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광장과 골방』 출간안내

새물결플러스
2021-04-21
조회수 976

책소개


코로나19가 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하다. 지금 한국교회는 마치 큰물에 휩쓸린 가난한 집안의 가재도구들처럼 찌그러지고 흙투성이가 된 채 땡볕에 널브러져 있다. 그 누추함과 지린내에 보는 이들이 숨을 참으며 외면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서 복구를 시작해야 할까? 복구가 가능하기는 할까? 힘없는 눈으로 망연자실 한숨만 내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한국교회가 영광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두 흐름으로 복기(復碁)해본다. 첫째, 한국교회는 광장(廣場)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했다. 학자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공공성을 상실했고, 저자의 언어로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지 못했다. 본래 기독교는 광장의 종교다. 온갖 이념과 철학과 종교와 세계관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광장으로 나와서, 이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가면을 벗기고, 그리스도의 발 앞에 무릎 꿇리는 것이 기독교다. 그러나 교회는 한 세대 이상 반공주의·시장 경제·국가주의와 영합하여 체제의 일부가 되었다. 체제의 주류 편에 서서 재물과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안주했을 뿐, 그 체제의 뒷골목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로하거나 자비를 베풀거나 정의를 되찾아주지 않았다. 시대의 과제를 외면한 기독교는 시대로부터 외면당한다.

둘째, 한국교회에서 영광이 떠난 것은 골방에서의 은밀한 기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골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나 영혼을 찌르고, 오물을 뒤집어쓴 비참한 자아가 드러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침잠하게 된다. 골방의 기도를 통해 성경의 관점과 세상의 문제들이 분석되고 종합된다. 마치 어둠 속에 샛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나의 마음에 또렷한 음성이 들리는 체험을 한다. 이 체험이 성도를 영광스럽게 하고 기품 있게 하고 힘 있게 한다.

광장과 골방,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광장은 진보주의자들의 무대고(2020년 전광훈 목사의 정치 참여는 진정한 의미의 광장이 아니다), 골방은 보수적 기독교인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둘이 분열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골방의 기독교는 광장을 지향해야 하고, 광장의 기독교는 골방을 사모해야 한다. 골방에서 얻은 통찰을 광장에서 펼치며, 광장에의 참여에서 알게 된 시대적 고민과 죄악을 골방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은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1년 동안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을 공공신학의 입장에서 숙고한 결과물이다. 코로나19의 의미와 기독교인의 할 일, K-방역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미래, 공정(公正)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들, 전광훈 목사 사태에 대한 해석, 난항을 겪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차별금지법 발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의미 등을 다루었다. 공적(公的) 주제들에 대한 기도의 골방으로부터 나온 저자의 고민을 기록했다. 본서는 한국교회의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유의미한 길잡이가 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지은이 및 옮긴이 

지은이 | 장동민

서울대학교 철학과(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역사신학으로 신학석사(Th.M.)와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남부전원교회와 백석대학교회(서울) 담임목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백석대학교 교목부총장으로 학원 복음화의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박형룡의 신학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신학의 심포니』(이레서원), 『박형룡』(살림), 『대화로 풀어본 한국교회사 1, 2』(부흥과개혁사), 『예연』, 『구약의 기도』(이상 UCN), 『우리 시대를 위한 십계명』(대서),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새물결플러스) 등이 있다.

 



차례


서론 광장과 골방

1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답할 때: 영화 “기생충”을 본 한 그리스도인의 감상

2 코로나19는 하나님의 심판인가?

3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우리 시대의 제사장

4 K-방역, 시민 정신, 공동체주의

5 공정 사회, 능력 사회

6 “원래 교회는 정치하는 집단…?”

7 전광훈 소요 사태와 능력 종교

8 진보적 그리스도인과 태극기파(派)가 화해할 수 있을까?

9 『그 일이 일어난 방』

10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의 전략

11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는 말라.”

12 코로나19 시대의 한국교회

부록 “한국 기독교 사회 선언”(Korean Christians’ Social Manifesto)을 제안한다



 

추천사 중에서


장동민 교수는 전작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를 통해 교회의 안타까운 상황에 답답해하는 그리스도인이 그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길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광장과 골방』을 통해 이 광야 같은 코로나 시대를 용감하게 헤쳐나갈 대안까지 제안해주었다. 동시대인의 문제에 같이 아파하며 골방에서 통곡해온 그의 음성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게 된다.

