, 2009) 등의 인문 서적과 『인생의 밑줄』(한겨레출판, 2019), 『생각을 걷다』(휴, 2017), 『나이듦의 즐거움』(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등 여러 에세이 집, 『다시 읽은 고전』(학교도서관저널, 2019), 『언어사춘기』(들녘, 2019) 등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책, 더 나아가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시공사, 2013)이라는 종교 서적도 썼다. 지금까지 지은 책이 서른 권이 넘지만 늘 진화하는 글과 책을 지향한다.

세상 여러 일에 폭넓은 관심과 애정을 두고 공부하며 관찰하고 사유하는 게 일이다. 자연을 거닐며 사색하는 일을 좋아하고 늘 음악을 가까이한다. 2010년에 『책탐』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받았고, 여러 권의 저서가 “한 도시 한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어른은 진보다”라는 주제로 책을 쓰고 있으며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문적 비평서 및 사고 혁명을 통한 새로운 대안을 논하는 책을 구상 중이다



차 례

여는 글_ 죽으러 온 예수, 죽이러 온 예수


1부 인간_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1장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2장 사랑은 측은지심이다

3장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사랑이다

4장 우리는 누구인가?

5장 본질적인 것은 단순하다

6장 비판은 최고의 대안이다

7장 겁과 비겁 사이

8장 용기와 두려움

9장 60대를 성찰하다

10장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을 얻어야

11장 강자가 앞장서라!


2부 사회_ 깨어 있는 사회에 미래가 열린다

12장 행운과 불운은 누구의 몫인가?

13장 역사를 배워야 할 시간

14장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인가?

15장 학교와 교회에서 노동의 법과 권리를 가르쳐라!

16장 앞으로 10년, 그리고 100년

17장 어른들이 깨어나야 한다

18장 늘 깨어 있어라!

19장 어른들은 청년들을 이해하고 있는가?

20장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21장 야만과 폭력

22장 판관의 타락

23장 모차르트를 들으며


3부 교회_ 교회만 바뀌어도 세상의 절반이 변한다

24장 시대를 알아보아라

25장 다시 시편을 읽으며

26장 우리는 어떤 거울을 갖고 있는가?

27장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28장 탐욕을 경계하라

29장 도덕을 실천하지 못하는 교회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

30장 종교를 욕되게 하는 자들을 물리쳐라!

31장 교회에서 가짜 뉴스를 쫓아내라!

32장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

33장 품고, 기다리고, 함께 살며

34장 본회퍼를 기억하라


맺는 글_ 기꺼이 돌을 들어라!

원문의 출처


본문 중에서

예수님은 단순히 하느님 나라를 선언적으로만 선포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몸소 그 실천을 보여주러 오셨다. 복음서는 그 모든 사건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걸 수백 번 읽은들 무슨 소용인가? 당시의 부패한 종교 권력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과 저주를 지금의 교회 및 신앙과 무관하다고 여긴다면 모두 헛일이 되고 말 것이다. 

_“여는 글: 죽으러 온 예수, 죽이러 온 예수” 중에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면책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것은 복음의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삶으로 실천하지 않고 사회적 불의에 대해 외면한다면 더 큰 비난과 질책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알고도 하지 않는 건 더 큰 죄악이기 때문이다. 

_“4장: 우리는 누구인가?”

 

아름다운 용기가 필요한 일에 대담함을 보이는 사람이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무서워해야 할 것과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에서 참된 용기가 비롯하는 법이다. 플라톤도 이 대화를 통해 진정한 앎 없이 대담한 사람은 용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_“8장: 용기와 두려움”


보수를 참칭한 수구 세력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삶의 강을 건너온 60대가 택해야 할 권리이자 의무다. 수구 세력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따끔하게 비판하고 질책해야 한다. 손자 손녀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의에 맞서 의연히 일어나야 한다. 그 아이들에게 올바른 대한민국을 넘겨줘야 할 것이 아닌가! 

_“9장: 60대를 성찰하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계와 더불어 가장 보수적인 곳이 바로 종교계다. 보편적으로 종교에서는 현세의 삶보다 내세의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런 까닭에 종교계는 자칫 지상의 현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방관적 입장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 그러나 기독교건 불교건 이슬람교건 상관없이 거의 모든 종교는 엄청난 혁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_“16장: 앞으로 10년, 그리고 100년”

 

밀레니얼 세대는 고민하며 아파하는 자신들을 대변하는 존재에 주목하고 윤리적인 경영자나 모범적인 리더 그룹에 대한 감동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청년들에게 말로만 공감한다고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단순히 귀를 기울이는 흉내만 낼 게 아니라 권한 일부를 과감하게 그들에게 양도해야 한다. 

_“19장: 어른들은 청년들을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고전음악의 정수이며 가장 아름다운 음악의 창조자인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의 “혁명성”을 떠올린다. 모차르트를 들으며 혁명을 떠올린다니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혁명을 본다.…그가 기득권에 맞서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대중의 호흡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혁명성을 논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_“23장: 모차르트를 들으며”


많은 신자가 자기 종교의 부패와 타락, 비합리성과 부조리를 알면서도 인터넷이나 SNS에 고발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뿐이다. 세상에 끝까지 숨겨질 일은 없다. 신・구교를 막론하고 수많은 신자가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왜곡된 권위에 신물을 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언제든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_“26장: 우리는 어떤 거울을 갖고 있는가?”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명하신 짓들을 골라서 하는 한국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시민들이나 신자들은 이미 교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조금씩 거두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교회와 성직자들만 바라보면 안 된다. 그보다는 신자들이 깨어 부당한 억압에 맞서 비판하며 싸워야 한다. 

_“30장: 종교를 욕되게 하는 자들을 물리쳐라!”

 

본회퍼에 따르면 교회는 국가가 성경이 규정하는 대로 법과 질서의 환경을 조성하지 않을 때 국가의 결함을 지적하고, 국가가 법과 질서의 환경을 과도하게 조성할 때 국가의 과도함을 지적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는 국가가 법과 질서를 과도하게 집행한다면 그 국가는 국가의 권력을 신장시켜 기독교의 선포와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권리를 박탈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_“34장: 본회퍼를 기억하라”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신·구교를 포괄해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신자의 수를 다 합치면 인구의 절반쯤이 된다. 그렇다면 신자들이 바뀌어서 복음을 제대로 실천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국가와 사회가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그런 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_“맺는 글: 기꺼이 돌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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