김정태|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장동민 박사의 『광장과 골방』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충격으로 방황하는 지금 한국 개신교회가 나아갈 좌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독교 저작의 하나로 꼽고 싶다. 통찰력 넘치는 성서 해석과 시대 문화와 학문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글쓰기로 쉽게 읽히면서 절대로 잊히지 않을 깨달음을 부여하는 책이다. 한국교회의 설교자는 물론이고 한국교회의 변혁과 새길을 고민하는 많은 평신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종구|기독교대한감리회 세신교회 담임목사

 

세상에서 교회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현재의 위기 속에서 장동민 교수의 본서는 오히려 그 폐허 속에서 희망을 보게 하고 공공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다. 마치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루터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 중심의 공공신학을 회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안인섭|총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저자는 역사가의 통찰력과 신학자의 진지함으로 골방과 광장이라는 두 공간과 존재 양식을 논한다. 썩어 냄새나는 골방과 하나님과 거리두기를 한 광장에 있는 교회를 향해 저자는 외친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이어서 웃음을 되찾은 누이들과 나사로의 손을 잡고 말한다. “함께 평화와 정의와 희락의 광장에서 춤추며 노래하자.” 절망의 파국에서 기도하며 희망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

 

『광장과 골방』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지나며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던 한 학자의 절규에 가까운 예언자적 외침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진 한국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혼란스러운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겐 매우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부록에서 “한국 기독교 사회 선언”을 함께 만들자는 제언에는 가슴이 뛰었다. 아무쪼록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귀한 영감을 받기를 바란다.

이도영|『코로나19 이후 시대와 한국교회의 과제』 저자, 더불어숲동산교회 담임목사

 

저자는 절망 가운데 주저앉아 있거나 현실을 냉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는 성도들의 손을 붙잡고 성경과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풍성한 자산으로 인도한다. 그뿐 아니라 이 자산으로 무장하여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상의 문제를 치유할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영적 세계로 이끌고 간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내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꿈틀거림을 느낀다.

정병오|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이 책의 서론인 ‘광장과 골방’을 읽다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역사학자가 역사 속으로, ‘진짜 광장’ 안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심이고 헌신이며 진정성이다. 나는 저자가 역사학자의 지혜와 목회자의 경건으로 이 땅의 교회를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 믿고 응원한다. 이 책을 붙들고 숙고하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채영삼|백석대학교 신약신학 교수

 

한국교회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몸부림을 통해 유다 백성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심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국교회가 저자가 부록에서 제안한 “한국 기독교 사회 선언”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재의 한국교회는 골방에서도 광장에서도 방향을 잃은 듯하여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쪼록 한국교회의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경험한 골방과 광장을 공유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허성식|홍콩에서 사역 중인 선교학자

 

저자는 독특한 장르의 옷을 입고 오랫동안 가슴에 꾹 담아온 메시지를 한국교회에 외치는 듯하다. 현실과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 아래로 말씀과 복음을 향한 불타는 속마음이 페이지마다 진하게 전해진다. 읽다 보면 단단한 망치로 얻어맞거나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 같이 몸과 맘이 혼미해지고 아려온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제각각 자신들의 영문을 빠져나와 나사렛 예수께서 걸어가신 그 영문 밖 광장과 골방 안으로 한 발짝 더 내딛는 용기와 실천을 북돋아주는 데 이처럼 도전적인 글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허주|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회장

 



본문 중에서


골방에서 기도와 말씀 묵상과 시련이 일상화된 그리스도인이 광장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인터넷 기사와 종편 논객과 막말 유튜버가 우리 영혼의 인도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에서는 국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뒤로는 자기 살 궁리하는 정치인이나, 조직의 이익 앞에서는 철저한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는 전문가 집단도 아니다. 자신이 어리석은 백성의 메시아라고 착각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나, 정연한 논리로 외국 학설을 소개하는 젊은 학자나, 기독교의 진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신학자도 신뢰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복잡한 사람들의 세상살이와 심오한 하나님의 진리를 어찌 인간의 1,500cc 뇌 속에 다 넣을 수 있을까? 자신의 지성을 철저히 부인하고, 성령과 성경의 인도에 따르기를 간절히 원하는 목회자와 전문가들과 성도들이 희망이다.

_서론 “광장과 골방” 중에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기독교로 돌아가야 한다. 광장에 나와서 외치기 전에 골방에 들어가 자신을 살피자.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되 그들과 나 사이에 선을 긋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나의 경계를 침범할 때, 자신의 안전을 위해 경계가 필요하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는 그들을 환대해야 한다. 나도 언제든지 선 밖으로 밀려날 수 있음을 알고, 혹시 선 밖으로 밀려났을 때 이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발적인 자선(慈善)으로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기독교적 깨달음이 법적·제도적 경제 정의로 구현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선과 경계와 장벽과 국경이 무력화되는 종말의 때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_제1장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답할 때: 영화 “기생충”을 본 한 그리스도인의 감상” 중에서

 

하나님에게는 두 손이 있다. 렘브란트가 “탕자의 귀환”(1669년)에서 묘사한 것처럼, 책임 있게 세상을 다스리며 정의를 세우는 아버지의 단단한 왼손과 그 손에 매를 맞은 아들을 싸매어주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오른손이다. 대제사장 아론이나 목자 다윗은 아버지의 두 번째 손을 기대하면서 용서를 구한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오른손을 대표하는 대리인의 역할을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성경에 무수히 등장하는 모든 중보기도는 대적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는 행위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 자신의 이름을 책에서 지워달라고까지 한 모세의 기도, 7년 가뭄을 그치게 한 엘리야의 목숨을 건 기도 등등. 그리고 중보기도의 진수는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과 피를 흘리며 기도하신 우리 예수님이시다!

_제3장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우리 시대의 제사장” 중에서

 

어느 한 이념, 어느 한 정파를 진리로 알고 다른 쪽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는, 그것이 보수든 진보든, 대결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기 위해서는 정치와 이념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 삶의 여러 국면, 여러 영역을 고루 봄으로써 정치에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치 과잉의 사회다. 정치의 한계를 알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에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다. 교회는 원래 정치하는 집단이다. 단 하려면 제대로 하자.

_제6장 “원래 교회는 정치하는 집단…?” 중에서

 

성령의 능력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죄를 이기는 내적 능력이다. 믿는 자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빌립보서 4:13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 능력 때문에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부자가 되어도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내적 능력이 밖으로 나타난 증거이며,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성도를 섬김으로써 교회를 세우며 세상에 봉사하라는 것이다. ‘홀리’와 ‘파워’의 조합이 성경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정한 의미의 ‘홀리 파워’는 ‘파워’보다는 ‘홀리’에 강조점이 있다. 이는 거룩한 사람들(성도)이 능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싶다는 권력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 능력으로 거룩함을 되찾고 싶다는 간절한 기원이어야 한다.

_제7장 “전광훈 소요 사태와 능력 종교” 중에서

 

기독교도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자신들이 믿는 바에 따라 의견을 진술할 권리가 있다. 공립학교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 교사가 자신의 신앙에서 나온 반(反)동성애 견해를 학생들에게 강요하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적 성(性) 개념이 공립학교에서 하나의 견해로서 가르쳐지는 것이 금지되어서도 안 된다. 교육 현장에서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혐오하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동시에 동성애를 반대하는 견해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져야 한다. 학교는 여러 의견이 편견 없이 공평하게 논의되고 전달되는 “공론장”(公論場)이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과거 기독교 국가에서 기독교적 윤리를 강요하는 것과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n분의 1에 해당하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가톨릭도, 불교와 원불교도, 무신론자도, 여성주의자도 같은 지분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진정한 다원주의 아니겠는가?

_제10장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의 전략” 중에서

 

교회가 집단주의에 빠지지 않고 목사와 성도가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는 말라”는 칼릴 지브란의 충고를 들어야 한다. 바이올린의 네 현이 각기 자기 소리를 내도, 아니 그럴 때라야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목회자와 성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단독자로 만나면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지도자와 추종자 사이가 아니고, CEO와 고객 사이도 아니며, 제사장과 백성 사이도 아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성령이 주시는 각각의 은사로 서로를 섬긴다.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 어떤 사람은 위로로, 구제로, 다스림으로, 각각 성도를 섬기는 것이다. 성도들이 목사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한다.

_제11장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는 말라.” 중에서

 

하지만 어둡고 깊은 밤의 끝은 미명(微明)의 시작이다. 지금이 바로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변혁의 깃발을 들 때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과 교회의 죄악을 밝히 드러내고 통회하는 것이 우선이다. 성경의 관점에서 우리의 앞길을 밝히는 큰 그림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로 가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을 전해야 한다. 이는 어두운 시대에 빛을 비추어 세상에 샬롬을 가져오기 위함이요, 교회가 본질적 사명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개인의 노력과 개별적인 봉사도 중요하지만, 한국교회와 기독교 지성이 힘을 모아 “한국 기독교 사회 선언”(이하 “사회 선언”)을 함께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_부록 “‘한국 기독교 사회 선언’(Korean Christians’ Social Manifesto)을 제안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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